측광

고객평점
저자채깅우
출판사항창비, 발행일:2023/08/23
형태사항p.102 46판:20
매장위치문학부(1층) , 재고문의 : 051-816-9500
ISBN9788936424923 [소득공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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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사랑하는 이의 고단한

맨발을 겨우 한번

움켜보는 밤”


삶의 낮고 외진 자리에 깃들여

고독과 희망을 묵묵히 비추는 시편들


2013년 『실천문학』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해 섬세한 관찰력과 개성적인 시적 사유로 주목받아온 채길우 시인의 두번째 시집 『측광』이 출간되었다. 자신만의 독특한 화법과 심안을 부단히 벼려 다다른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삶의 고단한 풍경 속에 기꺼이 머물며 작고 미약한 존재들의 생활과 감정을 촘촘히 기록해나간다. 연민을 앞세우지 않은 담백한 시선은 일상의 소소한 장면을 은유적으로 풀어내어 일상 너머로 향하는 길을 열어젖히고, 범상한 매일에서 다른 차원의 정경을 발견해 낯선 감각을 선사한다. 아울러 시인은 우리가 서로를 돌보고 살피는 온기 어린 순간을 시로 펼쳐 보이며 우리의 하루하루가 지극히 소중한 것을 “지켜내는 일로 가득”하다는 사실 또한 일깨운다. 그저 살아내기 바쁜 우리의 마음을 멈춰 세워 타인과 세상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게 하는 시인의 시 쓰기는 “아름답고 숭고한 노력”(유병록, 추천사)으로 우리에게 묘한 감동을 전한다.


이 시집은 시 제목이 모두 간결한 한 단어로 이루어져 있다. 차례를 펼치면 우리가 일상적으로 접하는 짧은 단어들이 길게 늘어서 있는데, 언뜻 평범해 보이는 단어들이지만 시를 읽는 순간 예상 밖의 장면을 마주하게 된다. 가령 ‘간병’이라는 제목의 시에서 우리가 마주하게 되는 건 “창백한 꽃의 얼굴”에 가까이 다가가 “화분을 살결에 펴 발라”주는 벌의 모습이다. 완전히 시들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꽃과 좀처럼 그 곁을 떠나지 않는 벌이 ‘간병’이라는 단어와 닿을 때 서로에게 마음을 기울이는 수많은 두 존재의 모습이 그 위로 겹쳐진다. 이렇듯 시집의 차례를 이룬 마흔네개의 짤막한 단어들은 우리를 뜻밖의 장면으로 인도하고 삶의 구체적 면면과 연결한다. 하나의 광경 위로 다른 광경이 드리울 때까지, 지금 이곳에서 다른 저곳으로 나아갈 때까지 눈앞의 현실을 진득하게 바라보는 시인의 시선은 어떻게 일상의 소재로부터 시가 탄생하는지 단도직입적으로 보여준다.


“빛나지 않는다고 해서 없는 것은 아닌 깜빡임”

깊고 어두운 현실에서 길어 올린 작고 여린 빛 한조각


채길우의 시는 고독과 슬픔, 병과 죽음 같은 삶의 어둔 자리를 짚어나간다. 시인이 “기약 없는 천국보다 낮은 자리”에 만연한 “적막과 어둠과 공포”(「구두」)에 주목하는 이유는 우리가 그런 그늘과 같은 시간을 시야의 사각지대에 접어두기 때문일 것이다. 불편하고 두려워서 많은 이들이 멀리하는 이야기에 시인은 바짝 다가서 마치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미세한 기척까지도 놓치지 않고 묘사한다. 그래서 언뜻 쓸쓸하고 음울한 흑백사진 같기도 한 그의 시에서는 “스스로 내쉬는 호흡에도 온몸이 흔들리”는 육체의 “구겨진 피부”(「비닐봉투」)에 깊게 박힌 잔주름까지 자세히 보이고 “스무살이 지나도록 말을 배우지 못”한 아이의 입에 “새로 고이는 침 줄기”(「숨」)도 선명하게 빛난다. 피할 수 없는 고통으로 가득한 현실에서도 어떻게든 스스로 “살아 있음을 확인”(「측정」)하며 살아가는 가녀린 존재들의 삶에 진심으로 감응하는 시인의 언어는 별다른 수사나 감정을 내세우지 않음에도 더욱 애틋하게 느껴진다.


외롭고 허름한 삶 속에서 흔들리는 존재들을 담담히 들여다보는 시들을 하나씩 읽어나가다보면 우리가 통과하고 있는 지금의 세상이 “제정신으로는 좀처럼 믿을 수 없는/뼈아픈 허구”(시인의 말)일지도 모른다고 의심하게 된다. 하지만 무언가를 참고 견디는 것처럼 꽉 오므려져 있던 주먹이 풀어져 “푸르고 자그마한 조약돌/하나”(「잎망울」)를 보여주듯 시인의 집요한 응시가 결국에 가닿는 곳은 희미하게 피어오르는 사랑과 희망의 기미라는 걸 잊어선 안 된다. 그의 시 속에서 누군가는 오직 “인간으로서 살아가기 위하여”(「구두」) 따스한 손길로 다른 이의 “찢기고 바스러진 몸을 껴안”(「소원」)고 “파이고 금이 간 자국을/닦아주어야”(「도공」)겠다고 생각한다. 이처럼 “더 깊은 아픔과 수고로움에도 불구하고”(「산수국」) 기어이 타인을 위하는 장면 앞에서 우리는 “아무도 없는/현관이 저절로 점등되는”(「구두」) 것처럼 잠시 반짝 켜지는 희망을 실감한다. 현실의 무게에 조금은 일그러지고 구겨지더라도 인간답게 살아가려고 묵묵히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는 한 채길우의 시는 언제나 그곳에 가장 먼저 도착해 가장 오래 머물며 그들의 고독과 희망을 계속해서 기록해나갈 것이다.

작가 소개

채길우

2013년 『실천문학』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매듭법』이 있다.

목 차

간병/보청기/첼로/껍질/도공/구두/일출/승진/비닐봉투/왼손/병원/목련/잎망울/측정/철봉/겨드랑이/소원/걸음마/산수국/은행/월경/수정/운명/신발/독서/해바라기/발아/움/숨/배추밭/별똥별/백발/치매/계부/용접/성냥/음악/분홍달/분재/자유/첫사랑/미역국/맥박/하품


시인의 말

역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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