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EBS 라디오 X 카카오 브런치 〈나도 작가다〉 당선 작품집
진심을 꺼내기에 조심스러운 당신에게
비대면 소통이 익숙해진 세상이다. 사회관계망서비스에서 글, 사진, 영상을 공유하는 것이 흔해지기도 했다. 글과 말과 이미지가 쉴 새 없이 오가는 세상에서 우리는 금세 주목받을 수 있지만 잊히는 것도 금방임을 안다. 그렇기에 진심을 꺼내기 조심스럽다. 쉬이 잊히고 싶지 않은 이야기를 아끼게 되는 이유다. EBS 라디오는 타인에게 초점을 맞춰 나를 전시하는 글이 아닌 자신에게 초점을 맞춘 잔잔한 목소리를 찾기 시작했다.
EBS 라디오 〈나도 작가다〉 프로그램은 작가가 자신이 쓴 글을 낭독하고 소개하는 방송이다. 여기서 작가란 등단을 한 프로 작가가 아니다. 글쓰기를 좋아하고, 작가나 라디오 디제이를 꿈꾸고, 내 이야기를 세상에 들려주고 싶은 보통 사람들이다. EBS 라디오와 카카오 브런치는 ‘시작과 출발’ ‘실패와 두려움’ ‘나다움’이라는 주제로 글쓰기 컬래버레이션 공모전을 진행했다. 1만 편에 가까운 글이 접수되었고 주제별로 20편, 총 60편의 당선작이 나왔다. 당선 작가가 직접 낭독한 글은 지상파 라디오에 송출되고 책 《너의 목소리를 그릴 수 있다면》으로 엮였다.
60가지 목소리의 색채
별세계가 아니라서 오히려 괜찮아
목소리의 색채는 모두 다르다. 높고 낮고, 무겁고 가볍고, 밝고 어둡고, 얇고 두텁다. 옳고 그름이 아닌 다르고 다양함의 범주에 있다. 목소리의 색채가 다른 것처럼 우리는 고유하다. 삶의 궤적이 다르니 각자에게 성큼 다가오는 지점이 다르다. 나와 비슷한 궤적이 담긴 글을 따라가며 위안을, 반대로 나와 전혀 다른 성향의 궤적을 살피며 그 삶을 그려볼 수 있다.
‘시작과 출발’ ‘실패와 두려움’ ‘나다움’에 관한 60가지 목소리는 낯설지가 않다. 글을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아는 얼굴이 떠오른다. 친구, 애인, 배우자, 부모님, 자녀, 반려동물 그리고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때로는 별세계 이야기보다 이런 잔잔한 호수 같은 글이 평온을 가져다준다. “프로 작가의 숙련되고 전문적인 글보다 우리 주변의 풋풋하고 산뜻한 이야기”(9쪽)가 더 와닿을 때가 있는 것이다.
하나: 누구에게나 오늘은 처음이고
우리가 도전한 온도는 같지 않다
초보였던 시절은 어설프다. 기억에서 사라졌으면 하는 민망한 도전도 있고, 애틋해서 비밀처럼 품은 시작도 있다. 숱한 시작은 직업이나 취미가 되기도 하고 두 번 다시 거들떠보지 않게 되기도 한다. ‘시작과 출발’이라는 주제로 쓰인 20편의 글은 수줍고 서투르지만 씩씩하고 용감하기도 하다.
“누군가는 시작이 반이라고 말한다. 나는 시작을, 도전을 내 삶의 아주 작은 점으로 여긴다. 내가 시작하고 잘 마친 일이 검은 점으로 남고, 이 순간을 이겨내면 다른 점이 나타나는 것이다. 그 점들은 이어져 선이 될 것이다. 선은 이어져 내 안의 세계를 만들어낸다. 시작과 도전으로 이루어진 많은 점들 속에 내가 서 있는 것이다.”(〈점 위에 올라서서〉, 22쪽)
뜀틀이 싫어 체육 시간을 두려워했던 초등학교 5학년 아이가 처음으로 뜀틀을 넘는 순간, 세 아이를 키우며 틈틈이 기타 연주를 배운 뒤 무대에 올라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던 저녁, 중고교 검정고시를 치른 뒤 대학교 법학과에 진학한 예순 넘은 새내기, 몇십 년 동안 소원했던 아빠와 매일 통화하게 되는 과정, 베란다에서 패랭이꽃이 피어난 걸 발견한 아침… 이들은 솔직한 고백을 통해 앞으로 한 발자국 내디딘다.
