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언오소독스(un-orthodox)의 세계와 전복(顚覆)의 시학”
윤보성 시집 ????망현실주의 선언????
㈜여우난골의 2021년 시인수첩 시인선 55번으로 윤보성 시인의 시집
????망현실주의 선언????이 출간됐다.
왔다. 진짜가 나타났다. 이상 시인을 시작으로 우리나라 모더니즘의 정통 계보에 새롭게 이름을 올릴만한 물건이 나타났다. 1991년 출생하였고, 2017년 시인수첩 신인상을 받으며 시단에 나타난 윤보성 시인. 그는 등단후에도 철저히 무명으로 살아왔다. 남쪽 지방 부산 바닷가에 자리하고 있는 시인은 뼛속까지 부산 사내이며, 뼛속까지 모더니즘으로 무장한 진짜 모더니스트이다. 시집의 제목부터가 예사롭지 않다. 현실은 현실인데 망현실이라니. 망하는 현실 같기도 하고, 보내는 현실 같기도 한 ‘망’은 여러 의미를 가지고 있다.
‘망’이라는 화두에는 수많은 의미와 무의미가 새겨져 있습니다. 망은 바라는 모든 것(望)이자, 두려운 모든 것(妄)이고, 연결된 모든 것(罔)이자, 망가진 모든 것(亡)이며, 잊힌 모든 것(忘)이자, 악한 모든 것(蟒)입니다.
이 시집에는 현실과 가상, 존재와 세계, 일자와 다자, 빛과 어둠, 인간과 신 따위의 형이상학적이고 존재론적인 에너지가 가득합니다. 또한 체제로부터 터부시되어온 각종 사이비, 곧 수많은 부정과 분노와 부조리를 고발하는 상호확증파괴적 언술로 가득합니다. 시집의 주제는 ‘존재란 무엇인가’란 최초의 물음으로 귀결됩니다. 동시에 ‘망현실’이라는 화두를 통해 현실과 가상에 대한 (비)사이비적 비전을 제시합니다. 이 시집의 편집증적인 운율은 묵시록적 비전 속에서 도래할 근미래를 날것 그대로 묘사하고 해부합니다. 세계의 하부구조와 상부구조는 이미 엄청난 속도로 정보화, 통합화, 가상화되는 중입니다. 향후 몇십 년 안에 세계는 혁명적으로 변화하게 될 것입니다. 새로운 현실이 된 가상, 곧 망현실 속에서 인간과 혜윰(인공지능)은 끝없이 상호작용하게 될 것입니다.
제가 명명한 ‘망현실’과 ‘혜윰’이라는 기표는 새로운 기의를 발명할지도 모릅니다. 망현실은 유토피아가 될 것인지 디스토피아가 될 것인지 아직은 아무도 모릅니다. 혜윰은 선한 천사가 될 것인지 악마와 사탄이 될 것인지 아직은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주는 멈춤 없이 확장하는 중이기에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역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모든 것이 결정되어있다는 생각과 모든 것이 허무하다는 생각은 동일한 원관념으로부터 거부된 죽음의 시적 이미지로 도래할 것입니다.
- 저자 인터뷰에서
‘오소독스(orthodox)’는 우리가 ‘클래식(classic)’이라 부를만한 어떤 것들을 총칭한다 할 수 있다. 예술에서는 전통적인 형식이나 기법을 충실히 따르는 것을 말하고, 종교적으로는 정설(正說)의 의미를 부여받는다. 반면에 ‘언오소독스(un-orthodox)’는 정통이 아닌 것 즉 예술에서는 아르누보(art-nouveau)적인 것이 포괄적으로 지칭되고, 종교적으로는 이교적인 혹은 이단의 의미를 지니는 것이기도 하다.
윤보성의 시집 『망현실주의 선언』은 한마디로 말해 이러한 오소독스(orthodox)를 무너뜨리려는 언오소독스(un-orthodox)적인 언술로 가득 차 있다.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끊임없이 언오소독스(un-orthodox)의 세계를 질주하고 있는 듯하다. 각 부에서 사용하고 있는 에피그램(epigram)의 선언적 문장들마저도(이 문장들은 이번 시집이 펼쳐가는 시세계를 엮어주는 중요한 키(key)로도 작동한다. 이 문장을 통해서도 흥미로운 시인의 내면의식의 전개를 읽어볼 수 있겠다) 모험가의 위험한 도전처럼, 우리에게 아찔한 순간을 경험하게 한다. 과히 『망현실주의 선언』을 상재하는 윤보성 시인은 이단아(異端兒)를 방불케 한다.
그러나 정작 윤보성 시인은 오소독스(정통) 안에서 나고 자란 명백한 클래식 넘버(classic number)로 짐작된다. 조심스러운 추측이지만, 그는 아마도 모태신앙으로 태어나 뼛속까지 정통적인 피가 흐르는 유대교의 사마리아인 같은 사람이 아닐까(최소한 지금은 그렇지 않다면 과거엔 그러했을 것이라 여겨진다). 윤보성의 시에는 신(神)에 대한 애정이 여전히 전제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번 시집을 통해 시인이 (진작부터) 말하려는 것은 언오소독스(반정통)를 통해 오소독스(정통)로 가득한 이 세계를 무너뜨리려는 것, 적어도 현실에 대항하는 반현실의 태도를 보여줌으로써 ‘망현실주의 선언’을 표방하여 맹목적인 오소독스(정통)에 저항하는 방식을 우리에게 표출하고자 함 아닐까.
윤보성이라는 젊고 모더한 시인은 한 권의 시집으로 문단에 파문을 일으킬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우리는 분명히 시인의 출발이 예사롭지 않다는 것은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이게 그가 헤쳐나가야 할 시세계는 낯설고 힘들 것이다. 하지만 예술은 언제나 새롭고 외로운 장르이므로 그의 출발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지는 이유이다.
(이상 전해수 문학평론가 해설 중에서)
작가 소개
윤보성
1991년 부산 출생
2017년 시인수첩 신인상 등단
목 차
<1부>
천 이틀 밤·13
떠돌이 행성·15
오랑주리 미술관 (2018)·17
수성의 역행·19
국제 종자 저장고·21
적색이동·24
적기도문·29
사탄탱고·34
화성인 유다·37
달나라의 체르노빌·40
식물의 예배·42
철야 기도회·45
무제·47
동반자살·50
궤계·53
<2부>
사이비의 서사시·57
비사이비의 서정시·74
<3부>
20XX년·93
<4부>
망현실주의 선언·117
망현실주의 전시회·126
망현실주의 (반)운동·129
망현실주의자 스티브 잡스·135
망현실주의자 조르조 데 키리코·141
망현실주의자 이상·143
망현실주의자 조커·146
망현실주의자 ○○○·148
망현실주의자 프란츠 카프카·149
공사장·153
제19450216 방공호·156
천년왕국·159
혜윰·169
둘째 아담·197
트롤링·198
종말대회·200
우주박물관·205
나의 우주선·212
사건지평선·226
해설 | 전해수(문학평론가)
“언오소독스(un-orthodox)의 세계와 전복(顚覆)의 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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