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에서

택시요금 같은 운임을 받던 격포행 구형 버스는 시골 외가에 다니곤 했던 어린시절의 기억을 되살렸고, 제철을 맞은 전어는 신혼집 집들이를 하러 간 듯한 풍미를 자랑했다. 납작하게 접은 종이 상자를 수백 장 쌓은 듯한 채석강의 절경은 서해를 뒤덮은 구름에 낙조의 감격을 차단당한 나의 아쉬움을 달래 주었다. 

변산의 품에 안긴 내소사는 산사의 고즈넉함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고, 수백년 세월에 빛바랜 대웅전 지주는 그것이 가져다준 여유로움을 간직하고 있었다. 아담한 절간엔 훈장 달린 군복에 군화 대신 운동화를 신은 퇴역 군인들이 노후를 즐기고 있었고, 변산에 올라서니 저 멀리 곰소 앞바다가 눈에 잡힐 듯 펼쳐졌다.

오래된 사진처럼 곱게 퇴색되던 서해와 변산반도라는 장소에 나는 2년 후 또다시 발길을 닿게 되었다. 대학원 답사차 갔던 남도의 들편은 여전히 드넓었고, 수묵화 같은 간조의 갯벌은 닥스 회사의 손수건처럼 구획진 간석지의 전답과 자리를 함께했다.

유난히 구름 낀 날이 많았던 그해 여름답게 수평선 너머론 구름만 가득했지만, 채석강의 절경과 내소사의 고즈넉함은 변함없이 나를 반겨 주었다.

- 본문 <서해에서> 중에서

​지은이 : 이동민

경북 구미에서 태어나 김천에서 자랐다. 김천고등학교, 대구교육대학교, 서울대학교 지리교 육과에서 수학하고, 2014년 서울대학교 지리교육과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교원대학교, 공주대학교, 전남대학교, 경북대학교, 가톨릭관동대학교 등에서 지리교육학 및 인문지리학 강의를 맡고 있으며, 대구교육대학교 박사후 연구원과 서울대학교 국토문제연구소 연구원으로 몸담고 있기도 하다. 오늘날 세계화 시대에 지역이라는 주제가 지리적·교육적으로 어떠한 의미를 갖는가에 특히 학문적 관심이 높다. 주요 연구 실적으로는 「How to Design and Present Texts to Cultivate Balanced Regional Images in Geography Education」(공저, 『Journal of Geography』),「Mindful Learning in Geography: Cultivating Balanced Attitudes Toward Regions」(공저, 『Journal of Geography』) 등이 있다. 한국번역가협회 정회원으로 『사카모토 료마와 메이지 유신』(공역), 『세계화와 로컬리티의 경제와 사회』등을 번역했으며, 한국문인협회 소속의 수필가이기도 하다.

서문/ 첫 수필집을 발간하면서·8

1부

서해에서

차(茶) 이야기

코스모스 단상

회암사지(檜巖寺址)에 올라

절 구경 이야기

지리산 철쭉을 그리며

2부

청계천에서

침산낙조(砧山落照)

청포도가 익어가는 계절이면, 기억 속을 푸르게 찾아오는 그 손님 

시원한 비, 뜨거운 비

확인하는 습관의 중요성 

꼽등이

3부

노란 은행잎

4월에 핀 목련꽃

친절함에 담긴 배려와 진정성

디테일의 미학

나는 왜 아이키도(합기도; 合氣道)를 수련하는가?

작은 연못

4부

카리브해에서 만난 경탄과 인연

군시절 버킷리스트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를 추억, 그리고 추모하며

눈치와 배려

Kamm 선생님을 추억하며

비대면 수업

5부

호미곶을 수놓은 화음

기름때가 밴 하얀 손

민들레창고

3학년 4반

세로쓰기 옥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