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초자연적인 것’은 그저 ‘자연스러운 것’이 정체를 드러낸 것일 뿐!
에밀리 디킨슨의 편지들에는 꽃과 새, 계절 같은 친근한 소재에 추상적인 사고와 실존적인 주제들을 응축된 표현에 담은 간결한 스타일로 매우 현대적이고 독특한 감각을 보이는 시적인 문장들이 넘실거린다. “디킨슨의 편지들은 시인의 시 세계를 정의하는 특징들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위대한 시인이 아닌 가까운 친구이자, 삶의 동반자, 예술적 동지, 그리고 애달픈 연인으로서 디킨슨이 전하는 조심스러운 부탁이, 안타까운 고민이, 따뜻한 안부가, 당돌한 질문이, 그윽한 걱정이 어느 다정한 이의 속삭임처럼 시공간을 초월해 지금, 이곳에 도달하고 있었다. 시인이 신중하게 골라 쓴 단어들에 어린 설렘과 아쉬움의 감정에서 오히려 묵묵한 위로가 전해졌고, 때로는 그저 그 사랑스러운 편지를 정성스레 써나가는 모습을 옆에서 조용히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것 같았다.
-박서영, 「작품에 대하여」에서
로드 판사
디킨슨의 연인 로드 판사에게
히킨슨
오티스 로드는 시인의 아버지의 사상적 동지였는데 아내와 사별한 후에 디킨슨과 급격히 가까워졌다. “제 모든 삶은 (뺨은) 열기로 가득 차요. 당신의 황홀한 단어들-(넘실거리는 말들)-이 가까워지면.” 디킨슨이 로드 판사에게 보낸 격정적인 편지들은 수신인 측에서 제공한 것이 아니라 미발송의 초고들이 대부분이라 절절한 감정이 고스란히 담긴 ‘러브레터’가 되었다. “공기는 이탈리아만큼이나 부드럽지만, 그것이 저를 건드릴 때면 저는 한숨과 함께 그것을 내쳐버리죠. 당신이 아니니까요.”
디킨슨의 문학적 스승 히긴슨에게
토머스 히긴슨은 디킨슨 자신이 먼저 시적 스승으로 삼은 인물이다. “‘초자연적인 것’은 그저 ‘자연스러운 것’이 정체를 드러낸 것일 뿐이라고-” 그에게는 주로 문학적 관심사에 대한 주제가 많다. “제 관심은 둘레에 있어요-관습적인 것이 아닌, 모르는 것에 대해.” “제가 ‘통제되지 않는다’고 생각하시죠-제게는 재판정이 없어요.” “클수록-천천히 자라나네.”
홀랜드 부인
디킨슨이 속마음도 얘기했던 홀랜드 부인에게
엘리자베스 홀랜드는 디킨슨과 평생 돈독한 우정을 맺은 언론인이다. “가장 소중한 소유는 가장 덜 소유한 것에 있답니다.” 그녀에게는 가장 내밀한 감정과 평소의 생각들을 여과 없이 써 내려갔다. “인생은 가장 뛰어난 비밀! 그 비밀이 유지되는 한, 우리는 모두 속삭여야만 해요.”
새뮤얼 볼스
디킨슨의 조언자였던 언론인 볼스에게
수전 길버트
《스프링필드 리퍼블리컨》의 발행자로서 디킨슨이 존경했던 인물이다. “당신의 목소리는 우리 모두의 궁전이에요. ‘가까우면서도, 먼.’” 내면의 갈등과 혼란을 솔직히 전한 편지들이 많다. “믿는 만큼이나 열렬하게-의심하며.” 그러나 은둔자 시인의 도전적이고 역동적인 정신을 엿볼 수 있다. “도자기 같은 삶을 사는 누군가는 모든 것이 잘 되고 있다고 확인하고 싶어 하지요. 부서진 그릇더미 속에서 자신의 희망을 마주치지 않기 위해.”
디킨슨의 오빠와 결혼한 친구 수지에게
수지는 은둔자 시인이 자기 시를 가장 많이 보여준 문학 동지다. “우리만이 유일한 시인이고 나머지 사람들은 산문이라는 상상에 즐거워하는 우리 자신을 위해.” 학창 시절에 쓴 편지에는 문학소녀의 싱그러움이 느껴진다. “형태들은-고독함-그리고 빛과 그림자들, 각각이 하나의 고독이지.” 수지는 동갑내기 친구이자 디킨슨의 오빠와 결혼한 올케로서 서로의 삶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본 사이다. 그래서 일상의 위로와 평소의 생각이 많이 담겨 있다. “사랑하는 이들은 - 죽을 수 없어 -사랑은 불멸하니까 -아니 - 사랑은 신성하니까 -”
“그런데 정오가 되면 그 앙증맞은 꽃들이 웅장한 태양 앞에서 괴로워하며 고개를 숙인단다. 너는 이 목마른 꽃송이들에게 필요한 게 오로지 이슬뿐이라고 생각해? 아니야. 그 꽃들은 계속해서 태양을 향해 울부짖고, 불타오르는 정오를 갈망할 거야. 그것이 그들을 시들게 하고, 상처 입힐지라도. 그들은 조용히 견뎌냈어.”
