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빛을 담았어 당신에게 주려고”
정직한 슬픔과 깨끗한 애정을 담은 비망록
순정하게 아름다운, 최현우 첫 시집
문학동네시인선 132번째 시집으로 최현우 시인의 『사람은 왜 만질 수 없는 날씨를 살게 되나요』를 펴낸다. 2014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시인의 데뷔 6년 만의 첫 시집이다. 그의 첫 시집 『사람은 왜 만질 수 없는 날씨를 살게 되나요』는 2010년대를 이십대로 살아온 한 시인의 진솔한 마음의 보고서이자, 청춘을 가로지른 어제의 세계를 담은 시대의 비망록이기도 하다. 만질 수는 없지만 가까스로 붙잡을 수 있었던 나와 나날을 기록한 63편의 시편. 피의 진함보다 물의 빛남을, 몸피보다 뼈를 남기려는 시인 최현우. 이 예외적으로 순정하게 아름다운 시인의 첫 시집은, 슬픔은 절제하되 그 무게를 견디고자 하는 책임은 무한하고자 하는 마음을 담았고, 어느 순간 우리는 이 젊은 시인을 ‘초과-신뢰’하게 될 것이다.
시집의 제목을 눈에 담았다면, 먼저 각 부의 제목에 한번 눈길을 주시길 부탁드린다. 1부 ‘나는 모르고 모두가 보는’, 2부 ‘조금은 더 너랑 살 수 있겠지만’, 3부 ‘아름다운 마음들이 여기 있겠습니다’, 4부 ‘울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이는 모두 최현우 시인의 특장을 한 문장에 담은 것으로, 그의 시는 첫째, 작정하지 않는 정직함을 가졌고, 둘째, 수줍은 연애시이며, 셋째, 따뜻한 시선으로 일상에 흩뿌려진 아름다움을 그러모으며, 넷째, 때로는 진심을 쏟아놓는 진솔함을 가졌다. 그래서일까? 시편에서 ‘소년’과 ‘아이’로 자주 분하는 최현우의 페르소나는 비정한 세계를 가감 없이 바라보는 눈이 되고, 또 무구한 마음을 발견하는 렌즈가 되며, 다른 세계-미래를 예비하는 책임감을 두 손에 쥔 화자가 된다.
잠든 연인의 입속으로 과자 부스러기를 모아 넣으며 우는 사람들
마지막 빵의 썩지 않은 부분을 아이에게 물리고 곰팡이를 집어먹는
참다못해 타고 있는 장작을 그대로 끌어안는 사람들
입김으로 가족의 언 발을 씻기는 사람들
(…)
다시는 아름답지 말자
아름다워지지 말자
이 계절은 다 지났고
사람들은 구출되어
각자의 여름으로 떠났지만
여전히 어떤 사람과 나는 남아서
쇄빙선처럼
얼음의 방향으로 간다
_「한겨울의 조타수」 부분
빛을 담았어
당신에게 주려고 했어
내게 가장 밝은 것은
두들겨맞아 부서지고
피멍 든 채 절뚝거렸으므로
그걸 담아 팔려고 했어
_「와디 럼」부분
“반짝거리는 모든 세상에는 좋은 슬픔”이 있으므로
“날씨는 태어난 곳의 기억을 버리지 않”으므로
“아름다운 마음들이 여기 있겠습니다”
“남겨진 것에 뚜껑을 덮으면/ 담겨진다”(「남다, 담다」)는 시구는 이 시집을, 최현우의 시 세계를 대변하는 한 문장이 될 수도 있을 듯하다. 시인은 슬픔으로 가득찬 2010년대를 통과하면서 우리에게 남은 것―그것이 슬픔이든, 분노든, 절망이든, 무력감이든―을 그저 남은 채로 두지 않고, 그 생생한 감정과 장면을 고스란히 감각하고, 그 슬픔의 순간에도 떠오르는 반짝임에 감광하여 시를 쓰는 작업을 지속해왔다. “가만히 웃거나 우는” “절반은 알고 절반은 모르”는, 그리하여 “아주 가끔씩만 희망도 절망도 아닐 수 있었”(「가만히 웃거나 우는」)던 나날들을 빛으로 타전하는 그의 시는, 조난자를 밝은 곳으로 이끌기 위한 모스부호이자, 미래에 건네는 청사진에 다름 아니리라.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 ‘견딤’을 견디는 것이 어려우면 어떻게 해야 하나. 그것을 단번에 돌파할 방법은 모른다. 그렇지만 그렇게 몇 번씩 꺾이고 난 뒤에 비록 울음으로 엉망이 된 모습을 하고서라도 다치고 깨진 여남은 것을 주워 다시 기대를 걸 무언가를 찾아 나선다는 것은 분명 지금 취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자 최대의 용기이다. 도저히 견딜 수 없는 것을 견뎌야만 앞으로의 삶이 지속될 것임을 이십여 년 동안 알게 되었으나 그걸 알고서도 버텨나가겠다, 이 시집이 이런 것을 말하려는 것이라면 나 역시 조금 더 버텨보겠다고 생각한다. 나의 부분을 내어주는 것에 대해 비록 삶은 그 어떤 것도 되돌려주리라 보장하지 않겠지만. 낙관적인 조건도 없이 깨지고 좌절하고 망가진 뒤에도 다시.
