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신달자 시인의 시력 60년이 오롯이 담긴 예술적, 실존적 언어의 화폭
시간의 적층을 투과해온 순간을 아름답게 보여주는 미학적 창
한국 여성시를 개척한 대표적 시인 중 한 명으로 많은 사랑을 받아온 신달자가 팔순을 맞아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펴낸 시선집. 원숙한 노년의 지혜를 설파한 묵상집 『미치고 흐느끼고 견디고』와 동시 출간한 이번 시선집에서 지금까지 발표한 천 편이 넘는 시 중 182편을 정선하여 새롭게 선보인다.
어느덧 팔순에 이르러 시력 60년을 총 5부로 나누어 결산한 시선집을 엮어내는 시인의 소회는 그 어느 때보다 각별할 수밖에 없었다.
“60여 년 한 인간의 철근 같은 감정을 누가 밀고 왔을까. 기쁨, 슬픔, 분노, 절망 그리고 폭력적인 감정들을 무엇으로 달래며 여기까지 왔을까. 억눌림을 절제라는 이름으로 달래며 죽음의 발목을 잡을 때 터지는 비명의 언어를 달래며 꾸역꾸역, 아니 가파르게 여기까지 왔다. 그 16권의 시집에서 피가 당기는 대로 여기 모셨다. 사람과 자연의 감동이 뜨겁고 아직도 비명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自序’에서)
신달자 시인은 20대 초반의 이른 나이에 등단했지만 대학원 진학과 결혼 등의 이유로 시와 멀어졌다가 삼십대가 된 1973년에 첫 시집 『봉헌문자』를 발표했다. 박목월은 이 시집의 서문에서 “폭넓은 인간적 공감을 우리에게 환기시켜 준다”라고 평했는데, 이는 이후 신달자 시세계의 방향을 정확히 짚어낸 것이었다. 지금까지 펴낸 열일곱 권의 시집을 통해 시인은 여성 특유의 심미감으로 “상처를 넘어서는 사랑과 헌신의 서정적 정화”를 다채롭게 구축해왔다.
문학평론가 황현산은 신달자 시인에 대해 “두 손으로 만지작거리는 모든 말들이 모두 시가 된다”고 말한 바 있다. 이번 시선집의 표제작이기도 한 「저 거리의 암자」는 이러한 신달자 시의 특성을 보여주는 대표작 중 하나다. 무산 조오현 스님이 백 명도 넘는 스님들이 있는 자리에서 “너희들 수행보다 이 시 한 편이 낫다”고 말했다는 일화로도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다.
문학평론가 유성호에 따르면, 이 아름다운 시편은 일상의 도심 거리에서 발견하는 성소(聖所)로서의 ‘암자’를 은유하고 있다. 어두워지는 수서역 부근에 있는 포장마차에서 사람들은 하루 노동을 벗고 새로이 야간 여행을 떠난다. 사람들은 “잡다한 번뇌”와 “구슬픈 노래”와 “빗된 농담”을 풀어가면서 “해고된 직장을 마시고 단칸방의 갈증을” 마신다. 생의 아픔을 토해내는 이들에게 “잘 익은 감빛 포장마차는 한 채의 묵묵한 암자”인 셈이다. 새벽이 오면 모두 하룻밤의 수행이 끝나게 되고, “거리의 암자를 가슴으로 옮기는 데 / 속을 쓸어내리는 하룻밤”이 걸리고 나면 “금강경 한 페이지가 겨우 넘어”간다. 그렇게 ‘저 거리의 암자’에서 치러내는 수행을 통해 우리는 어느새 성속(聖俗)이 하나가 되는 과정을 경험하게 된다.