-에밀리 디킨슨, 『결핍으로 달콤하게』에서
작가 소개
지은이 : 에밀리 디킨슨(Emily Dickinson, 1830~1886)
19세기 미국 대표 시인. 매사추세츠 애머스트에서 세 남매 중 둘째로 태어났다. 꽃과 새, 계절과 같은 구체적인 소재에 추상적인 사고를 연결하여 실존적이고 무거운 주제들을 응축된 문장에 담은 간결한 스타일로 매우 현대적이고 독특한 감각을 보인다.
디킨슨에게 시는 영혼의 호흡이었고 편지는 소통의 창구였다. 고전에 심취했지만 당대 출판된 책들도 꾸준히 읽었고, 기독교 신앙심이 깊었지만 청교도의 경직성에 반항적이었고, 여러 편집자들로부터 출판을 권유받았지만 출간에 회의적이었다. 점차 은둔자가 된 시인은 집 밖을 나가지 않으려고 심지어 아버지의 장지에도 따라가지 않았다.
그러나 독창적 은유와 기발한 상상력, 심오한 철학적 사유를 담은 그녀의 시 세계는 온 우주를 품었다. 『결핍으로 달콤하게』는 학창 시절 단짝들, 문학 상담을 해준 비평가, 사랑하는 연인 등에게 보내는 편지들이다. 이 서간집은 “시인의 시 세계를 정의하는 특징들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서 마치 한 권의 산문시로 된 자서전과도 같다.
옮긴이 : 박서영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영문학을 전공했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미국 애리조나대학교에서 현대 미국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건국대, 고려대, 한국외대, 한양대, 홍익대에 출강하고 있으며, 연구와 번역에도 전념하고 있다.
목 차
1부 어바이아 루트에게
끊임없이 탈주하는 계절들
마운트홀리오크 여학교
이 위대한 절망의 굴레
조그만 스승들
하지만 나는 집을 떠나지 않아
2부 수전 길버트에게
다시는 외로워지지 않을 거야
우리만이 유일한 시인이지
수심에 잠긴 슬픈 연둣빛
나는 그냥 희망만 가질래
하지만 나는 불평하지 않아
내게 빈 화폭이 있었더라면
어떤 총명함이 여기서 소멸했는가!
이 시가 더 마음에 들겠지!
이게 더 서늘한 느낌일까
사랑은 불멸하니까
네가 가라앉지 않도록
의식처럼 혹은 불멸처럼
아무도 그리워하지 않으려면
우리는 느리게 그 신비를 건너가지
태양의 회고록
3부 새뮤얼 볼스에게
여름이 멈추어 있어요
당신의 꽃은 천국에서부터 왔지요
제 연필을 부디 용서해 주세요
여전히 간절한 눈은
제게는 친구가 얼마 없어요
당신에게 말해야 했던 것들
고통의 해협을 통과하고 있네
부족한 것을 걱정하지 마세요
당신의 목소리
친구는 그 자체로 하나의 국가예요
말문은 막힌 채
배반은 결코 당신을 모릅니다
아버지의 초상
소심함
아버지의 기일에
가까우면서도, 먼
믿는 만큼 의심하며
어떠한 죽음도 없네
4부 홀랜드 부인에게
새로운 길들 위에서
‘시간과 분별력’에 대해서
설거지까지 하고 있어요
인생은 가장 뛰어난 비밀이죠
울타리가 유일한 피난처예요
안과 의사에게 탄원해 주세요
가장 의기양양한 새
그의 감옥은 얼마나 부드러운가
나의 미인은 날개가 없네
위대한 불멸
모든 존재는 그대 안에 존재하리라
각자가 하나의 세계였으니까
5부 T. W. 히긴슨에게
시가 숨을 쉰다고 생각하신다면
선율처럼 혹은 마술처럼
제게는 재판정이 없어요
저는 멈출 수가 없어요
저 스스로는 통치할 수 없어요
손해라는 시험을 견뎌야 하네
버틸 수 없는 감옥에서
클수록 천천히 자라나네
시간은 통증을 시험할 뿐
편지는 불멸입니다
셰익스피어가 존재하는 한
‘아버지’라고 부르는 우주
불멸의 경험
사랑스럽게 불경한 것들
논리에 의해 방어될 수 없지만
그 귀여운 도망자의 행로
바라는 것조차 두려워했던 행복
시인이었던 야곱
6부 로드 판사에게
사랑은 애국자예요
내 극한의 항해의 표시
천사 같은 말썽꾸러기여
가장 반항적인 단어
당신의 황홀한 단어들
결핍으로 달콤하게
그 작은 즐거운 신
그 고통스러운 달콤함
두려움이 찾아온 순간에
그보다 더 사랑스러운 것은
애정이 불만을 갖지 않도록
감정을 휘몰아치게 하는 그 말
서랍장에 넣어 놓은 화약처럼
오늘밤 당신의 손에
작품에 대하여: “편지는 지상의 기쁨”
역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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