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바쁜 도시를 벗어나 평화로운 지방의 작은 마을에서 하루하루 부지런한 삶을 살며 지내는 저자가 일상을 새롭게 발견하며 삶이 주는 깨달음을 기록한 시와 산문 모음집이다. 작고 사소한 것을 고귀하게 만드는 새로운 시선을 통해 생명과 존재의 의미를 다시금 되새기고, 자연의 고귀함과 그 자연에 속한 사람과 삶의 절실한 고귀함을 일깨운다.
낮은 것들과 스쳐 지나가는 것들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다시 돌아보다
요즘 우리는 일상을 잃은 시간을 살고 있다. 밥 먹고, 차 마시고, 함께 웃는, 그 아무렇지도 않던 일들이 사무치게 다가온다. 당연시하던 일상을 잃고 나니 새삼 일상의 소중함을 절감하고 있는 것이다.
《고귀한 일상》은 바로 일상의 소중함과 삶이 선사하는 깨달음을 기록한 시와 산문 모음집이다. 이 책의 저자 김혜련은 ‘위를 향한 삶’을 추구한 끝에 역설적으로 ‘아무것도 아닌 삶’, 느리고 낮고 단순한 삶을 만났다. 그렇게 삶의 방향을 바꾸어 살아온 지 10여 년이 되었다.
일상에서 비근한 것, 근원적인 것, 작고 사소한 것들 가까이서 살면서 ‘스스로 그러한[自然]’ 것들이 하는 말을 듣고자 했고, 나 또한 ‘스스로 그러한’ 생명이라는 것을 깨달아 갔다.
- ‘프롤로그’ 중에서
《고귀한 일상》은 이렇게 느리고 낮은 삶, 일상에 집중하는 삶, 자연과 함께하는 삶을 살면서 느끼고 깨달은 것들의 기록으로, 총 57편의 시와 산문이 다섯 장에 나뉘어 실려 있다.
1장 ‘가만히 누워 나를 본다’(8편)에서는 이전에는 스쳐 지나갔지만 일상에 머물며 정성을 들이는 삶을 살면서 비로소 보이고 들리게 된 것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를테면, “한 생 마친 강아지풀이 바람에 날리는 모습”이나 “뒤뜰에 핀 봉선화가 바람에 살랑대는 소리”처럼 몸을 낮추거나 누워야 보이고 들리는 ‘느리고 사소한 세상’에 대해 말한다.
2장 ‘일상의 품 안에 고요히 앉아’(13편)에서는 번잡하고 분주한 세상살이에서 한발 비켜나 고요한 일상에서 느끼는 행복과 기쁨을 말한다. 일상을 벗어난 ‘특별한 날’, ‘특별한 경험’에서 행복과 기쁨을 찾는 대다수 사람들과 달리, “늘 하던 일 하고 싶지, 특별한 일을 하고 싶지 않아”라고 말하는 대목에서는 시샘마저 느껴진다.
3장 ‘세상을 향해 걷다 보면’(12편)에서는 일상과 자연의 작고 사소한 것을 고귀하게 받아들이면서 세상과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이 변화하는 과정을 진솔하게 이야기한다. 이를테면, 1차선 도로에서 느릿느릿 달리는 ‘똥차’를 추월하지 않는 앞차를 보며 짜증을 느끼다가 “촌에서나 나오는, 건져 올릴 수 있는 귀한 똥”을 싣고 지역 주민의 “수호”를 받으며 달리는 듯한 똥차에게 “경의”를 느끼는 식이다.
4장 ‘멈춰 서 깨닫는 것들’(13편)에서는 삶의 근원(저자는 삶의 근원이 밥 먹고, 놀고, 잠자고, 일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에 가닿은 끝에 비로소 깨달은 것들을 이야기한다. 예를 들면, “여리디여린 연두를 지나, 강렬한 진초록의 세계를 거쳐, 허리 꺾어 다시 돌아온 연두”, “수의 빛 연두”가 된 들판의 익어가는 벼들을 보며 “잘 산 인생” 역시 저 벼들과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5장 ‘생명의 몸짓으로 날다’(11편)에서는 일상에 천착하면서 새삼 알게 된 생명과 자연의 소중함을 노래하고 생명과 자연을 보며 얻은 깨달음을 이야기한다. 특히 가을 나무와 벌판 가득 익어가는 벼들의 모습을 보며 “내 안의 부드럽고 약한 것들이 드러나기 위해서는 손이 베일 듯 강하고 거칠게 자라나던 젊음의 원리가 꺾여야 한다. 그 부드러움이 내가 모르던 삶의 비의(秘義)를 비로소 알게 한다”면서 포기나 체념이 역설적으로 새로운 삶을 생성하는 길이 된다고 말하는 대목이 눈길을 끈다.
