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골목과 산책이 낳은 사색, 느림과 고독의 미학
- 김정미 시인의 신작 에세이 『골목, 게으른 산책자』
춘천에서 활동하고 있는 김정미 시인이 신작 산문집 『골목, 게으른 산책자』(달아실刊, 2022)을 펴냈다.
2015년 『시와 소금』을 통해 등단한 김정미 시인은 2009년 『계간 수필』을 통해 수필가로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이번 산문집은 첫 번째 산문집 『비빔밥과 모차르트』에 이어 두 번째 산문집이다.
이번 산문집은 김정미 시인이 춘천의 오래된 골목과 외국의 오래된 골목을 느리게 걸으며(산책하며), 사색하며 느낀 바를 짧고 진솔한 글로 엮어내고 있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골목과 산책이 낳은 사색, 느림과 고독의 미학”이라고 할 수 있겠다.
동서고금 많은 철학자와 문인묵객 그리고 가객들이 산책을 즐겼다. 고대 그리스 철학의 거두인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그랬고, 칸트와 홉스와 루소 그리고 니체가 그랬다. 산책을 통해서 걷기를 통해 철학적 영감을 떠올렸다. 랭보는 아예 산책을 통한 견자가 되었고, 파올로 코엘료는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작품의 영감을 얻었다. 베토벤의 음악도 산책길에서 만들어졌다. 정약용도 강진에 유배되었을 때 다산초당에서 백련사까지 산책하며 목민심서를 써냈다. 김삿갓은 아예 방랑 시인이 아니었던가.
김정미 시인 또한 앞서 열거한 이들과 다름없다. 김정미 시인은 춘천의 골목길을 수없이 걸었다. 개발로 인해 점점 더 사라지고 있는 춘천의 오래된 골목들을 안타까운 심정으로 걸었다. 그리고 그 사라지고 있는 골목길을 걸으며 떠오른 사금파리 같은 생각들을 메모했다. 그 메모들을 체로 거르듯 글로 정리하여 한 권의 책으로 엮어낸 것이다.
그렇게 빚어낸 그의 짧은 문장들은 시처럼 독자에게 울림을 전한다. 가령 다음과 같은 문장들이다.
“행복은 사소한 것을 사소하게 느끼지 않아야 비로소 사소해지지 않는다.”
“남루한 하루지만 서로 기대며 살다 보면 어제보다 더 괜찮아질 것만 같은 오늘. 그런 바람이 희망처럼 모락모락 피어나 망대 골목을 만들어가지 않았을까.”
“쓸모를 다한 것들은 또 다시 따뜻해지기 위해 봄이 오기를 기다리는가 보다. 변함없이 제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들이 곁에 있어 오늘이 따뜻한 것이겠지.”
“시장에 오면 국수 면발 같은 젖은 삶의 시간들이 만져진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것을 시작하고 체념해야 행복해질 수 있을까.”
“산책자는 지독한 피로와 안락을 지나쳐 기꺼이 고독해지는 일을 선택하는 사람이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세상이 부끄러운 밤, 나는 눈 내리는 길을 혼자 걸었다. 쌓이는 눈 위로 또 다른 새 길이 만들어졌다. 부끄러움을 잊고 살 때마다 산수유나무마다 천 개의 눈이 쌓이는 어느 봄밤이다.”
산책은 조깅과 다르다. 골목을 걷는 것은 대로를 걷는 것과 다르다. 조깅은 몸을 위한 것이지만 산책은 마음을 어루만진다. 대로를 바삐 걷는 것은 목적을 향하는 것이지만 골목을 게으르게 걷는다는 것은 목적을 잠시 내려놓음이다. 게으른 산책을 통해서 우리는 사색을 할 수 있고 고독과 조우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산책이야말로 경쟁과 속도에 질식하고 있는 내 몸과 정신을 치유하는 가장 좋은 방법일지도 모르겠다. 확신이 서지 않는다면 김정미 시인의 산문집 『골목, 게으른 산책자』를 꼭 읽어보시라.
작가 소개
김정미
강원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대학원을 수료. 2009년 『계간 수필』로 수필 등단. 2015년 『시와 소금』으로 시 등단. 시집 『오베르 밀밭의 귀』, 『그 슬픔을 어떻게 모른 체해』. 산문집 『비빔밥과 모차르트』. 2008년 동서커피 전국공모 수필 부문 최우수상 수상. 2017년 춘천문학상 수상.
주말이면 아파트를 떠나 춘천에서 조금 벗어난 광판리 느티나무 그늘과 양계장이 있는 오래된 시골집에서 꽃과 함께 글을 쓰며 살고 있다.
목 차
작가의 말
1부. 하나의 계절이 가고 또 하나의 계절이 왔다
육림고개, 비탈진 언덕의 말
기대수퍼
망대
벽화
권진규 골목
국수의 시간을 지나가다
응답하라 1988
뻥튀기
중앙시장
약사리 고개
바람 죽비
2부. 쌉싸름하고 뜨거운 힘은 나팔꽃으로 피고
여전히 여름에 남아 있는
규칙 깨기
카프카, 그 집 앞에서
홀로, 그리고 커피
겉멋, 에스프레소
달을 그리다
걷는 사람
골목의 힘
길 위에서
그림자, 너무나 낭만적이거나 가혹하거나
지나쳐버린 것들
3부. 눈부신 순간에 후드득 떨어지는 기억처럼
어디에도 없는 정원
키가 자라는 집
낯가리는 별채
‘네가 좋아하는 것들’이란 질문 앞에서
청춘 사진관
어느 날, 정과
원래의 방식대로 되돌아가기 위한 일
적막은 나를 끌고 어디로 날아가는 걸까요
당신이 잠든 사이
봄밤, 폭설은 내리고
와플을 굽는 동안
역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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