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폴란드의 유대인 작가 아가타 투신스카가 기술하고 그림책 작가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가 그린 조시아 이야기.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어린 조시아는 게토의 지하실에 숨어 살며, 엄마가 만들어 준 상상의 세계에서 사랑하는 인형과 일상을 보냈다. 엄마는 먹을거리와 흥미로운 물건들을 가져다주었고 그것들로 자수와 놀이, 여러 가지를 가르쳐 주었다. ‘엄마는 언제나 돌아와’는 엄마가 항상 밖으로 나가기 전 조시아에게 했던 말, 조시아가 인형 주지아를 향해 자신에게 되뇌듯 했던 말이다. 게토의 벽이나 다비드의 별 같은 전쟁의 흔적보다는 엄마가 가져온 마로니에 열매, 엄마가 그려 준 석탄 그림들을 기억한다. 엄마의 사랑 안에서, 조시아는 전쟁에서 살아남았다.
유대인 저널리스트와 그림책 작가의 선명한 기록
게토에서 살아남은 아이, 조시아 이야기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야엘 로스너, 폴란드 이름으로는 조시아 자이칙이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폴란드에서 이스라엘로 이주하여 지금은 노인이 된 유대인으로, 고국에서 보낸 어린 시절을 분명하게 기억한다. 수십 년이 지난 뒤에야 그때의 이야기를 꺼냈고, 폴란드의 저명한 유대인 작가이자 저널리스트인 아가타 투신스카와 세계적인 그림책 작가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가 이야기를 기록했다. 이 작품은 두 폴란드 작가가 완성한 조시아의 회고록이다.
조시아 이야기는 보통의 홀로코스트 증언과는 사뭇 다르다. 어린아이로 돌아간 기억은 공포가 도사리는 창밖보다는 게토의 지하실 방, 그곳에서 엄마와 함께한 날들을 비춘다. 성장기에 세상과 단절된 환경에서 지낼 수밖에 없었던 조시아의 불운한 처지와 그만큼 어린아이에게조차 잔혹했던 시대 묘사가 낱낱이 드러나는 가운데, 이야기는 사랑의 힘에 무게를 둔다. 반백 년이란 세월이 무색하게 생생한 서술은 읽는 이의 가슴을 저며 온다.
어린아이가 직면한 암흑기, 빛이 되어 준 엄마
여러 유대인의 삶을 조명해 온 아가타 투신스카에게 어쩌면 가까운 이웃이었을 조시아 자이칙의 일생은 더욱 특별했다.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어린이 특유의 순진함과 감수성으로 이야기하는 잔인하기 짝이 없는 경험담은 내 마음속에 깊이 남았다.’ 조시아의 이야기는 종전 후 이스라엘로 이주한 당시의 기억으로 시작한다. 편견과 언어의 장벽에 부딪혀 마음의 상처가 아물 날이 없었을 고독한 유년 시절이다. 성인이 되어 고국의 언어를 오랜만에 입에 담은 그녀의 문장은 조금 미숙하다. 작가는 그 말투를 정돈하지 않고 온전히 옮겨 이야기를 전한다.
점령된 폴란드에서 조시아는 엄마와 단둘이 바르샤바의 게토에 살았다. 정확히는 게토의 어느 집 지하실에 숨어 살았다. 세 살 남짓 되었을 어린 조시아에게 그 방은 세상의 전부였다. 엄마가 말해 주고 가져다주는 바깥세상의 것들로 조시아만의 세계가 채워진다. 엄마는 정의롭고 용감한 사람이었다. 선생님이자 사회주의자로서 나치로부터 아이들을 구출하는 데 목숨을 바치면서도 숨겨둔 딸이 정서적으로 고립되지 않도록 애쓰며 보살폈다. 홀로 남아 인형 주지아에 의지하며 엄마가 돌아오지 않을까 애태우던 날들, 그럼에도 엄마는 언제나 돌아온다는 희망, 그리고 언제나 돌아왔던 엄마에 대한 믿음. 그 일련의 시간에서 조시아는 사랑하는 엄마와 유대를 다졌다. 하지만 전쟁의 그림자가 뻗쳐 올수록 이별은 점점 가까워 온다.
