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거나 다른 종이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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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이윤승
출판사항문학의전당, 발행일:2022/05/18
형태사항p.118 A5판:21
매장위치문학부(1층) , 재고문의 : 051-816-9500
ISBN9791158965518 [소득공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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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결코, 정주(定住)할 수 없는 삶을 위하여


2014년 《제주작가》 신인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이윤승 시인의 두 번째 시집 『사랑이거나 다른 종이거나』가 문학의전당 시인선 350으로 출간되었다. 이윤승의 시집은 ‘이미 지나왔으나, 미완인 길’에 대한 성찰과 ‘이미 떠났지만, 아직 머무르고 있는 옛집’에서 비롯한 사유의 탐색적 발견으로 가득하다. 시인은 과거에서 현재를 거쳐 미래로 흘러갈 뿐이라는 시간의 고정관념을 거부한다. 이때 시인이 창조하는 시적 시간은 ‘옛집’의 이미지 틈으로 번져 지금-여기를 따스하고 애틋하게 적신다.


길 끝에는 집이 있다. 그러나 모든 길이 집에서 시작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모든 길 끝에 반드시 집이 있어야 한다는 것은 명백한 배리(背理)다. 집과 길은 평면의 두 점으로 이어져 있지 않다. 오히려 시공간에서 끈적한 액체처럼 ‘사이’를 유동하게 하는 두 힘이라고 해야 한다. 시인에게 집과 길은 모두 언어와 관련한다. 집은 존재의 근거로서 언어이고, 길은 존재를 존재하게 하기 위한 ‘짓기’ 과정의 은유이다. 집과 길은 원형 이미지지만, 존재 근거로서 언어와 ‘시작(詩作)’이라는 유동하는 ‘사이’를 제거하면 다양한 변주가 가능해진다.

이윤승 시인의 시집, 『사랑이거나 다른 종이거나』는 ‘이미 지나왔으나, 미완인 길’에 대한 성찰적 이미지로 가득하다. 또한 ‘이미 떠났지만, 아직 머무르고 있는 옛집’에서 비롯한 사유의 탐색적 발견으로 가득하다. 시인은 존재를 유동하게 하는 두 개의 근원적 힘으로서 ‘집과 길’을 임의 지점에 올려놓고 수시로 시간을 왜곡한다. 과거에서 현재를 거쳐 미래로 흘러갈 뿐이라는 시간의 고정관념을 거부한다. 이때 시인이 창조하는 시적 시간은 ‘옛집’의 이미지 틈으로 번져 지금-여기를 따스하고 애틋하게 적신다. 그러나 균형이 무너지는 순간, 시간은 시인의 분발을 요구하고 채근한다. 길 위에서의 사유는 갈라진 곳과 끊어진 지점에 대해 골몰할수록 더 깊어진다. 이윤승 시인은 자신의 근원과 시인으로서의 지향이 갈라선 지점, 혹은 그것이 전혀 다른 질감의 이미지로 표출되고 있음을 충분히 자각하고 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이번 시집은 이 두 힘과 사태 ‘사이’에서 고심한 기록이며, 자기 자신을 오롯이 비추는 ‘등대’를 세우고자 하는 간절한 염원의 결정(結晶)이라고 할 수 있다.


벽 안에 갇힌 채

어둠을 단물처럼 음미하면서 단련되었다

단련된다는 것은 콘크리트의 이빨이 다 빠지도록

살아내는 것이다


비명을 끌어안은 나뭇등걸처럼

그는 전생의 어느 망치로 살았길래

지금은 되돌려져 못이 되었나


녹슨 시간들이 벽 안에 실핏줄처럼 번져 있다

오도 가도 못했다는

그림자 같은 말만 하고 있다

벽 안의 소심한 주관자임을 자백하고 있다

저 벽을 들어 올릴 수는 없을까


백 년 후쯤

벽이 바스러져 조금씩 가루로 흩날릴지도 모른다

언젠가는 콘크리트 같은 단단한 벽을 돌다리처럼

딛고 건너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오지 않을 시간일지라도

허방이라 해도 기다릴 것이다

확률은 낮겠지만

이미 너무 늦었지만

― 「백 년 후」 전문


위 시는 ‘벽’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주체와 객체가 뒤바뀌는 순간의 경험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벽’은 단단한 질감만으로도 충분히 위압적이며 그 견고함은 시간마저 차단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못’은 ‘벽’이 세워진 이후에 설정이 가능한 존재이며, 기능이 다하면 언제라도 뽑혀 쓸모를 다할 한시적 존재로 여겨진다. 시인은 이 일반성에 ‘백 년 후’라는 시간을 대입하여 사태의 전모를 다른 방향에서 바라보고 생각한다. 다른 시각으로 해석한다고 해도 무방하다. ‘못’은 비록 “벽 안에 갇힌” 무력한 존재지만 또한 “어둠을 단물처럼 음미하면서 단련”된 존재이다. 그 사실은 시인에게 “단련된다는 것은 콘크리트의 이빨이 다 빠지도록/살아내는 것”이라는 명제를 경험칙으로 보여준다. 비록 “벽 안의 소심한 주관자임을 자백”하지만 ‘못’이 ‘벽’의 부수적인 존재로서의 자기 운명을 순순히 수락하지 않았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작품의 후반부에서 시인은 “백 년 후쯤” 시간이 지난 뒤 못이 벽으로부터 해방되는 날을 상상해본다. 아니 ‘못’이 본래 자기 모습으로 돌아가는 상황을 상상한다. “벽이 바스러져 조금씩 가루로 흩날릴지도 모른다/언젠가는 콘크리트 같은 단단한 벽을 돌다리처럼/딛고 건너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의 추정이 그것이다. 여기서 “모른다”의 추정은 결코 부정이 아니다. 이는 “오지 않을 시간일지라도/허방이라 해도 기다릴 것이다”라는 각오를 강조하기 위한 전제, 혹은 ‘못’의 사태를 시인의 의지로 전환하기 위한 수사 장치일 뿐이다.

― 고영(시인) 

작가 소개

이윤승

전남 완도에서 태어나 2014년 《제주작가》 신인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눈가에 자주손이 갔다』가 있다. 현재 제주작가회의 회원, 〈한라산문학〉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목 차


제1부


마르코 폴로 산양 13/벽도 창공이 될 수 있다고 못은 생각했다 14/네가 햇살이 될 때까지 16/백 년 후 18/사랑이거나 다른 종(種)이거나 20/문장의 적요 22/붓 24/저녁노을 25/옷의 사유 26/휘파람 28/남쪽 섬 30/방향이 다를 뿐 32/해국 2 34


제2부


솔꽃 37/사과 38/나무 시계 40/아버지가 자라고 있다 42/하루의 장례식 44/예덕나무 앞에서 46/슬픔을 말아 먹었다 47/바람꽃 이름으로 48/너에게만 말해 줄게 50/통점 53/세입자 54/다이어트 56/살구나무 58


제3부


들꽃 61/안녕 분홍 62/밤, 구조 신호를 받다 64/모란 66/말매미 새집에 들다 68/강가에 서 있었다 70/채무자 72/고백 73/오늘의 청년 74/휘파람새 여자 76/노란 시간 78/정선으로 간 여자 80/진구 82/노란 소국 84


제4부


나의 방식 87/그 무렵 마흔 살 88/다시 봄, 이승악 숲길 90/빗살토기 92/설중매 93/노랑나비 떼 94/용머리 해안 96/젖다 98/다시 안동에서 99/빨간 장미 100/등대 2 102/행운동 103/산 그림자 104


해설 고영(시인) 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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