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나무를 깎아 사물을 만들고
이야기를 전달하는 작업자의 삶
“내가 좋아서 시작한 목공,
나를 매혹하는 나무를 다루는 일”
대전에는 ‘이리히 스튜디오’라는 나무 작업실이 있다. 함혜주는 매일 아침 이곳으로 출근하여 저녁까지 나무를 깎는다. 주문받은 가구도 만들고 목공 클래스도 열지만, 함혜주가 가장 좋아하는 일은 조각 작업에 몰두하는 것이다. 미대에서 디자인을 전공하고, 일본에서 유리공예도 배우며 삶의 방향을 고민하던 그가 마침내 만난 재료는 ‘나무’였고, 곧 나무에 완전히 매혹되었다. 함혜주는 남은 인생을 오로지 나무 작업만 하면서 살고 싶다는 다짐으로 작업실을 열고 나무를 깎으며 ‘살고 싶은 인생’과 ‘살아가는 인생’이 일치하도록 애쓰는 중이다. 『나무를 다루는 직업』은 저자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묵묵히, 성실하게 하며 차근차근 꿈을 이뤄가는 이야기와 그 과정에서 부딪힌 현실적 어려움과 고뇌 등을 담고 있다. 일을 통해 성장하며 자신이 원하는 삶에 보다 가까워지고자 하는 이야기로, 마음산책에서 펴내는 직업 이야기의 열한 번째 책이다.
좋아하는 나무를 매일 만지며 먹고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라고 스스로 위로하면서도 깊은 회의감에 젖었다. 망망대해에서 좌표를 잃은 항해사처럼 불안에 떨던 어느 날에 알았다. 한 사람의 인생은 하나가 아니라는 걸. 자신이 살고 싶은 인생, 자신이 살지 못한 인생을 동반하여 평생을 살아간다는 걸 깨달았다. 그렇지만 여전히, 내 안에서 명멸하며 빛나는 것들을 고집스럽게 응시하면서 두 개의 인생이 같아지기를 원했다. 살고 싶은 인생이 살지 못한 인생이 되지 않도록, 내 자아와 세상이 완전히 하나가 되도록 그치지 않고 이상을 좇았다. (…) 비로소 여기 회색 지대에서 내 일과 삶을 담은 가슴 절절한 직업의 이름을 찾았다. 나의 직업은 나무를 다루는 직업이다. _「책머리에」에서
“나를 자연계로 상징할 수 있다면 단연 나무이길 바랐다”
삶과 작업의 일치를 꿈꾸다
함혜주는 자신을 ‘목수’라고 부르는 것을 주저한다. 나무를 좋아하고, 나무가 자신과 잘 맞는 재료라고 확신하지만 가구를 만들어 상품으로 파는 일을 생업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나무의 속성을 잘 이해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나무라는 매개체에 담아 전하고 싶어 한다. 이에 ‘나무 작업자’ ‘목조각가’라는 이름을 더욱 편안하게 여긴다. 함혜주가 특히 매력을 느끼는 작업은 ‘아트퍼니처’로 일상에서 접하는 생활 가구와는 다른 자유로운 형태와 크기를 지닌, 디자인과 예술을 넘나드는 가구를 가리킨다. 그러나 아트퍼니처 작업에만 몰두하기에는 현실이 녹록치 않았다. 꿈꾸던 작업자의 삶을 시작한 후에도 대출금 상환과 생계유지라는 현실 앞에서 원하는 만큼 작업에만 집중하기는 어려웠기 때문이다. 함혜주는 정부의 창업기반지원자금을 받아 작업실을 꾸린 뒤 밤낮없이 일하며 대출금을 상환했다. 대출 이자가 낮아 바로 갚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함혜주에게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삶을 사는 것이 더욱 중요했던 것이다. 즉 그에게 직업이란 생계 수단을 넘어, 자신이 원하고 좋아하는 일을 통해 스스로 삶을 이끌어가고 있다는 감각을 느끼게 해주는 기반이다.
