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죽어감과 죽음은 인간 삶의 변치 않는 특징에 속한다. 그것은 인간 존재의 일부이며, 우리 삶의 본질은 우리의 죽음을 가꾸어가는 지속적인 도전에 있다.”-미셀 몽테뉴
첨단 의학 시대에 ‘죽음’을 다시 생각하다
『우리는 어떻게 죽고 싶은가』(원제 Wie wollen wir sterben?)는 첨단 의학 시대에 우리가 알아야 할 새로운 죽음의 문화를 통찰하는 책이다. 저자인 미하엘 데 리더Michael de Ridder는 30여 년 동안 독일 의료 현장의 응급실과 중환자실에서 일한 베테랑 내과 의사다. 그는 자신이 함께한 수많은 말기 환자와 임종 환자들의 사례를 통해 ‘우리는 어떻게 죽고 싶은가’ 하는 존엄사의 문제를 정면에서 다룬다. 특히, 죽음을 의학적 실패로 간주하는 대다수 의사들의 인식과 태도를 비판하며, 현재의 첨단 의학이 죽음을 삶의 한 부분으로서 받아들이고 가꾸는 데 기여하는 완화의학으로 점차 바뀌어야 한다고 호소한다. 미하엘 데 리더의 문제의식은 첨단 의학의 한계에서 출발한다. 20세기 중반에 시작된 의학 혁명은 우리의 삶과 죽음의 모습을 획기적으로 바꾸었다. 효능이 뛰어난 의약품과 첨단 의료 장비의 개발로 수많은 사람들이 불치의 질병에서 해방되었다. 병의 공격과 육체의 몰락을 막고, 노화와 죽음을 지연시킬 강력한 수단과 기술을 보유하게 되었다. 심지어 유전 공학의 발전으로 일부 질병의 완전한 ‘정복’까지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첨단 의학 기술은 동시에 어두운 면도 보여준다. 소생술과 연명 치료 같은 수단을 통해 죽음을 삶의 한 과정에 포함된 자연스런 부분이 아니라, 그 자체로 관리되고 통제받고 조절되어야 하는 의학적 목표로 만들었다. 이에 따라 많은 환자들이 예전 같으면 평화롭고 자연스런 죽음을 맞았을 상황에서 고통스럽게 삶을 연장하는 모순을 겪게 되었다. 생명 연장이라는 기치 아래서 말이다. 특히, 저자는 첨단 의학의 모순이 지속식물상태(뇌를 다친 후 식물상태가 1년 이상 지속될 때, 산소 부족으로 인한 뇌 손상이 6개월 이상 지속되는 경우)에서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현대 의학이 아니었다면 환자들이 그런 상태에 빠지는 일이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환자들도 존중받아 마땅한 살아 있는 사람들이지만, 사실은 ‘의학적 공예품’에 가깝다. 인간 공동체와 주변 세계에 다시 참여할 전망이 전무한 완전한 의존 상태에서 단순히 목숨만 유지하는 삶, 기나긴 침묵과 고립 속에서 살아가도록 강요받는 그런 삶이야말로 일종의 학대다. 이러한 문제의식 하에서 저자는 과연 ‘의사의 의무는 무엇일까’ 하는 근본적인 물음을 던진다.
