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누구 하나 치우침 없는’ 아빠와 일곱 살 딸,
상호 존중하는 동등한 여행 파트너
“우리는 짙어진 피부색만큼 이곳에 스며들었다.”
일하는 사람, 직업인으로서 정승민의 면모도 이 책을 통해 엿볼 수 있다. 그는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TRVR을 운영하는 동시에 글로벌 브랜드의 플래그십 스토어를 설계하는 프로젝트를 맡기도 하는 등 이미 알 만한 사람은 모두 아는 실력파 디자이너. 한 아이의 아빠이기 이전에 개인으로서 삶의 기본 자세, 주변 사람들과 자연을 대하는 태도, 디자이너로서의 감각과 직업인으로서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고민 등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늘 자기 자신을 엄격한 기준으로 몰아붙이느라 달고 살던 만성 두통을 이곳에 와서야 비로소 시원한 물보라에 날려 보낼 수 있었다는 고백은, 그가 그동안 얼마나 치열하게 일하고 또 살아왔는지를 짐작하게 한다. 이역만리 풀리아에 도착해서도 에메랄드빛 바다를 눈앞에 두고 왠지 모를 불안함을 느끼며 이메일을 확인하기 바빴던 정승민. 이번 여행은 그에게 일과 가족, 무엇보다 바쁘게 살아온 자기 자신의 삶에 대해 충분히 돌아보는 시간이 되었다. ‘재충전’이 아닌 ‘방전’에 가까운 에너지를 쓰면서도 지치기보다는 오히려 채워지는 것이 더 많았다. 아이와 온전히 함께 보낸 열흘이라는 시간을 통해 내면에 여전히 존재하는 소년을 확인하고, 천진하게 웃고 즐기며 이곳에 완벽히 스며들었다. 날씨는 무덥다못해 모든 것을 녹여버릴 듯 맹렬하지만, 발걸음만은 경쾌하게 남부 이탈리아 이곳저곳을 누비는 부녀의 모습에서 잔잔한 감동이 피어난다.
비행기 삯만 간신히 부모님께 손을 벌려 찾았던 이십대 초반의 유럽과 20년이 지난 지금 사랑하는 딸의 손을 잡고 찾아온 이탈리아의 모습이 곳곳에서 겹쳐진다. 커피 맛도 몰랐던 어린 정승민은 이제 라이프스타일 브랜드와 더불어 카페를 함께 운영할 정도로 전문가가 되었다. 도시 자체가 하나의 커다란 영감이었던 이탈리아의 곳곳을 이번에는 딸에게 하나하나 설명하고 안내한다. 좁은 골목 사이사이 곳곳을 누비며 작은 꽃 하나, 건물의 색깔과 문양, 길에서 만난 고양이 등 두 사람의 시선이 닿는 곳마다 이야깃거리가 무궁무진하다.
특히, 이 책을 먼저 읽은 뮤지션 이상순의 추천처럼 “누구 하나 치우침 없이” 여행을 즐기는 부녀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어린 딸이라고 해서 무조건 아빠의 마음대로 결정하고 그대로 따르게 하지 않는다. 여행지를 정하는 일부터 세심하게 아이의 생각을 듣고 의견을 조율해나가며, 커피를 먹어보고 싶다는 아이에게 안 된다는 말 대신 한 스푼 떠서 직접 먹어보게 하는 등 정승민의 소통 방식은 많은 울림을 준다. 아이가 수동적으로 아빠의 지시에 맞춰 움직이는 방식이 아니라, 무엇이든 호기심을 갖고 스스로 도전해볼 수 있도록 언제나 믿고 기다려주었다. 때로는 리사가 오히려 아빠보다 의젓하게 앞장서 낯선 길을 안내하는 장면은 그야말로 중의적인 의미를 갖는다. 두 사람은 서로 상호 존중하는 동등한 여행 파트너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
모든 것을 녹여버릴 듯한 뜨거운 태양
하늘만큼 깊고 푸른 에메랄드빛 바다
아름다운 남부 이탈리아 풍경을 고화질로 선명하게 담은 화보까지
여기에 정승민이 직접 찍은 수준급 사진 속 넘실대는 파도와 건강하게 그을린 피부의 사람들은 우리를 당장이라도 그곳으로 떠나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한다. 평소에도 늘 가지고 다니는 카메라로 포착한 도시의 풍경과 일상의 순간을 업로드한 그의 SNS에는 게시물마다 뜨거운 댓글이 쇄도하고, 최근에는 갤러리에서 주최하는 사진 전시에 참여할 만큼 그의 실력은 전문 포토그래퍼 못지않다. 이 책에서 역시 고대 역사와 중세 유적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모노폴리 작은 마을의 풍경들을 구석구석 고화질로 선명하게 감상할 수 있음은 물론이고, 아빠의 뛰어난 감각과 애정으로 바라본 리사의 자유롭고 해맑은 표정은 그 웃음소리가 들리는 듯 생생하다.
책의 마지막에는 이탈리아와 풀리아 지방의 지도를 수록하여 책에서 부녀가 함께 방문한 스팟을 표기했다. 지도 위에서 각각의 대략적인 위치와 거리를 가늠해볼 수 있으며, 두 사람의 이동경로를 살펴보는 것도 또 하나의 재미 포인트다. 만약 이 여행기를 읽고 비슷한 여행을 추진하고자 하는 이들에게는 보다 친절한 안내가 되어줄 것이다.
모든 것을 녹여버릴 기세로 작열하는 이탈리아의 여름 햇살만큼이나 뜨겁고 강렬했던 추억. 사랑이 넘치고 모든 발걸음이 도전이었던, 이 아름답고 특별한 여행기를 세상에 선보이는 마음에는 설렘이 가득하다. 마지막 책장을 덮고 나면 마치 한 편의 단편영화를 감상한 것만 같은 아름다운 기분이 분명 뜨겁게 남을 것이다.
작가 소개
정승민
대구에서 태어나 유년 시절을 보냈다. 디자이너를 꿈꾸며 서울로 상경해 전 세계를 여행하면서 디자인을 공부했다. 대학 졸업 후 디자인 회사에서 2년 동안 근무한 뒤, 2010년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TRVR과 2018년 Cafe TRVR을 론칭하여 현재까지 운영하고 있다.
2015년 모델 장윤주를 만나 운명 같은 결혼을 했으며, 2017년 딸 리사가 태어났다. ‘여행자(Traveler)’를 뜻하는 TRVR에서 전하는 메시지와 같이, “일상을 밀도 있게, 일상을 여행처럼” 살아가는 것에 대해 늘 고민하고 있다. 여행을 진심으로 즐기며, 여행하며 만나는 다양한 장면들을 사진과 글로 기록한다.
목 차
시작하기에 앞서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할까
올림픽대로 위의 택시 기사님
일곱 시간 삼십 분, 520킬로미터
에스프레소와 흰 우유
첫 바다 수영, 첫 오레키에테, 그리고 첫 올리브
자연스럽고 근사한 복장으로
길을 잃어버리기로
올리브 농장 옆 워터파크
맨발로, 바다까지
내 마음을 이곳에 두고 왔다
일 돌체 파르 니엔테!
다시 제자리로 가야 할 때
스물다섯 살의 내가 본 것들
리사의 시간은 나의 기억 속에서
에필로그
역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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