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만약 파우스트의 아내가, 프로이트의 아내가 자신의 남편에 대한 시를 쓴다면? 그이들의 눈에 비친 남편의 맨얼굴은 어떨까.
서른 명의 여성 어벤저스 일인칭 화자들이 각각 전하는 서른 편의 이야기를 모은 『세상의 아내』는 현대의 한 이야기꾼 시인인 캐롤 앤 더피가 엔터테인먼트 시대를 살아가며 더 이상 긴 이야기 시를 읽지 않는 독자들을 위해 쓴 현대의 축소판 『데카메론』 혹은 『켄터베리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세상의 아내들
손을 대는 모든 것을 황금으로 만든 마이다스, 어느 날 여자가 되어 집으로 돌아온 티레시아스, 교훈을 담은 우화를 생각하는 데 골몰한 이솝, 굴려 올리자마자 떨어지는 돌을 다시 굴려 올리는 일을 영원히 반복한 시시포스,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 지상의 모든 것을 누린 파우스트,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나사로, 현실의 여성에 환멸을 느껴 자신의 이상적 여인을 조각하여 만든 피그말리온, 성충동을 강조하고 여성들의 음경선망을 주장한 프로이트, 죽은 아내를 다시 데려오기 위해 지하세계로 간 오르페우스……. 이들의 아내는 과연 자신의 남편을 어떻게 생각했을까?
더피는 이 시집에서 성·인종·계급 중 특히 성을 통한 억압을 문제시하여 어린 시절부터 자신을 형성하는 데 기여해왔던 여러 이야기를 여성의 시각에서 다시 쓴다. 시인은 시간과 공간뿐만 아니라 현실과 가상을 가로질러 자유롭게 넘나들면서, 기존의 이야기에 보조 출연자로 등장했거나 가려져 보이지 않았던 여성들을 시의 화자로 내세워 이들이 금기를 깨고 자신들의 이야기를 전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한다. 선정된 서른 명의 여성 화자들은 기존의 유명한 남성 인물들의 부인들, 기존의 이야기 속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여성들, 그리고 원래는 남성이었지만 여성으로 변형된 인물들이다.
시인 더피의 상상력을 통해 전통적 여성상에서 벗어난 대담한 자기 주도적 여성 화자들은 분노를 승화시킨 풍자와 해학으로 무장한 채 기존의 남성 중심적 이야기와 그 이야기로 구성된 세계를 예리하게 찔러 파열시킨다. 시에서 금기시될 만한 비속어와 삼류급 19금에 해당할 만한 장면들을 과감히 등장시켜 독자들을 자극한다.
서른 명의 등장인물
신화 (11) : 테티스, 메두사, 키르케, 데메테르, 마이다스 부인, 티레시아스 부인, 시시포스 부인, 피그말리온의 신부, 이카로스 부인, [오르페우스의 부인] 에우리디케, [오디세우스의 부인] 페넬로페.
성경 (5) : 헤롯 왕비, 빌라도의 아내, [삼손의 여인] 데릴라, 나사로 부인, 살로메.
동화 (2) : 빨간 모자, 야수 부인.
역사상의 인물 (6) : 이솝 부인, 다윈 부인, [셰익스피어의 부인] 앤 해서웨이, 프로이트 부인, 엘비스 프레슬리의 가상의 쌍둥이 누이, 교황 요안나.
문학작품 (3) : 파우스트 부인, 콰지모도 부인, 립 반 윙클 부인.
영화 (1) : 킹 콩의 여성적 변형인 퀸 콩.
당대 영국의 범죄사건 (2) : 1960년대 영국의 미성년자 연쇄살인범인 이안 브래디라는 악마의 아내인 마이라 힌들리, 1950-60년대 영국 이스트엔드 최악의 범죄자 크레이 형제의 여성적 변형인 크레이 자매.
시에 등장하는 일인칭 여성 화자들은 흔히 남성 시인에 의해 이상화된 뮤즈로 소환되던 여성상이나, 남성의 시각과 욕망의 대상이 된 채 침묵을 강요당하던 여성상에서 벗어나 자기 이야기의 주체로 등장한다. 이 여성들은 밀폐된 자기애적 감상성에 빠진 일인칭 화자가 아니라, 자신의 이야기를 함께 나눌 여성 독자들을 불러들이면서 자신의 소망과 분노와 욕망을 거리낌 없이 표출하는 적극적인 화자들이다.