의료 행위의 목표는 결코 가치중립적이지 않다. 오히려 환자 개인과 환자의 총체적인 행복을 언제나 주시해야 하는 가치판단의 지배를 받는다. 그러나 오늘날의 의학은 전문 분야(심장학)와 특수 분과(심장학의 분과로서 순환학)로 분해되었다. 환자들이 장기와 기능 체계로 분해된 것처럼. 환자를 장기와 신체의 부분 체계로 바라보는 시선은 환자들의 평화로운 죽음까지 배려해야 할 의사의 의무를 정반대로 뒤집어 많은 환자들이 잔인하고 고통스런 죽음을 맞도록 만들었다. (본문 41쪽)
저자가 보기에, 모든 것이 가능해 보이는 의학 기술의 세계에서 의사들은 자신들을 오로지 병을 치료하는 사람으로만 생각한다. 하지만 더 이상의 치료 방법이 없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의사들은 죽어가는 환자를 온갖 수단을 동원해 살려둘 것이 아니라, 도저히 가망이 없는 상태에서는 평화롭게 죽게 해주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바로 그것이 동행자로서, 환자를 돌보는 사람으로서 의사가 해야 할 역할이다. 하지만 현실은, 의사들이 환자들의 의사를 무시하고 의학적, 기술적으로 가능한 모든 수단에 매달리는 경우가 많다. 그런 식으로 의미 없는 생명 연장과 고통스런 죽음의 지연에 기여한다. 그러나 생명 연장은 결코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의사에게는 치료 의무와 함께 ‘좋은 죽음’을 맞도록 돕는 의무도 아주 중요하다.
인간 존엄과 환자의 자기결정권, 그리고 완화의학의 적극적 실천
그렇다면 “장기와 신체의 부분 체계로만 바라보는 경직된 시선”에서 벗어나 환자들의 요구와 소망을 충족시키는 의학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 우선, 평화로운 죽음의 허용과 관련해 저자가 이 책에서 가장 강조하는 것은 환자의 ‘자기결정권’이다. 자기결정권이야말로 인간 존엄의 핵심이라고 말한다. 삶의 마지막 순간에 대한 설계에서 인간의 존엄은 자기결정권을 통해서만 구현될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환자는 그럴 기회가 허락되고, 자신이 권리를 행사하길 바라는 한 임종을 자기 뜻대로 설계할 자유가 있다. 그 자유의 한계는 오직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데 있을 뿐이다. (본문 227쪽)
저자는 독일 내의 ‘사전의료지시서’에 관한 법률 논쟁을 소개함으로써 이 법의 중요한 원칙인 자기결정권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더 이상의 치료가 불가능할 경우 의사는 환자가 미리 작성해둔 ‘사전의료지시서’에 따라 치료를 거부하거나 심지어 죽음을 허용해달라는 환자의 의사를 존중해야 한다. 환자에게 진정으로 성숙하고 타당성 있는 사전의료지시서는 “작성자가 마음의 준비가 되고, 스스로에게 묻고, 충분한 정보를 얻고, 신뢰할 만하고 전문적인 상담 가능성을 알고 있을 때 온전히 완성된다.”(본문 238쪽) 나아가 그 과정은 자신의 죽음에 대해 자신과 진지하게 대화하는 데서 시작된다.
환자의 자기결정권 존중과 함께 중요한 것이 완화의학의 실천이다. 완화의학이란, 병의 치유와 생명 연장을 목표로 하지 않고 중환자와 임종 환자의 상태를 전체적으로 편안하게 유지하는 데 주안점을 두는 의학이다. 사실, 20세기 초만 해도 환자의 병에 관심을 보이고 적절한 치료 수단을 통해 고통을 덜어주고 위로하고 용기를 북돋워주는 의학, 다시 말해 고통받는 환자, 회복기의 환자, 죽어가는 환자라는 한 인간 전체를 중심에 둔 의학이 의료 행위의 핵심이었다. 그러나 스스로를 점점 과학자로 이해하게 된 의사들은 진단과 치료 과정에서 주로 병이라는 객체에 집중하게 되었다. 병에 걸린 주체인 인간, 통증과 불안처럼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없고 객관화할 수 없는 상태에 빠진 인간은 점점 더 방해 요소가 되어 뒷전으로 밀려났다. 죽음에는 왕도가 없지만, 완화의학이야말로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환자가 자신의 죽음을 준비할 수 있고 갈등 없이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해주기 때문이다. 이 밖에도 저자는 인공영양 같은 환자의 의사에 반하는 연명 치료의 중단, 형식적이고 비인간적인 간병 시스템 개선, 모르핀 등의 처방을 통한 적극적인 통증 치료 실시, 환자 관리에 구조적 결함을 안고 있는 병원 시스템 혁신 등을 주장한다. 특히, 저자는 영양 공급을 위한 튜브 삽입은 간병이 아니라 치료 목적의 개입임을 분명히 한다. 따라서 다른 치료법들과 마찬가지로 환자의 동의가 반드시 필요하다. 특히 임종 시에 믿을 만한 간병 인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를 들어 대체 행동으로 인공영양을 선택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평화로운 죽음의 허용, 우리는 어떤가?