하루하루를 고귀하게
삶의 근원에 더 가까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는 너무나 바쁘고 힘들다. 무언가를 끊임없이 해야 하고, 목적지도 모르는 곳을 향해 늘 내달려야 한다.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것은 조급증과 경쟁적 욕망이다. 모두가 이 사실을 알고 있지만 그러려니 하고 만다. 무언가 다른 삶을 산다는 것은 굉장한 용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용기가 필요하다. 그러나 막상 해보면 사실 굉장할 것까지는 없다. 돈과 시간과 취향에 매몰되지 않는 삶, ‘영혼이 있는’ 삶은 우리의 일상을 되돌아보는 아주 단순하고 쉬운 데서 시작된다.
《고귀한 일상》의 저자 김혜련은 일상의 작은 순간들, 일상을 이루는 수많은 사소한 것들을 바라보며 삶의 근원을 발견한다. 올해 처음 캔 감자의 맛을 기다리며 ‘기쁜 조바심’으로 설레고, 꽃과 나무를 고요히 오래 바라보고, 늙은 고양이의 생에서 깨달음을 얻고, 한겨울 집안 가득 들어오는 햇살을 온몸으로 느끼고……. 이렇게 작고 비근한 일상이 삶을 이루는 근원이라고 말한다. 근원을 무시하고 뭔가 새롭고 대단한 것을 좇는 삶은 ‘헛꽃을 피우는’ 삶, 그래서 공허한 삶이라고 이야기한다. 일상을 고귀하게 살아간다는 것은 삶의 근원에 단단하게 뿌리내리는 일이라는 것이다.
일상에서 발견하는
생명과 존재의 아름다움
작고 사소한 것을 고귀하게 만드는 새로운 시선을 통해 저자는 생명과 존재의 의미를 다시금 되새긴다. 흙을 만지고 밥을 먹고 운전을 하고 들판을 걷는 일상의 소소한 행위에서 살아 있는 것들의 아름다움, 몸의 소중함을 발견하고 그 고혹적 매력을 들려준다.
“어떤 상황에서도 내 생명을 소외시키지 않는 삶을 살자고 말하고 싶어요. 몸을 가지고 살지만 몸에 관심 없다면 내 생명을 소외시키는 거죠. 라면을 먹더라도 대충 한 끼를 때우는 게 아니라 정성스럽게 먹기, 한 칸짜리 방이라도 내가 가장 평안할 수 있는 공간으로 가꾸기. 내 삶의 기초를 잘 돌봐야 삶이 든든해진다는 걸 나누고 싶어요. 생명은 아름답게 살아 주어야 죄짓지 않는 것이라고요.”
- 본문 중에서
소비 자본주의 문명의 천박함을 넘어선
자연의 고귀함에 대하여
저자는 그저 잘 먹고 잘 자고 즐겁고 평화롭게 살아가면 되는 것이고, 그렇게 살아가라고 자연은 해 질 녘 노을, 시원한 바람, 감자와 감자꽃, 머리 숙이는 벼들, 봄마다 푸르게 소생하는 들판 같은 많은 선물을 우리에게 무상으로 주었다고 말한다.
그런데 자본주의 문명이 그 선물들을 값싼 양식이나 경제적으로 가치 없는 것들로 치부하며 우리가 그 존재들과 교감할 기회를 박탈해버렸다고 지적한다. 자본주의 문명 때문에 일상이 고귀한 삶이 아니라 버텨야 할 그 무엇이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자본주의 문명의 천박함을 비판하며 자연의 고귀함을, 그 자연에 속한 사람과 삶의 절실한 고귀함을 일깨운다.
