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새롭게 돈을 쓰는 순간, 새로운 삶이 시작된다!
―고미숙이 제안하는 인문학적 돈 쓰기와 비자본 생존 노하우!!
강연에서 만난 한 청년과 고미숙과의 대화 한 토막.
고미숙:얼마나 벌고 싶은데
청년:10억! 먹고살려면 그 정도는 있어야 돼요.
고미숙:그럼 지금 굶고 있냐
청년:아파트랑 자가용 사야죠.
고미숙:그건 지금도 이미 있잖아
청년:더 큰 집이랑 더 좋은 차…… 암튼 그냥 맘이 편할 거 같아요.
고미숙:그럼 지금 그냥 맘 편하게 지내면 되잖아
더 많은 돈을 갖고 싶은 것 말고는 생각해 본 적 없는 사람들. 전국으로 강연을 다니면서 고미숙이 만난 사람들, 혹은 그 주변에 있는 청춘들은 꿈이 10억이기는 했는데, 그 꿈의 10억에는 아무런 이유도, 근거도 없었다. 그 돈으로 무엇을 하고 싶다기보다는 그 숫자 자체를 갈망하게 된 현대인의 자화상. 부자는 부자대로, 가난한 사람은 가난한 대로 모두가 “나 돈 없어!”를 입에 달고 사는 이 기이한 모습에 문득 의문이 생긴 고미숙은 마침내, 어린애부터 할아버지까지 모두 돈타령을 하는 것에 대한 인문학적 탐구를 시작했다. 이 책 『돈의 달인, 호모 코뮤니타스』는 성(性) 담론보다도 훨씬 쉬쉬 되고 있는 ‘돈’ 이야기를 정면에서 다루면서, 화폐와 삶이 어떻게 자유의 새로운 공간을 열어갈 수 있는가를 실험해 보고자 하는 일종의 탐구서다.
당신이 쓰는 것이 당신이 버는 것을 규정한다!
이상하다. 계속 돈을 벌고 있는데도 계속 빚에 허덕인다는 것은. 더 이상한 것은 돈 들어올 구멍이 아예 없는 백수보다, 다달이 월급이 들어오는 정규직들이 더 돈이 없다는 사실. 당장 우리 주변만 슬쩍 둘러보더라도 입만 열면 다들 돈타령이다. 저자의 지적처럼 이 시대의 승자들, 곧 정규직들은 “피 말리는 경쟁 속에서 생의 의지를 헌납한 채” 살아가며, 그런 이들에게 직장은 ‘삶의 터전’이 아니라 ‘죽어 가는 현장’이 된다. 매달 돌아오는 ‘카드빚’에 허덕이며 살기 때문에 늘 돈이 부족한 사람들은, 돈을 제대로 쓰는 것은 충분히 벌고 난 다음이라고 생각한다. 아프리카에서 기아로 굶어죽는 아이들을 보아도, 쪽방에서 너무 덥거나 혹은 너무 추워서 혼자 죽어 간 독거노인들의 이야기를 들어도, 가슴은 아프지만 기꺼이 나의 지갑을 열기에 내 수입은 아직 적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정말 그럴까 이러한 가슴과 머리와 손과의 거리감은 돈을 벌고 쓰는 것을 관념적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막연히 허구의 1억, 10억을 꿈꾸고, 그 돈이 들어오면 뭔가 달라질 것이라는 생각. 그래서 당장 어딘가,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만 원, 십만 원에 대해서는 일단 젖혀두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모두 ‘돈의 달인’이 되자고 하는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돈은 생각이나 관념이 아니라, 행동이다. 나의 통장에 실제로 얼마가 있는지, 내가 얼마를 버는 사람인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내가 그 돈을 어디에 어떤 식으로 쓰는가가 돈과 나의 관계를, 나아가 내가 버는 것까지도 규정한다. 연봉이 7,8천이 훌쩍 넘더라도 돈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노예가 될 수 있고, 한 달에 44만 원을 벌더라도 즐겁고 건강하게 살면서 저축까지도 할 수 있는 부자, 아니 ‘돈의 달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돈의 달인이란 돈과 ‘사이좋게’ 지내는 사람을 뜻한다. 사이좋게 지낸다는 건 돈에 ‘먹히지’ 않고, 돈을 통하여 삶을 창조하는 걸 의미한다. ……화폐는 탄생 이래 늘 공동체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 화폐가 공동체적 삶의 다양성을 먹어 치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19세기 사회학자들은 코뮤니타스를 특별히 ‘화폐에 대항하는 공동체’라고 명명하였다. 화폐의 ‘식성’에 맞서 삶의 창조성을 지켜 내고자 한 것이다.”(「돈의 달인이 호모 코뮤니타스가 된 사연은」, 7쪽)