최근 우리 사회에서도 ‘삶을 존엄하게 마감할 권리’를 찾기 위한 움직임이 일고 있다. 사단법인 ‘한국골든에이지포럼’(공동대표 이성낙)에서 펼치고 있는 ‘사전의료의향서 받기 운동’이 그것이다. 사전의료의향서는 이 책에서 미하엘 데 리더 교수가 말하는 사전의료지시서와 비슷한 개념이다. 즉, 죽는 시기를 늦추는 것 외에 아무런 의미가 없는 치료라고 의료진이 판단하면 심폐소생술이나 생명 유지 장치 등을 사용하는 연명 치료를 거부하고 환자 자신이 삶을 존엄하게 마감할 권리가 있음을 분명하게 밝히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에게 아직까지 환자의 완전한 자기결정권을 인정하고 ‘평화로운 죽음’을 허용하는 구체적인 법률 제정은 요원해 보인다. 법적이고 제도적인 논의에 앞서 죽음에 대한 논의 자체를 터부시하는 우리의 경직성부터 풀어낼 필요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최근에 불거지고 있는 ‘죽음의 절차’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갈등 해결의 단초를 마련하고, ‘존엄하게 삶을 마감할 권리’에 대한 의학적, 사회적, 제도적 논의의 틀을 잡아가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의사들을 비롯한 의료 산업 종사자, 말기 환자와 그 가족들은 물론, 기대수명 100세 시대에 ‘존엄한 죽음’을 생각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책이다.
▣ 작가 소개
저자 : 미하엘 데 리더 Michael de Ridder
30여 년 동안 의사로 활동해온 독일의 응급의료 전문가. 베를린 중앙병원 응급센터 책임자인 그는 예순세 살의 나이에도 매일 위급한 환자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사투를 벌이고 있다. ‘한스 요하임 & 캐테 슈타인 완화의학재단’ 이사장으로서, 완치가 어려운 환자와 가족의 고통을 줄이고 삶과 죽음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한 ‘완화의학’을 직접 실천하고 있다. 미래 의료정책에 기여한 공로로 2009년에는 ‘오시프 플레이트하임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죽음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호소하는 그는, 첨단 의학 시대에 걸맞은 죽음에 관한 의학윤리와 치료 과정에서 지켜져야 할 환자의 권리를 재정립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역자 : 이수영
성균관대학교 독문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쾰른 대학교에서 문학과 철학을 공부했다. 현재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지금까지 옮긴 책으로 『음악의 역사』, 『나눔의 즐거움』, 『양의 탈을 쓴 가치』, 『콤플렉스의 탄생』, 『예술가들의 불멸의 사랑』, 『이웃집에 생긴 일』, 『청소년을 위한 환경 교과서』, 『빨간 양털 조끼의 세계 여행』 등이 있다.
▣ 주요 목차
추천사
머리말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한다
심장사와 뇌사 사이
임종 환자에 대한 인공영양
간병을 받으면서도 비참한 죽음을 맞는 노약자들
처방된 고통, 통증 치료의 실패
때가 되면 우리가 전화하겠습니다!
