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박지명의 명상이야기
《하타요가 프라디피카》를 펴내며
1975년 봄. 막연하게만 알고 있던 명상이란 단어가 내 삶 속 깊숙한 체험으로 다가온 것은 개인적으로 방황하였던 대학시절이었다. 사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어디를 둘러봐도 만족할 수 없었던 답답한 시절이었다. 마치 당시 세계적으로 유명한 리처드 바크(Richard Bach)의 소설 《갈매기의 꿈》에 나오는 조다난처럼 “먹기 위해서 살지 않고 더 높이 날기 위해서 산다”는 말을 지껄였다간 경제개발에 역행하는 한심한 놈이라고 비난 받을까봐 혼자서 속으로만 머금고 살아야 하는 그런 시절이었다.
그러던 중에 우연히 대구에 들어온 당시 세계적인 명상 단체인 초월명상(Transcedental Meditation) 단체에서 명상을 배우게 되었다. 그들에게 처음 명상을 배워 눈을 감고 편안하고 고요하게 명상을 하면서 쉬는 동안 나의 삶은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 당시에는 모두가 먹고 살기에 전념하는 시절이라 한가하게 명상한다는 것이 사회적으로 잘 이해가 되지 않던 때였다. 아무튼 단어조차 생소한 시기에 나는 명상의 깊은 내면으로 빠져 들어갔다. 왜냐하면 그것이 마치 내 자신의 이상적인 방향이나 도피안(到彼岸)처럼 생각했고, 나를 몰입시킬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 단체와 인연이 되어 전심전력으로 활동하다가 명상을 가르치는 코스를 연수하기 위해 1979년 초 그 명상단체의 본부가 있는 스위스로 가게 되었다. 당시에는 여권내기가 하늘의 별따기 정도로 어려웠던 시절이었는데 많은 노력과 우여곡절 끝에 운 좋게도 상용여권을 내고 엄청난 여행경비를 들여 여러 나라를 거쳐 스위스로 가게 되었다.
지금은 다른 곳으로 옮겼지만 그 당시의 명상본부는 뒤로 알프스 산을 끼고 앞에는 아름다운 호수가 바라보이는 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명상의 전파하기 위해 원래 호텔이었던 건물을 인수하여 세계본부로 삼아 전 세계의 사람들을 모아 회의를 하는 곳이었다. 그러나 외부적인 아름다운 모습도 매력적이고 활발하게 명상을 전파하려는 목적이 좋았지만 내가 처음 접한 순수한 명상의 입장보다는 상업화되고 기업화되어 가는 느낌이 더 강하게 와 닿았다. 비슷한 목적을 지닌 대부분의 단체들이 그렇듯 처음의 순수성을 지켜나가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나를 처음으로 명상으로 인도한 명상의 단체이기에 지금도 그 단체에 대해서는 좋은 인상을 지니고 있다. 그 기대치에 미치지 못한 것에 대한 실망감을 전환하기 위해 ‘그렇다면 그 명상의 원류인 인도로 가보자’라는 마음을 먹고 스위스를 떠나 몇 나라를 거쳐 인도로 갔다.
스위스에서 인도로!
인도에 도착한 순간 강한 동질감 같은 묘한 감정이 일어났었다. 처음 인도를 방문하는 외국인들은 하나같이 그러한 독특한 느낌을 느낀다고 말한다. 독특한 향신료나 향냄새, 사람들의 체취와 이국적인 문화나 종교적인 행사, 색다른 사람들의 생활방식들에서 오는 느낌이리라. 비단 인도 뿐 만 아니라 다른 나라에도 마찬가지로 그 사람의 연관성에 의해 다양하게 느낄 것이다. 그러나 인도가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깊이 있는 문화적인 마력이 다른 어떤 나라보다 강한 것은 사실이다. 그것은 오래된 역사적인 전통이 곳곳에 스며들어있어 더욱 그러할 것이다. 그 후로도 인도를 내 집처럼 들락거렸지만 그 느낌은 지금도 여전하다.
