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치매를 앓는 할머니의 이상하지만 아름다운 세상, 그리고
4대가 함께 보금자리를 짓고 살아가는 오래된 동네
그 속에서 펼쳐지는 소박하고 뭉클한 반려 생활의 기록
「딸과 나, 나의 엄마, 그리고 할머니까지 4대가 가까이에 각자의 보금자리를 짓고 살아가는 동네. 손가락으로 세어도 헷갈리는 가계도 때문인지 딸은 종종 나에게 묻는다.
“그러니까, 엄마의 엄마의 엄마가 ‘왕할머니’인 거지? 엄마. 왕할머니는 이상해. 같은 질문을 자꾸 하고 먹은 걸 또 먹으라구 해.”」
《엄마의 엄마의 엄마는 이상해》의 저자 헤이란은 날이 갈수록 희소해지고 있는 대가족의 구성원이다. 그가 사는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저자의 엄마가 할머니를 보살피며 사는 외갓집이 있다. 치매를 앓고 있는 그의 할머니는 어느 순간에 기억이 멈춘 채로 고요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지만, 끊임없이 같은 말과 행동을 반복하고 자신에게만 들리는 목소리와 대화를 나누며 때로는 저승사자 저리 가라 할 만큼 지독한 분노를 쏟아내는 도깨비가 되기도 한다. 저자는 자신에게 사랑한다고 말해주지 않는 할머니를 오랜 시간 미워했지만, 다시금 할머니만의 ‘사랑’의 언어를 이해하고자 그를 관찰하고, 기록하고, 받아들이기 위해 노력한다.
사려 깊은 마음과 재치 있는 문장으로 가득한 이 에세이집은 저자와 그의 가족, 나아가 친구와 이웃, 동네 사람들까지 아우르는 단란한 삶의 풍경을 그리고 있다. 정든 집과 동네에서 서로 안부를 묻고 마음을 나누며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 사랑하는 사람들을 향한 다정한 기록을 담은 《엄마의 엄마의 엄마는 이상해》는 타인과 부대끼며 사는 생활의 정겨움을 상기시키며 작은 불씨처럼 삭막해져가는 사회에 따스한 온기를 전할 것이다.
출판사 리뷰
어떤 집을 상상해보자. 자그마한 체구의 어린이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거실 이곳저곳을 탐색하고 있다. 어린이의 엄마는 어린이의 위치를 파악해가며 옷을 개고 있다. 어린이의 엄마의 엄마는 주방에 서서 국물 요리의 간을 보고 있고, 어린이의 엄마의 엄마의 엄마(!)는 베란다 앞 볕이 드는 자리에 웅크리고 앉아 멍하니 밖을 내다보고 있다. 사방에 엄마들이다. 이럴 때 대뜸 “엄마”라고 부르면 어떻게 될까? 아마 엄마, 엄마의 엄마, 엄마의 엄마의 엄마가 일제히 고개를 돌리며 말할 것이다.
“무슨 일이야? 누구 엄마?”
사려 깊은 마음과 재치 있는 문장으로 가득한 신간 《엄마의 엄마의 엄마는 이상해》는 시간이 흐를수록 희소해지고 있는 대가족과 그들이 살아가는 동네를 배경으로 한다. 전쟁과 피란민의 역사로 거슬러 올라가는 어느 오래된 동네엔 저자와 그의 딸, 엄마와 할머니가 서로 멀지 않은 곳에 집을 짓고 살고 있다. 한가로운 주말이면 4대가 한집에 모여 하루를 보낸다. 산책을 나서면 정겨운 이웃들이 안부를 묻고, 퇴근길에 마주치는 붕어빵 트럭은 꼭꼭 숨겨뒀던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할머니를 비롯한 가족에서 시작해 친구와 이웃, 동네 사람들까지 천천히 시야를 넓히며,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을 사랑스러운 시선으로 기록한 이 책에는 소박하지만 아름답고 때로 벅차오르는 다양한 순간을 선보이며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나는 치매가 무엇인지 더 묻고 싶지 않았다.
그저 할머니의 다음 사진이 궁금했다.”
