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아픈 몸을 열등한 몸으로 만드는 사회에서 기도로 하는 말
저기 지하철 노약자석에 멀쩡해 보이는 20대 여자가 앉아 있다. 고개를 한쪽에 기댄 채, 해사한 얼굴을 하고. 이 책의 저자 바디에세이스트 홍수영이다.
14살 가을, 저자에게 근육병이 찾아왔다. 의지대로 몸을 움직이기 힘들어졌다. 목이 자꾸 곱아져 앞을 응시하는 일조차 어려웠다. 저자의 몸은 하루에도 수십 번 상태가 달라진다. 어떤 시간에 저자의 병은 겉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제법 다부지고 씩씩하게 보인다. 그러다가도 곧 몸의 리듬이 사라진다.
근육병은 근육의 불수의적 경련과 기억력 저하 그리고 발성 장애를 가져왔다. 생각을 뚜렷하게 말로 정리해서 다른 사람과 대화 나누는 일을 어렵게 만들었다. 저자에게 대화는 높이뛰기보다 어렵다. 저자는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보이지 않는 병증을 가진 몸을 향해 파고드는 판단과 의심, 경증과 중증을 나누며 끊임없이 아픈 몸을 위축시키는 장애에 대한 고정관념, 말이 어눌하다는 이유로 받았던 크고 작은 차별들 속에서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오랜 침묵의 시간 동안 저자가 가장 많이 한 일은 역설적이게도 말하기였다. 이는 목의 떨림과 안면 근육을 사용해서 ‘몸으로’ 하는 말하기와는 다르다. 저자는 ‘기도로’ 말을 한다. 서로가 애써 무관해지려는 세상에서, 너의 기도가 나의 기도가 되지 않는 이곳에서 저자는 하나님과의 대화를 시도한다. 그녀에게 기도는 무언가를 구하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과 대화하는 일이다. 저자는 하나님과 자신의 아픈 몸을 두고 이야기하며, 우리 사회가 ‘함께 겪는’ 방식으로 타인의 고통을 이해할 수 있게 되길 기도한다.
이 책에서 저자는 세상에는 이름 붙여졌거나 이름 붙여지지 않은 수많은 질병이 존재한다는 것과 사회의 지배적 이미지와 장애의 상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성찰의 노력이 없는 한 아픈 몸을 향한 섣부른 판단과 언어적 폭력은 계속될 수밖에 없음을 강조한다. 또한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아픈 몸들이 우리의 도처에서 억압을 견디며 연대의 마음들을 기다리고 있음을 묘파한다. 이 책은 우리가 어떤 아픔들 앞에서도 익명이 되지 말 것을 촉구하는 호소의 책이자, 가장 내밀한 고통은 결국 우리 모두의 고통임을 깨닫게 해주는 성찰의 책이다.
작가 소개
바디 에세이스트. 기다리고, 듣고, 느리게 대답하는 사람. 약을 복용하면 근육의 수축과 떨림이 경감되는 ‘경증’의 근육병 환자로 살고 있다. 근육을 쥐어짜는 통증과 휴지기가 반복적으로 오기 때문에 몸 상태가 급작스럽게 바뀌며, 하루에도 몇 번씩 다른 몸과 만난다.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는 날은 ‘사랑해요’와 ‘감사해요’라는 두 마디 안에서 소통을 완성한다. 그 두 마디는 건네지 못한 모든 말들이 담긴 귀중한 그릇이다. 보이지 않는 통증과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병증을 가진 환자들이 겪는 사회적 차별과 오 해와 편견을 글로 풀어내고 물음을 던지는 작업을 하고 있다. 사랑을 주장하는 곳에 있는 배제, 다양성을 외치는 곳에 있는 선긋기를 마주하는 순간들을 쓴다.
목 차
추천의 말
프롤로그
1부 몸의 고백
빈 교실
잊지 않는 연습
날마다 다른 몸
탱고
내가 느끼는 나
바닥을 믿는다
지속
다른 일상
우리
잔인한 존중
가볍지 않은 경증
배려 속 편견
공감
이 지경이라서
차이
건네받은 시간
제가 들리세요?
2부 몸의 침묵
다음 주에 또 볼까요?
바라봄 사진관에서
새길
기도하지 않은 날도 있었다
너에게 돌려줘야 할 발걸음
당신이 필요하다는 말
쉬운 표현
감사합니다
들음 안에서
느린 받아쓰기
이름
침묵
말과 말 사이
선포
집
사랑
세부를 보는 일
영혼을 위한 일
눈물
밖
3부 몸의 기도
기도시 (1~44)
에필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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