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직접 듣고 보고 겪은, 삶에서 우러나온 시편들, 군더더기 없는 담백한 서사
우리는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겪고, 생각하고 행동한다. 숨이 붙어 있는 한 사람의 행위는 동사로 표현된다. 황영주는 시집 『말을 씻는 시간』에서 사람을 그리고, 풍경을 만지고, 삶을 묻고 입는다. 한마디로 그의 시들은 철저히 동사의 형태를 띤다. 머릿속에서 나온 게 아니라, 직접 듣고 보고 겪은 삶에서 나온 시들이기에 동사일 수밖에 없다. 삶이 있고, 서사가 꿰어지는 게 황영주 시의 특장점이다. 동사로 쓴 그의 시들은 한없이 담백하다. 시인은 경험에서 꺼내와 군더더기 없이 솔직한 서사로 말을 건다. 이상한 것은, 별 수식어 없는 그의 시를 읽는 동안 독자의 가슴으로 물큰한 감정이 훅 건너온다는 점이다. 국수를 파니까 그냥 국수집인 것처럼 속일 것도, 감출 것도 없는 얼굴이 온 마음이라고 노래하는 황영주의 시들은 단숨에 독자를 사로잡는다. 황영주의 시가 지친 영혼을 위로하는 이유는 그의 따뜻한 관심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그의 시 속에서는 우리 모두 별이 된다.(「별바라기」)
동사로 쓴 시를 형용사로 읽다 ; 말갛고, 부끄럽고, 따뜻하고, 단단하고, 찬란한
그저 마음만 뚝 떼어줄 뿐 욕심을 부릴 줄 모르는 시인은 이별에서조차도 말갛게 갠 얼굴을 마주보기를 원한다.(「이별과 마주보기」) 부끄러운 어느 하루도 소환해 온다. 고만고만한 밥상을 가졌으면서, 속에 남을 가득 채우고 다녔으면서 자신보다 못하다고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도 아는 체 안한 모습을 통렬하게 인식한다. 부끄러워지고 돌아가 안아주고 싶었다는 시인의 목소리가 따뜻하다.(「부끄러운 날」) 또한 시선을 약한 곳으로 돌린다.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내며 시를 쓰는 이유는 오로지 온기를 담고 싶어서다. 거짓으로는 결코 담길 수 없는 온기를 위해 끊임없이 주위를 본다. 냄새 난다고 구박받는 담배 할아버지의 안부가 궁금하고, 기약할 수 없는 내일을 어설픈 노래와 몇 잔 술로 푸는 지하의 가난한 집 아이 김율리아가 꽃씨를 심었을까 궁금하다. 가난한 자기 가방을 턴 소매치기가 안쓰럽고, 낮게 피어 홀씨를 날려 보낸 민들레가 아프다. 끝내는 사물과도 말을 터 이팝꽃 하나에서도 배울 점을 찾아낸다. 독자는 시 속에서 끊임없는 성찰로 스스로 품격을 지키는 방법을 찾아내는 시인의 마음을 읽어낼 것이다.
작가 소개
한양대학교교육대학원 국어교육과 졸업
「스토리문학」 수필 등단
동서문학상 동화 수상
동서문학상 운문 수상
김유정기억하기 공모전 운문 수상
목 차
시인의 말
하나. 사람을 그리다
그리움 | 일상의 배려 | 딸기를 먹다 | 홈쇼핑 | 나에게 길을 묻다 | 창호지 젖는 밤 | 주전자 | 세숫대야 | 낡은 가방 같은 | 고모의 하나님 | 카드 도둑 | 금요일 오후잖아요 | 건넌방 | 담배 할아버지 | 오지랖 넓은 여자 | 외사랑 | 내 안에 전사가 산다 | 그대란 자판기를 | 딸의 연애 | 이별과 마주보기 | 명옥이 | 사랑을 잘라내다 | 김율리아 | 전단지 | 국수집
둘. 풍경을 만지다
낙엽비 | 리그넘바이티 펜을 들고 | 동백꽃 지면 | 목백일홍 | 샤스타데이지 언덕에서 | 이팝꽃 | 젊은 할미꽃 | 바다로 가 | 별바라기 | 불완전 탈바꿈 | 비를 생각 | 사마귀에게 먹히다 | 내딛다 | 꽃씨를 보낸 민들레는 | 진 달
셋. 삶을 묻다
물수제비뜨면 | 구루마 | 늦은 밤 편의점에서 | 나의 마당엔 소리가 없다 | 덤 | 간판 | 도시의 연등 | 물 빠진 속옷 | 버려지는 이름을 대하는 자세 | 비겁한 하루 | 밥 먹듯 시를 읽는 | 사춘기와 갱년기 | 사당역에서 | 소소원에서 | 쓸쓸한 사랑을 읽다 | 셀프 주유소에서 | 연극을 좋아하세요? | 주차장에서 | 불법 현수막
넷. 삶을 입다
말을 씻는 시간 | 샌들의 품격 | 외계어 | 은행 창구 앞에서 | 아프지 않고 어떻게 시를 | 부끄러운 날 | 사람의 언어 | 빨래건조대 | 곁길 | 가장자리에 서서 | 구두 뒤축 | 학원 인생 | 할인 매대에 누워 | 택배를 기다리며 | 아마추어, 무대 오르다 | 영업 방침 | 도루묵 조림 | 도로 공사 | 말이에게 배우다 | 괜찮은 날 | 잘 익은 사람
해설| 동사로 쓴 시를 형용사로 읽다·심명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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