1979년만 하더라도 봄베이(지금의 뭄바이) 공항에서 우리나라와는 국교도 맺어지지 않아 비자내기가 힘들었을 상황이었다. 다행히도 운이 좋은 것인지 인연이 있었던 것인지 출입국 관리인이 한 달을 머물 수 있는 임시 비자를 내주었다. 그래서 히말라야 기슭 갠지스(Ganges)강이 흐르는 북인도의 리시케시(Rishikesh)로 갔다. 내가 속한 그 명상단체에서 수련한 비틀즈(Beatles)가 명상을 하여 세계적으로 이목을 끌었던 곳으로 지금도 수많은 외국인들이 요가와 명상을 하려고 찾고 있다. 아마도 한국인으로는 내가 처음으로 그곳에 간 것 같다. 이후 내가 많은 한국 사람들을 데리고 갔는데 지금은 널리 알려져 있다.
그렇게 해서 나는 리시케시와 그 외의 몇 군데에서 한 달 동안 머물며 명상을 하였다. 그리고 그곳에서 인도에서도 매우 보수적이며 전통을 유지하는 가족과 인연을 맺었다. 그 가족은 산스크리트(Sanskrit)어를 생활화하고 대학에서 가르치는 한 브라흐만(Brahman)계급의 집안이었다. 그들은 처음 나를 보는 순간 내가 전생에 인도인이었다며 자기네 집안의 딸과 혼인하여 인도에 머물라고 하였다.
지금도 그러하지만 원래 인도인들은 외국인들과 결혼을 하는 경우가 극히 드물며 특히 산스크리트어를 쓰는 브라흐만 계급의 여성들이 외국인과 결혼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인 것을 보면 그들이 나를 진정으로 가족이라 여겼던 것 같다. 결국 그 분들의 권유대로 혼인을 하지는 않았지만 지금도 가족과 다름없이 친하게 지내고 있다.
그렇게 해서 오랫동안 인도와 인연을 맺고, 많은 곳을 다니면서 인도인들의 감정이나 문화를 쉽게 이해 할 수 있었고, 고대 산스크리트어를 쉽게 익힐 수 있었고, 그것을 번역하고 해석할 수 있었고, 인도에서 사는 것에 전혀 불편해하지 않았던 것을 돌이켜보면 정말 그들의 말처럼 전생의 깊은 인연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전생의 인연으로
1985년 여름, 10년 동안 활동했던 명상단체를 떠나 내 자신을 이끌어 줄 스승 또는 구루(Guru)를 만나기 위해 다시 인도로 떠났다. 그리고 일 년 가량을 인도에 머물며 본격적으로 명상 수행을 하였다. 명상요가인 라자요가(Raja Yoga)의 정통적인 맥락인 아드바이트 마트(Advait Mat)의 스승 스와미 사르바다난다 마하라즈(Swami Sarvadanand Maharaj)에게서 라자 요가 명상을 배우고, 히말라야와 인도의 여러 지역을 순례하면서 여러 수행자들을 만났다.
그 후로도 수 십 차례동안 인도 전역을 다니면서 인도의 유명하다고 소문난 수행자들을 많이 만나기도 하였다. 그렇게 인도와 인연으로 한국인으로서는 누구보다도 일찍이 인도의 명상과 사상을 가깝게 접할 수 있었으며, 여러 차례 사람들을 이끌고 인도 전역과 히말라야의 명상여행을 떠나기도 하였다.
인도를 여행하고 머물고 명상을 수행하면서 어떤 때에는 한국보다도 인도가 더 편하게 느껴지고 인도인들보다도 인도를 더 잘 아는 것처럼 느껴 질 때도 많았다. 그리고 수많은 성지나 경이로운 자연, 정말 드물지만 순수한 수행자나 아름다운 사람들을 만나 더없는 감동과 영감을 받을 수 있었다.