작중 할머니는 치매를 앓고 있는 것으로 소개된다. 치매는 말수가 없고 한결같았던 할머니를 바꿔놓았다. 할머니는 남들에겐 들리지 않는 목소리와 단둘이 대화를 나누기도 하고, 병원에 가야 한다고 하면 큰 소리를 내며 안 가겠다고 고집을 피우고, 느닷없이 분노를 터트리며 휘황찬란한 욕설을 내뱉기도 한다. 세심한 보살핌에도 불구하고 통제할 수 없는 일들은 매번 일어난다. 가족들은 피로감을 호소하기도 하고, 할머니 또는 할머니의 병을 미워하기도 한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여태껏 미움이나 분노, 슬픔 따위의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던 할머니의 조용한 시간에 죄책감을 느낀다.
《엄마의 엄마의 엄마는 이상해》 속 가족들은 치매를 앓는 할머니를 마냥 엉뚱하고 이해할 수 없는 존재로 그리거나 반대로 할머니의 난해한 행동을 치매라는 단일한 스펙트럼에 가두지 않는다. 할머니가 “출처 없는 미움”을 쏟아낼 때도, 병원에 가지 않는다며 기어이 집에서 치아를 뽑아낼 때도, 쓸모가 없어진 비닐로 묶은 매듭을 버리지 말라고 고집을 피울 때도, 아무 말 없이 앉아 홀로 눈물을 흘릴 때도, ‘치매가 오면 으레 그렇다’는 식으로 치부하지 않는다. 대신 더 가까이에 머물면서 그의 마음을 헤아려보고자 노력한다. 할머니의 이상한 행동들은 ‘치매 할머니’라서가 아니라, ‘나의/우리의 할머니’라서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낯설고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는 이를 볼 때 사람들은 대개 불편함을 느낀다. 그리고 불편함을 쉽게 해소하기 위해 그의 특성 하나를 집어 유일한 원인으로 환원시키곤 한다. 일견 명쾌해 보인다. 다른 행동에 대해서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특정한 조건 하나에 인과를 종속시키게 되면 개인이 지닌 복잡다양한 서사는 쉬이 은폐되고 만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할머니의 “출처 없는 미움”을 치매 때문이라 결론짓는다면 할머니가 살아오면서 삼켜야 했던 울분과 아픔에는 다가갈 수 없을 것이다. 한 번 먹은 것을 몇 번이고 또 먹으라고 권하는 할머니의 집착을 ‘할머니’라는 존재가 으레 그렇다 치부한다면 “잘 먹고 잘 먹이며” 살아온 가정의 이면에 할머니가 어떤 공포를 느꼈는지 알지 못할 것이다.
정현종 시인이 말했듯, 한 사람을 맞이하는 것은 그의 일생을 끌어안는 일이다. 복잡하고 정제되지 않은 타인보다 일면적으로 정돈된 대상과의 일방적 소통이 늘어가는 현대 사회에서 시인의 말처럼 사람을 환대하는 것은 요원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한 사람을 좁다란 시야에 구겨 넣지 않고, 일생과 여생을 더듬어보며 이해하려는 태도. 그리고 그 부던한 노력이 이어주는 소통의 가능성. 《엄마의 엄마의 엄마는 이상해》 속 저자와 가족들이 보여주는 할머니를 향한 환대는 바로 그런 눈부신 결실을 암시하고 있다.
“이웃이라는 이름으로 얼기설기 짜인 이 작은 동네는 만남과 이별을 반복한다.
어쨌든 잘 지낸다는, 덤덤하지만 무척 궁금한 안부를 물으며.”
《엄마의 엄마의 엄마는 이상해》는 대가족 가정의 생활상을 비추는 것에 그치지 않고, 동네 이웃, 주민, 퇴근길을 오가는 시민 등 삶이 이루어지는 모든 공간과 그 주역들로 시야를 넓히기도 한다. “작고 낡은 단층 주택들이 좁은 터에 어깨동무하듯 서로 기대어 만들어진 마을”이 “상가 벽면에 차곡차곡 걸린 간판들이 24시간 내내 쉬지 않고 반짝”이는 “젊은 뉴타운”이 되기까지, 30년 넘게 동네를 벗어난 적이 없다는 저자는 그야말로 진또배기 ‘동네 토박이’다. 재개발을 거친 동네는 외견상 세련되어 보일지 몰라도, 그의 필체로 담아낸 이야기 속에서만큼은 여전히 이웃 사이의 온정이 남아 있는 수수한 곳이다.
