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전 주한 일본대사가 30년 만에 밝히는 한일 경제협력 비화!
“한일 국교 정상화 50년, 이제 양국 사이의 ‘앙금’을 풀어야 할 때”
2012년 5월, 5만 5,000명을 수용하는 도쿄돔이 환호성으로 가득 찼다. 바로 한국에서 온 아이돌그룹 때문이었다. 수많은 일본인들은 아이돌그룹의 노래를 따라 부르면서 열광했다. 한류 붐 덕분이었다. 이밖에도 일본에서는 ‘김치 다이스키(너무 좋아)’ 등과 같은 말들이 유행하고, 한국어 교실에는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수강생들이 붐볐다. 한국과 일본 사이에는 더 이상 아무런 장벽이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로부터 3개월 뒤인 2012년 8월, 한국의 이명박 대통령이 독도에 상륙하자, 일본 국민들은 엄청난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다. 일본 언론들은 이 행위를 ‘폭거’라고 거칠게 표현했다.
거의 같은 기간에 이렇게 서로 다른 양상을 보이는 것은 일본 국민뿐이 아니다. 한국 국민 또한 마찬가지다. 일본의 만화나 드라마에는 환호하지만, 독도·종군 위안부·역사 교과서 기술 등의 문제가 발생하면 즉각적으로 일본에 대한 반감을 주저 없이 드러낸다. 이것이 가깝고도 먼 이웃나라, 한국과 일본의 현재 모습이다.
전 주한 일본대사 오구라 카즈오는 이런 한일의 극단적인 모습에 의문을 제기하였다. ‘양국 간에 어떤 외교 문제가 발생하거나 정권 교체가 이뤄지거나 하면 표면하에서 꿈틀거리던 국민감정이 어째서 분출해 버리는 것인가?’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의문을 푸는 방법은 한일 간의 격렬한 논쟁이나 교섭 대상이었던 것에 대해서 한일 양국이 그것을 어떻게 처리했는가, 그 과정에서 국민이나 여론이 어떻게 반응했는가, 그리고 두 나라 국내 정치가 어떻게 서로 얽혀 있었는지를 제대로 연구하고, 거기서 미래에 대한 교훈을 읽어 내는 것이라고 확신하였다.
그래서 그 사례로, 1981년 4월부터 1983년 1월까지 1년 반 이상에 걸쳐 일본과 한국 사이에서 이루어졌던 100억 달러에 달하는 금액의 ‘경제협력’을 둘러싼 교섭 과정을 선택하였다. 한국의 정권 교체, 일본 국내정치의 동향, 그리고 당시의 엄중한 미소 대립이라는 국제 정세를 반영한 이 드라마의 무대 앞과 뒤 양쪽을 관찰해 보면 한일 관계의 ‘숨겨진 부분’이 잘 이해되리라 생각한 것이었다.
이러한 배경을 바탕으로 출간된 『한일 경제협력자금 100억 달러의 비밀』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존재하는 한일 관계의 ‘앙금’을 푸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찾아낼 수 있는 열쇠가 될 것이다.
막전, 막후에서 벌어진 한일 간 교섭의 전 과정을 낱낱이 공개하다
한일 간의 숨 막히는 외교 드라마가 시작된 것은 1981년 4월 23일이었다. 4년 가까운 한국대사의 소임을 마치고 귀임 준비를 하던 스노베 료조는 노신영 외무장관의 호출을 받았다. 향후 5년간 100억 달러의 자금을 제공해 달라는 노신영 장관의 갑작스런 요청은 스노베 대사가 보낸 긴급 전문을 통해 곧바로 도쿄의 외무성 수뇌부에 전달되었다.
두 페이지의 짧은 전보였지만, 한국을 담당하는 북동아시아과장과 아시아국장, 그리고 외무 관료의 톱인 외무차관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첫 반응은 한국의 요청은 당돌하며 불합리한 것이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었다.
