지금도 기다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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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유양업
출판사항서영, 발행일:2019/02/20
형태사항p.158 A5판:21
매장위치문학부(1층) , 재고문의 : 051-816-9500
ISBN9788997180813 [소득공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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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평론
 유양업 시인의 첫 시조집 출간을 축하하며

 유양업 작가는 한실문예창작에서 시 창작 훈련을 받아 시인으로 문단 데뷔하여 자신의 삶과 세계관을 이미지와 낯설게 하기로 곱게 빚어낸 첫 시집 <오늘도 걷는다>를 펴낸 바 있다. 그 후로 미국을 다녀와서, 다시 1~2년 남짓 탐스런 문학회에서 수필 창작의 담금질을 통해 수필 부문 신인문학상을 받아 수필가로도 등단했고, 작가 내면의 여러 색깔을 마치 고백하듯 써 내려간 서술 문장의 아름다움을 만나게 해주고 있는 수필집 <바람 따라 구름 따라 별빛 따라>를 발간했다. 이어 시조 시인으로도 등단하여, 이번에는 품격 높은 시조집 <지금도 기다릴까>를 세상에 내보내게 되었다.
지금까지 행복 나눔 문학상, 향촌 문학상 수필 부문 대상, 지구사랑 문학상, 용아 박용철 백일장, 한화생명 문학상 등의 문학상을 수상한 유양업 작가는 아름다움 그 자체이다. 성격, 성품, 목소리, 행동, 그 어느 것 하나 아름다움이 아닌 게 없다. 살아온 행로도 그만큼 아름답다.
그녀는 신학대학과 기독음대 성악과를 거쳐 캘리포니아 유니온 유니버스티 음악 석사 과정을 수료했다. 그리고 목사인 남편과 함께 러시아 모스크바로 날아가 선교사 겸 장신대 교수로 여러 해를 보냈다. 이어 싱가포르에서 선교사로 수년간 지내다가 귀국하여, 지금은 화가이자 시인이요, 수필가이자 시조 시인으로 집필 활동을 왕성하게 펼치고 있다.
유양업 작가는 맨 처음 만날 때부터 시집, 수필집, 시조집을 연달아 펴내기까지 그 창작 열정이 변함이 없었다. 순진무구한 마음밭, 차분한 말솜씨, 또박또박 끝맺음하는 목소리, 고음도 부드럽게 처리하는 노래 실력, 항상 자기보다 남부터 배려하는 마음, 말꼬리마다 낭군에 대한 고마움 표시, 택시를 타고서라도 문학 수업에 늦지 않으려는 지극한 정성, 시뿐만 아니라 수필, 시조까지 넘나드는 문학 열정, 옷 패션에도 신경을 쓰는 어여쁜 감성, 이 모든 게 조화롭게 유양업 작가의 멋을 창출해 내는 게 아닌가 싶다.
성실하고 부드럽고 착한 성품의 여인, 성악가 출신답게 노래도 잘 부르는 사람, 오로지 낭군 한 분만을 사랑하는 현모양처, 말 한마디도 예의에 어긋남이 없는 우아한 여성, 이미지 시를 잘 쓰는 시인, 책 한 권 분량의 기행문을 몇 달 만에 내리 써내는 인내의 수필가, 한국인답게 시조의 율격을 지극히 사랑하고 아끼는 시조 시인, 아주 오랜 세월 기독교 복음을 위해 인생을 바친 선교사, 틈나는 대로 그림을 그리는 화가, 패션 감각이 유달리 섬세한 예술가, 이렇듯 그녀에게 따라붙는 수식구가 한두 가지가 아닐 정도로, 멋쟁이 작가이다.
자, 그러면 유양업 시인이 펼치고 있는 시조의 세계는 어떠할까, 지금부터 재미난 탐구를 시작해 보도록 하자.

