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백석의 번역으로 읽는, 터키 혁명시인 나즘 히크메트의 시
나즘 히크메트(Nâzım Hikmet, 1902~1963)는 ‘로맨티스트 혁명시인’, ‘낭만적 사회주의자’로 불리는, 터키 현대문학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한 사람이다. 이 책은 백석 시인이 1956년에 번역한 시 37편을 모아 엮은 나즘 히크메트의 국내 첫 시집이다.
나즘 히크메트는 민중을 사랑한 혁명가, 평화와 반전을 외친 세계주의 시인, 사랑을 노래한 로맨티스트였다. 그러나 그는 55년의 형을 받고 옥중에서 17년을 보낸 ‘감옥의 시인’이었고, 출판 금지, 국적 박탈을 당하고 타국에서 생을 마감한 ‘비운의 작가’이기도 했다.
이 책에는 나즘 히크메트의 파란만장했던 삶, 투철했던 사상, 서정적이면서도 강렬한 문학세계를 엿볼 수 있는 37편의 시들이, 백석 특유의 서정적이고 토속적인 시어, 때로는 섬세하고 힘 있는 표현으로 담겨 있다.
“20세기 터키 문학사에서 가장 반짝이는 이름”-오르한 파묵(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처음 히크메트의 시를 발견했을 때 나를 놀라게 한 것은 그 시들이 지니고 있는 공간이었다. 그의 시들은 공간을 넘나들었고 산맥을 가로질렀다.”-존 버거(영국 작가)
“도스토예프스키가 ‘우리는 모두 고골의 외투에서 나왔다.’라고 했다면, 우리 모두는 나즘의 호흡에서 나왔다. 나즘 히크메트의 시를 반대하는 사람도, 모방하는 사람도, 그의 영향 아래 있는 사람들 모두 나즘의 호흡을 취하고, 그를 호흡하면서 등장했다.”-아지즈 네신(터키 풍자 작가)
“오늘날 유럽에서 유명한 우리의 유일한 시인이 있으니, 그가 바로 나즘 히크메트이다. 우리가 ‘아이고, 절대 그 사람을 알면 안 되는데’라고 하며 안간힘을 써도 소용없다. 이미 그의 명성을 들어 버렸으니까.”-오르한 욀리(터키 시인)
나즘 히크메트의 시집은 현재 전 세계 50여 개국어로 번역 출판되어 있지만, 그동안 국내에서는 「진정한 여행」 등 몇 편만이 소개되었을 뿐이다. 백석은 1947년부터 북조선문학예술총동맹 외국문학분과 위원으로서 많은 외국 문학을 번역했는데, 그중 하나가 1956년 평양 국립출판사에서 출판된 『나즴 히크메트 시선집』이다. 이 책은 백석이 전창식․김병욱․허준과 함께 공역한 것으로, 권두에 백석의 글 1편이 실려 있고 총 58편의 시 중 37편을 백석이 번역했다. 따라서 이 책의 번역 출판을 백석이 총지휘했다고 볼 수 있다. 『백석이 사랑한 시, 나즘 히크메트』는 백석의 글 「나즘 히크메트에 대하여」와 「아나똘리야」, 「해를 마시는 사람들의 노래」, 「토이기 농민」, 「옥중 서신」 등 백석이 옮긴 시 37편, 그리고 터키 문학 권위자 이난아 교수의 해설을 수록한, 나즘 히크메트의 국내 첫 시집이다.
백석은 나즘 히크메트를 “터키의 거대한 시인”이자 “우리 시대의 가장 재능 있는 진보적 작가의 한 사람”이라고 하면서 그의 문학을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나즘 히크메트의 문학은 투쟁의 문학이다. 이 투쟁은 생활을 긍정하는 힘, 조국과 인민에 대한 열렬한 사랑, 조국과 계급의 원수들에 대한 분노와 반항심, 인류의 이지와 힘에 대한 굳은 신심, 평화에 대한 한량없는 동경 등에서 그 표현을 찾는다.”
나즘 히크메트는 1차 세계대전과 오스만 제국의 몰락, 터키 독립 전쟁 및 공화국 탄생, 그리고 러시아 10월 혁명 등 국내외적 격변기를 온몸으로 살았던 인물로, 민중을 사랑하고 혁명을 꿈꾸고 평화와 반전을 외쳤던 혁명가요 시인이었다.