14년여의 길고 험난한 교섭 끝에 1965년 한일 두 나라는 국교를 수립하고 새로운 출발을 했지만, 두 나라의 국력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었다. 1956년 일본 정부의 첫 번째 경제백서가 “더 이상 전후는 아니다”라고 선언한 이후 일본 경제는 고도의 경제성장을 계속했다. 1960년 40억 달러였던 일본의 수출량은 1965년에는 84억 달러로 늘어났을 뿐만 아니라 그때까지 적자였던 무역수지가 흑자로 돌아서면서 외환 보유고도 점차 증가했다. 반면 1965년 한국의 수출량은 2억 달러에도 미치지 못했으며, 일본과의 무역은 항상 대규모 적자를 기록해 국교 정상화 이후 1980년까지의 누적 적자는 200억 달러에 달했을 정도였다.
1979년 10월 박정희의 암살과 12.12 쿠데타, 1980년 서울의 봄과 광주 민주화 항쟁 등 한국 정치상황은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혼란스러웠다. 이런 가운데 권력을 장악한 신군부 세력은 자신들의 결여된 정통성을 경제 발전을 통해 확보하려고 하였다. 전두환 정권은 “80년대에 또 한 번의 일대 도약을 통하여 풍요한 복지국가의 굳건한 바탕을 이룩”(1981년 3월 3일 제12대 대통령 취임사)하기 위하여 1982년부터 시작되는 제5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수립하였는데, 이를 위해서는 5년간 500억 달러 이상의 외화가 필요했다.
전두환 정권은 필요한 자금의 20%를 일본으로부터 얻어 내려고 했으며, 일본을 설득하기 위해 동원된 논리가 안보였다. 즉 자유 진영의 보루인 한국은 국가예산의 35%를 국방비에 쓰고 있는데, 이것은 한국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일본의 안보에도 기여를 하고 있기 때문에 일본은 그런 한국을 위해 협력할 ‘의무’가 있다는 것이었다. 한국 측은 경제협력을 안보 문제와 연계시키려고 했지만 일본은 난색을 표명했다.
이후 경제협력자금 문제는 한일 양국의 최대 외교 현안이 되었다. 하지만 양국의 기본적인 입장 차이와 국내정치 요인에 더해 1982년 7월에 발생한 일본의 역사 교과서 왜곡 문제라는 암초를 만나 좀처럼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했다. 외교적인 교섭이 교착상태에 빠지면서 이를 타개하기 위해 일본은 비밀리에 총리 특사 자격으로 세지마 류조를 한국에 보내 친분이 있던 군 출신의 권익현과 협의를 하도록 했다. 그리고 그들은 총액 40억 달러, 이 가운데 엔 차관 18억 5천만 달러, 수출입은행 융자 21억 5천만 달러, 기한 7년, 금리 6%대라는 골격에 대해서 큰 틀에서 합의했다. 이어 1983년 1월 나카소네 야스히로 총리가 한국을 전격 방문해 전두환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외교장관 명의의 양해 사항을 일본 측이 발표하고, 한국 측이 이것을 승낙함으로써 막전, 막후에서 펼쳐졌던 한일 간의 외교 드라마가 마침내 막을 내렸다.
한일 관계의 실타래를 푸는 단서를 제공해 줄 책
『한일 경제협력자금 100억 달러의 비밀』은 몇 가지 점에서 독특하고 학술적 가치도 높다.
첫째, 이 시기의 한일 간 경제협력 문제를 다룬 논문이나 연구서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이 책은 일종의 연구 상 공백을 메워 주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특히, 정보공개법을 이용해 공개된 일본 측의 외교 문서는 물론 교섭에 직간접적으로 참여 내지 관여했던 일본 측 관계자들과 의 인터뷰나 신문기사 등을 충분히 활용함으로써 이 책의 신뢰도는 한층 높아졌다. 또한 한국인으로서는 알기 어려운 자민당 내 파벌 간의 역학 관계, 총리나 외상을 비롯한 일본 측 인사들의 성격이나 ‘철학’ 또는 인물평 등은 일본 정치와 한일 간의 회담 분위기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이 책을 읽는 또 다른 묘미를 제공한다.