1990년 초, 달라이 라마(Dalai Lama)가 노벨상을 받은 몇 달 후에 달라이 라마와 운이 닿아 개인적으로 만났다. 그는 부드러우면서도 위엄이 있었으며 진리에 대한 가르침을 명확하게 설명해주었다. 나는 그에게 삶의 목적이 무엇인가하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었다. 그는 단순명쾌하게 한마디로 행복(Happiness)이라고 말하였다. 삶의 느낌이나 목적은 조금씩 다르지만 진정한 행복을 갈망하는 많은 사람들의 공통적인 목표일 것이다.
달라이 라마를 만나다
나는 그 후에도 인도의 세계적으로 유명한 수행자들을 만나보았지만 궁극적으로 자신을 행복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것은 자신일 뿐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결코 누가 대신 해줄 수 없는 것이 바로 자신의 문제이다. 사회적으로 안정되고 좋은 직장을 가지고 돈을 많이 벌고 많은 명성을 가지고 산다고 해도 진정으로 만족하고 행복해질 수 있는 것을 아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이다.
자신이 만족하고 행복할 때 진정으로 다른 사람들을 생각하고 나누어 줄 수가 있는 것이다. 나는 19살 때부터 지금까지 명상을 배우고, 오직 그 길을 향해 살면서 명상을 실천하고, 또 그것을 많은 사람들에게 가르치고, 다양한 명상과 인도의 산스크리트 경전을 번역과 해석을 하고, 때마다 사람들을 이끌어 인도순례를 가는 독특한 직업을 가지고 살아왔다. 처음에는 사회적으로 알려지지 않고 인정받을 수 없는 길이라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무척이나 힘든 길이었다. 하지만 스스로 좋아서 미친 듯이 가는 길에는 어떤 장애도 가로 막을 수 없었다.
인도에서 길게는 세 차례 머물렀고, 짧게는 수십 번을 오가면서 수많은 노력과 시간, 경비들을 투자하면서 복잡하고도 난해한 인도의 철학이나 문화, 명상세계를 조금씩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대개의 사람들이 인도를 신비적으로 갈망하지만 실은 그 어느 민족보다도 지독한 현실적인 민족의 나라이다. 현실적인 바탕이 너무도 철저해서 그들은 태어난 태생과 직업의식을 하나의 법칙이라고 알고 살아가는 것이다. 그것이 그들의 계급의식인 자티(Jati)인데 시대의 변화에 따라 요즘엔 경제적인 요소가 계급을 넘어서면서 사회적으로도 많이 바뀌어 가고 있는 중이다. 현대문명의 급격한 변화는 어느 나라의 사회나 마찬가지겠다. 한마디로 물질적인 삶과 정신적인 삶이 양립하기를 바라는 것이리라.
명상 지도자의 길로!
명상을 생활화하여 실천하고 가르치면서 참으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그리고 그들의 삶이 조금이라도 더 행복을 느끼면서 살 수 있도록 안내할 때면 그것이 곧 나 자신의 기쁨이 된다. 왜냐하면 그들이 삶의 난관에서 조금씩 벗어나 보다 나은 갈을 찾아가는 것을 보면 예전의 내 모습 같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살면서 좋은 날도 있지만 갑자기 몰아닥치는 외부적인 환경의 변화나 삶의 힘든 과정들이 없을 수가 없다. 정말로 힘들어서 삶을 놓아버리고 싶은 상황으로 몰아갈 때도 있다. 그러할 때 어떻게 그 난관을 벗어 날 수 있을까하는 것이 자신의 문제이다. 그렇지만 그것을 벗어 날 수 있는 것은 바로 자신뿐이다. 바가바드 기타(Bhagavad Gita)에는 일촉즉발의 전쟁터에서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는 법을 스승은 제자에게 가르쳐준다. 그 전투 상황에서도 마음의 평정을 한 다음 행동하라고 한다. 그리고 그 상황에서 마음의 고요함을 가지는 방법을 일러준다.