1921년, 스무 살의 나즘은 터키 독립 전쟁에 동참하기 위해 아나톨리아로 가던 중 헐벗고 굶주린 민중의 현실과 전쟁의 참혹한 실상을 목격하고, 평생 시를 쓰기로 작정한다. 그리고 독일에서 온 스파르타키스트 터키 청년들로부터 러시아 10월 혁명 이야기를 듣고는 마음을 바꾸어 러시아로 떠나고, 이후 사회주의자가 된다.
체포와 구금이 반복되는 삶을 살았던 나즘은 터키 공산당 건물 지하 인쇄소에서 석 달 동안 햇빛 한 줌 보지 못하고 일하면서 자유를 갈망하는 시를 쓰기도 했고,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폭탄으로 희생된 한 소녀를 애도하는 시를 써서 반전과 평화를 염원하기도 했다.
이색적인 것은 나즘이 쓴 ‘한국전쟁’ 관련 시이다. 흔히 터키와 한국이 ‘형제의 나라’라고 하는데, 이는 터키가 한국전쟁에 대거 참전해 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평화주의자였던 나즘은 터키의 참전에 극력 반대하면서 이를 비판하는 많은 시를 썼다. 나즘의 「벨리-오글루 아흐메드」(1952)는 한국전쟁 당시 터키 군단 위에 삐라로 뿌려지기까지 했다고 한다.
“그래 조선엔 비가 온단 말이지, 아흐메드여?
너는 그래 네 총부리 따라
진창 속에
땅을 기어가는 거냐?
이마에 핏대 일어서고
눈에는 안개 어리어……
누구를 너는 죽이러 가는 길이냐, 아흐메드여”
이난아 교수는 나즘이 이 시를 쓴 당시 정황을 이렇게 설명한다.
“그는 한국전쟁 당시 압록강 전투에서 중공군에게 포로로 잡힌 234명의 터키 병사들을 보기 위해 세계평화위원회 위원 자격으로 1952년 6월 중순경에 압록강 근처에 있는 제5 포로수용소를 방문한 후 바로 베이징으로 향한다. 이 포로수용소에는 물론 남한 군인들도 있었다고 밝히고 있다. 나즘이 그곳에서 비참하게 생활하고 있는 터키 포로들을 보고 느낀 인상과 그들 앞에서 했던 말을 시로 쓴 것이 바로 이 「벨리-오글루 아흐메드」이다.”
이 시의 끝에서 나즘은 이렇게 권한다.
“만약 너
네 집을
네 마을을
네 나라를
그처럼 사랑한다면
포로가 되라”
백석이 번역한 나즘의 또 다른 시 「서글픈 자유」(1951)에도 한국전쟁에 관한 내용이 등장한다.
그 어느 날씨 좋은 하룻날
그들은 너를 글쎄 조선으로 보내리라,
네 몸으로 폭탄 구멍을 메꾸는
네 위대한 자유와 함께.
자유로운
무명 전사로 되기에-
너는
자유롭고나!
이난아 교수는 “이 시는 노동과 착취, 그리고 자유를 표현한 작품이며, 자유를 앗아간 대상 중 하나로 한국전쟁을 예로 들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평생 동안 총 55년의 형을 언도받고 옥중에서 17년을 보내며 시를 썼는데, 그래서 ‘감옥의 시인’으로 불리고, 사랑하는 아내에게 쓴 많은 서정시들로 하여 ‘로맨티스트 시인’이라고도 불린다. 생전에 그의 시가 34개국어로 번역 출판되었지만, 정작 터키에서는 출판이 금지되고 국적을 박탈당했으며, 결국 타국에서 죽음을 맞이했으니, 그는 또한 ‘비운의 시인’이기도 했다.
나즘 히크메트는 터키라는 한 나라에 국한된 문제만이 아닌, 당시 전 세계 사람들이 처한 문제를 건드리고 있는데, 이난아 교수는 나즘의 시들에 “평화주의자, 반전주의자, 자유주의자이자 형제애를 추구하는 그의 사상이 지배적으로 반영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고 말하면서 “이러한 사상들을 세계주의로 확장 해석할 수 있겠는데, 이는 그가 지향한 이데올로기를 단지 터키에만 국한하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의 문제로 인식했기 때문이다.”라고 평한다.
