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단칸방 신혼집에서 각자의 서재가 있는 집에 이르기까지,
더 나은 집필 공간을 찾아 떠나고 머문 불가피한 순간들에 대한 기록
부부에게는 집이 필요했다. 글을 쓰는 남편과 아내, 모두 서재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아이가 셋이었다. 부부에게는 그냥 집이 필요한 게 아니라, 방이 많은 아주 큰 집이 필요했다. 그래서 사람도 집도 하나도 없는 텅 빈 산 중턱에 외딴집을 지었다. 평창동 499-3. 일곱 번의 이사를 거쳐 마침내 원하는 크기의 집을 짓는 데 성공한 것은, 1974년의 일이었다. 문학평론가이자 국문학자, 강인숙 영인문학관 관장은 세상에 나서 가장 기뻤던 해로 1974년을 기억한다. 남편에게 원하는 서재를 만들어준 해였다. 이어령은 좋은 것을 다 주고 싶은 남편이었다.
『글로 지은 집』은 빈손으로 시작해 원하는 서재를 갖춘 집을 갖기까지 이어령 강인숙 부부의 주택 연대기다. 신혼 단칸방부터 이어령 선생이 잠든 지금의 평창동 집에 이르기까지, 더 나은 집필 공간을 확보하기 위한 불가피한 투쟁의 역정이 담겼다. 1958년부터 현재까지 떠나고 머문 공간, 그리고 그 공간 안에서 함께 존재했던 부부의 삶이 강인숙 관장의 이야기 속에 고스란히 스며 있다. 책은 한 여자가 새로운 가족과 만나 동화되는 과정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이어령 선생이 그야말로 ‘글로 지은’ 집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어령 선생과의 결혼식 날 풍경, 집을 찾은 여러 문인과의 추억, 동네 한복판에서 두 눈으로 목도한 4.19와 5.16 역사의 현장, 이어령 선생의 집필 비화 등이 책 곳곳에 소개되어 있다.
“세상에 나서 내가 가장 기뻤던 때는, 그에게 원하는 서재를 만들어주던 때였다.
이어령 씨는 내게 좋은 것을 다 주고 싶은 그런 남편이었다.”
이어령 선생은 2015년 대장암에 걸렸다. 생명에 시한이 생기자 선생은 조급해졌다. 쓰다가 끝내지 못한 글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항암치료를 거부하고 혼자 글을 쓸 수 있는 고독한 시간을 갈망했다. 아내인 강인숙 관장도 절로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삶을 정리해야 할 시기였다. 그래서 책을 쓰기 시작했다. 구십이 되어가는 동갑내기 부부가 하나는 아래층에서, 하나는 위층에서 글을 쓰면서, 각기 자기 몫의 아픔과 외로움을 견뎌야 하는 세월이 계속되었다.
“네 것과 내 것을 분리할 수 없는 것이 부부 관계이니 혹시라도 남편을 다치게 할까 봐 마지막까지 손이 떨렸다.” _서문에서
이 책은 어디까지나 강인숙 관장의 입장에서 쓴, “한 신부가 단칸방에서 시작해서 ‘나만의 방’이 있는 집에 다다르는 이야기”다. 강인숙 관장은 서문에서, 남편 이야기가 나올 수밖에 없는 이 글을 쓰면서 혹여라도 ‘그’를 잘못 읽었을까 봐 조심스럽다고 고백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결코 깊숙이 알 수 없었던 한 시대를 대표하는 지성의 빛나던 청춘과, 평생 쉬지 않았던 치열한 배움의 삶과, 한 가정의 남편이자 평범한 아버지였을 그가 뚜벅뚜벅 걸어온 길을 비로소 따라가볼 수 있기에, 이 책의 출간이 더없이 고맙고 반가울 수밖에 없다.
“둘만 남는 세월이 왔다. 나간 자리가 살펴져서 슬프고 외로웠다.
우리는 그 외로움을 공부하고 글 쓰는 일로 메꾸어갔다.”