_선우은실(문학평론가), 해설 「정강이를 부러뜨린 아이는 난파된 배의 조타수가 되어 조난자를 밝은 곳으로, 밝은 곳으로」부분
시인은 망가지고 부서진 것을 보았고, 또 물려받았지만 “마음을 망치는 것들은 피냄새가 나니까”(「회색이 될까」), “먼저 일어나서 일으켜주고 싶”(「오후 네시」)기에, “젖은 햇빛을 닦아주고 싶은”(「아베마리아」) 마음을 담아 “턱뼈에 힘을 주고 고개를 위로 치켜들”(「아홉」)고서 시를 써내려간다. 그렇기에 “한 번의 착지를 위해 수많은 추락을”(「발레리나」) 감행하는 우직함, “믿음도 연습이야/ 그 단 한 마디에 구원을 버”(「오후 네시」)리는 염결, “네가/ 아침마다 무게를 재며 울어서/ 체중계를 버”(「가족의 방식」)리는 헤아림, “다쳐서 흘러나온 사람에게서는/ 유유 냄새가 난다는 걸”(「아베마리아」) 아는 사려 깊음, 이는 모두 시인 최현우의 다른 얼굴일 것이다.
사람이 만질 수 없는 날씨를 살게 되는 이유는 더 잘 기억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만질 수 있다면 쉽게 잊히고 말 그 날씨를, 시인은 그것을 더 잘 기억하기 위해 기미의 기미조차 기록으로 남겨 전하는 것이 아닐까? “날씨는 태어난 곳의 기억을 버리지 않는다”(「면도하는 밤」)는 시인의 말처럼 시인은 날씨처럼 기억을 버리지 않기 위해, 햇빛 아래 고요히 마르는 빨래를, 꽃이 죽는 밤을, 옆 사람의 손의 온기를, 달빛에 묻어나는 연인의 등을 기록하는지도 모르겠다. “반짝거리는 모든 세상에는 좋은 슬픔이 있”(「깨끗한 애정」) 기에, “두 몸은 떨어져 있어도 한 몸의 시간을 살고 있다고”(「빨랫대를 보고 말했지」) 믿고 있기에, 아직 여전히 “아름다운 마음들이 여기 있”(「낙원」)기에.
“발롱!”(「발레리나」) 하고 더 높은 곳을 꿈꾸던 시인은 어느덧 믿음직한 ‘조타수’가 되어 이제는 더 먼 곳으로, 적소(適所)로, 독자의 마음으로 나아가려 한다. 이 의연한 시인의 잊지 않으려는[備忘] 기록은 “망가지지 않은 것을 주고 싶”(「시인의 말」)은 미래의 희망의 기록이 될 것이다. 이 청춘의 비망록이 미래의 청사진이 되는 경이로운 순간을 더없이 기쁜 마음으로 함께 맞이하고 싶다.
작가 소개
1989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2014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끝내 하지 못해서 아직 쓰고 있다.
목 차
시인의 말
1부 나는 모르고 모두가 보는
천국/ 비문증/ 지독한 자세/ 젓가락질 가운데/ 거짓말/ 멍/ 코/ 겨울의 개/ 회벽/ 각자의 것은 각자에게로/ 환상 게임/ 김밥/ 어린아이의 것/ 남다, 담다/ 면도하는 밤
2부 조금은 더 너랑 살 수 있겠지만
물구나무/ 기로/ 딱 한입만 더/ 티스푼처럼/ 컵/ 만월/ 주인 잃은 개/ 사육/ 목각 인형/ 어쩌면 너무 분명한/ 섬집 아기/ 누군가 두고 가버린/ 총구에 꽃을/ 깨끗한 애정/ 꽃
3부 아름다운 마음들이 여기 있겠습니다
한겨울의 조타수/ 견고한 모든 것은/ 낙원/ 오늘/ X/ 고인돌/ 총알개미장갑/ 끝나지 않는 겨울/ Kissing a grave/ 회색이 될까/ 헌팅트로피/ 가족의 방식/ 가만히 웃거나 우는/ 미래의 시인/ 일곱 살/ 와디 럼
4부 울지 않는 것은 아니다
만남/ 발레리나/ 주인 없는 개/ 자동 나비/ 숨은 방/ 탈피의 역순/ 바늘 뽑힌 저울에게는/ 오후 네시/ 글러브 데이즈/ 생일/ 박하사탕/ 추억과 추악/ 빨랫대를 보고 말했지/ 아베마리아/ 선한 종말/ 아홉/ 후회
해설|정강이를 부러뜨린 아이는 난파된 배의 조타수가 되어 조난자를 밝은 곳으로, 밝은 곳으로
선우은실(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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