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우리가 통과한 초유의 단절과 불안의 시대에 치유하는 글쓰기의 한 전범을 선보이며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에세이스트로 자리매김한 캐서린 메이의 신작이 출간되었다. 《인챈트먼트》는 전작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자연과 순수한 기쁨으로 연결되는 매혹의 감각을 되찾음으로써 비로소 온전히 삶을 회복할 수 있도록 돕는다. 캐서린 메이가 재발견한 ‘매혹enchantment’은 결코 겉으로 드러난 아름다움에 대한 감각에 머물지 않는다. 주변 세상과 깊게 유대를 맺으며 생겨난 긴밀하고도 특별한 접촉의 경험이다.
우리는 타고날 때부터 내재된 이 매혹의 감각을 스스로 억압해왔다. 팬데믹을 통과하며 더욱 굳건해진 소셜미디어의 인공 세계, 무자비한 합리성과 완벽함에 대한 갈망으로 축조된 그 성곽 안으로 들어오려 무던히 노력했다. 그곳에서 불현듯 무언가 잃어버렸음을 깨달았을 때, 절망스러운 결핍의 사유를 좇다가 저자는 시인 존 키츠의 ‘소극적 수용력’을 떠올린다. ‘불확실성과 신비, 의혹 안에서 머물게 해주는 사고의 미묘하고도 직관적인 상태로 돌입하는 것.’ 불현듯 포착한 스테인드글라스 뒤의 햇살, 동네 개울 아래 토사 속에서 번뜩이는 금빛, 가로수 잎새 사이로 속살거리는 바람의 말들에서 우리는 복잡미묘하여 설명할 수 없지만 마음을 일렁이는 작은 경이와 매혹을 감지한다.
《인챈트먼트》는 우리 주위에 늘 존재했지만 발견하는 법을 잃어버렸던 모든 매혹의 가능성을 예리한 시적 언어로 포착해낸다. 시간의 풍화를 견뎌온 성스러운 치유의 샘과 야생의 황야, 수만의 별이 쏟아지는 밤을 통과하는 캐서린 메이의 여정은 작은 황홀의 경험들로 공허한 마음을 조금씩 채워 마침내 부서지지 않는 매혹의 인생으로 나아갈 수 있음을 생생히 보여준다.
아득한 시간을 품은 별과 숲과 샘으로부터
무의미한 삶을 끝낼 위대한 지혜를 마주하다
《인챈트먼트》에서 저자가 새롭게 발견한 ‘매혹’의 개념은 미르체아 엘리아데의 ‘히에로파니’에서 연유한다. 히에로파니란 우리의 선조들이 숭배했던 나무와 돌, 샘과 같은 자연의 사물들이 드러내는 성스러움의 시현, 즉 성현聖顯을 말한다. 이때 히에로파니는 사물에 환상적인 무언가가 투영된 것이 아니라, 그 사물이 지닌 절대적 현실이 드러난 것이다. 표면에 드러난 모습이 아니라 모든 존재의 층을 인지하는 경험. 그것이 바로 히에로파니다.
캐서린 메이는 무의미와 환멸, 끝도 없고 보답도 없는 노동에 갇힌 우리 삶에도 여전히 히에로파니, 즉 매혹의 순간들이 늘 곁에 있었음을 보여준다. 단지 주의 깊게 바라보고 발견하려 하지 않았을 뿐, 복잡다단하고 미묘한 의미를 품은 채 우리 삶과 연결될 준비가 되어 있는 자연의 매혹은 이미 도처에 있다. 우리의 의식에서 시간을 지우고 순환과 광대함이라는 더 큰 진실을 드러내 보여주는 숲, 민트와 장미에서 피어오르는 늦여름의 내음을 간직한 채 이곳을 거쳐 간 수많은 길 잃은 영혼들과의 연대를 요청하는 순례자의 검은 샘, 혹은 장대한 풍광은 아닐지라도 미끈한 개구리알과 사나운 새들이 뒤섞여 진창을 이루는 도시와 자연의 경계, 저 그로테스크한 풍경 속에서도 마음 깊은 곳을 뒤흔드는 우리 시대의 매혹을 만날 수 있다.
확실한 입장과 목표만을 허용하는 사회 그러나 진실은 복잡다단하고 미묘하며, 그것은 늘 일상 안에 있다
《인챈트먼트》의 여정은 드넓은 자연 어디론가 떠나야만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경외감을 불러일으키는 별똥별 가득한 밤하늘을 기대하며 다섯 시간을 운전한 캐서린 메이는 결국 아무것도 보지 못했지만 뒤뜰에서도 볼 수 있는 달빛이 만들어낸 연약한 그림자 안에서 우연한 통찰을 얻는다. 매혹을 불러일으키는 모든 생각과 감정이 이미 자신 안에 잠재한다는 사실이다. 지금 이 순간 자신에게 필요한 통찰을 위해서는 다른 외부의 무엇이 아닌, 자신이 아는 것들을 재배열하는 경험이 필요한 것이다.
