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시인의 말
퍼즐 조각처럼 흩어져 살아도
하나가 빠지면 텅 빈 계절 같은 여기
나는 그들과 함께 오늘을 채우고 있다
우리는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작품 세계
‘딛다’는 머묾과 나아감 중 어느 쪽에 가까울까? 세상은 어디선가 머물고 어디론가 나아간다. 그중 한 곳, 그러니까 관념이 지독하게 고인 세계를 가슴으로 맞아야 하는 게 시인의 몫이라면, 이때 ‘딛다’는 시인이 어떤 세계로 부름을 받는 일이라고 해도 좋다. 이렇게 볼 때 ‘딛다’는 어떤 세계의 미분(微分)이며 한 편의 시는 사이사이에 자국으로 찍힌 이미지를 호명하는 과정이다. 이미지는 파편으로 존재할 때와 모여 있을 때 분명 소리가 다르다. 세계를 이루기 전과 세계를 이룬 후의 시적 파장이 다른 것처럼 말이다.
한영희 시인의 시집 『풀이라서 다행이다』는 머묾으로 간직했던 사유를 나아감의 화두로 제시한다. 시인의 눈은 대체로 긍정적이고 따뜻하다. 작고 낮은 곳의 사물과 그들이 뱉는 목소리에 기꺼이 마음을 내어주기까지 시인이 디딘 삶의 영역은 평면이 아니었을 것이다. 타자를 온전히 더듬는다는 건 불가능하다. 그 불가능함이 시인의 고유한 색을 만든다. 한 명의 시인이 바라보는 세계는 그래서 충분한 값을 지닌다. 이렇듯 시인이 온몸으로 디뎌 만든 자국을 연결하면 고유한 방향을 만날 수 있다. 방향은 지속적이다. 어디에서 어디로, 시인의 자국을 따라가는 동안 독자가 만날 수 있는 건 단순히 수십 편의 작품이 아니라 시인이 디딘 자국의 폭과 깊이도 포함된다. 『풀이라서 다행이다』에서 보여준 시편들은 삶의 언저리에서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는 사물들을 배경으로 한다. 하지만 시인은 그들을 통해 각각의 깊이를 발견한다. 때론 잔잔하게 때론 굴곡진 보폭에서 찾아낸 울림은 결코 쉽게 만난 것이 아니다. 시인이 사물의 목소리를 몸으로 녹이는 동안 그들의 목소리는 새로운 체온을 얻는다. 이런 온도가 바로 울림을 일으키는 힘이다.
- 최은묵(시인) 해설 중에서
작가 소개
한영희
전남 영암 금정산골에서 태어났다. 2014년 농촌문학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고, 2018년 [투데이신문] 직장인 신춘문예에 당선되었다. 광주전남작가회의에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 『풀이라서 다행이다』가 있다.
목 차
제1부
풀 / 떨림 / 화석 / 공존 / 까막눈 / 눈꽃 / 때까치 우는 저녁 / 라디에이터 / 로드킬 / 와온 해변 / 봄에서 여름 사이 / 햇볕이 들어온 날 / 문상 / 저수지의 내력 / 적막한 한 평 / 금이빨 삽니다 / 허수아비
제2부
광주의 숨 / 엄마 바위 / 찔레꽃 이야기 1 / 찔레꽃 이야기 2 / 응시 / 입들이 가득 찬 방 / 일용직 / 넷째 손가락
제3부
논 / 녹슨 낫 / 가족사진 / 단팥빵 / 뒤뜰에 대한 기억 / 달빛 켜는 밤 / 수족관 / 연 / 종부(宗婦) / 배꼽시계 / 매실
제4부
함께 먹는다는 건 / 간이역 / 오늘 광주 하늘은 흐림 / 개똥수박 / 뜨거운 약 / 그들이 사는 법 / 너에게 가는 길 / 말복 / 말랑말랑한 감정 / 먼지의 시간 / 몽유병 / 인연 / 어떤 길 / 여기 혀가 있어요 / 멸치 똥을 따는 밤 / 아침, 혹은
작품 해설 : 체온으로 디딘 자리에서 풀이 돋고 -최은묵
역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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