책은 이어령 강인숙 부부가 십육 년 동안 거쳐간 여덟 곳의 집 이야기로 구성되었다. “오 년이나 사귀어보았으니, 결혼할 것이 아니면 이쯤에서 끝내는 게 좋겠다”라는 어머니의 말에 화들짝 놀라 빠르게 계를 들어 마련한 보잘것없던 성북동 골짜기의 셋방, 머리맡에 놓은 어항 속 붕어가 얼어붙을 만큼 냉골이었던 삼선교 북향 방, 이어령 선생이 사온 철 이른 수박을 먹으며 가슴 충만하게 첫 아이를 기다리던 청파동 1가, 4.19와 5.16을 동네 한복판에서 목도하며 동조를 갈망했던 청파동과 한강로 집 시절, 저자에게는 사중고가 겹친 힘든 시기였지만 이어령 선생은 좋은 글이 많이 나와 독자들의 뜨거운 호응을 받았던 신당동 집에 얽힌 기억, 박경리 선생?김지하 시인과 왕래하던 성북동 언덕 위의 이층집, 그리고 부부에게 마지막 쉼터가 되어준 지금의 평창동 499-3.
가족이 늘고 글이 늘고, 그래서 북적였고 따뜻했고, 그러다가 나간 자리가 살펴져서 슬펐고 쓸쓸했던 이어령 강인숙 부부의 그간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가 책에 생생하게 담겨 있다.
작가 소개
강인숙
문학평론가, 국문학자.
1933년 10월 15일(음력 윤 5월 16일) 사업가의 1남 5녀 중 3녀로 함경북도 갑산에서 태어나 이원군에서 살다가 1945년 11월에 월남했다. 경기여자 중·고등학교를 나와 서울대 문리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숙대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1965년 《현대문학》을 통해 평론가로 데뷔했으며, 1958년 대학 동기 동창인 이어령과 결혼하여 2남 1녀를 두었다. 건국대 국문과 교수로 재직하며 평론가로 활동하다가 퇴임 후 영인문학관을 설립했다.
목 차
머리말
1) 집1. 성북동 골짜기의 단칸방(1958년 9월~12월)
사회 초년병
야간학교의 매력
도배지 한 장만 붙인 신방
혼례식
신혼여행 생략하기
꽃분홍 치마
자장면 파티
예고 없이 오신 손님
2) 집2. 삼선교의 북향 방(1959년 1월~3월)
방 두 개만 있는 일각대문집
어항이 얼어붙은 방
현대평론가협회
키 큰 손님
3) 대가족 이야기
유산과 가독권家督?
아버님의 공작새
그 집안의 어른들
그 집안의 효도 풍경
아버님의 기도
‘페닌슐라’에서 점심을
아버님의 노년
가는 정, 오는 정
4) 집3. 청파동 1가(1959년 3월~1960년 3월)
별채 같은 방
병든 여인의 모성
그 집에 온 손님들
남조 선생과의 만남
5) 집4. 청파동 3가의 이층집(1960년 3월~1961년 3월)
친구 집에 세 들기
셋방살이의 의미망
가난한 마님의 품위
장판 소동
4.19
6) 집5. 한강로 2가 100번지(1961년 3월~1963년 4월)
내 집 갖기
야밤에 들려온 총소리
교사와 학생 겸하기
텔레비전과 오디오
그 집에 온 문인 손님들
이 집 남자들 왜 이리 션찮아?
7) 집6. 신당동 304-194(1963년 4월~1967년 3월)
1963년 신당동
집수리
대궐 같은 집
남자아이의 엄마 되기
경이로운 신세계
1963년의 4중고
세 번째 아이
부록: 『흙속에 저 바람 속에』
그 집에 온 손님들
일터에서 만난 친구들
- 은인 같은 친구: 정금자
- 보호자 같던 연상의 친구: 김함득
- 갈대같이 하늘거리는 여인의 균형 감각: 서정혜
- 타고난 훈장: 이정자
에필로그
8) 집7. 성북동 1가의 이층집(1967년 3월~1974년 12월)
언덕 위의 이층집
연탄으로 큰 집 덥히기
‘봉사와 질서’
이웃
그 집에 온 손님들
부록: 《신상新像》
에필로그
9) 집8. 평창동 이야기(1974년 12월~ )
소나무와 바위산
길이 넓어진 사연
파격적인 땅값
언덕 위의 하얀 집
하얀 집의 문제
그해의 산타클로스
1974년 평창동은……
다람쥐와 꾀꼬리
이웃
“어떤 새끼들이 이런 데서……”
항아님 같던 세배객들
집 허물고 박물관 만들기
‘오늘의 과업’과 ‘모든 날의 과업 ’
너와 나의 쉼터
강인숙 집필 연도
역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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