저는 제 아들을 사랑하지만 아들이 제 소유는 아닙니다
자기가 없는 사람
인간의 의사
마지막까지 희망의 끈을 놓지 않다
완화의학의 경계
죽음을 받아들이고 죽음을 가꾸기
옮긴이의 말
용어 설명
“죽어감과 죽음은 인간 삶의 변치 않는 특징에 속한다. 그것은 인간 존재의 일부이며, 우리 삶의 본질은 우리의 죽음을 가꾸어가는 지속적인 도전에 있다.”-미셀 몽테뉴
첨단 의학 시대에 ‘죽음’을 다시 생각하다
『우리는 어떻게 죽고 싶은가』(원제 Wie wollen wir sterben?)는 첨단 의학 시대에 우리가 알아야 할 새로운 죽음의 문화를 통찰하는 책이다. 저자인 미하엘 데 리더Michael de Ridder는 30여 년 동안 독일 의료 현장의 응급실과 중환자실에서 일한 베테랑 내과 의사다. 그는 자신이 함께한 수많은 말기 환자와 임종 환자들의 사례를 통해 ‘우리는 어떻게 죽고 싶은가’ 하는 존엄사의 문제를 정면에서 다룬다. 특히, 죽음을 의학적 실패로 간주하는 대다수 의사들의 인식과 태도를 비판하며, 현재의 첨단 의학이 죽음을 삶의 한 부분으로서 받아들이고 가꾸는 데 기여하는 완화의학으로 점차 바뀌어야 한다고 호소한다. 미하엘 데 리더의 문제의식은 첨단 의학의 한계에서 출발한다. 20세기 중반에 시작된 의학 혁명은 우리의 삶과 죽음의 모습을 획기적으로 바꾸었다. 효능이 뛰어난 의약품과 첨단 의료 장비의 개발로 수많은 사람들이 불치의 질병에서 해방되었다. 병의 공격과 육체의 몰락을 막고, 노화와 죽음을 지연시킬 강력한 수단과 기술을 보유하게 되었다. 심지어 유전 공학의 발전으로 일부 질병의 완전한 ‘정복’까지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첨단 의학 기술은 동시에 어두운 면도 보여준다. 소생술과 연명 치료 같은 수단을 통해 죽음을 삶의 한 과정에 포함된 자연스런 부분이 아니라, 그 자체로 관리되고 통제받고 조절되어야 하는 의학적 목표로 만들었다. 이에 따라 많은 환자들이 예전 같으면 평화롭고 자연스런 죽음을 맞았을 상황에서 고통스럽게 삶을 연장하는 모순을 겪게 되었다. 생명 연장이라는 기치 아래서 말이다. 특히, 저자는 첨단 의학의 모순이 지속식물상태(뇌를 다친 후 식물상태가 1년 이상 지속될 때, 산소 부족으로 인한 뇌 손상이 6개월 이상 지속되는 경우)에서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현대 의학이 아니었다면 환자들이 그런 상태에 빠지는 일이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환자들도 존중받아 마땅한 살아 있는 사람들이지만, 사실은 ‘의학적 공예품’에 가깝다. 인간 공동체와 주변 세계에 다시 참여할 전망이 전무한 완전한 의존 상태에서 단순히 목숨만 유지하는 삶, 기나긴 침묵과 고립 속에서 살아가도록 강요받는 그런 삶이야말로 일종의 학대다. 이러한 문제의식 하에서 저자는 과연 ‘의사의 의무는 무엇일까’ 하는 근본적인 물음을 던진다.
