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음악으로 치료가 되나요?”
귀로 들어가 마음의 둘레를 쓰다듬는 진료
들어보세요, 당신의 상처를 치료해 줄 음악을!
청진기 대신 악기를 가방에 넣고, 환부를 살펴보기보다 사람의 눈을 먼저 바라보며, “환자 분”이라고 크게 호명하는 대신 여러 번 그 사람의 이름을 읊조리는 것. 바로 ‘음악치료사’의 생활이자 일이다. 누군가는 묻는다. 음악으로 정말 병이 나을 수 있는 것인지, 낫는다면 무엇을 낫게 하는지 말이다. 상처 위에 바른 ‘빨간 약’처럼 병이 호전되는지 선명하게 보이지 않고, 처방전에는 기다란 의약품명 대신 〈반짝반짝 작은 별〉이 적혀 있으니, 음악치료사에 관해 잘 알지 못했다면 당연한 질문일 수 있다. 문학수첩 ‘일하는 사람’ 시리즈의 열두 번째 책 《마음을 듣고 위로를 연주합니다》는 이러한 물음에 대답한다. 이 책은 악기를 두드리듯 마음을 톡톡 건드리는 음악치료사의 생각과 생활을 담아냈다. 때론 슬프고, 때론 잠잠해지며, 때론 주체할 수 없이 신나는 음악치료실 속 기쁨과 슬픔이 지금 연주된다.
음악치료사의 보이지 않는 치료는 겉으로 살필 수 없는 마음의 상처를 치료한다. 음악은 귀를 통해 내시경도 닿지 않는 심장 한구석까지 닿아, 그곳에 들러붙은 우울과 불안을 조심스레 혹은 강렬하게 건드린다. 저자는 ‘세션’을 통해 ‘내담자’가 좋아했던 노래를 함께 불러주어, 현실에 치여 뭉툭해진 사람의 감정을 끌어낸다. 또 답답함에 힘들어하는 사람에게는 징채를 쥐어주곤 “꽝!” 소리가 나도록 힘껏 징을 울리게 한다. 그리고 폐쇄 병동의 돌담을 지나 그보다 더 높은 마음의 벽을 지닌 이들을 만나 이야기하며, 안아주면서 그들이 쌓아왔던 단단한 마음의 벽을 허물어트린다.
물론 모든 음악이 잔잔하지는 않듯, 음악치료사의 일에도 북소리처럼 “쿵!” 하고 요동치는 순간이 있다. 자신의 부정적인 감정이 세션에서 드러나고 말았을 때나, 온 마음을 쏟고 믿었던 내담자의 모든 말이 거짓이란 걸 확인했을 때 음악치료사 역시 흔들린다. 그러나 감정을 단속하지 못했던 일을 계기로 스스로 마음을 꾸준히 여미고, 내담자에게 얻은 상처마저 그를 알아가는 힌트로 삼을 때, 비로소 진정으로 내담자에게 바투 앉은 음악치료가 가능해진다.
내담자 스스로조차 외면했던 그의 안부를 매일매일 물어보고, 삶의 무게에 눌려 굽은 등을 천천히 쓰다듬어 그의 유일한 관객이 되기를 자처하는 배역. 음악을 연주하고, 이야기를 경청하며, 가끔은 생각지도 못한 사람의 따스함에 깜짝깜짝 놀라기도 하는 역할.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을 빠짐없이 기록함으로써 사람에 관해 골몰하고 알아가야 하는 직업. 저자는 오늘도 “축축하게 젖은 마음들을 정성스레 꺼내 따스한 볕에 쬐기 위해”(14p) 악기를 챙긴다. 타인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화음을 얹히는 음악치료사의 모습은 미처 들리지 않았던 아름다운 ‘사람 소리’를 다시 우리 귓가에 들리게 한다.
“한 장을 넘기면 또 한 장이 나온다는 걸”
이름이 바뀌어도, 모습이 달라져도 괜찮아
소소하지만 사랑스러운 순간의 힘으로 ‘지금’을 껴안다
꿈이 부셔졌다고 해서 꿈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때론 깨졌지만 반짝이는 조각들을 따라가다 보면 새로운 꿈을 발견할 수도 있다. 음악치료사인 저자의 꿈은 음악치료사가 아니었다. 긴 시간을 연주자로 살아왔던 저자는 자신이 가장 빛나기 직전의 시기에 원인을 알 수 없는 손의 이상을 느낀다. 그리고 그 병으로 인해 더는 연주자로 지낼 수 없었고, 생활을 위해 다른 일을 찾아야만 했다. 그러던 중 알게 된 직업이 음악치료사다. 저자는 음악을 버리지 않기 위해, 무엇보다 돈을 벌기 위해 음악치료사 일을 가볍게 시작했다고 말한다.