매일 “경비실에 요구르트를 갖다주고는, 발길을 돌려 약국, 세탁소, 복덕방까지 동네 사정을 살피고 쓰다듬는” 마음씨 고운 ‘둥가 할머니’, 등원 차량을 기다리는 유치원생 아이들을 보며 “이뻐 죽겠다는 표정으로 그저 웃기만 하는” 일명 ‘의자 부대’ 할머니들, 출근길마다 안부를 물어주는 이웃 아주머니들, 병원이며 길거리, 동네 마트에서 만난 모습을 기억하고 수년간 가족들을 진료해준 주치의 선생님…… 가지각색 인물들 사이의 공통점은 언제나 서로의 ‘안부’를 묻는다는 점이다.
청년과 노인을 가리지 않고 고독사 문제가 커지고 있다. 우리의 네트워크는 점점 방대해지고 있는데, 어째서일까, 현실 속 사람들은 자꾸 고립되고 소외된다. 요컨대 안부를 물어주는 사람이 없다는 크나큰 쓸쓸함이 우리 시대를 떠다니고 있다. 다른 누군가와 함께 사는 일은 어렵다. 타인은 나와 닮을 수 있을지언정 같을 수 없고, 차이는 항상 갈등을 일으키기 마련이다. 한 몸 건사하기 어려운 시절에 타인과 함께 산다는 건 꿈같이 들릴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다른 존재와 함께 살아가는 것이 아름답다는 사실을 알고 있고, 그렇기에 함께하는 삶을 희구하며 방황하고야 만다.
《엄마의 엄마의 엄마는 이상해》에 그려진 것이 동네 사람들의 전부는 아닐 것이다. 그들도 때로 다투고, 미워하고, 응어리진 마음에 가슴을 칠 것이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을 비옥하게 하는 건 결국 사랑을 주고받으며 미소 짓는 찰나의 순간들이다. 그렇기에 이 작품은 함께하는 삶을 망설이는 이들에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함께 살아야 할 이유를 보여줄 한 권의 책이 되리라, 감히 이야기해본다.
작가 소개
헤이란
북한산이 잘 보이는 동네에서 태어나 서울 토박이로만 30년차. 외국에서 일하는 게 꿈이었으나 동네를 벗어난 적이 없다. 생명과학을 전공하고 대학원에 진학했지만, 꿈이라는 여정의 종착지는 결국 글쓰기였다. 일터에서는 제품 관리를 하고 집에서는 원고를 집필하는 나날. 치매를 앓고 있는 할머니, 그녀를 보살피는 엄마, 해맑고 귀여운 나의 딸, 그리고 나, 이렇게 4대가 반경 300미터 이내에 보금자리를 짓고 옹기종기 살아가는 중이다.
주변의 크고 작은 소중한 세계를 바라보며 함께 살고 같이 웃고 진솔하게 쓰면서, 읽는 사람에게도 스스로에게도 소박한 포옹을 전하고 싶다.
목 차
1부 엄마라는 이름
왕할머니와 까먹이 병
욕 나와라, 뚝딱
할머니 = ( ? )
온실 속의 난초
좋아한다고 말할 용기
쓰다듬어 주고 싶다는 생각
2부 할머니가 있는 집
어떤 매듭의 역사
미련 곰탕이
밥값을 해야 사람이지
마법의 가루, 알커피
어른이 되는 집
숫자에 불과한 것들
3부 그게 사랑이래요
미움 주머니
고독은 공간을 요한다
만두피 쪽지
누구든지, 클래식
붕어빵이 뭐길래
환영받지 못한 사람
4부 함께 살아가는 중입니다
안부를 묻는 사람들
배움을 응원하는 소리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좋음
너의 살던 고향은
쉬어갈 땐 여기 어때
에필로그 이상하고 아름다운 할머니 나라
역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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