돈의 달인이 되고, 돈과 사이좋게 지내는 것… 이런 것들은 사실 우리 모두가 꾸는 꿈이 아니던가 그러나 사람들은 화폐에 대항하기 이전에 “먹고사는 데”, 혹은 “많은 걸 바라는 게 아니고 그저 남들처럼만 살려면” 어느 정도의 돈이 필요하다고 상정한다. 그래서 입만 열었다 하면 “돈! 돈! 돈!”을 외치게 된다. 그러나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의 속내를 들여다보면 거기엔 ‘서울 중산층의 삶’이라는 기준이 버티고 있다. 넉넉한 평수의 아파트, 주눅 들지 않을 정도의 차, 적당한 해외여행……. 따라서 ‘서울 중산층’을 내적 기준으로 받아들인 사람들에게 “왜 그렇게 많은 돈이 필요하냐”는 질문은 더 이상 무의미하다. 정말로 내가 돈이 없거나 부족한지, 부족하다면 얼마나 어떻게 부족한지에 대해서 단 한 번도 제대로 고찰해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은 평균 혹은 합리적이란 이름의 덫에 걸려 명확한 것 하나 없는 ‘기준’에 삶을 잠식당한다. 이 책에서 고미숙이 실험하고자 하는 것은 각자의 욕망과 각자의 윤리를 가지고 각자의 삶을 살 때, 경제와 일상은 재구성될 수 있을까, 혹은 화폐와 삶이 어떻게 자유의 새로운 공간을 열어갈 수 있는가이다. 여기서 관건은 단지 허구일 뿐인 돈에 대한 기준을 내려놓는 것, 그리고 우리 스스로 헐떡거리는 삶을 중지하고 자본의 노예에서 벗어나는 한발을 내딛는 것이다.
현장성을 획득한 인문학적 화폐 탐구의 가능성!
백수들 가득한 ''수유+너머'' 경제의 비밀 아닌 비밀!
고미숙의 활동 기반인 ''연구공간 수유+너머''는 박사 실업자, 혹은 그냥 백수들로 가득하다. 혹시라도 방문을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넉넉한 공간에, 주방과 넓은 강의실까지 있는 연구실은 그 규모가 꽤 크다. 그래서 드는 의문― ‘제대로 돈 버는 사람도 없는 이곳이 어떻게 굴러가는 걸까!’
이 책, 돈의 달인, 호모 코뮤니타스는 정규직 하나 없이 다양한 계층과 나이대별의 백수 및 비정규직을 망라하고 있는 연구실이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경제적 어려움에 처한 적이 없다는 놀라운 이야기를 밝히며 그와 함께, 이 자본주의의 포화 속에서 어떻게 돈 없는 사람들이 그렇게 큰 규모의 연구실을 꾸리고 있는지 그 실상을 드러내고 있는데, 그 연구실 경제의 비밀이라는 게 알면 알수록 미스터리가 따로 없다.
“회비부터… 한마디로 중구난방이다. 세대가 다르고, 자기가 처한 조건이 다르고, 무엇보다 경제력이 다른데, 어떻게 회비를 똑같이 낸단 말인가”―연구실에서 추구하는 평등은 수학적인 평등이 아니다. 차이가 살아 있는 평등, 그것이 진짜 평등이기 때문. 그리고 또 하나. “작년에는 백수였지만, 올해는 좀 번다 싶으면 스스로 회비를 조정한다. ……다들 수입이 불규칙하다 보니 느닷없이 수입이 생길 때… 크게 선심을 쓰는 것이다. 말하자면, 특별회비는 돈으로 하는 ‘선물’인 셈이다.”―축적을 지향해선 안 된다는 공동체적 마인드로 흘러오는 만큼 다시 흘러가게 해야 하므로, 사람들은 아무리 돈이 없다가 큰돈이 들어와도 자연스럽게 특별회비를 내고, 동료들에게 베푸는 것을 잊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축적·증식이 아니라 돈을 통해 삶이 구성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공동체 내에서 요구되는 이런 식의 ‘차이/흐름의 돈 쓰기’는 평소 고미숙의 경제론과 아주 가까이 닿아 있다.
