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의 전부가 내 옆을 스쳐 지나간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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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안채영
출판사항달아실, 발행일:2020/11/30
형태사항p.135 46판:20
매장위치문학부(1층) , 재고문의 : 051-816-9500
ISBN9791188710836 [소득공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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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쓸쓸한 타자들을 위로하는 음악들
― 안채영 시집 『생의 전부가 내 옆을 스쳐 지나간 오후』


안채영 시인이 등단 십 년 만에 묶는 첫 시집이다. 그의 시집은 십 년 동안 심었던 “말들이 촘촘 돋아나 있는 차밭”(「곡우 무렵」)이고, 십 년 동안 “여러 번의 계절을 채굴하고 나서야”(「수레국화」) 남은 씨앗들이고, “아직도 세상에는 미처 거둬가지 못한”(「비 오는 날에는 실안 바다로 가야 한다」) 울음들이다. 마침내 세상에 없는 꽃말들로 수북하다.


빈 팔월 수레국화 꽃밭을 끌고 간다
가벼운 것들만이 무거운 것들을 끌고 갈 수 있다는 듯
분분한 솜털도 덥게 칠월을 달려왔다


우리는 말을 배열했었지 파란 모자를 장난으로 주고받았지. 말미가 없는 것들은 발설의 꽃말을 가지지 못한 전설이 되지. 수레가 텅 비면 저절로 움직이기도 하겠지만 미동이란 무거운 쪽부터 미끄러져가지


끝만 늙어가는 것이 꽃말이다
우리는 서로 관상觀相이었다
가혹한 꽃말일수록 안 보이는 틈에 흔들리고
총총총 여러 번의 계절을 채굴하고 나서야
씨앗들만 남는다


일년생 꽃말은 너무 가볍다
언젠가는 그 가벼운 꽃말이 꽃밭을 통째로 끌고 간다


사라진 생가들은 어디로 갔을까. 은밀한 때는 헐렁하게 풀린 바람 사이로 왔다 가고 생가는 있는데 생은 어디로 사라진 걸까? 투명한 족보는 발소리가 죽은 풍경을 위해 문을 열어놓고 있다


알아요, 둥글게 섞이지 못할 뿐이죠
긴 생머리를 늘어뜨리고 느리게 늙어가는 여름 한때
가만가만 진열된 팔월이 지나가고 가장 가벼운 내부 쪽으로 아픈 것들을 묶어놓는다
전설엔 잡초가 더 무성하다
― 「수레국화」 전문


시집의 해설을 쓴 문학평론가이기도 한 이병철 시인은 이렇게 말한다.


안채영의 시를 읽는 것은 그래서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녀는 자기만의 방에서 문을 걸어 잠그는 대신 바깥의 풍경들을 내면에 담기 위해 ‘나’를 열고 비운다. 그리고 볕이 잘 드는 양지가 아닌 어둡고 추운 음지로 향한다. 거기 사라질 듯 사라지지 않고 여린 숨을 쉬고 있는 몸짓들을 향해, 그림자들을 향해, 어둠과 추위를 바투 잡은 채 소멸을 견디는 손들을 향해 안채영의 시는 환한 납설수(臘雪水)로 스며든다. 소외된 풍경들에게 봄을 연주하는 단 하나의 바이올린이 된다. …… 위 시에서 안채영은 가벼움을 통해 무거움을 획득하는 새로운 시대의 존재론을 제시한다. 화자가 “생은 어디로 사라진 걸까? 투명한 족보는 발소리가 죽은 풍경을 위해 문을 열어놓고 있다”고 진술할 때, ‘비움’이란 결국 ‘사라짐’, ‘투명함’, ‘죽은 풍경’과 짝을 이루는 소모 행위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오독되기 쉽다. 하지만 시인은 “가장 가벼운 내부 쪽으로 아픈 것들을 묶어놓”는 사람이다. 자신을 비운 자리에 “안 보이는 틈에 흔들리”는 세계의 풍경들을 채워 넣는다. 그 순간 사람이 살지 않는 텅 빈 폐가가 소멸의 장소만이 아니라 “잡초가 더 무성”한 생명의 공간임이 밝혀진다. 공허를 충만으로 바꾸는 생명력의 언어, “가벼운 꽃말이 꽃밭을 통째로 끌고 간”다. 이는 존재론적 아포리즘인 동시에 탁월한 메타시(Metapoetry)이기도 하다. 자의식과 자기감정을 덜어낸 언어로 독자의 마음을 끌고 가는 시, 물처럼 어디로든 흘러갈 수 있는 시, 안채영의 시야말로 포스트모던의 시가 아닌가?