“음악치료사가 되었어도 여전히 음악은 완성되지 못한 나의 언어”(13p)라는 저자의 고백은 직업적인 확신으로 가득 찬 사람의 발언은 아니다. 세션을 주도할 정도로 노련한 음악치료사임에도 저자의 태도에는 직업에 대한 유의함이 묻어있다. 특수 학교에서의 음악치료가 망했다며 자책하거나 ‘연대감’ 항목이 낮게 나온 자신의 심리 검사 결과를 마주하고 직업에 끼칠 영향을 걱정하는 등 음악치료사로서의 저자의 모습은 단단히 매듭져 있지 않다. 그렇기에 저자는 무수한 사람을 만났음에도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내가 어떤 언어를 썼는지 곱씹어 보고 반성”(152p)하면서 자신의 직업적인 모습을 끊임없이 되돌아본다. 또 완성됨으로 닫혀있지 않기에 “가끔은 예상치 못한 내담자의 포옹”이 주는 “위로”(48p)가 마음의 틈새로 들어오곤 한다.
맞잡은 손의 떨림은 때론 쥐고 있는 손을 더욱 꽉 붙잡게 한다. 저자에게 “음악치료사를 정규직으로 쓰는 병원, 센터, 요양원, 학교는 손에 꼽을 정도”(220p)인 환경은 지금, 이곳의 사람을 보다 소중히 여기는 계기가 된다. 저자는 세션이 끝나고 내담자들이 건네는 “잘리지 마라”는 말에서 직업인으로서 음악치료사의 면면을 매만져 본다. 음악처럼 아름답지만은 않은, 재계약에 대한 걱정과 비정규직에 관한 서러움을 감각하면서도 저자는 “사람이 하는 일”(228p)의 다정함을 믿으며 불안해하지 않는다. 우리는 가끔 직장 혹은 생활에 관한 불안으로 현재의 소중함을 놓치곤 한다. ‘지금’을 사랑하고 소중하게 여기는 저자의 모습을 통해 독자들은 음악은 끝내기 위해 연주되는 것이 아니라고, 당장의 음악에 충실히 귀 기울여야 한다는 걸 깨닫게 된다.
저자는 이 책의 〈에필로그〉를 통해 “한 시절의 도화지를 넘기며 그때의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244~245p)하기로 마음먹었다고 밝힌다. 연주자로서 빛나던 시기로 돌아가려고도, 음악치료사로서 좌충우돌을 겪었던 시절을 부정하려고도 하지 않으려는 자세다. 그렇게 저자의 음악은, 음악치료사라는 직업은 완성되지 않은 채로 완성을 향해 나아간다. 온전한 완성을 욕심내지 않고 과정을 사랑하면서, 과정 중에 머물러 있는 이들에게 눈빛을 주고 손을 건네는 저자의 세션은 언제까지나 ‘진행 중’이다.
작가 소개
구수정
음악과 글쓰기, 두 가지가 적절히 조율된 음악치료사로 일하고 있다. 어느 날 갑작스럽게 손의 감각을 잃기 전까지 20년 넘게 연주자로 살아왔다. 갑자기 텅 빈 시간을 어떻게든 살아내고자 애쓰던 때 글을 쓰면서 따스한 위로를 받았다. 소외되고 외로운 것에 마음이 가고, 평범함 속에서 특별함을 찾아낸다. 그렇게 다른 사람의 아픈 인생을 음악으로 토닥이는 한편, 치유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다. 첫 책으로 치유 에세이 《가끔은 혼자이고 싶은 너에게》를 썼다. 어쩌다 보니 음악 교육자로 살고 있으며, 보다 본질에 다가가고 싶은 욕망에 음악 연구자로도 활동 중이다. 음악 안에서 인생을 자유롭게 변주하며 산다.
목 차
프롤로그 ‘너 아니면 안 돼’라는 말 6
1장 음악으로 사람을 다독이는 일
음악으로 치료가 돼요? 17
하얀 가운 25
음악치료사의 기억법 32
당신의 안부를 물어요 41
일머리가 없는 사람, 음악 머리도 없을까? 49
폐쇄 병동으로의 첫 실습 54
켈리의 거짓말 61
공감도 지능 70
2장 음악치료사의 음악 처방전
좋은 음악, 나쁜 음악 79
욕망을 노래해요 91
생을 관통하는 노래 99
음악치료사의 악기 수집기 106
가장 편안한 음악, 자장가 115
저는 가요를 듣지 않습니다만 123
방구석 예술가 132
3장 노래로 기록한 기쁨과 슬픔
자기가 다 치유받고 싶은 사람 141
예쁘다는 말 147
듣는 자와 말하는 자 154
내 기분에 속지 마라 164
연대감이 없다고? 173
음악치료사도 마음이 소란합니다 182
4장 당신의 음악에 귀 기울이다
접촉, 마음이 닿는 순간 191
어른들은 말이 안 통해 197
왜 살까? 206
지금 헤어지는 중입니다 213
짤리지 마세요 219
세상의 고래들 229
에필로그 실패해도 괜찮아 239
역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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