“경제력이 비슷하다고 해서 똑같은 방식으로 돈을 쓰는 건 좀 이상하지 않은가 돈을 쓰는 데도 모름지기 개성과 스타일이 있어야 한다. 다른 분야에선 그렇게 튀지 못해 안달하면서 돈의 용법에 있어서는 우째 그리 몰개성을 추구하는지. 혹시 주변에 경제력이 비슷한 사람들만 있어서 그런 거라면 그건 더 심각한 사태다. 세대와 계층, 국경을 가로지르는 이 ‘글로벌’한 시대에 그렇게 균질적인 네트워크밖에 없다니. 그거야말로 재산규모와 삶의 크기가 똑같다는 걸 증명하는 꼴이다.”(175쪽)
44만원 세대+88만원 세대+청년백수=이보다 더 리얼할 수 없는 현장리포트
책의 첫머리에서 저자가 밝히고 있듯이 이 책은 사례탐구와 함께 진행되었다. 책의 말미에 부록으로 실려 있는 세 편의 리포트는 각각 ①탈학교한 10대 소녀, 중졸 백수의 44만 원 세대의 돈 이야기, ②친구들 중에 비정규직과 계약직 혹은 백수가 더 많은 20대의 88만 원 세대 리포트, ③마지막으로 10년 만에 대학을 졸업하고 난 다음, 저소득층 자녀들의 공부를 지원하기 위한 기금을 맡아서 고군분투한 청년백수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들의 현장감 있는 리포트는 막연히 추측만 하고 혀를 차던 젊은이들의 돈에 대한 개념도를 노골적이고 구체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당장 돈 100만 원이 생기면 무엇을 하겠냐는 질문에 “명품매장으로 달려가겠다”고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한 어느 청소년, 모은 돈을 어디다 쓸지 몰라 명품을 하나둘 사 모으면서도 그 돈으로 후원을 하는 건 어떠냐는 권유에는 “나 돈 없어”라며 손을 내젓는 어떤 20대, 부유한 집에 자랐음에도 젊을 때 바짝 돈을 벌어 나중에 자식에게 물려주는 게 꿈인 어느 청년…. 고미숙은 이런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임상사례를 가지고 인문학적 분석을 시도한다.
“우리 시대 사회적 관계는 쇼핑과 회식을 통해서만 구성된다. 뭔가 관계를 맺으려면 이 회로를 따라 움직여야만 하는 것이다.…친구란, ‘함께 소비할 수 있는 사람’으로 정의된다.…그러니 늘 ‘돈 없어!’ ‘돈이 필요해!’를 연발하고, 그러다 보면 어느덧 돈이 인생의 꿈이 되어 버린다. 꿈 이 낱말은 부적절하다. 꿈이라면 그건 한바탕 악몽에 가깝다. 삶을 소외시키고 욕망을 소거해 버리는 끔찍한 악몽.”(58~59쪽)
다른 삶이 진짜로 시작되는 몇 가지 방법―비자본 생존 노하우
집 없어 서러운 청춘들에게 희소식, 더부살이 프로젝트
서울의 경우, 1억이라는 엄청난 돈을 가지고도 전세방 하나 구하기가 어렵다는 것이 놀랍지만 ‘현실’이다. 2,30대 젊은이?이 독립을 하려고 해도 어지간한 종잣돈이 없고서는 불가능하다는 말이다. 지방에 살다가 대학 때문에 서울에서 지내는 경우, 혹 운이 좋아 기숙사에 살게 되더라도 방학이 되면 방을 비워 주어야 한다. 그렇게 갈 곳 없어 서러운 청춘들에게 이 책이 권하는 한 가지는, “같이 살라”는 것. ''수유+너머''에서는 2004년부터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목돈을 보증금에 보태어 50평 규모의 큰집을 빌려 그곳에서 공동주거운동을 하고 있다. 보통 10~15명 정도의 청년들이 함께 살면서 월세를 나누어 낸다. 혹시 연구실에 외국이나 먼 지방에서 손님이 찾아올 경우 게스트룸으로 이용되기도 하고, 막차를 놓친 사람이라면 하루 5천 원에 묵어갈 수도 있다.