“민물 매운탕은 민물고기의 시간을 먹는 거다. 민물고기 특유의 흙 비린내가 나야 한다. 양식을 해 존재의 시간성을 죽이니, 그 존재의 특성이 드러나지 않는다. 그래서 양식한 민물고기로 끓인 매운탕은 양념 덩어리일 뿐이라 먹어도 감각적으로 남는 게 없다. 먹는 존재와 어떤 교류도 일어나지 않는다. …… 존재를 먹는다는 건 시간을 먹는 것이다. 이럴 때 같은 존재인 내 시간성이 깊어진다. 식물이나 민물고기는 땅의 시간이 깃든 존재다. 이들이 존재의 특성을 갖추도록 성장하려면 지루한 시간을 견뎌야 한다. 그런데 지루한 시간을 견디도록 놓아두면 상품화할 수가 없다. 상품화하려면 빨리빨리 키워야 한다. 들여야 할 시간을 들이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 자본주의 문명이다.”
- 본문 중에서
작가 소개
평범한 세계에서 신(神)과 성(聖)을 발견하는 데 한 생애가 걸렸다. 이십여 년간 국어교사로 살았고, 삼십 대에 여성학을 만났다. ‘또하나의문화’와 ‘한국여성민우회’에서 활동하고 <여성신문>, 페미니스트 저널 <이프> 등에 글을 썼다. 마흔 후반에 교사 생활을 접고 수년간 입산수행을 했다. 오십 초반에 경주 남산마을에서 백 년 된 집을 고치고 텃밭을 일구며 삶의 근원이 되어 주는 것들의 소중함과 아름다움을 배웠다. 그 삶이 《밥하는 시간》으로 엮여 나왔다. 현재는 상주의 시골 마을에서 자연을 만나며 지역 여성들과 함께 글 쓰고, 공부하는 삶을 살고 있다. 저서로는 《남자의 결혼 여자의 이혼》, 《학교 종이 땡땡땡》, 《결혼이라는 이데올로기》(공저), 《학교 붕괴》(공저), 《밥하는 시간》이 있다.
목 차
1장 가만히 누워 나를 본다
누워야 보이고 들리는 것들 | 고독과 외로움 | 아픈 몸을 살다 | 분노의 힘으로 꽃은 핀다 | 스토리를 살다 | 그 벼가 되고 싶다 | 고귀한 사치 1 | 비를 듣고 느끼다
2장 일상의 품 안에 고요히 앉아
앉아라 | 소쩍새 우는 밤, 늙은 파를 뽑다 | 마당이 있다는 건…… | 이렇게 좋은 날 |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 고요 1 |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 고요 2 | 집과 놀다 |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 겨울밤 | 고귀한 사치 2 | 사소한 것을 고귀하게 하라 | 삶의 우선순위 | 벼꽃의 위로 | 이혼을 앞둔 벗 ‘나타샤’에게
3장 세상을 향해 걷다 보면
평생 안 하던 짓을 이제 하려니 그게 돼야 말이지요 | 그가 노인의 속도를 존중했을 때 | 부지런함과 바쁨 | 24시간 편의점 청년 | 청소 노동자 종숙 씨 | 유월의 끝, 부끄부끄 콘서트에 가다 | ‘썩지 않는’과 ‘썩을 수 없는’ | 존재의 시간을 먹다 | 고통의 언어 | 말을 묻다[埋] | 함께 쓰는 글은 힘이 세다 | 똥차에게 경의를!
4장 멈춰 서 깨닫는 것들
감자꽃을 따는 이유 | 배냇빛 연두와 수의 빛 연두 | 코의 불인不仁 | 안 살려고 계속 산다 | 순간의 빛 | 할喝과 옹알이 | 무논 | 밥과 밥 사이 | 늙은 고양이 오중이 | 측은지심惻隱之心 | 기를 쓰고 놀다 | 백일홍 | 지는 꽃에 관하여
5장 생명의 몸짓으로 날다
새를 보는 기쁨 | 야생성의 소멸 | 완경完經 | 세 여자 | 가을 쑥갓 | 져야 할 것이 져야 익어야 할 것이 익는다 | 몸들 | 웃음 | 늙음의 고요 | 아흔아홉 할머니의 부활 | 두려운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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