작가 소개
지은이 : 나즘 히크메트
본명은 나즘 히크메트 란Naım Hikmet Ran으로, 터키를 대표하는 혁명적 서정시인이다. 그는 몰락하는 오스만 제국의 영토였던 현 그리스 땅 셀라니크에서 태어나 이스탄불의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했다. 프랑스혁명 이후 전 세계에 전파된 자유, 정의, 평등, 인권 등 새로운 사상의 영향 아래서, 나즘 히크메트는 1921년 터키 독립 전쟁에 동참하기 위해 아나톨리아의 이네볼루로 가던 중 헐벗고 굶주린 민중의 현실과 전쟁의 참혹한 실상을 목격하게 된다. 이어서 독일에서 온 스파르타키스트 터키 청년들을 만나 러시아 10월 혁명 등의 이야기를 듣고는 마음을 바꾸어 러시아로 떠난다.
러시아 ‘동양 근로자 대학’에서 정치경제학을 공부하면서 본격적으로 시를 창작했고, 러시아 시인 마야콥스키와 같은 무대에서 시 낭독을 한 것을 계기로 시인으로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1924년 비밀리에 터키에 입국하여 터키 공산당에 입당했고, 이듬해 정부의 대대적인 공산주의자 검거를 피해 다시 모스크바로 갔다. 1928년 다시 터키로 돌아온 후로는 체포와 구금이 반복되는 삶을 살았다.
1928년 바쿠에서 첫 시집 『해를 마시는 사람들의 노래』를 발표한 이래 1929년 터키에서 『835행』을 출간해 문단의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이후 『자콘두와 시-야-우』, 『밤에 온 전보』, 『베네르지는 왜 자살했나?』 등을 출간했다. 옥중에서 쓴 유명한 작품으로 터키 문학사에 길이 남을 『쿠바이 밀리예 서사시』, 『내 나라의 인간 풍경』 등이 있다. 시 창작 외에 번역, 희곡 및 시나리오 집필도 했으며, 극단 창단, 영화감독 등 다양한 활동을 했다.
1938년 ‘군대 반란 조장죄’로 28년 4개월의 형을 선고받았는데, 이로써 일생 동안 총 55년의 형을 언도받고 실제로는 17년을 감옥에서 보냈다. 1944년 국내외에서 나즘 히크메트 석방 운동이 시작되었고, 이에 힘입어 1950년 7월 일반 사면으로 자유의 몸이 되었다. 같은 해 11월 그는 파블로 피카소, 폴 로브슨, 반다 야쿠보프스카, 파블로 네루다와 함께 세계평화위원회가 수여하는 ‘국제평화상’을 수상했다. 1963년 긴 투옥 생활로 얻은 지병으로 모스크바에서 숨을 거두었다. 생전에 그의 시집은 34개국어로 번역 출판되었으나 정작 터키에서는 출판이 금지되었다가 사후에 출판되기 시작했다. 1951년 박탈되었던 그의 국적은 2009년 회복되었다.
옮긴이 : 백석
시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시인, 가장 토속적인 언어를 구사하는 모더니스트. 1912년 7월 1일, 평안북도 정주 출생으로 본명 백기행이다. 아버지의 영향으로 일찍부터 신식교육을 받았다. 필명은 백석(白石)과 백석(白奭)이 있었는데 주로 백석(白石)을 많이 사용하였다. 일본의 시인 이시카와 타쿠보쿠(石川啄木)의 시를 좋아하여 그의 이름 중 석을 택해서 썼다. 오산고보 재학 중 백석은 부친을 닮아 성격이 차분했으며 친구가 없었다. 1936년 시집 ‘사슴’을 경성문화 인쇄사에서 100부 한정판으로 찍었다. 윤동주는 백석 시집을 구할 수 없어 노트에 시를 필사한 이야기는 유명하다. 해방 전 천재 시인으로 명성이 자자했다.
오산소학교, 오산고등보통학교를 거쳐 오산고보 졸업 후, 조선일보가 후원하는 춘해장학회의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일본 도쿄의 아오야마 학원 영어사범학과에 입학하였다. 김소월을 동경하면서 시인의 꿈을 키웠으며, 1930년 [조선일보] 신년현상문예에 단편소설 「그 모母와 아들」이 당선되면서 등단하였다. 1934년에 귀국하여 8·15 광복이 될 때까지 [조선일보], 함흥 영생여자고등보통학교 영어교사로, [여성사], [왕문사] 등에서 근무하며 시작 활동을 했다. 1935년 [조광] 창간에 참여하였고, 같은 해 [조선일보]에 시 「정주성定州城」을 발표하면서 등단하였다.