올해로 공동주거 6년째인 연구실의 청년 기숙사, ‘서경재’는 현재 12명의 청년들이 한 달에 15만 원씩을 방세로 내고, 월세의 부족분은 연구실에서 보조를 해준다. 연구실에서는 스리랑카의 환율이 적용된다는 우스갯소리처럼, 연구실에서 먹고, 자고 하는 데에 한 달에 30만 원이면 넉넉하다.
“천만 원을 은행에 저축했을 때 돌아오는 건 약간의 금리뿐이다. 하지만 이 돈을 더부살이에 쓰면 하나의 세상이 펼쳐진다. 12명의 청년들이 만들어 내는 새로운 세상이.……금리 따위와는 비교할 수도 없는 엄청난 대가를 받는 셈이다.”(128쪽)
그래서 고미숙은 뜻있는 중년들에게 권한다. 서너 명밖에 되지 않는 식구가 4,50평 넓은 집에서 살지 말고, 알맞은 평수로 줄인 후 그 차액으로 주변의 청년들이나 독신자들이 함께 살 수 있는 공동주택을 운영해 보라고. 그러면서 부동산 재테크나 전략을 넘어 주거공간에 대한 패러다임 자체를 바꾸어 보자고 말한다. 집이란 무엇인지, 집은 무엇으로 존재하는지 등등 우리가 지금껏 가족과 혈연의 테두리 안에서밖에 생각하지 못했던 집과 공간에 대한 생각을 이제는 바꾸자고 말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저자의 말처럼, 도시 안에서도 얼마든지 마을과 네트워크가 만들어질 것이다.
돈은 어떻게 돌고 도는가 보리기금 이야기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아침에 주는 도토리와 저녁에 주는 도토리의 개수를 바꾼 것에 만족한 원숭이, 즉 조삼모사(朝三暮四)의 상황이라고나 할까. 구로 지역의 저소득층 자녀들의 공부를 위하여 열리는 서당에서 강사료를 지급하기 위한 ‘보리기금’은 ''수유+너머''의 연구실 회원들이나 세미나 혹은 강의를 하러 오는 사람들의 돈으로 조성된다. 그리고 그 돈은 아이들의 장학금으로 쓰이고, 그 장학금을 받은 아이들은 다시 연구실에 강의료로 지불한다. 결국 일정 금액의 돈이 돌고 도는 것이다. 강사는 자신이 낸 기금으로 강사료를 받는 것! 그러나 이때 도는 돈은 결코 같은 돈이 아니라는 사실이 중요하다. 아이들이 공부를 하면서 쓴 글들이 재밌다고, 매니저가 보리기금을 꾸리면서 쓰는 일지가 너무 좋다고 사람들이 특별회비를 내고, 집에서 모으던 돼지저금통을 들고 와 보리기금으로 쾌척하기도 한다. 이렇게 모인 돈은 단순한 몇만, 몇십, 몇백만 원이 아니라, 수많은 인연과 인과가 붙어 있는 돈이다. 여러 사람과 사건들 속에서 조성되고 쓰이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아이들 또한 특정 액수의 장학금을 지원받는 것 이상의 배움을 얻는다. 이 ‘보리기금’에서의 돈은 관계를 구성하고 공부의 장(場)을 여는 엄청난 역할을 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인연으로 엮인 모든 사람이 돈이란 것은 소유가 아닌 흐름 속에서 더 큰 효과를 만들어 낸다는 것을 아는 일이다.