의료 행위의 목표는 결코 가치중립적이지 않다. 오히려 환자 개인과 환자의 총체적인 행복을 언제나 주시해야 하는 가치판단의 지배를 받는다. 그러나 오늘날의 의학은 전문 분야(심장학)와 특수 분과(심장학의 분과로서 순환학)로 분해되었다. 환자들이 장기와 기능 체계로 분해된 것처럼. 환자를 장기와 신체의 부분 체계로 바라보는 시선은 환자들의 평화로운 죽음까지 배려해야 할 의사의 의무를 정반대로 뒤집어 많은 환자들이 잔인하고 고통스런 죽음을 맞도록 만들었다. (본문 41쪽)
저자가 보기에, 모든 것이 가능해 보이는 의학 기술의 세계에서 의사들은 자신들을 오로지 병을 치료하는 사람으로만 생각한다. 하지만 더 이상의 치료 방법이 없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의사들은 죽어가는 환자를 온갖 수단을 동원해 살려둘 것이 아니라, 도저히 가망이 없는 상태에서는 평화롭게 죽게 해주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바로 그것이 동행자로서, 환자를 돌보는 사람으로서 의사가 해야 할 역할이다. 하지만 현실은, 의사들이 환자들의 의사를 무시하고 의학적, 기술적으로 가능한 모든 수단에 매달리는 경우가 많다. 그런 식으로 의미 없는 생명 연장과 고통스런 죽음의 지연에 기여한다. 그러나 생명 연장은 결코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의사에게는 치료 의무와 함께 ‘좋은 죽음’을 맞도록 돕는 의무도 아주 중요하다.
인간 존엄과 환자의 자기결정권, 그리고 완화의학의 적극적 실천
그렇다면 “장기와 신체의 부분 체계로만 바라보는 경직된 시선”에서 벗어나 환자들의 요구와 소망을 충족시키는 의학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 우선, 평화로운 죽음의 허용과 관련해 저자가 이 책에서 가장 강조하는 것은 환자의 ‘자기결정권’이다. 자기결정권이야말로 인간 존엄의 핵심이라고 말한다. 삶의 마지막 순간에 대한 설계에서 인간의 존엄은 자기결정권을 통해서만 구현될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환자는 그럴 기회가 허락되고, 자신이 권리를 행사하길 바라는 한 임종을 자기 뜻대로 설계할 자유가 있다. 그 자유의 한계는 오직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데 있을 뿐이다. (본문 227쪽)
저자는 독일 내의 ‘사전의료지시서’에 관한 법률 논쟁을 소개함으로써 이 법의 중요한 원칙인 자기결정권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더 이상의 치료가 불가능할 경우 의사는 환자가 미리 작성해둔 ‘사전의료지시서’에 따라 치료를 거부하거나 심지어 죽음을 허용해달라는 환자의 의사를 존중해야 한다. 환자에게 진정으로 성숙하고 타당성 있는 사전의료지시서는 “작성자가 마음의 준비가 되고, 스스로에게 묻고, 충분한 정보를 얻고, 신뢰할 만하고 전문적인 상담 가능성을 알고 있을 때 온전히 완성된다.”(본문 238쪽) 나아가 그 과정은 자신의 죽음에 대해 자신과 진지하게 대화하는 데서 시작된다.
환자의 자기결정권 존중과 함께 중요한 것이 완화의학의 실천이다. 완화의학이란, 병의 치유와 생명 연장을 목표로 하지 않고 중환자와 임종 환자의 상태를 전체적으로 편안하게 유지하는 데 주안점을 두는 의학이다. 사실, 20세기 초만 해도 환자의 병에 관심을 보이고 적절한 치료 수단을 통해 고통을 덜어주고 위로하고 용기를 북돋워주는 의학, 다시 말해 고통받는 환자, 회복기의 환자, 죽어가는 환자라는 한 인간 전체를 중심에 둔 의학이 의료 행위의 핵심이었다. 그러나 스스로를 점점 과학자로 이해하게 된 의사들은 진단과 치료 과정에서 주로 병이라는 객체에 집중하게 되었다. 병에 걸린 주체인 인간, 통증과 불안처럼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없고 객관화할 수 없는 상태에 빠진 인간은 점점 더 방해 요소가 되어 뒷전으로 밀려났다. 죽음에는 왕도가 없지만, 완화의학이야말로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환자가 자신의 죽음을 준비할 수 있고 갈등 없이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해주기 때문이다. 이 밖에도 저자는 인공영양 같은 환자의 의사에 반하는 연명 치료의 중단, 형식적이고 비인간적인 간병 시스템 개선, 모르핀 등의 처방을 통한 적극적인 통증 치료 실시, 환자 관리에 구조적 결함을 안고 있는 병원 시스템 혁신 등을 주장한다. 특히, 저자는 영양 공급을 위한 튜브 삽입은 간병이 아니라 치료 목적의 개입임을 분명히 한다. 따라서 다른 치료법들과 마찬가지로 환자의 동의가 반드시 필요하다. 특히 임종 시에 믿을 만한 간병 인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를 들어 대체 행동으로 인공영양을 선택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평화로운 죽음의 허용, 우리는 어떤가?
