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부 유럽 경제사 -서양 문명의 변경에서 떠오르는 경제의 심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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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양동휴 외
출판사항미지북스, 발행일:2016/02/29
형태사항p.377 국판:23
매장위치사회과학부(B1) , 재고문의 : 051-816-9500
ISBN9788994142548 [소득공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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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 출판사서평

서유럽과는 다른 ‘또 하나의 유럽’

19세기 말에 서방 세계에는 독일제국의 형성(1871년)과 함께 중부 유럽의 성장을 경계하는 경향이 생겨나 서로 경쟁하는 과정에서 크게 충돌하기도 했다. 즉 유럽에는 개인의 자유 개념에 입각한 자유주의, 민주주의, 자본주의, 국제주의 등을 꽃피운 서유럽 외에도 그런 역사가 별로 알려지지 않았거나 이를 대체하려는 다양한 유럽이 존재해왔다. 그런데도 그동안 우리말로 된 서양 경제사 서술은 주로 서유럽, 정확히는 영국 남부, 프랑스 북부, 라인 강 서쪽 독일 지역에 국한시켜 봉건제와 장원제, 과학혁명, 계몽주의, 공업화만 교과서적으로 다루었다. 중부 유럽에서는 이런 현상이 많이 달랐거나 별로 나타나지 않았다. 하지만 유럽에 서유럽만 존재하는 것도 아니며 지역별 경제사적 결과도 많이 달랐으므로 이를 별도로 구분하여 비교사적 관점에서 돌아볼 필요가 있다. 이는 유럽 각 지역의 공통점과 차이점, 지역별 독자성을 이해하고 나아가 유럽 전체를 이해하는 데도 유용하다. 중부 유럽의 경제사를 별도로 조망하는 의미가 여기에 있다.

중부 유럽은 무엇인가?

중부 유럽은 오늘날 독일, 오스트리아, 체코, 헝가리, 폴란드를 아우르는 지역이다. 중부 유럽을 서유럽, 동유럽, 남동 유럽과 구분 짓는 기준은 첫째, 종교와 문화적 전통이다. 중부 유럽 대부분은 로마가톨릭을 수용한데 비해 동유럽은 그리스정교이다. 남동 유럽은 오랫동안 이슬람의 오스만제국 지배를 경험했다. 두 번째 기준은 중세 제국과 왕국의 경계다. 이 경계는 서쪽으로는 1500년경 신성로마제국, 남동쪽으로는 헝가리왕국, 동쪽으로는 폴란드-리투아니아를 포함하며, 시간적, 공간적으로 숱한 변천을 겪었다. 세 번째 특징은 오랜 세월에 걸친 다국적 제국과 다인종, 언어, 전통의 혼합 경험이다. 중부 유럽은 경제적, 정치적으로 서유럽보다 성장이 느렸으나 19세기 말부터 그 속도가 빨라졌다. 이 책은 중부 유럽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독일을 중심으로 다루며, 그 밖의 여러 나라들의 다양하고 다채로운 역사를 독자들에게 알기 쉽게 소개한다.

서유럽의 팽창과 중부 유럽의 등장

서유럽이 팽창하기 시작한 10세기부터 서유럽인들은 엘베 강 동쪽의 빈 땅이나 기존 원주민 지역을 개척, 이주하며 서유럽 문화를 이식하거나 원주민을 흡수, 동화시켰다. 이 과정에서 고대 그리스-로마 문명의 유산이나 서유럽에 고유한 역사적 경험이 부분적으로 이식되었다. 그러나 중, 동부 유럽에는 도시가 별로 발달하지 못했다. 즉 도시 부르주아가 성장하지 못했다. 오히려 15~16세기에 농민의 이동 금지와 도주 농민에 대한 추적과 체벌 강화, 부역 증대 등, 서유럽에서는 이미 오래전에 사라진 농노제가 강화되었다. 상업도시의 성장이 미미하여 도시 부르주아적 요소나 고대 문화유산이 부활할 여지가 별로 없었다. 이런 상태에서 서유럽의 군사적 압박에 대처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절대왕정이 중부 유럽에서 뒤늦게 형성되었다.

서유럽에서는 상업도시가 창출한 엄청난 부가 왕들이 근대적인 정치권력을 세우는 데 많은 기여를 했다. 서부와 동부의 중간인 독일 지역의 발전 양상은 서유럽 쪽과 같은 듯 달랐고 동유럽과도 닮았지만 전혀 다른 길로 접어들었다. 절대왕정 시대에 들어서자 독일 지역 내에서도 후진적이었던 브란덴부르그-프로이센이 유럽의 강국으로 부상했다. 프로이센은 19세기 산업혁명 시대에 독일 통일을 주도하고 거대한 산업자본주의 국가를 창출했다. 그 이후 중부 유럽은 독일과 다른 제국들이 경합하는 역동적인 정치적 공간이 되었고, 산업적 에너지가 분출하는 시대를 맞게 된다.