둘: 산다는 거 자체가 두려워질 때
실패가 실패로 남지 않도록 하는 방법
인생에 실패란 없고 모든 것은 배워가는 과정이라고들 한다. 이처럼 항상 의연한 태도로 살면 좋겠지만, 말처럼 쉽지가 않다. 계획과 노력만으로 안 되는 것들로 가득할 때 우리는 무엇에 기댈 수 있을까. ‘실패와 두려움’이라는 주제로 쓰인 20편의 글은 크기와 무게는 각기 다르지만 분투한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사는 속내를 글로 옮기는 시간은 소중하다. 나를 사랑하는 내가 되기 위한 시간이기도 하다. ‘쓰는’ 일은 ‘낫는’ 일이다. 다른 사람들의 글을 읽으며 그들 역시 나와 마찬가지로 실수하고, 무너지기도 하며, 상처 난 무릎으로 다시 딛고 일어서는 모습을 봤다. 누군지도 모르는 이로부터 받는 위로는 경계 없이 받아들여진다. 돌이킬 수 없는 실패를 저질렀다는 죄책감과 수치심에서 벗어나도록 손을 내미는 듯했다. 꼭 내 얘기를 하고 있는 것 같은 글을 읽을 때는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잘못된 선택이 곧 실패한 인생은 아니구나.’ 하고 안도하기도 한다.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을까? 글로 누군가에게 힘이 될 수 있을까?’”(〈늪에서 울지 않고 걸어 나오기〉, 197쪽)
조깅할 때 다른 사람의 시선이 겁나서 레깅스를 입지 못했던 일, 남편을 잃고 외상후스트레스를 겪는 자신을 마주하는 과정, 딸의 이혼 사실을 감추려던 엄마의 사정을 살피는 마음, 간호사로서 코로나바이러스와 싸우며 병원에서 힘들게 버티는 나날, 엄마 생신을 축하하기 위해 미역국을 끓였지만 바닷물 맛이 나서 난처했던 열일곱 살의 토요일… 아픔을 치유하겠다는 조급함을 버린 채, 두려움을 털어놓고 목소리를 냄으로써 이들은 한 걸음 물러나 두려움을 바라본다.
셋: 도대체 나다운 게 뭘까
난 무엇을 좋아하는 사람이더라
시간이 흐르면 이해심도 깊어지고 포용력도 넓어질 거라고 믿었지만, 오히려 반대로 가는 듯해 놀랄 때가 있다. 좋아하는 것은 줄고 싫어하는 것의 목록만 늘어날 때, 심지어 무엇을 좋아했는지 잊거나 왜 좋아했는지 기억나지도 않을 때 우리는 망연해진다. 어느새 내가 바라왔던 무언가는 저 멀리 있고 다다를 수 없을 것만 같다. ‘시작과 출발’ ‘실패와 두려움’의 지점을 거친 20편의 글은 비로소 ‘나다움’이라는 질문에 화답한다.
“꿈을 이루면 비로소 나다운 모습으로 자유로워질 것이라 생각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반드시 해내고야 말겠다는 욕심과 압박으로 이뤄진 꿈은 가까이 다가갈수록 물먹은 솜처럼 무겁게 어깨를 짓눌렀다. 반면 꿈을 좇는 과정에서 열정과 에너지로 가득 차 있었던 나는 분명 반짝반짝 빛이 났다. 그 시간 속에서 겪었던 크고 작은 실패와 성공의 경험들, 다양한 사람들과의 인연이 모여 지금의 단단한 나를 만들어낸 것이리라.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꿈을 사랑한 것이 아니었다. 꿈을 좇는 나를 사랑했던 것이다.”(〈꿈의 노예가 되지 않기로 결심했다〉, 304쪽)
나다움을 찾는 여정에서 20명의 작가는 부모님이 지어준 이름을, 친구에게 주거나 받은 선물을, 직접 선택한 직업을, 새로운 취미를, 자신의 감정을 들여다보기 시작한다. 20년 동안 남편과 아이를 바라보고 살다 이제 나다운 선택을 하기로 마음먹은 순간, 특별함을 동경해왔지만 지금 이대로를 긍정할 수 있게 된 시점… 스무 개의 여정 속에는 기쁨과 슬픔이 잔뜩 담겨 있다.
힘내라는 말 대신
리듬에 맞춰 거닐다 만납시다
“힘내”라는 말이 공허하게 느껴질 때는 위로를 강요하거나 가르치는 태도가 없는, 앞서간 이들의 목소리가 도움이 된다. 《너의 목소리를 그릴 수 있다면》은 그런 60편의 목소리가 담겨 있다. 이야기를 따라가면 지난날을 돌아볼 수 있을뿐더러 다가올 무언가도 그려볼 수 있다. 진심을 내보인 사람에게 진심으로 화답하듯, 각자의 리듬으로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보기를 권한다.