둘째, 저자는 당시 외무성의 북동아시아과장으로서 한일 간의 외교 교섭에도 직접 참여했을 뿐만 아니라 교섭 과정을 누구보다 잘 알 수 있는 당사자였지만, 이 책에서 자신을 1인칭이 아니라 ‘북동아시아과장’이라는 3인칭으로 일관해서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 매우 특이하다.
셋째, 전두환 정권은 박정희 시대의 한일 관계가 불건전하고 유착되어 있었다고 비판하면서 새로운 한일 관계를 재구축해야 할 필요성을 제기하지만, 양국 외교 당국 간 교섭이 난항을 거듭하면서 ‘특사’나 ‘밀사’의 파견이 고려되고 실제로 그들이 막후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었던 것은 한일 관계의 특수성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세지마 류조가 한국 측 카운터파트와 접촉할 때 일본 정부와 긴밀한 사전 협의를 거쳤었다는 사실이 이 책을 통해 확인되었다.
2015년은 한일 국교 정상화 50년을 맞이하는 역사적인 해이다. 양국이 처한 국내 상황과 국제 환경의 변화를 고려하면 한일 양국은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한일 경제협력 교섭의 궤적을 추적하고 있는 『한일 경제협력자금 100억 달러의 비밀』은 현재 극도로 경색되고 복잡하게 얽혀 있는 한일 관계의 실타래를 푸는 단서를 제공해 줄 것이다. 한일 관계나 정치사의 이면에 관심이 있는 독자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 작가 소개
저자 : 오구라 카즈오
도쿄대학 법학부를 졸업하고 외무성에 들어갔다. 아메리카국 북미제2과장, 아시아국 북동아시아과장, OECD 대표부 참사관, 주 한국 대사, 주 프랑스 대사 등을 역임했다. 국제교류기금 이사장을 지냈으며, 2011년부터 도쿄 2020올림픽 유치위원회 평의회 사무총장으로 있다.
저서로는 요시다 시게루상을 수상한 『파리의 저우언라이』 『동서문화마찰』 『중국의 위신 일본의 긍지』 『일미경제마찰』 『미국의 12가지 얼굴』 『기록과 고증-일중실무협정교섭』 등이 있다.
역자 : 조진구
도쿄대학 대학원 법학정치학연구과에서 법학박사(정치학 전공) 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강원대학교 일본학과 강사로 있다. ‘국교 정상화 40주년의 한일관계: 신한일어업협정과 독도문제를 중심으로’ 등의 논문을 썼으며,『중일관계-전후에서 신시대로』 『일본 최악의 시나리오-9개의 사각지대』 등의 역서가 있다.
역자 : 김영근
도쿄대학 대학원 총합문화연구과에서 박사학위(국제관계학 전공)를 받았으며, 현재 고려대학교 일본연구센터 부교수로 있다. ‘재해후의 일본경제정책 변용: 간토·전후·한신·동일본대지진의 비교분석’ 등의 논문을 썼으며, 『제언 동일본대지진』 『일본 원자력 정책의 실패』 등의 역서가 있다 .
▣ 주요 목차
프롤로그 한일 관계의 ‘감춰진 부분’
제1장─ 군사정권의 요구
제2장─ 한일 간에 가로놓인 깊은 틈
제3장─ 외교장관들의 ‘철학’
제4장─ 한국의 ‘극일’
제5장─ 전두환과 세지마 류조
제6장─ 위조될 뻔했던 친서
제7장─ ‘최종안’의 행방
제8장─ 친일과 반일의 틈바구니에서
제9장 뉴욕 회담에서 보인 희미한 불빛
제10장 세지마 류조의 이면 공작
제11장 서울의 서설
에필로그 한일의 드라마는 계속되고 있다
역자 후기 한일 관계의 실타래를 푸는 단서를 제공하는 책
전 주한 일본대사가 30년 만에 밝히는 한일 경제협력 비화!
