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당신의 치아를 보여 주면,
당신이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알려 드리겠습니다.
…
치아는 상당히 견고하다.
물속에서도, 불 속에서도, 심지어 무덤 속에서도 몇 백 년 동안 버틸 수 있다.
하지만 ‘가난한 삶’이라는 재앙은 치아를 파괴한다.
“이 책은 치아 감염을 치료하지 못해 발생한 합병증으로 2007년에 사망한 메릴랜드 출신 소년 데몬테 드라이버의 비극에서 시작되었다. 미국의 치과 의료라는 무질서한 세계를 들여다보면서, 모든 미국인에게 치과 진료가 필요하지만 현재 제도로는 수백만 명이 진료받지 못하는 부조리함을 파헤치고 있다. 데몬테가 사망한 곳에서 멀지 않은 볼티모어에 1840년 문을 연 세계 최초의 치과대학으로부터 시작해, 치과가 어떻게 미국의 보건 의료 제도와 별개로 분리되어 진화했는지 그 역사를 탐구한다. 일부 환자들에게 치과 진료는 왜 그렇게 받기 어려운지,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왜 그마저도 받을 수 없는지를 설명하려고 한다.”
_서문에서
1. 치아에 새겨진 불평등의 이력들
“루이자의 치아가 특히 치과의사인 니퍼스 박사의 눈을 사로잡았다. 지금까지 박사가 본 치아 중 가장 아름다웠다. 루이자는 예쁘게 수놓은 자수를 가져와 상점 주인에게 팔았지만 푼돈 정도였다. 옆에서 듣고 있던 박사는 루이자에게 다가갔다.
‘예쁜 아가씨, 팔 게 더 없나요?’
‘이제 가진 게 없어요, 선생님.’
‘아가씨는 자신이 얼마나 좋은 것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는군요. 당신의 치아 몇 개를 팔면 큰돈을 벌 수 있어요.’”
_본문 153쪽(「치과의사에게 생긴 일」)
“18세기 후반 스코틀랜드 출신의 유명한 외과 의사 존 헌터는 치아 이식을 처음으로 시도했고, 그 후 수십 년 동안 대서양 양안에서 치아 이식이 대유행했다. 가공 설탕을 첨가한 의약품, 식품 및 음료수가 등장했고, 특히 부유한 사람들 사이에서 충치가 만연했다. 부자들은 싱싱한 치아를 원했고, 지독히도 가난했던 사람들은 자신의 치아를 팔려고 줄을 섰다. 헌터는 ‘가장 좋은 방법은 치아 모양이 비슷한 사람을 동시에 여러 명 준비시키는 것이다. 첫 번째 사람의 치아가 안 맞으면 두 번째 사람의 치아를 바로 뽑아 이식하면 된다.’라고 조언했다.”
_본문 151~152쪽
“1941년 12월 7일 진주만 공습 이후 실시된 징병검사 결과, 건강 문제로 군 복무에 부적합 판정을 받은 미국 젊은이들은 전체 징병 대상자의 3분의 1에 달했다. 정신 질환, 결핵, 성병 및 충치가 만연했다. 6주 동안의 첫 번째 징병검사 대상자 100만 명 중 20만 명이 치아 상실로 복무 부적합 판정을 받았다.”
_본문 220쪽
“낙인은 복종이나 모욕의 표시다. 얼굴에 찍힌 흉측한 낙인이 한 사람의 인격을 파괴하는 것처럼, 심하게 병들어 방치된 치아는 그 사람이 경제적으로, 심지어 도덕적으로 실패했다는 낙인과 같다. 일반적으로 질병에 걸렸을 때 그 사람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치아에 대해서는 당사자에게 책임을 돌린다.”
_본문 8쪽
“불평등함은 가난한 사람들의 입안에서 특히 두드러졌다.”
_본문 310쪽
『레 미제라블』에서 팡틴은 공장에서 해고된 뒤 딸 코제트에게 보낼 돈을 마련하려 자신의 머리카락을 잘라 팔고, 급기야 어금니까지 뽑는다. 당시 가난한 사람의 치아가 부유한 사람에게 팔리던 현실이 소설에 반영됐다면, 이 책 『아 해보세요』는 치과 치료비를 마련할 수 없어서 병원에 가지 못하고 고통을 안고 살던 사람들이 참다못해 무료 진료소에서 길게 줄을 선 채 발치를 기다리는 미국의 풍경을 담으며, 구강 건강이라는 렌즈를 통해 오늘날 ‘레 미제라블’의 삶을 기록한다.