살아가는 방식이 작업 방식과 일치하니 조각은 나의 기질과 가장 잘 맞는 작업이었고, 재미난 고통이자 비명 같은 환호였다. 일이 있든 없든, 시간에 쫓기거나 누군가가 재촉하지 않는데도 계속 깎았다. 자발적으로 주도하는 것 같지만, 어떤 면에서는 내가 일방적으로 작업에 의지하고 있는 꼴이었다. 그만큼 이 일은 나와 밀착되어 있었다. _112쪽
나무를 다루는 일을 하며 겪는 어려움은 생계뿐만이 아니다. 목공은 여전히 남자들의 직업이라는 인식이 크기에 당황스러운 일을 겪은 적도 여러 번이었다. 목재를 배달하는 화물 택배 기사의 의아한 눈빛, 작업복 광고모델로 섭외되었지만 정작 여성 사이즈의 작업복은 판매하지 않아 살 수 없었던 일화, 여성으로서 차별을 경험한 적은 없는지 매번 묻는 인터뷰 질문까지 함혜주는 자주 자신이 여자임을 실감해야 했다. 그럴 때마다 그는 아직 여성 목공 작업자가 낯선 현실을 깨닫고, 자신의 행동이 변화에 보탬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여 매 인터뷰마다 신중하게 답변을 쓰곤 했다. 자신의 일을 성실하게 함으로써, 여성의 직업에 관한 인식을 넓혀가는 데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무엇인가를 탐색할 때 자신이 알고 있는 비슷한 대상을 비교군으로 삼고 관찰하고 정의한다. 남자 화가에 기준을 두고 여자 목수를 정의할 수 없듯이 여자 목수의 비교 대상은 필연적으로 남자 목수여야 하는 것이다. 이제껏 숱하게 받아온 질문들은 이전부터 분명히 존재해왔지만, 눈에 띄지 않았던 그들이 조금씩 눈에 띄기 시작하면서 아직은 낯설어서, 익숙하지 않아서, 잘 몰라서, 궁금해서, 알기 위해서 비슷한 대상과 비교해야 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_58쪽
홀로 작업실에 있지만
혼자 일하지는 않는다
주로 홀로 작업실에서 일에 몰두하는 시간이 많기에, 함혜주에게 작업하는 동료의 존재는 각별하다. 멀리 떨어져 있더라도 ‘나무’라는 공통점은 강한 유대감을 느끼게 해준다. 함혜주는 스승과 동료들을 통해 작업하는 마음을 새롭게 다잡고, 더욱 성숙한 작업을 하고 싶다는 의지를 다지곤 한다. 목공 기술을 연마하는 과정은 고되지만, 곁에 동료가 있다면 결코 외롭지만은 않다. 고독과 자부심을 공유하는 누군가가 있다는 깨달음 덕분이다.
기술을 익히는 과정이 고될수록, 그 시간이 길어질수록, 지쳐 나가떨어지지 않고 해낸 자의 자부심은 하늘을 찌른다. 특히 목수의 자부심이 그렇다. 애석하게도 부단한 노력 끝에 체득한 기술은 목수의 기본 소양일 뿐 자랑거리는 아니다. 나무라는 재료를 가지고 일상의 사물을 만들기 위해 갖춰야 하는 능력이지 그 자체가 최종 목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_205~206쪽
함혜주의 일상은 단조롭다. 번거로운 일을 벌이지 않으며, 매일 아침저녁으로 작업실에 오가는 루틴을 지킨다. 작업할 시간을 1분이라도 더 확보하기 위해서이다. 아직 젊은 작업자이지만, 마음껏 작업을 하기에는 생이 짧다고 느낀다. 조급함 느껴질 때마다 함혜주는 종종 위대한 예술가들의 생애를 떠올리며 그들의 마지막 작품을 생각한다. 자신 역시 생의 마침표를 찍는 순간 평생 그려왔던 ‘그 작품’을 완성할 수 있으리라 다짐한다. 전 생애를 공들여 작품에 바치는 삶, 함혜주가 나무를 다루며 꿈꿔온 일과 삶일 것이다. 시간을 들여 깊어져갈 한 ‘장인’의 세계를, 이 책을 통해 미리 엿볼 수 있다.
작가 소개
함혜주
일과 놀이와 꿈이 같아 노상 나무를 손에 쥐고 살고 있다. 성신여자대학교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하고, 도쿄유리조형연구소에서 유리공예를 배웠다. 나무의 물성에 반해 목공방 문턱을 넘은 지 2년 뒤 본격적으로 작업자의 삶을 시작했다. 첫 번째 작업실에서 6년간 가구와 소품을 제작하며 교육을 했고, 두 번째 작업실에서는 목조각 작업만 하고 있다. 관심사도 많지 않고 사는 방식도 단순하다. 해 뜨고 질 때까지 나무를 깎으며 이따금 인적 드문 숲이나 대청호에 찾아가 정서적 여백을 즐긴다. 19년째 일기를 쓰고 있으며 일기에 풀어놓은 관념과 심상을 나무에 담고 있다. 대전에서 이리히 스튜디오를 운영 중이다.
목 차
책머리에 | 회색 지대에서
1. 나무 이야기
나무 작업자의 아포리아
확신에 가득 찬 얼굴에서는 윤이 난다
교복 입은 학생의 등굣길만 같아라
그 많던 작품은 다 어디로 갔을까
나 홀로 작업실에, 너 홀로 작업실에
2. 작업실 일대기를 쓴다면
달과 6펜스
좋은 물건과 좋은 관계를 맺는 삶
정신과 시간의 방
사물을 빚고, 만드는 삶
나오시마에서 너에게
3. 봄을 준비하는 겨울나무
매서운 현실
봄을 준비하는 겨울나무처럼
예고편 없는 드라마
속초에서 온 소녀
이화에 월백하고
아날로그 손맛
4. 좋아하는 일을 제법 잘하고 싶다
산벚나무 시계함
스승님의 작업실
톱밥과의 전쟁
아버지의 시선
안전 목공 합시다
엄마의 식탁
5. 삶의 경이
마지막 작품
작품들
역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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