“나는 아주 오랜만에 글을 쓰고 싶어졌고, 그것만으로도 괜찮았다. 어쩌면 다시 시작된 나의 상상과 기대가 나를 살고 싶게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여전히 조급한 채로 살아갈 것이고, 여전히 죄책감에 시달릴 것이다. 더 많은 거절을 겪게 될지도 모르고 또 홀로 숨어서 괴로워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살고 싶다는 마음이 나를 나답게 견디게 함을 알기에, 그리 많이 힘들지는 않을 것 같다.”(〈살고 싶다는 말〉, 317쪽)
작가 소개
김성은
EBS 라디오부 피디. 동화 속 이야기처럼 세상에 빛이 될 수 있는 오디오 콘텐츠를 꿈꾼다. EBS 라디오부 오디오천국 〈나도 작가다〉의 당선집 『너의 목소리를 그릴 수 있다면』를 기획했다.
정윤범
EBS 라디오부 피디. 이런 저런 오디오 콘텐츠를 만든다. 하지만 다른 이가 만든 것을 듣는 걸 더 좋아한다. EBS 라디오부 오디오천국 〈나도 작가다〉의 당선집 『너의 목소리를 그릴 수 있다면』를 기획했다.
목 차
나의 시작, 나의 도전
점 위에 올라서서 (오영) | 내 삶이 리듬을 타기 시작한 순간 (곽진영) | 느지막이 처음 (여하정) | 말라위에 도서관 선물하기 (정힘찬) | 인생은 예순부터 (배정민) | 장애아의 엄마가 되기로 했다 (울림) | 낭독은 어떻게 기적이 될 수 있는지 (꿈공) | 잠겨진 시간 (장참미) | 난생처음 스콘을 구웠다 (이경섭) | 나는 어떤 의미로 남고 싶은가 (임하은) | 6만 자의 위로 문자를 쓰며 (동유진) | 그날의 음악실, 나의 마스터플랜 (남기산) | 손수 제작의 즐거움 (김시연) | 아이를 낳고 책방을 열었다 (신동화) | 개고생은 아무나 하나 (탄만두) | 그러니까 그게 시작이었네 (홍은) | 아빠랑 10분 통화하기까지 (조윤성) | 5시를 두 번 만나는 사람 (양영희) | 나의 시작, 그대들의 시작 (이수영) | 행복이 꽃피는 베란다 (이유현)
나의 실패, 나의 두려움
달리기와 레깅스의 상관관계 (장유연) | 용석 씨는 다음 주 월요일에 출근 안 해도 돼요 (이용석) | 사랑하는 이가 눈물짓는 것이 두렵다 (김민지) | 망해서 다행이다 (김진태) | 안녕 아가! (김경림) | 옥에 티 (이동진) | 정진아, 조지나를 만나다 (정진아) | 똘이 이야기 (윤미송) | 이혼은 비밀로 해 (이정은) | 난 실패한 관리자였다 (정지현) | 오징어순대, 그 오동통하고 따뜻한 위로 (최안나) | 운전은 처음이라서 (이소담) | 시행착오와 실패의 경계선에서 (김미정) | 괜히 미역국을 끓였다 (최광미) | 늪에서 울지 않고 걸어 나오기 (이선미) | 아기를 기다림에는 실패란 없다 (이지인) | 나는 다를 거라는 착각 (현지강) | 안 되는 게 되는 거다 (이진민) | 선구적인 사람 (이름없는자) | 백일장 키드의 몰락 (김밀)
나를 나답게
잃어버린 나를 찾아서 (유미영) | 평범함의 특별함 (청연) | 이름을 바꾸지 않아 천만다행이다 (신초혜) | 울면서 계단 오르기, 300일 (김리하) | 3만 장이 넘는 사진 속 진짜 나는 없었다 (노지현) | 추석 즈음이 되면 급식에 송편이 오르곤 했다 (석지호) | 에무오아루에누아이에누지 (김복희) | 나를 위해 만들어진,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엉뚱상 (강다예) | 당신의 거친 손이 나를 키우는 바람이었습니다 (윤소평) | 내 안의 리듬을 찾아서 (해달별꽃) | 나무에 새긴 마음의 무늬 (한승주) | 오후 1시, 나에게로 떠나는 여행 (복일경) | 잠드는 용기 (장민영) | 씩씩해서 유정이다 (김유정) | 꿈의 노예가 되지 않기로 결심했다 (전주영) | 미니멀 라이프 1년 후 (김혜진) | 살고 싶다는 말 (정솔빈) | 회장님의 돈 봉투를 돌려드렸습니다 (문민정) | 세상은 넓고 나는 자유롭다 (고민지) | 본인만의 것이 있으니 잊지 말고요 (나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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