1930년대 대공황 시기에, 미국인들은 오히려 우울함을 떨치기 위해 영화관을 많이 찾았다. 찰스 핀커스는 배우들의 치아가 관객들에게 더 ‘완벽하게’ 보이도록 시술한 치과의사이다(〈오즈의 마법사〉에서 도로시 역을 맡은 주디 갈런드, 〈소공녀〉와 〈하이디〉의 주연배우인 셜리 템플, 그리고 제임스 딘 등이 그의 환자였다). 이후 고른 치아를 드러내며 활짝 웃는 ‘만들어진 미소’는 완벽한 치아의 전형이 되었고, 이제 우리는 치아 교정과 미백을 당연한 시술로 여긴다. 아름다워지려는 욕망만이 미용 치과 시술을 떠받치는 것은 아니다. 치아가 남들과 달라 마음껏 웃지 못하거나 일자리를 구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도 치과를 찾는다.
한편 일반적인 구강 치료 및 검진을 받는 비율도 차이가 있다. 일례로 한국의 19세 이상 성인 중 가장 부유한 소득 5분위는 50명 중 1명(2.1%)이 돈이 없어 치과 치료를 받지 못하고, 가장 가난한 소득 1분위는 7.5명 중 1명(13.2%)이 치료를 받지 못한다(보건복지부, 『2019 국민건강통계』). 성인 구강 검진 수검률이 가장 높은 지역인 울산에서는 2명 중 1명(47.6%)이 구강 검진을 받지만, 전남 지역은 4명 중 1명(22.1%)도 안 된다. 울산조차 성별을 나눠 살펴보면 남성은 2명 중 1명(56.7%), 여성은 3명 중 1명(36.3%)만 구강 검진을 받는다. 영․유아 구강 검진은 세종이 2명 중 1명(55.5%)이 받는 반면, 제주는 3명 중 1명(38.2%)에 불과하다(국민건강보험공단, 『2019년 건강검진통계연보』). 이처럼 치아에는 저마다의 불평등한 삶의 이력이 새겨진다.
2. 입안이 몸의 일부가 아닌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
“입안은 몸의 일부입니다.”
_버턴 에델스테인(뉴욕 컬럼비아 대학교 치의학 및 보건 정책학 교수)
“충치에서 잇몸 질환, 구강암에 이르기까지 ‘소리 없이 세상을 잠식한 무서운 질병’이 맹위를 떨치고 있다.”
_데이비드 새처(미국 전 공중보건국장)
“특정 사회 구성원의 3분의 1이 어떤 통증으로 괴로워한다면, 그리고 그것을 예방하는 방법이 존재한다면 아마도 매우 많은 연구가 이뤄졌을 것이다. 하지만 불행히도 많은 사람들이 치통을 그저 흔하고 사소한 문제로 치부하기 때문에, 훨씬 덜 일어나는 다른 질병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연구한다.”
_본문 77쪽(메릴랜드 대학교 치과대학 연구)
아이가 고열이 나면 소아과로 가지만 젖니를 뺄 때는 치과에 데려간다. 한밤중 이가 아프면 병원 응급실을 찾는데, 정작 그곳에는 거의 대부분 치과의사가 없다. 치과 보험 상품은 일반 건강보험 상품에 포함되지 않고 별도로 판매된다. 대학에는 의과대학과 치과대학이 나뉘어 있다. 이 책에 가장 많이 나오는 용어 중 하나에도 이런 현실이 담겼다. ‘dentistry’는 의과와 치과의 통합 관점에서 사용했을 때는 ‘치의학’으로, 의학에 대응해 사용했을 때는 ‘치학’으로, 보건 의료의 분과로 사용했을 때는 ‘치과’로, 과학의 분과로 사용했을 때는 ‘치과학’으로 옮겼는데(실제로 옮긴이가 재직해 있는 학교는 ‘치의학대학원’, 소속 교실은 ‘예방치학교실’이며, 치과대학이 없는 의과대학 병원 내 치과 조직은 ‘치과학교실’로 불린다), 이처럼 여러 명칭이 있다는 사실은 치과와 의학의 구분에 기원을 둔 쟁점이 다양하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치과와 의과는 언제부터 각자의 길을 걸었을까? 이런 분화가 우리 몸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일까? 지은이가 책을 쓴 계기도 이런 질문과 관련이 깊다. 2007년 미국 메릴랜드 출신인 열두 살 소년 데몬테 드라이버가, 치아 감염을 제때 치료하지 못한 끝에 뇌막염으로 세상을 떠난 사건이었다. 그 죽음 이후로 몇 년 동안 관련자를 만나 이야기를 들으며 다양한 현장을 취재하고, 의과와 치과가 나뉘어 온 역사를 살핀 결과물인 이 책은, 마치 구강 건강과 전신 건강이 나뉜 것처럼 여기는 세상에 드리운 그늘을 드러낸다.
3. 불완전한 의료 제도를 바꾸려는 사람들
“메디케이드 환자를 받아 준다는 치과를 가까스로 찾은들 예약할 만한 시간이 거의 없었고, 힘들게 예약에 성공해도 치과에 타고 갈 교통편을 구하느라 이리 뛰고 저리 뛰어야 해요. 이런 과정을 다 거치고 나면 내가 이것밖에 안 되나 싶어 낙담하고, 녹초가 돼서 치과 치료를 받을 의욕이 사라지는 거죠.”