이팝꽃 꽃잎처럼 고웁게 흩날리어
 기다림 두께만큼 소복이 쌓이면서
 말갛게 피어난 설렘 눈부시게 빛난다.
- [첫눈] 전문

 이 시조에서의 시적 화자는 첫눈과 이팝꽃 꽃잎을 직유법으로 연결시켜 놓고 있다. 첫눈이 마치 이팝꽃 꽃잎처럼 곱게 흩날리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며, 회상에 잠기고 있다. 기다림의 두께만큼 소복이 쌓이고 있는 첫눈. 사랑하는 님을 기다리고 있는 해맑은 마음이 선명히 보이는 듯하다.
얼마나 오랫동안 기다렸기에 저토록 소복이 쌓이는 첫눈 같을까. 그 세월, 그 기다림, 그 그리움, 그 사랑이 애틋하다. 그러나, 시적 화자의 마음은 어둠으로 치닫지 않는다. 오히려 말갛게 피어난 설렘으로 다가온다. 그 설렘은 눈부시게 빛나면서, 독자의 마음을 포근히 감싸 준다. 이 순간, 시적 화자도 독자도 다 함께 눈부시게 빛나는 세상, 아름답게 첫눈 오는 정경, 어둡지 않고 활짝 희망차게 펼쳐 나갈 미래를 가슴에 안게 된다. 그 느낌이 행복으로 안내하고 있다. 이게 바로 유양업 시인이 바라는 시 창작의 존재 이유, 시적 형상화의 방향이 아닐까.

몰려온 바람결도 날개 편 갈매기도
 해종일 그리워서 소롯이 출렁이며
 조약돌 긴 기다림도 철썩이는 뱃머리

 휘감는 흰 물보라 추억을 만끽하며
 수평선 넓은 가슴 흰구름 끌어안고
 연분홍 애틋한 사랑 넘실대네 저 멀리

 뱃머리 가물가물 속삭임 미소 짓고
 갯내음 비릿한 향 수놓은 모래사장
 불타는 노을 붙잡아 아련하게 거니네.
- [바다] 전문

 이 시조에서의 시적 화자는 바닷가에 서 있다. 그리고 몰려오는 바람결, 날개 편 갈매기, 출렁이는 파도, 구르는 조약돌, 철썩이는 뱃머리, 흰구름 끌어안은 수평선, 갯내음 나는 모래사장, 불타는 노을을 바라보고 있다. 그러면서 사물에 시적 화자의 내면을 이입시켜 놓고 있다. 바람결도 갈매기도 조약돌도 뱃머리도 긴 기다림을 껴안고 있다. 그것도 해종일 그리워하면서. 물보라는 추억을 만끽하고 있고, 수평선은 애틋한 사랑으로 넘실대고 있다. 뱃머리 속삭임은 미소 짓고 있고, 갯내음 수놓은 모래사장은 노을이랑 함께 아련하게 거닐고 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정경인가. 이미지 구현으로 이뤄진 시조의 세계가 얼마나 멋스러운지를 여실히 보여 주고 있다. 미적 가치의 그릇에 담겨진 이미지가 시조의 품격을 한층 더 높여 주고 있다.

솔바람 걸어 다닌 자욱한 안개밭에
 섬섬히 떠오르는 빛바랜 자리마다
 가슴에 뜨거운 사랑 붉은 숨결 내뿜네.
- [일출] 전문

 이 시조에서의 시적 화자는 일출을 바라보며 펼쳐진 그림을 시의 여백에 담고 있다. 자욱한 안개밭은 솔바람이 걸어 다니고 있다. 시각 이미지(자욱한 안개밭)와 청각 이미지(솔바람 걸어 다닌)의 만남이 조화롭다. 솔바람이 걸어 다니는 안개밭으로 독자를 이끄는 솜씨가 부러울 정도다. 섬섬히 떠오르는 빛바랜 자리, 그 자리는 고달픈 시적 화자의 인생인 듯하다. 그런데도 슬프거나 어둡지 아니하다. 그 자리, 그 가슴에 뜨거운 사랑이 붉은 숨결을 내뿜고 있기 때문이다. 어둠과 슬픔과 한탄이 스며들 겨를이 없다. 또 그럴 만한 빈틈도 없어 보인다. 오로지 밝게 내딛는 사랑의 숨결만이 존재할 뿐이다. 이게 시적 화자의 인생관이요, 세계관이 아닐까. 삶에 있어서 역경과 고난과 시련이 문제가 아니라, 그걸 극복하고 새날을 뜨거운 사랑처럼 맞이하는 자세가 더 중요하지 않겠는가, 이렇게 강조하고 있는 듯하다.