조시아 자이칙은 다시 치밀 두려움을 감수하고 한 번도 제대로 말하지 못했던 기억을 풀어냈다. 엄마와 놀이하던 즐거운 순간과 함께 공포에 질리던 순간도 또렷이 남았다. 세월이 흘러 고통의 기억을 대면한 화자의 회고는 차분하다. 이야기 토막 사이에 아린 독백이 언뜻언뜻 드러난다. 아가타 투신스카는 이 감정 역시 고스란히 담았다.
아픈 기억을 그윽하게 감싸 안은 일러스트
이 책은 장미 자수가 놓인 띠지로 감싸져 있다. 전쟁 당시 유대인이 착용해야 했던 다비드의 별 완장을 모티브로 한 것인데 그것이 죽음을 암시했다면 띠지의 꽃은 수호를 상징한다. 조시아가 딸처럼 여긴 인형 주지아의 원피스 꽃무늬를 닮은 이미지로, 끝까지 딸을 지킨 엄마의 사랑을 표현한다.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가 재현한 조시아 이야기에는 이 꽃이 곳곳에 새겨져 있다. 글이 다 자란 어른의 투명한 진술이라면 그림은 기억 속 아이가 그린 단상처럼 은유적이다. 엄마와 고향을 떠올릴 무렵, 겨우살이로 뒤덮인 나무에 붉은 실로 수놓은 장미가 피어오른다. 엄마의 보호 아래 이사한 지하실 방에서도 붉은 장미가 피어난다. 불안한 시간이 흐르는 동안 조시아 곁에는 꽃무늬 원피스를 입은 주지아가 언제나 함께한다. 일러스트는 대부분 어두운 색감이 지배하고 있지만 하늘색 바탕의 꽃무늬가 계속 남아 온기를 발한다. 그리고 장미가 마음껏 만개한 면지가 이야기를 한 번 더 감싼다.
조시아가 어른이 되어 업으로 삼은 자수는 엄마와의 추억이 깃든 매개체이다. 엄마가 가르쳐 준 것. 엄마를 생각하게 하는 것. 게토의 지하실에서 엄마 손길을 따라 천이 아닌 종이 상자에 자수하는 법을 처음 배웠다. 그녀는 엄마가 자수를 통해 사랑을, 그리고 무언가를 위해 쓰임이 있는 것에 대한 존중을 가르쳐 주었다고 말한다.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는 실제로 짙고 낡은 상자 종이를 바탕에 두고 그림을 끼워 넣었다. 그리고 조시아 이야기가 끝난 뒤, 그때 그 자수처럼 종이에 장밋빛 실을 꿰어 액자를 만들었다. 모녀의 역사를 담은 앨범의 마지막 장은 애석한 여운을 남긴다.
작가 소개
지은이 : 아가타 투신스카
폴란드의 작가이며 저널리스트이자 연극인. 게토의 생존자인 어머니 슬하에서 자라, 아이작 바셰비스 싱어의 전기와 본인 가족에 대한 회고록인 『두려움의 가족사』를 비롯하여 폴란드계 유대인의 이야기들을 책으로 썼다.
그린이 :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
폴란드에서 태어나 코페르니쿠스 대학에서 미술을 공부했습니다. 기획자 이지원의 소개로 《생각》과 《발가락》을 논장에서 출간한 뒤 한국의 출판사들과 많은 작업을 하였습니다. 《생각하는 ㄱㄴㄷ》, 《문제가 생겼어요!》, 《학교 가는 길》, 《네 개의 그릇》, 《우리 딸은 어디 있을까?》 등 감수성과 철학적 깊이가 돋보이는 책들로 전 세계 독자들의 사랑을 받습니다. 《생각하는 ABC》로 BIB 황금사과상을, 《마음의 집》, 《눈》, 《할머니를 위한 자장가》로 볼로냐 라가치상을 세 번(논픽션, 픽션, 뉴호라이즌 부문) 수상했습니다. 2018년에 이어 2020년에 안데르센상 최종 후보로 추천되었습니다.
옮긴이 : 이지원
폴란드어 번역가이자 그림책 연구가. 한국외국어대학 폴란드어과를 졸업한 뒤 폴란드에서 미술사와 어린이책 일러스트레이션을 공부했고, 지금은 학생들을 가르치며 어린이책 기획과 연구 활동을 한다. 옮긴 책으로 『파란 막대 · 파란 상자』 『두 사람』 『시간의 네 방향』 『블룸카의 일기』 『작은 발견』 『잃어버린 영혼』 『아름다운 딱따구리를 보았습니다』 『어린이의 왕이 되겠습니다』 등이 있다.
목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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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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