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시인은 파충류 심장을 가졌다!
시가 몸을 바꾸는 순간에 주목하며
행간의 숨결과 언어의 질감을 포착하는 강정의 독법
강정 시인의 다섯 번째 에세이집이자 첫 비평집인 『파충류 심장』이 출간되었다. 여덟 번째 시집 『커다란 하양으로』와 함께 출간된 『파충류 심장』은 김소형, 김정환, 김혜순, 이성복, 이지아 등 22명 시인들의 시 세계를 강정만의 독법으로 그려 보인다. 거침없이 시의 구석구석을 뜯어보다가도 한걸음 물러나고, 위트 있게 돌아섰다가도 다시 진지하게 시를 논하는 강정 산문 특유의 리듬감 또한 느낄 수 있다. 이성복 『아, 입이 없는 것들』, 허은실 『나는 잠깐 설웁다』, 정영 『화류』 등의 시집에 대한 해설과 신경림 시인과의 인터뷰, ‘숲의 화가’로 알려진 변연미 작가의 작품에 대한 글을 엮었다.
총 22편의 글을 묶는 키워드는 ‘파충류’다. 강정에 따르면 시인은 ‘파충류의 심장’을 가졌다. “스스로 긁어 댄 상처를 스스로 떼어 내며 새살 돋기를 거듭”하는 변온과 변색의 동물, 파충류야말로 시인의 가장 가까운 친척이다. 다변하는 시를 감각적으로 받아들이며 언어의 육체적 울림을 느끼는 강정은 시의 가장 독창적인 해설자다. 『파충류 심장』을 읽는 일은 시가 가져다줄 변신의 순간에 나를 열어 놓는 일이자, 낯설지만 거침없고, 누구보다 자유로운 시를 써 온 강정의 시 세계에 다가서는 일이 될 것이다.
■ 에세이 혹은 해설
『파충류 심장』은 해설인 동시에 에세이, 즉 나에 대한 글이기도 하다. 강정은 시에 해설을 덧붙이는 일은 “시의 발생 지점을 밝히는 일”이라고 말하는데, 이는 “시 속으로 독자를 데리고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독자의 바깥으로 시가 빠져나오는 걸 도와주는 일”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해설은 곧 강정 자신에게 시가 다가왔던 순간의 기록이기도 하다. 사적인 이야기를 늘어놓는 일은 겸연쩍다 하면서도 이 해설집에 손월언 시인의 첫인상(「사는 대로 사는 거지 뭐, 죽는 대로 죽는 거지 뭐」), 정영의 시집을 두고 세 계절을 지나 보냈던 시간(「거룩한 식인의 저녁」), 박형준의 시집을 읽다가 갑작스레 단편영화를 찍었던 하루의 기록(「숨은 빛: 단편영화 「푸르른 운석」 촬영기」)이 담겨 있는 건 그래서다. 그 사적인 순간들을 마주하면서 독자들은 시가 자신에게 다가왔던 순간을 다시 떠올리거나, 강정이라는 문을 통해 시의 또 다른 발생 지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시는 육체의 언어이자 언어의 육체
강정의 해설 혹은 에세이는 시를 명료한 틀로 정리해 주는 대신 시가 몸을 바꾸는 순간에 주목한다. 시의 언어는 상황과 감정, 주체와 대상이 달라질 때마다 독자적인 음색으로 다가온다. 행과 연은 언어가 감춘 말의 리듬감을 드러내고, 시어는 단어를 다른 질감으로 환기하며 새로운 촉감을 선사한다. 감추어진 언어의 숨결들을 확대해 보여 주는 강정의 해설을 따라 읽다 보면 시가 “육체의 언어이자 언어의 육체”라는 그의 정의를 실감할 수 있다. 일상적인 용법에서 벗어나는 언어의 쓰임과 울림을 찾는 일은 곧 우리가 시를 읽는 이유이기도 하다. 강정은 규정에서 벗어나는 “측정할 수 없는 벗어남의 각도”야말로 “시가 가질 수 있는 유일한 위치에너지”라고 말한다. 『파충류 심장』은 그 벗어남을 부러 필요로 하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시의 살결들을 매만지고 이미지의 그물을 엮어 마음의 그릇으로 빚어낼 줄 아는” 시의 독자를 위한 책이다.
작가 소개
강정
1971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1992년 《현대시세계》로 등단했다. 『그리고 나는 눈먼 자가 되었다』 『처형극장』 『키스』 『백치의 산수』 등 8권의 시집과 『그저 울 수 있을 때 울고 싶을 뿐이다』 『콤마, 씨』 등 5권의 산문집이 있다. 록 밴드 ‘엘리펀트 슬리브’의 리드 보컬이다.
목 차
들어가며 9
1부
춤춰라, 한 번도 걸어 보지 못한 것처럼! ?이지아 『오트 쿠튀르』와 김정환 『소리 책력』에 대한 소고 15
꽃을 찾아, 안 들리는 방울 소리를 찾아 ?김소형의 시 두 편28
죽음의 춤이거나, 우주적 발광이거나?김혜순의 시들 혹은 산문들 40
오, ‘마라’가 없었으면 없었을…… ?이성복 『아, 입이 없는 것들』52
시의 절벽, 그 앞의 새하얀 손?김태형 『고백이라는 장르』 67
사는 대로 사는 거지 뭐, 죽는 대로 죽는 거지 뭐?손월언 『마르세유에서 기다린다』78
뱀을 삼킨 몸?허은실 『나는 잠깐 설웁다』 91
2부
갸륵한 독기 혹은 거룩한 천박의 지저귐?성동혁의 시들에 대한 소고 104
거룩한 식인의 저녁 ?정영 『화류』112
누구인지 알아도 말할 수 없다?리산 『메르시, 이대로 계속 머물러 주세요』 126
나무의 잔기침, 혹은 손금 흐르는 소리?정지우 『정원사를 바로 아세요』 137
구렁이는 과연 자기 꼬리를 찾을 수 있을까?신동옥 『웃고 춤추고 여름하라』 148
불굴을 향한 마음의 불구, 또는 영혼의 빈 공간?김경주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 161
많이 젖었어, 나를 부르지 마?김이듬의 시들 172
3부
그럼에도 불구하고, 체 게바라 만세?박정대 『삶이라는 직업』 182
당신을 내려놓고 울어요, 다른 삶으로 가요?박정대 『체 게바라 만세』 195
숨은 빛: 단편영화 「푸르른 운석」 촬영기?박형준 『생각날 때마다 울었다』 207
진심의 괴물, 혹은 말의 누드?이이체 『인간이 버린 사랑』 224
인어의 연옥, 존재의 피안?함성호 『키르티무카』 236
별은 어디에서 왔을까?함성호의 시들 252
4부
막힌 혈을 뚫는 신명의 촉?신경림 『사진관집 이층』 266
배회하는 나무, 드러누운 하늘?변연미의 ‘숲’ 연작 285
나가며 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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