어렵지 않고 쉬운 시, 게다가 재밌고 유쾌하기까지 한 시
기이한 발상을 통해 전개되는 예측 불가능한 시 속 상상의 세계는 독자들을 이야기 속으로 끌어들이기에 충분하다. 특히 누군가에게 말을 거는 듯한 일상적인 대화체, 박장대소하게 하는 유쾌하고 신랄한 말놀이, 기상천외한 현대적 문맥에서 새로운 감각으로 색다르게 재구성한 이야기 등은 시에 익숙하지 않은 일반 독자들조차 시에 쉽게 다가갈 수 있게 한다.
거부된 계관시인 캐롤 앤 더피, 마침내 계관시인이 되다
영국 정부가 올해(1999년) 초 테드 휴스 사후 계관시인으로 더피를 선정하지 않기로 결정했을 때도 세상 사람들은 이미 더피를 슈퍼스타로 생각하고 있었다. 영국 정가의 한 관계자에 따르면, 더피를 선정하지 않은 것은 “블레어가 동성애자를 계관시인으로 선정할 경우 그것이 영국 중산층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우려”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렇게 더피는 동성애자 홀보듬맘으로 여성 흑표범당원과 함께 살고, 스코틀랜드 노동계급 출신으로 그려지면서 거부되었다. (『가디언』(The Guardian) 1999. 09. 25.)
이로부터 10년이 흐른 2009년, 더피는 341년 동안 “여성 계관시인이 한 명도 없었다”는 이유에서 그 지위를 받아들여 최초의 여성, 최초의 스코틀랜드 노동계급 출신, 최초의 동성/양성애자 홀보듬맘 계관시인이 되었다.
“만약 내가 동성애자의 우상이며 롤 모델이라면, 그건 대단한 일이다. 하지만 만약 그 표현이 나를 깎아내리기 위해 쓰인다면, 왜 그 사람이 나를 깎아내리고 싶어 하는지를 물어야만 할 것이다.”(시인의 인터뷰에서)
작가 소개
지은이 : 캐롤 앤 더피
스코틀랜드 글래스고 출신의 시인, 극작가, 동화 작가이며, 첫 여성, 첫 스코틀랜드 출신, 첫 동성/양성애자로서 20대 영국 계관시인(2009-2019)으로 선정되었다. 현재 맨체스터 메트로폴리탄 대학의 영문학과 현대시 교수 및 창작교실 주임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더피는 서머셋 몸 상, 딜런 토머스 상, T. S. 엘리엇 상, PEN 핀터 상, 미국의 란난 & E. M 포스터 상 등을 받았다.
대표적인 시집으로는 『서 있는 여자 누드모델』, 『맨해튼 팔기』, 『다른 나라』, 『비열한 시간』, 『세상의 아내』, 『황홀감』, 『사랑 시편들』, 『벌』, 『성실』 등이 있다.
옮긴이 : 김준환
1960년 부산에서 태어나 연세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였다. 같은 대학교 대학원에서 영·미시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미국 텍사스 A&M 대학에서 같은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화여자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교수를 거쳐 현재 연세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20세기 초 모더니즘부터 최근에 이르는 영시를 강의하고 있다.
저서로는 『“서구 상자” 밖으로: 에즈라 파운드와 찰스 올슨의 다문화주의 시학을 향하여』가 있고, 번역서로는 『포스트모더니즘의 환상』, 『민족주의, 식민주의, 문학』, 『낯선 사람들과의 불화』 등이 있다.
목 차
빨간 모자
테티스
헤롯 왕비
마이다스 부인
티레시아스 부인으로부터
빌라도의 아내
이솝 부인
다윈 부인
시시포스 부인
파우스트 부인
데릴라
앤 해서웨이
퀸 콩
콰지모도 부인
메두사
그 악마의 아내
키르케
나사로 부인
피그말리온의 신부
립 반 윙클 부인
이카로스 부인
프로이트 부인
살로메
에우리디케
크레이 자매
엘비스의 쌍둥이 누이
교황 요안나
페넬로페
야수 부인
데메테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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