“기금은 일단 강사들의 생활비로 들어간다. 생활비의 일부는 다시 연구실에서 생활하는 비용으로 흘러들어간다. 그리고 생활비로 책을 사보거나 강의를 듣는다. 기금은 아이들을 가르치는 데 쓰이기 위한 것이지만 동시에 강사가 공부할 수 있는 물적 토대를 만들어 준다. 아이들을 가르쳐서 생활비를 받고 그 돈으로 강의를 듣고 다시 아이들을 가르치고. 여기엔 돈의 순환뿐만 아니라 배움의 순환 역시 작동한다.”(부록3, 우리 모두 ‘보리’합시다. 259~260쪽)
서로에게 선물이 되는 새로운 경제학을 위하여
책에서 저자가 돈의 달인 중 한 사람으로 꼽는 인도의 성자 비노바 바베(Vinoba Bhave)는 그의 동료에게 여행을 떠날 때 돈을 가져가지 말라고 조언했다. 그 이유는 돈은 사람을 오만하게 만들기 때문. 여행 중 하루에 먼 길을 걸어 지치고 피곤하고 배가 고플 때, 끼니를 해결하고 하룻밤 묵어갈 숙소를 찾아야 할 때 만약 돈을 가지고 있다면 다른 누구의 도움도 없이 그냥 간단히 돈으로 해결할 수 있다. 그러나 돈이 없다면, 끼니와 잠자리를 제공해 줄 누군가를 간절히 찾아야 하고, 그런 간절함으로 겸손해지는 법, 누구도 선택하지 않고 판단하지 않고 차별하지 않는 법을 배울 수 있다는 것이다.
비록 우리는 참으로 오랫동안 돈만 있으면 모든 게 다 이루어지는 자본주의적 교환의 세상에서 살아왔지뢸, 이제는 돈에 붙어 온 인과, 돈이 불러올 수많은 인연들을 생각하며 돈 앞에서 조금은 더 겸손해지고, 때로는 돈 앞에서 조금은 더 당당해질 필요가 있지 않을까 이 책, 돈의 달인, 호모 코뮤니타스는 그렇게 당당함과 겸허함으로 돈을 ‘제대로’ 쓸 것을 역설하며 실제로 하나의 세계가 순수증여와 선물로도 충분히 가능함을, 저자가 자신의 삶과 네트워크로 증명하고 있는 책이다. 10여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수유+너머''라는 공동체를 꾸려오며, 형편이 어려운 후배들의 학자금을 지원해 주고, 주변 사람들에게 밥을 퍼주면서 고미숙은 아무리 작은 돈이라도 허투루 다루지 않는 투명함, 아무리 큰돈이라도 단호하게 처리할 수 있는 결단력, 돈 앞에서 절대 머리 숙이지 않는 당당함으로 그 존재의 크기를 증명했다.
그는 가난을 참고 견디라고 말하지 않는다. 가난해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거 아니냐고 순진하게 말하지도 않는다. 고미숙이 꿈꾸는 것이 하나 있다면, 각자의 존재가 서로에게 선물이자 순수증여가 되는 세상. 그렇게 새로운 세상이 우리를 통해서 태어나기를 고대하고 있을 뿐이다.
▣ 작가 소개
저 : 고미숙
Ko Mi Sook,高美淑
고전평론가. 1960년 강원도 정선군 함백에서 태어났다. 고려대학교 어문학부에 입학하여 독일문학을 전공하였으나, 대학교 4학년 때 김흥규 선생님의 강의를 듣고 고전문학에 매료되어 한국 고전문학으로 진로를 바꾸었다. 이후 고려대학교 대학원 국문과에 진학하여 마르크스를 공부하면서 역사와 실천, 삶과 혁명, 혁명과 구도 등 인생을 걸 만한 문제들과 대면하게 된다. 19세기 예술사로 논문을 써 박사 학위를 받았고, 이후 잠시 비평활동을 한 적이 있다. 이 때 『비평기계』라는 비평집을 내기도 했다.