“한일 국교 정상화 50년, 이제 양국 사이의 ‘앙금’을 풀어야 할 때”
2012년 5월, 5만 5,000명을 수용하는 도쿄돔이 환호성으로 가득 찼다. 바로 한국에서 온 아이돌그룹 때문이었다. 수많은 일본인들은 아이돌그룹의 노래를 따라 부르면서 열광했다. 한류 붐 덕분이었다. 이밖에도 일본에서는 ‘김치 다이스키(너무 좋아)’ 등과 같은 말들이 유행하고, 한국어 교실에는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수강생들이 붐볐다. 한국과 일본 사이에는 더 이상 아무런 장벽이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로부터 3개월 뒤인 2012년 8월, 한국의 이명박 대통령이 독도에 상륙하자, 일본 국민들은 엄청난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다. 일본 언론들은 이 행위를 ‘폭거’라고 거칠게 표현했다.
거의 같은 기간에 이렇게 서로 다른 양상을 보이는 것은 일본 국민뿐이 아니다. 한국 국민 또한 마찬가지다. 일본의 만화나 드라마에는 환호하지만, 독도·종군 위안부·역사 교과서 기술 등의 문제가 발생하면 즉각적으로 일본에 대한 반감을 주저 없이 드러낸다. 이것이 가깝고도 먼 이웃나라, 한국과 일본의 현재 모습이다.
전 주한 일본대사 오구라 카즈오는 이런 한일의 극단적인 모습에 의문을 제기하였다. ‘양국 간에 어떤 외교 문제가 발생하거나 정권 교체가 이뤄지거나 하면 표면하에서 꿈틀거리던 국민감정이 어째서 분출해 버리는 것인가?’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의문을 푸는 방법은 한일 간의 격렬한 논쟁이나 교섭 대상이었던 것에 대해서 한일 양국이 그것을 어떻게 처리했는가, 그 과정에서 국민이나 여론이 어떻게 반응했는가, 그리고 두 나라 국내 정치가 어떻게 서로 얽혀 있었는지를 제대로 연구하고, 거기서 미래에 대한 교훈을 읽어 내는 것이라고 확신하였다.
그래서 그 사례로, 1981년 4월부터 1983년 1월까지 1년 반 이상에 걸쳐 일본과 한국 사이에서 이루어졌던 100억 달러에 달하는 금액의 ‘경제협력’을 둘러싼 교섭 과정을 선택하였다. 한국의 정권 교체, 일본 국내정치의 동향, 그리고 당시의 엄중한 미소 대립이라는 국제 정세를 반영한 이 드라마의 무대 앞과 뒤 양쪽을 관찰해 보면 한일 관계의 ‘숨겨진 부분’이 잘 이해되리라 생각한 것이었다.
이러한 배경을 바탕으로 출간된 『한일 경제협력자금 100억 달러의 비밀』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존재하는 한일 관계의 ‘앙금’을 푸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찾아낼 수 있는 열쇠가 될 것이다.
막전, 막후에서 벌어진 한일 간 교섭의 전 과정을 낱낱이 공개하다
한일 간의 숨 막히는 외교 드라마가 시작된 것은 1981년 4월 23일이었다. 4년 가까운 한국대사의 소임을 마치고 귀임 준비를 하던 스노베 료조는 노신영 외무장관의 호출을 받았다. 향후 5년간 100억 달러의 자금을 제공해 달라는 노신영 장관의 갑작스런 요청은 스노베 대사가 보낸 긴급 전문을 통해 곧바로 도쿄의 외무성 수뇌부에 전달되었다.
두 페이지의 짧은 전보였지만, 한국을 담당하는 북동아시아과장과 아시아국장, 그리고 외무 관료의 톱인 외무차관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첫 반응은 한국의 요청은 당돌하며 불합리한 것이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었다.