연초록 싱그런 잎 속앓다 불태우고
 긴 꽃대 목 내밀어 까르르 떠는 꽃술
 그리움 붉게 일렁여 꿈의 불꽃 밝혔네

 애절히 사연 담아 풋사랑 하고파라
 못 잊을 님의 눈물 서러움 토해내고
 비단빛 사랑의 향기 가슴속에 품었네

 푸른 잎 어데 있나 붉은 꽃 어데 있나
 사랑의 숨바꼭질 못 이룬 슬픈 인연
 서로를 그리워하네 애달프다 불꽃아.
- [상사화] 전문

 이 시조에서의 시적 화자는 상사화를 자아처럼 관찰하고 있다. 싱그런 연초록 이파리, 긴 꽃대, 목 내민 꽃술을 눈여겨보다가 자신의 사랑을 떠올린다. 속앓다 불태우는 사랑, 붉게 일렁이는 그리움, 애절히 사연 남긴 풋사랑, 못 잊을 님의 눈물, 서러움 토해 냈지만 가슴 속에 깊이 품은 비단빛 사랑의 향기, 이루지 못해 슬픈 인연, 서로를 그리워하지만, 열매 맺지 못한 애달픈 불꽃, 이를 시적 화자는 사랑의 숨바꼭질로 해석하고 있다. 비록 이루지는 못했지만, 여전히 가슴과 영혼을 아름답게 장식해 주는 사랑의 숨바꼭질, 보드랍고 향긋한 마음이 시적 형상화 되어, 독자의 가슴을 훈훈하게 해주고 있다.

붓 숨결 곡선 그려 그리움 번져 가며
 살포시 빈 맘 열어 수줍음 한줌 담아
 흰 여백 사랑 속삭여 맑은 고백 펼치네

 해맑은 상념 담아 그리움 적시면서
 설레인 순백 미소 눈 속에 가득 넣어
 은은히 너울댄 빛깔 서심 그려 띄우네.
- [서예] 전문

 이 시조에서의 시적 화자는 서예에 대한 애정 어린 시선을 갖고 있다. 붓 숨결이 느껴지고, 이 붓 숨결은 곡선을 그려 그리움을 그리고, 이 그리움은 먹 따라 번져 간다. 살포시 빈 맘 열어 수줍음까지 한줌 담아 곡선을 그려간다. 흰 여백에 사랑을 속삭이듯 맑은 고백을 펼쳐 나간다. 해맑은 상념 담아 그리움을 적시면서 뻗어 나간다. 설레이는 순백의 미소가 눈망울 속으로 가득 들어온다. 이때 은은히 너울대던 빛깔이 서심(書心) 그려 띄운다. 이 얼마나 섬세한 감성의 그림인가. 시조의 이미지로 그려낸 감성의 파노라마, 그림으로도 색채로도 그릴 수 없는 세계를 시어로 그려내고 있다. 왜 이 땅에 시조가 존재해야 하는가를 입증이라도 하려는 듯 이미지를 선명히 그려내고 있다. 이게 시조의 정형 율격 위에 세워져 있으니, 더욱 감칠맛이 나고 있다. 어느덧 유양업 시인은 시조가 다다르고자 하는 경지에 와 있는 건 아닐까. 마냥 부럽기만 하다.