시작 활동 외에도 많은 외서들을 번역했다고 전해진다. 1936년 시집 『사슴』을 간행하였으며 같은 해 조선일보를 그만두고 함경남도 함흥 영생여고보 영어교사로 부임하였다. 1939년 [여성]지 편집 주간 일을 사직하고 고향인 평북 지역을 여행하였다. 1940년 만주의 신징(지금의 장춘)으로 가서 3월부터 만주국 국무원 경제부 말단 직원으로 근무하다가 창씨개명의 압박이 계속되자 6개월 만에 그만두었다. 1942년 만주의 안둥 세관에서 일하다 1945년 해방이 되자 신의주를 거쳐 고향인 정주로 돌아왔다.
1946년 북조선예술총동맹이 결성된 후 1947년 문학예술총동맹 외국문학 분과위원이 되었다. 이때부터 러시아 문학 번역에 매진했다. 1949년 조선작가동맹 기관지 [문학신문]의 편집위원으로 위촉되었고 [아동문학]과 [조쏘문화] 편집위원을 맡으며 안정적인 창작활동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1957년 동화시집 『집게네 네 형제』를 간행하였으나 1958년 ‘붉은 편지 사건’ 이후 격렬한 비판을 받게 되면서 이후 창작과 번역 등 대부분의 문학적 활동을 중단했다. 1959년 양강도 삼수군 관평리의 국영협동조합 축산반에서 양을 치는 일을 맡으면서 청소년들에게 시 창작을 지도하고 농촌 체험을 담은 시들을 발표했으나, 1962년 북한 문화계에 복고주의에 대한 비판이 거세게 일어나면서 창작 활동을 접었다. 1996년까지 삼수군 관평리에서 농사를 짓다가 사망했다는 내용이 드러났지만 정확한 정보는 알려져 있지 않다.
방언을 즐겨 쓰면서도 모더니즘을 수용하여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구축한 백석은 일제 강점기에도 모국어를 지키고자 하였다. 시집으로 『사슴』(1936)이 있으며, 대표 작품으로 「여우난골족」,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국수」, 「흰 바람벽이 있어」 등이 있다. 북한에서 나즘 히크메트의 시 외에도 푸슈킨, 레르몬토프, 이사콥스키, 니콜라이 티호노프, 드미트리 굴리아 등의 시를 옮겼다. 1936년에 펴낸 시집 『사슴』에 그의 시 대부분이 실려 있으며 수록된 시 「통영」, 「적막강산」, 「북방」 등 백석의 대표작들은 실향 의식을 바탕으로 서민들의 삶을 토속적인 언어로 현실감 있게 그려냈다. 한국의 대표 모더니즘 시인으로 평가받는 백석의 시는 오늘날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해설 : 이난아
한국외국어대학교 터키어과를 졸업하고, 터키 국립 이스탄불 대학교에서 터키문학으로 석사학위, 터키 국립 앙카라대학에서 터키문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 중앙아시아연구소 연구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저서로 『터키 문학의 이해』, 『오르한 파묵, 변방에서 중심으로』, 『오르한 파묵과 그의 작품 세계』(터키 출간), 『한국어-터키어, 터키어-한국어 회화』(터키 출간) 등이 있으며 터키문학과 문화에 관련된 다수의 논문이 있다. 소설 『내 이름은 빨강』등 50권이 넘는 터키문학작품을 한국어로 번역했으며, 김영하의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등 6편의 한국문학 작품을 터키어로 번역했다.
목 차
옮긴이의 말: 나즘 히크메트에 대하여-백석
1부 해를 마시는 사람들의 노래
아나똘리야
새로운 예술
나는 예술을 이렇게 이해한다
레닌의 돌아가심을 당하여
빛을 퍼뜨리는 사람들
해를 마시는 사람들의 노래
제국주의의 담벽
동방에서 온 사람과 쏘련
석유 여행
우수
아이들에게 주는 교훈
나아가는 사람
앞잡이 선동가
로씨야에서 짜리 제도가 전복된 이야기
불 못 붙인 담배
그 어느 나무 하나 준 일 없다 이런 훌륭한 과실을
대답 제4호
목소리
눈이 푸른 거인
마드리드의 성문가에서
2부 나의 감금 열두 번째 해가 감이여
승리를 두고
죽음을 두고
20세기
나그네 길
나의 감금 열두 번째 해가 감이여
그대네 손들을 두고 거짓말을 두고
폴 롭쓴에게
세계, 벗들, 원수들, 그대 그리고 땅
토이기 농민
옥중 서한
축전 기념첩의 서언
서글픈 자유
있을 것이냐 아니면 없을 것이냐?
목동 알리
벨리-오글루 아흐메드
웽그리야 여행
노래 4편
해설: 민중을 사랑한, 반전과 평화를 외친 로맨티스트 혁명가 나즘 히크메트-이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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