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죽음을 응시하여 삶의 기미를 살핀다
― 한정우 시집 『우아한 일기장』
2019년 남구만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면서 혜성같이 시단에 등장한 신예 시인 한정우가 첫 번째 시집 『우아한 일기장』을 펴냈다. 달아실시선 66번 시집으로 나왔다.
시집 해설을 쓴 시인 김윤배는 이번 한정우의 시집을 각각 이렇게 평한다.
한정우의 시편들은 “시는 순수이며 비순수이고 신성하며 저주받았고 다수의 목소리이며 소수의 목소리이고 집단적이며 개인적이고 벌거벗고 치장하고 말하여지고 색칠되고 씌어져서 천의 얼굴로 나타난다”는 옥타비오 파스의 언표를 껴안는다. 그녀의 시는 순수이며 비순수이고 신성한가 하면 저주받은 것이고 다수의 목소리를 대변하는가 하면 소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집단의식을 말하는가 하면 개인적이다.
한정우는 남구만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문단에 나왔다. 그녀는 유려한 문장과 선명한 이미지와 고급한 은유를 구사하며 자신의 시 세계를 확고하게 구축해왔다. 그녀가 바라보는 곳은 사물의 본질이며 시가 닿고자 하는 그 너머이다. 이러한 그녀의 시적 태도가 그녀의 문학적 성장을 담보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 김윤배(시인)
여고 졸업이 학력의 전부이고 김밥집을 운영하고 있는 시인 한정우는 “먹고사는 일이 우선이라 남들보다 늦게 시작했지만 주 6일, 하루 15시간의 고된 노동을 견디면서 지난 5년 동안 치열하게 시를 썼다”며 “이번 시집은 한마디로 비의 서체로 쓰여진 일기장”이라며 시에 입문한 지 오년 만에 첫 시집을 펴낸 소감을 이렇게 밝혔다.
“죽음 같은 삶의 끝에서 어느 날 시가 찾아왔다. 운명처럼 찾아온 시가 나의 숨통을 틔웠다. 시를 통해 나는 숨을 쉴 수 있었다. 김밥을 말면서 詩를 말았다. 잠을 자면서도 詩를 꾸고 詩를 썼다. 그렇게 시에 매달리자 죽음 같은 삶의 끝에서 실낱같은 삶의 기미가 보였다. 굳게 닫혀 열릴 줄 모르던 시의 빗장을 이제 겨우 열었을 뿐이다. 이제 첫발을 내딛었을 뿐이다. 시가 어디까지 나를 데려다줄지 모르겠지만, 시는 끝끝내 닿을 수 없을 미지일지 모르겠지만, 기꺼이 가볼 작정이다.”
시를 통해 숨을 쉴 수 있었다면서, 시가 살려낸 삶이라면서, 죽음의 끝에서 삶의 기미를 찾아낸 것도 시 때문에 가능했다는 시인의 고백이 어찌 시인에게만 해당하는 고백이겠는가. 생로병사의 순환버스에 올라탄 이상 누구도 예외일 수 없다는 것을 또한 시인은 펼쳐 보인다.
한밤중 폭우에 문득 당신이 흘러가고
난폭했던 폭우도 흔적 없이 떠내려가고
먼 물소리 따라
무작정 떠나온 땅이 원통이었네
원통해서 주저앉아 북천에서 울었네
흰 물새 한 마리 북천을 꺾어 흘렀네
저 물길 흐르고 흐르다 설악의 깊은 골짝
어느 바위틈에 산산이 찢길까
물소리 따라 먼저 떠내려간 미유기 떼는 또,
어느 단애를 뛰어내리다 흩어질까
내 투명했던 눈동자 찌르고 눈앞에서 없어진 것들
내가 떠나보내고 떠나온 것들
세상의 비의와 세우지 못한 문장과 가물대는 어떤 약속들
떠난 것들은 다시 거슬러 오지 않아
가문 강바닥, 북천의 푸른 물소리 그만 그쳐버렸네
― 「북천」 전문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는 책에서 김열규 선생은 말했다. 죽음을 잊으면 삶이 덩달아서 잊어진다고. 그렇다면 한정우의 시편들을 읽는 당신은 문득 죽음을 살려야 삶도 산다는 말을 떠올릴지 모르겠다.
시집 『우아한 일기장』은 이름과는 사뭇 다르게 죽음이라는 씨실과 삶이라는 날실로 지은 한 권의 무덤 같은 시집이다. 죽음의 양식으로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삶을 보여주는 독특한 형태의 시집이다. 무척추의 언어로 빚은 시집은 집요하게 죽음을 응시하는데 그 끝에 닿으면 놀랍게도 삶의 기미가 보인다. 삶을 어루만지는 죽음이랄까.
<섬은 파도의 시작>이라는 언명은 <파도의 끝이었던 그 섬>이라는 언명과 맞물려 삶과 죽음의 떼려야 뗄 수 없는 순환의 고리, <우리들을 연결하고 끝내, 끝나지 않을 겨울을 건너려는> 순환의 고리를 보여준다.
시집 『우아한 일기장』은 한마디로 비스듬히 흔들리는 바람, 즐문(櫛文)의 사구(砂丘), 비스듬히 내리는 <비의 서체>로 기록한 비가이며 비망록이다.
작가 소개
한정우
강원도 춘천에서 출생하였고 2019년 남구만신인문학상을 수상했다. 김윤배, 이경철, 손택수 3인의 심사위원은 “한정우의 시는 독창성이 어떤 유형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질감의 문제라는 인식을 뒷받침하는 지표다. 이 시인은 ‘시’로 규정된 미학 체계를 수렴하면서도 ‘시적’인 것을 향해 폭발한다. 여기에 시적 사유의 깊이와 명료한 이미지, 세련되고 활달한 어법이 돋보였다. 또한 응모작 중엔 드물게 세계의 부조리와 날카롭게 맞서면서도 내성을 잃지 않는 균형감이 있고, 「바람의 장지葬地」나 「마분馬糞」에서 보듯 묵직한 문명사적 제재들을 다룰 때조차 시적 부력을 잃지 않는 힘에 기대와 신뢰를 갖게 한다.”고 평했다.
목 차
1부. 무척추의 언어, 무척추의 날개
나비는 뼈를 버렸네|빈방|죽거나 혹은,|대문|산국|떼뿌루여|묘묘猫墓|노루실 사람들|노루실 사람들, 그 후|파시|마분馬糞|순환 버스|카페 同人 1985|어비울을 아시나요?
2부. 국지성 소나기가 극성으로 퍼부었다
우아한 일기장|누가 저 가느다란 둘레를 오갈까|검은 별|전설|잠시 후, 버스가 도착합니다|새 1|새 2|새를 낳는 남자|골목마다 당신이 사라진다|뻔한 꿈꾸기|비의 무덤|밤의 질서|애인|만조
3부. 오래 머물지 않기로 했다
칼랑코에|바깥|사이|독|마둔지에 빈 달 있다|제비꽃|별리|정류장|두드러기|우리 집에 놀러와|핑크 손가락|적도의 언어|하루 종일 하지|푸른 간판|스케치북|고래섬
4부. 산새들의 목덜미에 작설이 돋기 시작했다
바람의 장지葬地|갯바위|금성이 떴다|말말말|너는|고지를 위하여|미술관은 내부 수리 중|백악기를 건너|틀|배꽃 이야기 하나|배꽃 이야기 둘|북천|백사마을|녹
해설 _ 새를 낳는 남자의 날개 ․ 김윤배
역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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