속울음 끌어안고 모여든 발걸음들
 빛나는 별과 함께 어둠을 밝히우고
 타오른 애국의 불꽃 온누리에 퍼지네

 공법이 물과 같이 정의가 하수같이
 손에 든 음률 가락 구름도 받아들고
 울분을 어루만지며 소리 높여 외치네

 가슴을 태운 불꽃 하늘로 치솟으며
 아픔의 의미 방울 바람도 휘감아서
 뜻 밝힌 정의의 함성 하늘 향해 불타네.
- [촛불 집회] 전문

 이 시조에서의 시적 화자는 광장의 촛불 집회를 바라보며 그 의미를 정리하고 있다. 광장에 모여든 시민들의 발걸음들은 속울음 끌어안고 빛나는 별들과 함께 어둠을 밝히고 있다. 타오른 애국의 불꽃은 온누리로 퍼져 나가고 있다.
공법과 정의가 물 흐르듯 하고, 손에 든 음률 가락은 구름이 받아들고, 시민들은 울분을 어루만지며 소리 높여 외치고 있다. 이때 가슴 태운 불꽃은 하늘로 치솟고, 아픔의 의미 방울은 바람이 휘감고, 뜻 밝힌 정의의 함성이 하늘 향해 불타고 있다. 촛불 집회의 긴장감과 뜻과 뜨거운 열기를 고스란히 시적 형상화로 전해 주고 있다.
유양업 시인은 개인의 정서, 내면의 감성에만 국한하지 않고, 이처럼 이웃에 대한 아픔, 나라에 대한 걱정, 불의에 대한 질타까지 끌어안아 치열하게 다루고 있다. 이게 바로 시 정신이다. 나 아닌 이웃의 아픔에 대한 공감과 상상력이 시인에게는 필수이다. 그 영역까지 넓혀 가고 있는 시인의 발걸음이 당당해 보인다.

한라봉 산모롱이 약초들 불러모아
 훈훈한 정겨움에 설레임 흠뻑 젖어
 푸근한 가슴에 안겨 전율되어 흐른다

 도자기 찻잔 위에 속삭임 둥실 뜨고
 기혈은 조화롭게 피로감 회복시켜
 어디든 풍긴 곳마다 무딘 감성 깨운다

 사색의 발걸음에 따스함 스며들어
 애잔한 그리움도 소롯이 자리잡고
 향긋이 꿈꾸는 차향 휘감기는 환희여.
- [쌍화차] 전문

 이 시조에서의 시적 화자는 쌍화차에 대한 예찬론을 펴고 있다. 한라산 산모롱이에서 캔 약초를 모아 만든 쌍화차, 훈훈한 정겨움에 설렘까지 흠뻑 젖어, 푸근한 가슴에 안겨 전율 되어 흐르는 쌍화차, 도자기 찻잔 위에 둥실 뜬 속삭임, 조화롭게 피로를 회복시켜 주고, 무딘 감성까지 깨워 주는 쌍화차, 사색의 발걸음에 따스함 스며들게 해주고, 애잔한 그리움도 소롯이 자리잡게 해주는 쌍화차, 바로 이 차야말로 향긋이 꿈꾸는 차향이자 휘감기는 환희가 아니겠는가. 어쩜 이리도 차에 대한 예찬이 아름다울까. 이런 예찬을 받는 쌍화차가 먹음직스럽다. 살아생전에 이런 찬사를 받을 수 있다면 성공한 삶이 아닐까. 감히 넘보지 못할 찬사를 받고 있는 쌍화차, 이를 노래한 유양업 시인, 둘 다 행복해 보인다.