최근 우리 사회에서도 ‘삶을 존엄하게 마감할 권리’를 찾기 위한 움직임이 일고 있다. 사단법인 ‘한국골든에이지포럼’(공동대표 이성낙)에서 펼치고 있는 ‘사전의료의향서 받기 운동’이 그것이다. 사전의료의향서는 이 책에서 미하엘 데 리더 교수가 말하는 사전의료지시서와 비슷한 개념이다. 즉, 죽는 시기를 늦추는 것 외에 아무런 의미가 없는 치료라고 의료진이 판단하면 심폐소생술이나 생명 유지 장치 등을 사용하는 연명 치료를 거부하고 환자 자신이 삶을 존엄하게 마감할 권리가 있음을 분명하게 밝히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에게 아직까지 환자의 완전한 자기결정권을 인정하고 ‘평화로운 죽음’을 허용하는 구체적인 법률 제정은 요원해 보인다. 법적이고 제도적인 논의에 앞서 죽음에 대한 논의 자체를 터부시하는 우리의 경직성부터 풀어낼 필요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최근에 불거지고 있는 ‘죽음의 절차’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갈등 해결의 단초를 마련하고, ‘존엄하게 삶을 마감할 권리’에 대한 의학적, 사회적, 제도적 논의의 틀을 잡아가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의사들을 비롯한 의료 산업 종사자, 말기 환자와 그 가족들은 물론, 기대수명 100세 시대에 ‘존엄한 죽음’을 생각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책이다.
▣ 작가 소개
저자 : 미하엘 데 리더 Michael de Ridder
30여 년 동안 의사로 활동해온 독일의 응급의료 전문가. 베를린 중앙병원 응급센터 책임자인 그는 예순세 살의 나이에도 매일 위급한 환자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사투를 벌이고 있다. ‘한스 요하임 & 캐테 슈타인 완화의학재단’ 이사장으로서, 완치가 어려운 환자와 가족의 고통을 줄이고 삶과 죽음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한 ‘완화의학’을 직접 실천하고 있다. 미래 의료정책에 기여한 공로로 2009년에는 ‘오시프 플레이트하임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죽음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호소하는 그는, 첨단 의학 시대에 걸맞은 죽음에 관한 의학윤리와 치료 과정에서 지켜져야 할 환자의 권리를 재정립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역자 : 이수영
성균관대학교 독문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쾰른 대학교에서 문학과 철학을 공부했다. 현재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지금까지 옮긴 책으로 『음악의 역사』, 『나눔의 즐거움』, 『양의 탈을 쓴 가치』, 『콤플렉스의 탄생』, 『예술가들의 불멸의 사랑』, 『이웃집에 생긴 일』, 『청소년을 위한 환경 교과서』, 『빨간 양털 조끼의 세계 여행』 등이 있다.
▣ 주요 목차
추천사
머리말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한다
심장사와 뇌사 사이
임종 환자에 대한 인공영양
간병을 받으면서도 비참한 죽음을 맞는 노약자들
처방된 고통, 통증 치료의 실패
때가 되면 우리가 전화하겠습니다!
저는 제 아들을 사랑하지만 아들이 제 소유는 아닙니다
자기가 없는 사람
인간의 의사
마지막까지 희망의 끈을 놓지 않다
완화의학의 경계
죽음을 받아들이고 죽음을 가꾸기
옮긴이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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