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낡은 생의 순간에서 신화를 길어올리다
임효빈 시인의 첫 번째 시집 『우리의 커튼콜은 코끼리와 반반』이 출간되었다. 2020년 《부산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시인은 우리의 삶 주변으로 밀려난 것들이 잠깐 빛나는 순간을 포착해 작품에 담아 왔다. 한 노인의 죽음을 ‘도서관의 죽음’으로 표현한 등단작 「도서관의 도서관」에 대해 심사위원들이 “사회적 소통이 단절된 당대 문제를 내밀한 정서 의식으로 예각화했다”고 평가했던 것처럼, 시인은 생의 온기를 잃어 가는 존재들의 미열을 읽어내고 그것을 정성스럽게 세공해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담론의 언어로 완성하는 재능을 가졌다. 담백하고 정갈한 작품들을 읽어 나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그 단어들의 비밀스러운 결을 느낄 수 있고, 고목의 긴 생애를 품고 있는 나이테처럼 각각 시편들이 인류의 역사 속에서 사라진 근원적인 서사들을 품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러므로 임효빈 시인의 작품들은 낡은 대상들을 통해 우리가 되찾아야 할 순수성을 재현하는 신화학자의 기록과 닮았다고 할 수 있다. 그녀가 작품을 통해 그려내는 것은 상상 속의 풍경이 아니라, 우리 삶 속에 본래 존재했으며 다시 삶 속으로 돌아와야 하는 진실한 역사의 한 조각이다.
시인은 이번에 펴내는 첫 시집에 대해 “시간여행자의 뒤척임에 대한 기록”이며 그것은 “코끼리를 (시간 속으로) 불러내는 커튼콜”이라고 설명한다. 우리는 지루한 삶 너머의 신화 속에 신성한 자태로 인간들을 굽어보는 코끼리가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우리가 삶 속에서 실제로 만나는 코끼리들은 서커스 무대에서 학대받거나 관광객을 등에 태우고 무임금 노동을 하는 연약한 존재일 뿐이다. 시인은 그런 코끼리를 신격화하지도 않고, 그의 상처를 재현하는 것에 집중하지도 않는다. 단지 그녀는 “다음 생에서는 축생(丑生)이 아닌 인간으로 태어나길 기원”하는 마음으로 코끼리를 시라는 무대의 한가운데로 불러들일 뿐이다. 그리고 거기서 코끼리가 스스로 말하고 춤추며 ‘인간’으로 ‘환생’해나가는 과정을 그려낸다. 축생으로 전락한 우리 주변의 삶들, 그리고 시인 자신의 삶의 국면들은 그런 과정을 통해 비로소 인간처럼 독자들에게 말을 건넬 수 있게 된다.
한 마리의 코끼리에게서 잃어버린 말들을 발견하는 일은 오래된 신화 속에서 우리 모두를 구원할 하나의 단어를 길어올리는 시간여행자의 뒤척임과 같다. 그래서 시인은 “숱하게 반복해도 달리 바꾸기에 성공하지 못하는 결말”을 직감하면서도 코끼리의 공연을 지켜보기 위해 시간여행 혹은 꿈꾸기로서의 시작(詩作)을 멈추지 않는다. 독자들은 시인을 따라 시간여행을 하며 자신이 잃어버렸던 생의 가장 빛나는 몸짓을 코끼리의 춤 속에서 발견하게 될 것이다.
작가 소개
지은이 : 임효빈
2020년 《부산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목 차
시인의 말·5
1부
베를린 침대 자전거·15
나는 알 바 아니다·17
그대와의 키스를 세어 봐요·18
반면·20
초록 옥상·22
램프 이야기·24
어느 날 우편함·25
입문·26
도서관의 도서관·28
별별 이야기·30
그 여름·32
검은 여백·34
2부
몇 번 죽어야 할 신화·37
곡선은 시작의 반성이다·38
세 번째 알람·40
불임의 봄밤·42
기분이 같은 문은 없었어·44
슬쩍 훔쳐보는 건 틀린 걸까요·45
무인 삼각·46
흔들의자·48
블루문을 열다·50
나를 먼저 닦고 싶었지만·51
전용 스크린을 펼쳐 봐·52
몇 번 찔렀을 뿐인데·54
당신의 밤은 6펜스·55
3부
한 줌 모레가 흩어지고·59
나는 날마다 파혼한다·60
뒤척이는·62
코끼리는 마지막 카드를 보았을까·64
에어기타·66
뼈를 묻다·67
대관람차·68
끝에서 끝으로·70
대행하지 않습니다·72
타나토라자의 축제·74
덧·76
잠시 멈춤·78
맡겨놓은 이름·80
4부
수서·83
시소·84
여름이 지나고 있다·86
깃털의 클리셰·88
흔들리는 초록·90
빌런을 위한 세레나데·92
좌탈입망(坐脫立亡)·94
오리의 다비식·96
보신·98
봉길이 삼촌·100
텀블러·101
타오르는 시선들·102
해설 | 신수진(시인·문학평론가)
계몽과 갱신의 시 쓰기·105
역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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