확실한 입장과 목표만을 허용하는 세상 속에서 우리는 자신만의 의미를 찾는 법을 점차 잃어버렸다. 그러나 자연은 두텁고 미묘하며 복잡다단한 의미의 망을 품은 채 찾아온 모든 이들에게 각기 다른 삶의 의미를 발견하는 법을 전해줄 것이다. 이 책은 모두를 위한 답을 줄 순 없겠지만 손 안의 텅 빈 화려함으로 빛나는 차갑고 납작한 인공의 세계로부터 진짜 현실의 온기를 찾아 밖으로 나갈 수 있도록 당신의 몸을 움직일 것이다.
[편집자의 말]
무의미로부터 삶을 지키는 매혹의 힘
기형도 시의 풍경처럼 버려진 석면 공장과 낙오된 사람들, 녹슨 금속 철조망 너머 미끈한 개구리알과 사나운 새들이 뒤섞여 진창을 이루는 도시와 자연의 경계에 서서 캐서린 메이는 묻는다. “이곳을 아름답다고 할 수 있을까?” 그가 아홉 살 무렵 던졌던 이 질문은 번아웃과 무력감 속에 사는 몇십 년 후의 지금, 하나의 응답처럼 떠오른다.
무서운 속도로 쏟아지는 뉴스와 소셜미디어 피드를 쫓아가지 못해 ‘죄짓는’ 기분마저 들게 하는 시대에 아득한 시간의 풍화를 견뎌온 무성한 수풀과 야생의 황야, 성스러운 샘 앞에서 지금껏 배운 것을 내려놓고 나만의 의례를 만드는 일은 순전한 매혹으로 가득 차 충만했던 어린 시절 삶의 감각을 다시 일깨워준다.
내셔널지오그래픽의 매끈한 자연 풍광 속으로 들어가지 않아도 괜찮다. 퇴근길 길가에 쓰레기봉투 터진 것들 주위에 숨죽인 몇 갈래 강아지풀이나 발화하지 않은 존재들이 가로수 아래 무성한 수풀처럼 뒤엉킨 것들, 보도블럭 틈에 낀 도시의 우울이 눈물바람에 구겨진 텍스쳐들에서 나는 부서지지 않는 매혹의 힘을 본다. 주위의 작은 것들에서 지구와 연결되어 있다는 황홀의 기쁨을 느끼고 그 힘으로 공허 속에서 자기 삶을 지켜내는 일, 그것이 인챈트먼트다.
작가 소개
지은이 : 캐서린 메이(Katherine May)
세계 25개 언어로 번역 출간되는 영미권 베스트셀러 에세이스트이자, 세계 상위 1퍼센트 순위의 팟캐스터다. 팬데믹의 고통스러운 시절을 통과하며 쓴 책들이 “글로 이루어진 치료제”라는 찬사와 함께 삶을 성찰하는 글쓰기의 한 전범으로 평가받았다. 《우리의 인생이 겨울을 지날 때》는 출간 두 달 만에 미셸 오바마의 책을 뛰어넘는 판매로 화제를 모으며 아마존, 〈뉴욕타임스〉 〈월스트리트저널〉 베스트셀러를 기록했다. 캔터베리크라이스트처치대학교에서 문예창작 프로그램 디렉터로 일하면서 〈뉴욕타임스〉 〈옵저버〉 등 유수의 매체에 에세이와 논평을 기고하고 있다. 영국의 바닷가 마을 위츠터블에서 바다 수영을 즐기며 산다. 지은 책으로 《우리의 인생이 겨울을 지날 때》 《걸을 때마다 조금씩 내가 된다》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의 전기The Electricity of Every Living Thing》 《버닝 아웃Burning Out》 《유령과 그 사용법Ghosts and Their Uses》 등이 있다.
옮긴이 : 이유진
이화여자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교 통번역대학원에서 번역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코리아타임스〉 주최 현대한국문학번역상(2008)을 수상한 바 있으며,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면서 저자와 독자 사이의 즐거운 소통을 이어가고 있다.
옮긴 책으로 캐서린 메이의 《우리의 인생이 겨울을 지날 때》 《걸을 때마다 조금씩 내가 된다》를 비롯해 《조율하는 나날들》 《섹스하는 삶》 《공격성, 인간의 재능》 《엄마는 내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우리가 밤에 본것들》 《누가 아메리칸 드림을 훔쳐갔는가》 등이 있다.
목 차
흙
부디 내가 사라지기를
인공 시대의 선돌
히에로파니의 순간
맨발에 응답하는 땅
물
배운 것을 해체하기, 언러닝
양원적 의식과 직관
흑태자 샘의 순례자
모름, 지켜보기, 실천
불
수만의 별이 떨어지는 밤
책을 태우고 미지로
어른들의 심층놀이
불길의 무늬
공기
비행, 삶의 인터미션
후광을 입은 유령
덧없이 사라지는 풍미
존재하는 모든 것의 씨앗
에필로그 - 아이테르
옮긴이의 말 - 당신의 고된 일상에 황홀의 순간이 끼어들 수 있다면
역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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