14년여의 길고 험난한 교섭 끝에 1965년 한일 두 나라는 국교를 수립하고 새로운 출발을 했지만, 두 나라의 국력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었다. 1956년 일본 정부의 첫 번째 경제백서가 “더 이상 전후는 아니다”라고 선언한 이후 일본 경제는 고도의 경제성장을 계속했다. 1960년 40억 달러였던 일본의 수출량은 1965년에는 84억 달러로 늘어났을 뿐만 아니라 그때까지 적자였던 무역수지가 흑자로 돌아서면서 외환 보유고도 점차 증가했다. 반면 1965년 한국의 수출량은 2억 달러에도 미치지 못했으며, 일본과의 무역은 항상 대규모 적자를 기록해 국교 정상화 이후 1980년까지의 누적 적자는 200억 달러에 달했을 정도였다.
1979년 10월 박정희의 암살과 12.12 쿠데타, 1980년 서울의 봄과 광주 민주화 항쟁 등 한국 정치상황은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혼란스러웠다. 이런 가운데 권력을 장악한 신군부 세력은 자신들의 결여된 정통성을 경제 발전을 통해 확보하려고 하였다. 전두환 정권은 “80년대에 또 한 번의 일대 도약을 통하여 풍요한 복지국가의 굳건한 바탕을 이룩”(1981년 3월 3일 제12대 대통령 취임사)하기 위하여 1982년부터 시작되는 제5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수립하였는데, 이를 위해서는 5년간 500억 달러 이상의 외화가 필요했다.
전두환 정권은 필요한 자금의 20%를 일본으로부터 얻어 내려고 했으며, 일본을 설득하기 위해 동원된 논리가 안보였다. 즉 자유 진영의 보루인 한국은 국가예산의 35%를 국방비에 쓰고 있는데, 이것은 한국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일본의 안보에도 기여를 하고 있기 때문에 일본은 그런 한국을 위해 협력할 ‘의무’가 있다는 것이었다. 한국 측은 경제협력을 안보 문제와 연계시키려고 했지만 일본은 난색을 표명했다.
이후 경제협력자금 문제는 한일 양국의 최대 외교 현안이 되었다. 하지만 양국의 기본적인 입장 차이와 국내정치 요인에 더해 1982년 7월에 발생한 일본의 역사 교과서 왜곡 문제라는 암초를 만나 좀처럼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했다. 외교적인 교섭이 교착상태에 빠지면서 이를 타개하기 위해 일본은 비밀리에 총리 특사 자격으로 세지마 류조를 한국에 보내 친분이 있던 군 출신의 권익현과 협의를 하도록 했다. 그리고 그들은 총액 40억 달러, 이 가운데 엔 차관 18억 5천만 달러, 수출입은행 융자 21억 5천만 달러, 기한 7년, 금리 6%대라는 골격에 대해서 큰 틀에서 합의했다. 이어 1983년 1월 나카소네 야스히로 총리가 한국을 전격 방문해 전두환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외교장관 명의의 양해 사항을 일본 측이 발표하고, 한국 측이 이것을 승낙함으로써 막전, 막후에서 펼쳐졌던 한일 간의 외교 드라마가 마침내 막을 내렸다.
한일 관계의 실타래를 푸는 단서를 제공해 줄 책
『한일 경제협력자금 100억 달러의 비밀』은 몇 가지 점에서 독특하고 학술적 가치도 높다.
첫째, 이 시기의 한일 간 경제협력 문제를 다룬 논문이나 연구서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이 책은 일종의 연구 상 공백을 메워 주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특히, 정보공개법을 이용해 공개된 일본 측의 외교 문서는 물론 교섭에 직간접적으로 참여 내지 관여했던 일본 측 관계자들과 의 인터뷰나 신문기사 등을 충분히 활용함으로써 이 책의 신뢰도는 한층 높아졌다. 또한 한국인으로서는 알기 어려운 자민당 내 파벌 간의 역학 관계, 총리나 외상을 비롯한 일본 측 인사들의 성격이나 ‘철학’ 또는 인물평 등은 일본 정치와 한일 간의 회담 분위기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이 책을 읽는 또 다른 묘미를 제공한다.