독일 도시의 성장과 독일인 개척자들의 중부 유럽 속지화

서부 독일도 일찍부터 상업도시가 발달한 지역에 속했다. 이들은 이탈리아식 도시국가 형태로까지 발전하지는 못했으나 16세기까지 국제 금융과 교역 등으로 전성기를 구가했다. 대표적인 예가 한자동맹이다. 그러나 네덜란드가 해상 진출을 시작하면서 한자 도시들의 쇠락이 시작되었다. 신대륙 발견과 대서양 시대의 개막으로 내륙 교역의 입지가 불안해졌고, 남동쪽 교역로는 오스만제국이 봉쇄해버렸기 때문이다. 독일 서부 지역 상업도시들이 지닌 힘과 다양성 때문에 이곳에서는 근대 초까지도 귀족 중심의 강력한 절대왕정이 성장할 공간이 없었다. 이 때문에 독일은 오랫동안 통일을 이루지 못했다.

11~13세기, 서유럽이 팽창하던 시기에 서부 지역의 독일인들은 엘베 강 동쪽과 발트 해 쪽으로 진출하여 토지를 개간하고 도시를 건설했다. 독일인이 이주하기 시작한 이 지역(오늘날의 폴란드, 체코, 헝가리, 루마니아, 리투아니아에 해당)은 10세기 이전까지는 주로 슬라브족이 수렵과 채집, 원시적 농업기술로 살던 곳으로 인구도 희박했다. 독일인 선교사들이 이곳에 와서 헝가리인, 슬라브인을 로마가톨릭으로 개종시켰다. 독일의 식민지 개척자들은 엘베 강을 건너 주인 없는 땅에 들어가 황무지를 개간하고 농민을 이주시켜 속지화했다. 개척자들은 원주민을 정복하거나 쫓아내면서 동쪽으로 세력을 확대해갔다. 쫓겨난 마자르족은 도나우 강 유역에 정착하고 기독교 세계에 편입되었다. 헝가리, 폴란드의 지배자들은 독일 농민과 기사들을 적극적으로 유치하여 많은 수의 독일 농민이 활발하게 이주했으며, 그곳에서 독일인들은 원주민과 동화되었다. 그러나 14세기 흑사병의 타격으로 서부로부터 인구 유입이 급감하고 도시가 쇠퇴했으며 봉건적 억압이 강화되었다. 그로 인해 서유럽과는 전혀 다른 경로로 역사의 방향이 전개되었다. 흑사병이 잦아들자 중부 유럽은 인구가 다시 증가했으며, 가격혁명과 상업혁명으로 다시 활기가 돌았다. 상업조직이 발전했으며, 푸거 가문과 같은 강력한 무역, 금융 그룹이 생겨났다. 30년 전쟁의 복구 시기인 17~18세기에는 농업과 수공업이 발달했다.

척박한 독일 변방에서 유럽의 강대국으로

중부 유럽 역사의 가장 큰 전환점은 브란덴부르그-프로이센의 부상과 1871년의 독일 통일이었다. 베를린 주변의 브란덴부르그는 척박한 땅으로 예로부터 그곳은 ‘신성로마제국의 모래상자’라 불릴 정도였다. 현재의 폴란드 영토인 프로이센도 독일기사단이 토착 슬라브인과 싸워 정복한 곳으로 문명의 변방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독일 변경에서 군인왕 프리드리히 1세가 등장하여 중앙집권적 관료제를 창출했으며, 뒤이어 프리드리히 2세가 제조업이 발전한 슐레지엔을 정복함으로써, 프로이센은 독일 지역 내 최강국으로 급부상했다. 그러나 나폴레옹에 참패한 프로이센은 개혁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토지 개혁과 영업의 자유화, 대학 설립과 의무교육 시행 등을 단행했다. 이러한 일련의 개혁들로 프로이센은 프랑스로부터 라인란트를 획득하고 독일 공업화의 제도적, 물질적 기초를 마련할 수 있었다.

산업혁명과 독일제국 성립, 그리고 1차 대전

독일의 눈부신 공업화 과정은 프로이센의 통일 과업과 동행하며 이루어졌다. 19세기 초부터 1834년 관세동맹 도입 시점까지 독일은 프랑스 혁명과 나폴레옹이 유럽을 재편하는 과정의 제도적, 문화적 영향을 받았고, 그 충격에 대응하면서 근대적 산업 질서로 이행할 법적, 지적 조건을 창출했다. 이후 독일제국 성립 무렵까지 근대적 공업, 운송, 금융을 위한 물질적 토대가 형성되었다. 또한 외국자본, 기술, 기업이 독일 지역에 활발히 유입되었다. 그 이후 독일은 외국시장으로 활발히 진출하면서 대대적인 공업 성장을 이어갔다. 그러나 비스마르크 사임 이후 독일의 외교는 매우 서툴고 시대착오적으로 변해갔고, 결국 빌헬름 2세의 공격적인 팽창주의는 1차 대전에서의 패전으로 이어졌다.