_본문 185~186쪽(노스캐롤라이나 대학교 보건 대학원 소규모 집단 인터뷰)
“앞니가 부러진 아이의 부모로 가장하고 지역 내 85개 치과에 전화해 예약을 잡아 봤다. 한 달 간격으로 치과마다 두 번씩 전화했는데, 한 번은 메디케이드 혜택을 받는 아이의 부모인 척 전화했고, 다른 한 번은 민간 의료보험을 가진 아이의 부모인 척 전화했다. 각각 170번의 전화 통화에서, 메디케이드 아이들의 36.5퍼센트, 민간 의료보험을 가진 아이의 95.4퍼센트가 예약을 잡는 데 성공했다.”
_본문 186쪽(일리노이주 연구팀 조사)
“질병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치료받지 못한다는 것은, 결국 우리 사회가 구강 건강을 이해하고 그 중요성을 인정하는 데 실패했다는 것이다.”
_미국치과의사협회
“치아만 보여 주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 줄 수 있습니다.” 어느 동물학자가 치아를 통해 그 사람의 특성을 추정할 수 있다는 뜻으로 남긴 이 말은,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의료 체계가 차등 없이 사람들을 돌보고 있는지를 살피는 이 책을 읽고 나면 다음과 같이 고쳐 씀 직하다. “치아만 보여 주면 당신이 사는 곳이 얼마나 불평등한 사회인지 말해 줄 수 있습니다.” 의료 전문 기자인 메리 오토는 미국인의 입안 상태야말로 불평등한 미국 사회의 단면이라고 이야기한다. 지역의 사회경제적 환경이나 개인이 처한 조건에 따라 구강 질환 실태는 다양하지만, 사회보장이 취약한 이들의 상황은 특히 심각하다. 충치로 치아를 잃어도 여력이 없어 새 치아를 끼우지 못해 서비스직 일자리를 얻기 어렵고, 그래서 치과 치료를 더 받지 못해 또 다른 치아를 잃는 악순환. 치통에 시달려 학교에 못 가 제대로 교육받기 어려워 부모보다 나은 직업을 꿈꾸지 못하는 아이들. 치통은 잠깐의 불편함이 아니라 늘 달고 살아야 할 고통인 수많은 이들, 특히 더 높은 비율로 이런 현실을 감당하는 노인, 장애인, 유색인종의 삶.
지은이는 입을 열면 누구나 볼 수 있는 치아를 통해 계층 간 이동이 힘들어진 현실을 파헤치는 한편, 이를 바꾸려고 애쓰는 사람들의 현장을 보여 준다. 저소득층 지역이나 알래스카처럼 계층적․지역적 이유로 의료 접근성이 떨어지는 곳에서 진료 활동을 하는 의료인들이 맞닥뜨리는 현실을 생생하게 담는가 하면, 데몬테 드라이버의 비극이 다시 일어나지 않게 하려는 시민들이 제도와 정책을 바꾸는 과정도 비중 있게 다룬다. “충치는 세균이 일으키는 질병이지만, 실제 해결책은 세균이 아닌 다른 곳에서 나온다.”라고 말하는 옮긴이 또한 (사)행동하는의사회(http://dah.or.kr/)를 통해 중국 한센인 치유자 마을, 라오스 및 베트남 등지의 마을을 찾아가 치과 진료를 비롯한 의료 활동을 하는 한편, 꾸준히 치과 정책을 연구하고 제언해 왔다. 긴급한 의료 필요가 있는 현장을 돌보는 행동과, 그 필요 자체가 줄어들게끔 접근성을 높이고 제도를 보완하는 행동은 이 책을 집필하고 번역한 이유처럼 서로 맞닿아 있다.
작가 소개
지은이 : 메리 오토
미국의 의료 전문 저널리스트이다. 워싱턴 포스트에서 8년간 기자 생활을 하면서 보건 및 빈곤 문제를 취재했고, 특히 미국의 구강 건강을 다룬 기사를 썼다. 지금은 워싱턴 D.C.에 거주하고 있다.
옮긴이 : 한동헌
서울대학교 치의학대학원 예방치학교실 교수이며 (사)행동하는의사회 이사장을 맡고 있다.
옮긴이 : 이동정
서울에서 환자를 진료하는 동네 치과의사다.
옮긴이 : 이정옥
경기도에서 환자를 진료하는 동네 치과의사다.
목 차
서문 6
1부 썩은 치아
1. 아름다움 17
2. 고충 55
3. 응급 상황 87
4. 코 아래의 세계: 구강 108
2부 지금의 치과가 나타나기까지
5. 치과의 탄생 145
6. 소외된 삶 173
7. 치과위생사라는 새로운 직업의 탄생 204
8. 시스템 248
9. 피부색에 따른 차별 277
3부 경종을 울리는 사건
10. 데몬테가 사는 세상 309
11. 충치를 만드는 세상과의 대결 336
12. 채핀 해리스의 후예들 368
감사의 글 389
옮긴이 후기 390
후주 3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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