움트는 여운 위에 그리움 풀어놓고
 노란 향 너른 가슴 연둣빛 사랑 안아
 꿈같은 추억 버무려 속삭인다 살포시

 연한 순 별빛 엮어 마음에 꽃피우고
 정겹게 엷은 햇살 가슴에 파고들어
 온누리 치솟는 생기 설렘 방울 울린다

 활짝 핀 꽃잎 풀어 산야에 흩뿌리며
 꽃망울 하얀 눈빛 뽀얀 정 얹어 주고
 고운 맘 향기 머금어 싱그럽게 휘돈다.
- [봄이 오는 소리] 전문

 이 시조에서의 시적 화자는 봄이 오는 소리를 시심의 귀로 가만히 듣고 있다. 움트는 여운 위에 그리움을 풀어놓고 노란 향의 너른 가슴이 연둣빛 사랑을 안고서 꿈같은 추억을 버무려 살포시 속삭이고 있다. 연한 순은 별빛 엮어 마음에 꽃피우고 있고, 정겨운 햇살은 가슴까지 파고들고 있다.
그러자 온누리는 치솟는 생기로 가득하고 설렘 방울이 달랑달랑 울리며 생기가 넘쳐난다. 활짝 핀 꽃잎들을 산야에 흩뿌리고, 꽃망울의 하얀 눈빛은 뽀얀 정 얹어 주고, 고운 맘은 향기 머금어 싱그럽게 휘돌고 있다. 이보다 더 아름다운 봄이 어디 있겠는가. 보드랍고도 향그러운 봄의 속살이 느껴지는 듯하다.
매번 맞이하는 봄을 무디게, 아무렇지 않게, 시큰둥하게 맞이하는 현대인들에게 일종의 경종을 울려 주고 있다. 살아 있는 봄을 맞이하라. 죽어 있는 봄을 맞이하지 말고, 이처럼 생동감 있고 설렘 가득한 봄을 맞이하라. 그게 삶이고, 삶의 보람이고, 삶의 길이 아니겠는가.

계곡 속 은둔 생활 세상 뜻 씻어내니
 양산보 삶의 터전 은물결 흐르는데
 오늘도 따스한 온기 행복 물결 넘치네.
- [소쇄원] 전문

 이 시조에서의 시적 화자는 소쇄원을 방문하여 이 유적지를 경이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소쇄원은 전남 담양에 있는 명승 제40호인 정원이다. 이 유적지는 양산보가 스승인 조광조가 유배되자 세상의 뜻을 버리고 낙향하여 지석마을에 숨어 살면서, 깨끗하고 시원하다는 의미를 담아 조성한 정원이다. 자연과 인공을 조화시켜 만든 정원으로도 유명하다.
양산보의 은둔 생활, 세상 뜻 씻어낸 채 살아가는 삶 자체가 은물결로 흐르고 있다. 비록 관료 생활에서 멀어지긴 했지만, 오늘도 어김없이 밀려오는 따스함과 행복 물결은 넘실대고 있다. 역사적 의미와 삶의 의미가 만나 숙연한 시간을 잠시 갖도록 만드는 시조, 행복이 먼 곳에 있는 게 아니라 바로 평범한 삶, 조용한 삶, 평화로운 삶 속에 담겨 있음을 다시 한 번 더 깨닫게 해주는 시조라서 더욱 좋아 보인다.

볏짚풀 지붕 위로 오가는 사연 자락
 산마루 군무 이뤄 긴 숨결 풀어놓고
 회색빛 여백의 창가 추억 넝쿨 올린다

 찬바람 눈비 가려 덮어 준 따스한 품
 계절의 한 모퉁이 설렘의 빗장 열고
 꿈 많은 세월 보듬고 달빛마저 안는다

 숨소리 멈춘 자리 노을빛 타오르고
 주름진 산모롱이 호롱불 지펴 들어
 구수한 침묵의 독백 불씨 되어 밝힌다.
- [초가집] 전문

 이 시조에서의 시적 화자는 고향의 초가집 앞에 다다라 있다. 볏짚풀 지붕 위로 오가는 사연 자락이 떠오르는 듯 한참이나 숨 고르고 있다.
산마루에는 물안개가 군무를 이루며 흘러가고 있고, 회색빛 여백의 창가에는 추억 넝쿨이 올라가고 있다. 아마도 담쟁이넝쿨이 창가로 올라가 방안을 기웃거리고 있는 듯하다. 계절의 모퉁이는 설렘의 빗장 열고 꿈 많은 세월과 달빛을 보듬어 안고 있고, 주름진 산모롱이는 노을빛이 깔려 있고, 구수한 침묵의 독백이 불씨 되어 회상에 젖게 한다. 여기서도 이미지만으로도 독자의 가슴에 고향의 초가집과 옛 시절의 추억과 설렘을 심어 놓기에 충분하다. 역시 시조에서 시적 형상화의 가장 중요한 디딤돌은 이미지임을 강조하고 있다.