그러던 중 수유리 강북구청 옆 조그만 사무실을 열어 ''수유+너머''라는 세미나를 조직했다. 처음은 고미숙과 권보드래가 주도한 ''계몽기 신문세미나''로 출발했고, 고병권, 이진경 등이 참여해 니체에 관한 강의를 듣고 푸코의 『말과 사물』을 집중 강독하는 등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더 많은 친구들이 참여하게 되었고, 지금은 대학로로 자리를 옮겨 <수유연구실+연구공간 ''너머''>(www.transs.pe.kr)라는 방대한 ''지식인 코뮌''을 꾸리게 되었다. 연구실에서 하는 일은 세미나와 강좌, 토론회 등. 연구실 사람들의 구성도 다채롭다. 전문연구자들부터 시작해서 예비박사들, 석사과정은 물론이고 학부졸업생, 직장인에서 전업주부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 또한 회원들의 전공 역시 국문학, 철학, 사회학뿐만 아니라 수학, 중문학, 역사학, 여성학, 교육학, 종교학, 산업디자인 등 점차 폭이 넓어지고 있다.
그녀는 스스로를 ''고전평론가''로 불러주길 바란다. 그녀 스스로 만든 직업이라고 하는데, ''고전을 싱싱하게 재구성하여 현대의 독자들과 만나게 해주는 일종의 매니저''라고 이해하면 된다고 한다. 지금까지 쓴 책으로는 『19세기 시조의 예술사적 의미』, 『18세기에서 20세기 초 한국 시가사의 구도』, 『한국의 근대성, 그 기원을 찾아서』,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아무도 기획하지 않은 자유』, 『나비와 전사 - 근대! 18세기와 탈근대를 만나다』, 『한국고전시가선』, 『18세기에서 20세기초 한국시가사의 구도』 등이 있다.
▣ 주요 목차
책머리에
프롤로그 : 돈에 대한 ‘아주 원초적’ 질문 셋
하나 청춘의 꿈, 10억
둘 미워하거나 무관심하거나!
셋 낙타와 포대화상
1부 문제는 돈이다 - 돈타령 ‘천태만상’
돈은 ‘내 운명’_요람에서 무덤까지
한방을 기다리는 마지막 ‘버블’ 히어로들!
아파트 ‘토테미즘’_21세기판 ‘전설의 고향’
우리를 ‘술푸게’ 하는 것들 _대출과 보험
악착같이 모아서 가족한테
소비의 ‘거룩한’( ) 형식 _쇼핑과 회식
서글픈 ‘왕복달리기’_탐욕 아니면 청승
대체 돈이 뭐길래 _생명과 화폐
2부 돈 - 잘! 벌고 잘 쓰는! 실전 ‘노하우’
부자가 되려면 학교에 다니지 마라
유산과다=위산과다
젊어 고생, 사서 하라
비자본 생존 노하우1 _돈 없이 살아남기
비자본 생존 노하우2 _21세기 新 백수론
우정의 정치경제학 _청년실업의 대안
여자들이 밥을 사는 그날까지!
돈에 대한 공부를 일상화하라
이벤트 _돈이 아니라 몸으로!
더부살이 프로젝트
‘북드라망’에 접속하라!
성공의 새로운 척도, ‘호모 에렉투스’-되기
3부 돈에 대한 우주적 상상력 - 카오스 경제학을 향하여!
쓰면서, 행복하라! _ 교환에서 증여로
돈은 ‘물’이다 _돈을 ‘물’ 쓰듯!
선물의 경제학 혹은 ‘인디언-되기’
이매진 노 머니(Imagine No Money)!
공동체, 최고의 생존전략 _마을이 세계를 구한다!
카오스 경제학의 기초개념
문제는 돈이 아니다 _소유에서 자유로!
순수증여 _다시 포대화상으로!
돈 벌어서 남주자! _‘곰-되기’, ‘코끼리-되기’
덧달기 : 우주에는 ‘공짜점심’이 없다 _ 돈과 사주명리학
에필로그 : 돈의 달인들 - ‘호모 코뮤니타스’의 향연
하나 흥부의 눈부신 카리스마
둘 방랑하는 교사, 움직이는 대학
셋 가난한 사람들의 은행가, 무하마드 유누스
부록
1. 중졸 백수의 ‘44만 원 세대 보고서’ _44만 원 세대의 돈 이야기 (김해완)
2. 정규직 3년차의 ‘20대를 위한 변명’ _88만 원 세대의 돈 쓰기 (임군)
3. 청년백수의 ‘좌충우돌 보리기금 운영기’ _우리 모두 ‘보리’합시다 (류시성)
새롭게 돈을 쓰는 순간, 새로운 삶이 시작된다!