둘째, 저자는 당시 외무성의 북동아시아과장으로서 한일 간의 외교 교섭에도 직접 참여했을 뿐만 아니라 교섭 과정을 누구보다 잘 알 수 있는 당사자였지만, 이 책에서 자신을 1인칭이 아니라 ‘북동아시아과장’이라는 3인칭으로 일관해서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 매우 특이하다.
셋째, 전두환 정권은 박정희 시대의 한일 관계가 불건전하고 유착되어 있었다고 비판하면서 새로운 한일 관계를 재구축해야 할 필요성을 제기하지만, 양국 외교 당국 간 교섭이 난항을 거듭하면서 ‘특사’나 ‘밀사’의 파견이 고려되고 실제로 그들이 막후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었던 것은 한일 관계의 특수성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세지마 류조가 한국 측 카운터파트와 접촉할 때 일본 정부와 긴밀한 사전 협의를 거쳤었다는 사실이 이 책을 통해 확인되었다.
2015년은 한일 국교 정상화 50년을 맞이하는 역사적인 해이다. 양국이 처한 국내 상황과 국제 환경의 변화를 고려하면 한일 양국은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한일 경제협력 교섭의 궤적을 추적하고 있는 『한일 경제협력자금 100억 달러의 비밀』은 현재 극도로 경색되고 복잡하게 얽혀 있는 한일 관계의 실타래를 푸는 단서를 제공해 줄 것이다. 한일 관계나 정치사의 이면에 관심이 있는 독자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 작가 소개
저자 : 오구라 카즈오
도쿄대학 법학부를 졸업하고 외무성에 들어갔다. 아메리카국 북미제2과장, 아시아국 북동아시아과장, OECD 대표부 참사관, 주 한국 대사, 주 프랑스 대사 등을 역임했다. 국제교류기금 이사장을 지냈으며, 2011년부터 도쿄 2020올림픽 유치위원회 평의회 사무총장으로 있다.
저서로는 요시다 시게루상을 수상한 『파리의 저우언라이』 『동서문화마찰』 『중국의 위신 일본의 긍지』 『일미경제마찰』 『미국의 12가지 얼굴』 『기록과 고증-일중실무협정교섭』 등이 있다.
역자 : 조진구
도쿄대학 대학원 법학정치학연구과에서 법학박사(정치학 전공) 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강원대학교 일본학과 강사로 있다. ‘국교 정상화 40주년의 한일관계: 신한일어업협정과 독도문제를 중심으로’ 등의 논문을 썼으며,『중일관계-전후에서 신시대로』 『일본 최악의 시나리오-9개의 사각지대』 등의 역서가 있다.
역자 : 김영근
도쿄대학 대학원 총합문화연구과에서 박사학위(국제관계학 전공)를 받았으며, 현재 고려대학교 일본연구센터 부교수로 있다. ‘재해후의 일본경제정책 변용: 간토·전후·한신·동일본대지진의 비교분석’ 등의 논문을 썼으며, 『제언 동일본대지진』 『일본 원자력 정책의 실패』 등의 역서가 있다 .
▣ 주요 목차
프롤로그 한일 관계의 ‘감춰진 부분’
제1장─ 군사정권의 요구
제2장─ 한일 간에 가로놓인 깊은 틈
제3장─ 외교장관들의 ‘철학’
제4장─ 한국의 ‘극일’
제5장─ 전두환과 세지마 류조
제6장─ 위조될 뻔했던 친서
제7장─ ‘최종안’의 행방
제8장─ 친일과 반일의 틈바구니에서
제9장 뉴욕 회담에서 보인 희미한 불빛
제10장 세지마 류조의 이면 공작
제11장 서울의 서설
에필로그 한일의 드라마는 계속되고 있다
역자 후기 한일 관계의 실타래를 푸는 단서를 제공하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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