대공황과 2차 대전, 분단과 통일

베르사유조약에서 연합국이 독일에 부과한 전쟁배상금과 연합국이 미국에 진 전쟁채무 문제, 초인플레이션 등으로 유럽 경제는 다시 혼돈으로 빠져들었다. 이 혼란을 극복하기 위한 방편으로 유럽 16개국은 금본위제로 복귀했다. ‘좋았던 옛 시절’, 즉 전쟁 전의 규칙과 질서를 복구하면 안정을 회복할 수 있을까 하는 기대 때문이었다. 그러나 금본위제로의 무리한 복귀는 금융위기와 공황을 초래했다. 오스트리아 최대 은행인 크레디트안슈탈트 은행의 붕괴로부터 촉발된 중부 유럽의 은행 시스템 붕괴는 독일의 모라토리엄에 이어 심각한 경기침체를 가져왔고, 결국 나치의 등장과 2차 대전을 불러왔다. 2차 대전 패망 후 서독은 서방 진영의 도움을 통해 경제를 재건하였다. 알려진 바와 달리 서독 경제의 부활에는 마셜플랜보다는 독일 본래의 잠재력이 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독일의 자본 스톡은 전시 파괴에도 불구하고 전쟁 전보다 높은 수준이었고, 양질의 노동력도 많았다. 서독에서 시장경제가 회복되는 시발점은 마셜플랜 시행보다는 통화개혁(1948년) 때부터였다. 통화개혁이 이루어진 이후 배급제 대신 화폐임금이 시행되면서 이윤 추구의 유인이 생겼고, 수출 환경도 좋아졌다. 2차 대전 후 서독을 포함한 서유럽 나라 대부분은 경제의 시장 기능을 유지하면서도 강력한 소득 재분배 정책을 추진하는 복지국가를 지향했다. 반면 동독은 사회주의판 마셜플랜인 동유럽경제상호원조회의(코메콘)에 가입하였고, 계획경제, 국유화, 농업 집산화를 추진했다. 동독의 소련 경제에 대한 의존성은 높아졌고, 서독과의 격차는 더욱 켜졌다. 1970년대부터 동독은 야심찬 복지국가 정책을 추진하고 천문학적 예산을 투입했는데, 이로 인해 위기에 봉착했다. 물가가 급등했고 정부는 막대한 부채로 파산 지경에 이르렀다. 개혁에 성공하지 못한 동독 체제는 1989년 붕괴했고 독일은 통일되었다.

다른 중부 유럽 국가들과 러시아

이 책의 전반부는 역사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독일을 다루고, 후반부는 오스트리아, 헝가리, 체코, 폴란드 등 다른 중부 유럽 국가들의 우여곡절의 역사를 소개한다. 유서 깊은 합스부르그 가문에서 출발하여 근대 내내 독일과 경쟁하며 제국을 영위한 오스트리아, 합스부르그제국의 일원이었으며 좀처럼 굴하지 않는 민족의 나라 헝가리, 강대국의 그늘에서 천 년을 버텨온 체코, 한때 동유럽의 강대국이었으나 나라가 지도에서 사라져버리기도 했던 비운의 폴란드, 그리고 중부 유럽에 속하지는 않지만 역사적으로 서로 간에 많은 영향을 주고받았던 대국 러시아의 역사가 차례로 서술된다.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다채로운 빛깔을 가진 중부 유럽의 역사와 경제, 문화에 대해 개괄하고, 나아가 중세에서 현대까지 유럽사 전반에 대한 더 깊고 풍부한 이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 작가 소개

저자 : 양동휴
梁東烋
서울대 상과대학 경제학과를 졸업했고 하버드대학교 대학원 경제학 박사, 런던 정경대학, 베를린 자유대학, 캔사스대학 연구교수를 거쳐 서울대 사회과학대학 경제학부 교수로 있다. 저서로는『1930년대 세계 대공황 연구』(서울대출판부, 2000.08.30),『산업혁명과 기계문명』(서울대출판부, 1997.12.20),『미국 경제사 탐구』(서울대출판부, 1994.03.15),『미국의 대외관계』(서울대출판부, 1991.09.15),『대공황 전후의 유럽경제』(역서) 외 다수가 있다.

저자: 김영완
이화여자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서양사 전공으로 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고려대, 연세대, 이화여대에서 가르쳤으며 다수의 논문을 집필했다. 『미완의 천국 하버드』(2003), 『제이콥의 손』(2008) 등 여러 번역서가 있다.

▣ 주요 목차

책머리에
1장 서유럽 문화적 요소들: 그리스-로마의 유산, 서유럽 봉건제, 절대왕정
2장 독일의 중세와 근대 초기
3장 독일 지역의 농촌과 도시
4장 프로이센의 독일 통일 운동
5장 19세기 독일의 공업화
6장 제국 통일의 완성
7장 두 차례의 세계 대전
8장 2차 대전 이후의 독일
9장 오스트리아: 합스부르그 가문의 재산으로 출발하다
10장 헝가리: 전투적이며 좀처럼 굴하지 않는 민족의 나라
11장 체코: 강대국 그늘에서 천 년을 버티다
12장 폴란드: 우여곡절의 나라
13장 러시아: 공룡 같은 차르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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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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