새하얀 종이 펴고 추억의 열정 잡아
 먹물로 낭만 풀어 물안개 그려 넣고
 호숫가 그리움 엮어 구름 위로 띄운다

 밝은 빛 흰 꽃송이 낭만의 붓을 들고
 묻어둔 간절함에 쉼 없는 갈망 담아
 하늘가 수평선 멀리 햇살 풀어 그린다

 골짜기 깊은 계곡 무지개 어우러져
 옛 추억 음률 곡선 설레임 흔들으며
 산자락 한마당 물결 휘몰아서 춤춘다

 애절한 산그림자 붓 따라 흐른 선율
 연초록 싱그러움 하늘빛 감싸 돌고
 꽃바람 들향기 담아 황금 물결 이룬다.
- [한국화를 그리며] 전문

 이 시조에서의 시적 화자는 한국화를 그리고 있다. 새하얀 종이를 펴고 추억의 열정 잡아 먹물로 낭만 풀어 물안개, 호숫가, 구름, 흰 꽃송이, 하늘가 수평선, 골짜기, 무지개, 산그림자, 연초록 싱그러움, 하늘빛, 꽃바람, 들향기, 황금 물결 등을 그려 나간다. 묻어 둔 간절함에 쉼 없는 갈망 담아, 옛 추억의 음률 곡선으로 설렘 흔들며, 산자락은 한마당 물결 휘몰아서, 붓 따라 흐른 선율로 꽃바람 들향기까지 술술 그려 나간다. 마치 한국화와 시조가 다정히 만나 한바탕 춤판을 벌이고 있는 듯 생동감이 있다. 시조의 이미지와 리듬, 한국화의 멋스러움이 만나 조화로운 디코럼을 이루고 있어, 더욱 아름답다. 유양업 시인은 이미 대한민국 남농미술대전, 전국 춘향미술대전, 대한민국 힐링미술대전, 대한민국 한국화대전 등에서 한국화로 여러 번 수상한 경력이 있는 화가이기에, 유달리 시조의 이미지와 친숙한 듯하다.

이처럼 유양업 시조는 모두 다 독자에게 정겹다. 따스함과 부드러움과 행복을 안겨 준다. 무엇보다도 우리 한국 민족의 핏속으로 흐르는 시조의 정형 율격 위에 이미지 구현과 낯설게 하기와 공감각을 활용하여 시조의 독특한 맛과 멋을 빚어내고 있다. 특히, 이미지의 입체화, 추상과 구상의 조화로움, 리듬의 자연스러움, 사물에 대한 새로운 해석, 신선한 표현, 공감의 확대, 섬세한 감성의 포착 등이 유양업 시조의 폭을 넓혀 놓을 뿐 아니라 독자의 시선을 매료시켜 놓는 데 기여하고 있다.
앞으로도, 유양업 시인의 창작 열기는 쉽사리 수그러들지 않을 것 같다. 시, 시조, 수필 등의 창작에 대한 열정과 성실성, 그리고 진지함이 여생 내내 지속될 것 같다. 부디 오래도록 이 알차고 멋진 창작의 삶이 쭉 이어지길 바란다. 제2, 제3의 열매도 기대해 본다.
다시 한 번, 유양업 시집, 유양업 수필집에 이어 발간된 유양업 시조집에 큰 박수를 보낸다. 솔직히 많이 부럽고 존경스럽다.

- 눈이 오지 않지만 차가운 겨울바람이 스쳐가는 노을빛 창가에서
 한실문예창작 지도 교수 박덕은(문학박사, 전전남대 교수, 문학평론가, 시인, 소설가, 화가, 아동문학가)

작가 소개

저 : 유양업

기독음대 성악과 졸업
캘리포니아 유니온 유니버시티 성악과(음악석사)
러시아 모스크바 선교사, 러시아 모스크바 장신대 교수
싱가포르 선교사
자살방지 한국협회 광주 본부장, 전문 강사, 상담사
한국문화해외교류협회 호남지회 지회장
한빛 문학 자문위원
한실 문예창작 회원
탐스런 문학회 회장
시집으로 『오늘도 걷는다』
수필집으로 『바람 따라 구름 따라 별빛 따라』  

 

목 차

1장 - 물레방아 돌아가는 언덕
2장 - 나물 캐는 여인
3장 - 봄이 오는 소리

 

역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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