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석탄산업사는 한국 산업사의 축소판이며, 노동자 중에서도 가장 열악한 환경에 처한 이들이 광부였다. 1980년대 문학권에서 민중문학이나 노동문학 담론이 유행처럼 논의될 때조차, 당시 6만 명 넘게 종사하던 광부의 삶은 문학에서도 소외되었다. 요즘은 참여문학, 실천문학, 노동문학, 민중문학 등의 용어를 진부하다거나 유행이 지난 것처럼 여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여전히 광부는 현재 운영 중인 4개 광업소(장성·도계·경동·화순)의 막장에서 팔리지 않는 탄을 캐고 있다. 또 실직 광부들은 탄광촌의 언저리를 맴돌거나, 직업병인 진폐증을 앓고 있다.
“노동부는 진폐 환자들의 생계비를 지원하라!//폐광촌이 울린다//상품이 안 된다고/언론은 한 달째 관심 밖이다/야당조차 외면하고/경찰만 산처럼 에워쌌다”(「빛나는 부리」)는 고발은 오늘날 탄광촌의 모습이자, 우리 시대의 자화상이다. 화이트칼라까지 노동자로 등장한 이후부터 진짜 노동자들은 더 비참한 아웃사이더로 내몰리고 말았다. 공무원·교사·사무직 등의 노동자가 맹위를 떨치면서 권리를 찾아가는 동안 실직 광부나 직업병을 앓는 광부, 그리고 그 가족들의 삶은 예나 지금이나 캄캄한 막장에 갇혀 있을 뿐이니 말이다.
이런 현실 속에서 등장한 맹문재의 시집 『사북 골목에서』는 한 시대의 위로이자, 이가 빠진 한국문학사의 중요한 복원 과정이라 하겠다. 탄광노동자와 탄광촌을 향한 애잔한 시선, 웅숭깊은 사랑을 머금은 시편 하나하나가 석탄산업의 그늘에 희생된 광부에게 바치는 헌사이다. 광부의 삶은 대를 이어 막장에서 헌신하고도 버려졌으며, 탄광촌은 여전히 춥고 캄캄하지만, 그의 시가 있어서 모처럼 위로를 받는다. 탄광촌에서 태어나 청춘을 광업소에서 보냈던 나는 노동문학을 집대성한 맹문재의 연구를 훔치면서 진 빚이 많은데, 이번 시집에서 또 큰 빚을 지는 마음으로 시를 읽는다.
―정연수(시인· 문학박사) 작품 해설 중에서
작가 소개
1963년 충북 단양에서 태어나 1991년 『문학정신』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노동 열사들을 추모한 『기룬 어린 양들』을 비롯해 『먼 길을 움직인다』 『물고기에게 배우다』 『책이 무거운 이유』 『사과를 내밀다』 등이 있다. 전태일문학상, 윤상원문학상, 고산문학상을 받았다.
목 차
시인의 말
제1부
사북 / 갈림길을 지나가다 / 치료받지 않는 이유 / 사북 골목에서 / 마술 피리 / 텔레비전 뉴스에 나오겠지요 / 빛나는 부리 / 새까만 나무 / 자기소개서 / 불붙은 합창 / 인연 / 1979년 광산사 / 기본 지키는 일
제2부
아름다운 미신 / 기적의 기적의 기적의…… 일 / 광산촌 먹이사슬 / 할머니의 아리랑 / 봄꽃 / 천 리 밖에 있는 사람들 / 방송이 중단된 날 / 저탄장에 얼굴 새기다 / 1980년 사북항쟁 / 독론(毒論) / 움벼 앞에서 / 사북 안경다리에서 / 태백 광산의 역사
제3부
눈길 위에서 / 사북 <ㄱ·ㄴ서점>에서 / 벼랑 끝 가장(家長)들 / 새벽 편지 / 진면목 / 대설 앞에서 / 봉황 / 모적(?賊) / 한쪽 눈 / 희망 지수에 대하여 / 11월 / 입석 열차에서
제4부
겨울 까마귀 / 움켜쥔 길 / 술 마시는 이유 / 그림자 징역 / 보도자료 / 벽 / 연기를 하러 가다 / 꽃 이름 / 개구멍 / 짐 챙기는 날 / 검은 길 / 목적의 목적 / 첫눈 오는 날 / 기적
작품 해설:사북 골목에서, 광부와 탄광촌 주민에게 바치는 헌사 - 정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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