한국 현대문학사에 이름을 아로새긴 존경받는 원로로서 이제 모든 것을 내려놓고 편안한 노년 생활을 즐길 법도 하지만, 시인은 팔순에 이른 지금도 펜을 놓기는커녕 시와 산문을 써서 발표하고 문예지도 만들며 문학에 대한 변함없는 열정을 불태우고 있다. “느긋하게 남은 생을 살겠다는” 겸손한 다짐과 달리 그의 문학 인생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작가 소개
신달자
경상남도 거창에서 태어나 숙명여자대학교 국문학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1964년 『여상』 여류신인문학상을 수상했고 1972년 박목월 시인 추천으로 『현대문학』을 통해 재등단했다. 『봉헌문자』를 시작으로 『열애』 『종이』 『북촌』 『전쟁과 평화가 있는 내 부엌』 등 열일곱 권의 시집을 펴냈으며 정지용문학상, 김달진문학상, 대산문학상, 서정시문학상, 만해대상, 석정시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문화예술 발전에 기여한 공적이 뚜렷한 이에게 주어지는 은관문화훈장을 수훈했고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이다. “여성 특유의 심미감을 감각적으로 드러내는 시”(권영민)를 발표하여 폭넓은 독자층을 확보해왔으며 “상처를 넘어서는 사랑과 헌신의 서정적 정화”(유성호)를 꽃피우며 한국 여성 시를 개척한 선구적 시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목 차
1부 너의 연인이 되기 위해 별 이름 하나를 더 왼다
발 Ⅰ / 흙의 말씀 / 조춘(早春) / 귀가 / 겨울 그 밤마다 / 손 / 겨울 노래 / 찌꺼기 / 겨울 성묘 / 정전 / 꽃 / 노모(老母) / 뒷산 / 말하는 몸 / 일박 / 성회수요일에 / 친구에게 / 부활의 눈 / 가을 언약 / 광야에게 / 다만 하나의 빛깔로 / 중년 / 커피를 마시며 / 겨울 노래―허영자 언니에게 / 편지 / 겨울편지 / 비가(悲歌) / 너의 연인이 되기 위해 별 이름 하나를 더 왼다 / 한잔의 갈색 차가 되어
2부 아가(雅歌)
네가 눈뜨는 새벽에 / 아가 1 / 아가 17 / 아가 19 / 아가 23 / 아가 28 / 아가 32 / 아가 58 / 아가 Ⅱ 1 / 아가 Ⅱ 3 / 아가 Ⅱ 5 / 아가 Ⅱ 7 / 아가 Ⅱ 9 / 아가 Ⅱ 17 / 아가 Ⅱ 34 / 운명에게 1 / 운명에게 2 / 새를 보면서 1 / 새를 보면서 2 / 잔설을 이고 선 소나무 / 꽃 피어도 좋으냐 / 산나리꽃 / 겨울 아리랑 / 피천득 / 잎차 한 잔 / 편지 2―이중섭 화가께 / 공중전화 / 국수를 먹으며 / 죽도에서 / 연변일기 1 / 평택일기―아산만 바다 / 평택일기―야간수업
3부 어머니는 흙으로도 말씀하신다
아버지의 빛 1 / 아버지의 빛 2 / 아버지의 빛 3 / 임종 앞에서 / 손톱 / 눈썹 달 / 여자의 사막 / 고속도로―출근길 / 고속도로―퇴근길 / 고속도로―아버지 / 분만실에서 / 늙음에 대하여 / 너 그거 아니? / 등잔 / 조국 / 성모님의 집 / 불행 / 어머니의 땅 / 순교자 / 어머니와 복숭아 / 낙엽송 / 어머니의 글씨 / 어머니는 흙으로도 말씀하신다 / 어머니의 눈썹―아, 어머니 3 / 침묵피정 1 / 조오현 / 겨울나무 속으로 / 생명의 집 / 여보! 비가 와요 / 천수 천안 보살 / 산 도적을 찾아서 / 향일암 / 헌화가 / 우리들의 집 / 24시간 편의점 1 / 그리움 / 아리수 사랑 / 아! 거창 / 빈 들
4부 저 허공도 밥이다
소 / 저 거리의 암자 / 여명 / 저 허공도 밥이다 / 물집 / 강을 건너다 / 저 산의 녹음 / 사막의 성찬 / 나는 폭력 영화를 본다 / 나 모텔에 들었다 / 벼랑 위의 생 / 변태 / 끈 / 핸드백 / 열애 / 등 푸른 여자 / 개나리꽃 핀다 / 애무석(愛撫石) / 천 년 느티나무 / 녹음 미사 / 귀 / 아니오니계곡 / 만해사 / 정오의 바늘 / 아 채석강아 / 우리들의 집 / 얼음신발 / 예술혼 / 종이 이불 / 도서관 / 꽃 비친다 하였으나 / 닥나무 / 한지 / 인피(人皮) / 종이책 / 순천만 /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 원고지 납골당
5부 빛의 발자국
내 앞에 비 내리고 / 스며라 청색 / 10주기 / 딸들의 저녁 식사 / 국물 / 헛눈물 / 손 / 백색 소리 / 겨울 만해마을 1 / 겨울 만해마을 2 / 겨울, 설악 바람 / 갑옷을 입은 호랑이 떼들일까 / 겨울 산 / 압구정역에서 옥수역까지 / 물오징어 / 있다 없다 전설 같은 연애 하나 / 수필 / 철버덕 / 북향집 / 서늘함 / 빛의 발자국 / 붉은 물 / 계동의 달 / 헛신발 / 공일당(空日堂) / 허공 부처 / 툇마루 / 조각보 앞에서 / 유심사 터 / 계동 무궁화 / 한옥 / 가회동 성당 1 / 재동 백송 / 석정 보름 우물터 / 그 사람, 정세권 / 북촌8경 / 성모님의 옷자락 / 간절함 / 심장이여! 너는 노을 / 늙은 밭 / 깊은 골 심곡동 / 망치 / 겨울 들판을 건너온 바람이 / 희수지령(喜壽指令)
작품 해설 존재를 향한 사랑과 헌신의 서정적 정화 (유성호)
작품 출처
역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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