과거에 나는 서울 소년원에서 몇 년간 명상을 가르친 적이 있다. 일 년 동안은 강의 없이 규칙적으로 무조건 매일 아침저녁으로 명상을 시켰다. 그리고 일 년이 지나자 그들의 그 강력한 부정적인 생각이 분명히 변화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여러 긍정적인 결과가 나왔다. 힘들 것 같은, 절대로 열릴 것 같지 않은 장벽이 서서히 자신에게 문을 열어주는 것을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학교나 직장이나 운동선수나 가정주부나 누구든지 자기를 변화시켜 창조적인 삶으로 바꿀 수가 있다. 그것은 스스로의 노력에 의해서만 가능한 것이다.
나 역시 명상만을 알고 살아왔지만 과거에는 참으로 힘든 과정들이 많았었다. 그것은 내가 어릴 때 너무 많은 책을 보고, 너무 많은 지식이 소화되지 않는 상황에서 삶을 고민하며 헤맸었다. 그러다가 결국 내 자신의 머리를 비울 수 있는 작업이 바로 명상이라는 것을 알았다. 나의 복잡함을 단순명료하게 만들어주는 수단이 되었던 것이다. 현대인은 너무나 많은 다양성과 정보와 몸을 쓰지 않고 머리로 생활하는 일과 직업들이 많아져 더욱 심한 스트레스에 직면하여 살고 있다.
왜 명상인가?
삶은 수많은 고통을 잠재하고 있다.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고통을 표현한다. 명상은 이러한 괴로움을 넘어서도록 생각의 원천에 고요함을 주는 것이다. 내면을 고요하게하고 평온하게 하는 명상은 삭막한 삶에서 숲과 그늘이 되어준다. 규칙적인 운동과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명상이 효과적인 스트레스 해소법이 되고 있다.
나 역시 그러한 과정들을 거쳤고, 지금은 남의 얘기처럼 편하게 말할 수 있게 된 것도 명상 덕분이다. 《요가 수트라(Yoga Sutra)》에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 바로 요가와 명상이라고 하였다. 마음을 잘 다스리면 평온함을 가져다준다 하였다. 누천년 전부터 인도인들이 닦아온 고대의 지혜이지만 오늘날 같이 복잡다단한 사회를 살아야 하는 사람들에게 더욱 적절한 수행법이다.
마지막으로 자신을 발견하기 위해 처음 명상의 세계에 입문하려는 이들에게 “명상과 요가를 실천한다고 해서 세상이 바뀌는 일을 없다. 세상을 바꿀 수는 없지만 세상을 보는 눈은 바꿀 수 있다. 꾸준한 명상을 통한 많은 과정 속에서 자신의 마음과 일상이 함께 편안해진다면 그것이 가장 훌륭한 명상이다.” 라고 말해주고 싶다.
작가 소개
박지명
1974년부터 인도명상을 시작했다. 오랫동안 인도에 머물면서 상카라 촤리야와 아드바이트마트 법맥인 스승 스와미 사르바다난드 마하라즈에게서 인도명상과 인도의 수행체계 및 산스크리트 경전을 공부하였다. 히말라야와 인도 전역을 순례하면서 수많은 수행자들을 만났으며 85년엔 개인적으로 달라이 라마를 만나기도 하였다. 그 후로도 수십 차례 한국 사람들을 이끌고 인도 순례를 다녀왔다. 현재는 산스크리트문화원과 그 부설인 히말라야명상센터를 세워 자아회귀명상(자아회귀명상)인 ‘스바 삼 비드야 드야나’를 가르치고 있으며, 산스크리트 경전들을 번역 보급하고 있다.
저서로는 《바그바드 기타》《원전주해 요가 수트라》《우파니샤드》《베다》《불교진언집》《관세음보살진언》《인도호흡명상》《양한방자연요법 내몸건강백과》《호흡명상》《명상교전-비그야나바이라바 탄트라》등 다수 있으며, 역서로는《모든 것은 내 안에 있다》《히말라야 성자들》《요가》《자연요법백과시리즈》《마음 밖에는 아무 것도 없다》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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