그리고 결론적으로 이번 시집에 대해 이병철 시인은 이렇게 말한다.


비움을 통한 채움, 공허 속 충만함이 겨울의 내면이라면, 안채영의 시는 겨울 아침에 내리는 함박눈이다. 얼음 밑을 흐르는 계곡물이다. 눈 내리는 밤의 바이올린 소리다. 흰 눈에 덮인 세상은 더없이 조용할 따름이다. 눈 내리는 저녁의 바이올린 연주에서는 소리보다 고요함이 더 크게 들린다. 눈이 오면 대기가 머금은 습기와 저기압이 소리를 증폭시킨다. 다른 소리는 들리지 않고 바이올린 소리와 이따금 사람 발자국 소리만 들리는 한적한 저녁은 오히려 고요함을 통해 아름다운 음악을 획득한다. 안채영은 공명통을 만들기 위해 속을 파낸 바이올린처럼, ‘나’를 비워야 비로소 아름다운 소리를 낼 수 있다고, 세계와 협화음을 맺을 수 있다고, 타자지향의 성숙한 인격이 될 수 있다고 노래한다. 그녀의 연주는 모든 낮고 어두운 곳을 통과해 우리 마음으로 흐른다. 이제 안채영의 음악에 귀 기울일 때가 되었다.


가을에서 겨울로 접어드는 계절이다. 이 쓸쓸한 계절에 안채영이 풀어내는 꽃말들과 안채영이 연주하는 아름다운 음악에 잠시 취해보는 것도 좋겠다.
 

작가 소개

안채영
1967년 진주에서 태어났다. 2010년 『문학사상』으로 등단했다. 지은 책으로 『하루에 한 번, 파자시』(2019)가 있다. 現 문학동인지 마루문학회장.

 

목 차

시인의 말

1부
 곡우 무렵
 언간문諺簡文
수레국화
 생몰연대를 적다
 소금
 도마뱀
 우리의 안부는 언제나 진심이었다
 호박 폐가
 벽을 비워놓았다고 답장을 보냈다
 새점을 치다

2부
 쟁반같이 둥근 달
 봄날 수리점
 두근거리다
 오수관 별자리
 홍시
 물을 기르다
 압화壓花
간지럽다, 오후 한 시
 어떡하오
 사과 선퇴蟬退

3부
 미닫이 책
 벽지
 함바식당
 호칭을 파는 상점
 메기
 망종의 혀
 우식 아재
 꽃 핀 개
 헝클어진 곳들
36.5°C

4부
 사랑의 불시착
 도마의 재해석
 묶여 있다
 별명의 나이
 비상사태
 흔한 풍경, 눈앞이 바쁘다
 생강
 하잠夏蠶
구름이 강을 건너는 법을 너는 알고 있니?
똑딱똑딱

5부
 쏙
 유등流燈―남강에서
 뼈의 품격
 대섬에서
 툰드라 산 19번지
 단속사지斷俗寺址, 정당매政堂梅
비 오는 날에는 실안 바다로 가야 한다―손이 착한 박재삼
 실안 노을
 춘절春節―날개 달린 닭
 저도, 달방
 종포마을에 가서
 발화점

해설_소외된 풍경들에게 봄을 연주하는 단 하나의 바이올린_이병철 

 

역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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