―고미숙이 제안하는 인문학적 돈 쓰기와 비자본 생존 노하우!!
강연에서 만난 한 청년과 고미숙과의 대화 한 토막.
고미숙:얼마나 벌고 싶은데
청년:10억! 먹고살려면 그 정도는 있어야 돼요.
고미숙:그럼 지금 굶고 있냐
청년:아파트랑 자가용 사야죠.
고미숙:그건 지금도 이미 있잖아
청년:더 큰 집이랑 더 좋은 차…… 암튼 그냥 맘이 편할 거 같아요.
고미숙:그럼 지금 그냥 맘 편하게 지내면 되잖아
더 많은 돈을 갖고 싶은 것 말고는 생각해 본 적 없는 사람들. 전국으로 강연을 다니면서 고미숙이 만난 사람들, 혹은 그 주변에 있는 청춘들은 꿈이 10억이기는 했는데, 그 꿈의 10억에는 아무런 이유도, 근거도 없었다. 그 돈으로 무엇을 하고 싶다기보다는 그 숫자 자체를 갈망하게 된 현대인의 자화상. 부자는 부자대로, 가난한 사람은 가난한 대로 모두가 “나 돈 없어!”를 입에 달고 사는 이 기이한 모습에 문득 의문이 생긴 고미숙은 마침내, 어린애부터 할아버지까지 모두 돈타령을 하는 것에 대한 인문학적 탐구를 시작했다. 이 책 『돈의 달인, 호모 코뮤니타스』는 성(性) 담론보다도 훨씬 쉬쉬 되고 있는 ‘돈’ 이야기를 정면에서 다루면서, 화폐와 삶이 어떻게 자유의 새로운 공간을 열어갈 수 있는가를 실험해 보고자 하는 일종의 탐구서다.
당신이 쓰는 것이 당신이 버는 것을 규정한다!
이상하다. 계속 돈을 벌고 있는데도 계속 빚에 허덕인다는 것은. 더 이상한 것은 돈 들어올 구멍이 아예 없는 백수보다, 다달이 월급이 들어오는 정규직들이 더 돈이 없다는 사실. 당장 우리 주변만 슬쩍 둘러보더라도 입만 열면 다들 돈타령이다. 저자의 지적처럼 이 시대의 승자들, 곧 정규직들은 “피 말리는 경쟁 속에서 생의 의지를 헌납한 채” 살아가며, 그런 이들에게 직장은 ‘삶의 터전’이 아니라 ‘죽어 가는 현장’이 된다. 매달 돌아오는 ‘카드빚’에 허덕이며 살기 때문에 늘 돈이 부족한 사람들은, 돈을 제대로 쓰는 것은 충분히 벌고 난 다음이라고 생각한다. 아프리카에서 기아로 굶어죽는 아이들을 보아도, 쪽방에서 너무 덥거나 혹은 너무 추워서 혼자 죽어 간 독거노인들의 이야기를 들어도, 가슴은 아프지만 기꺼이 나의 지갑을 열기에 내 수입은 아직 적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정말 그럴까 이러한 가슴과 머리와 손과의 거리감은 돈을 벌고 쓰는 것을 관념적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막연히 허구의 1억, 10억을 꿈꾸고, 그 돈이 들어오면 뭔가 달라질 것이라는 생각. 그래서 당장 어딘가,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만 원, 십만 원에 대해서는 일단 젖혀두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모두 ‘돈의 달인’이 되자고 하는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돈은 생각이나 관념이 아니라, 행동이다. 나의 통장에 실제로 얼마가 있는지, 내가 얼마를 버는 사람인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내가 그 돈을 어디에 어떤 식으로 쓰는가가 돈과 나의 관계를, 나아가 내가 버는 것까지도 규정한다. 연봉이 7,8천이 훌쩍 넘더라도 돈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노예가 될 수 있고, 한 달에 44만 원을 벌더라도 즐겁고 건강하게 살면서 저축까지도 할 수 있는 부자, 아니 ‘돈의 달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돈의 달인이란 돈과 ‘사이좋게’ 지내는 사람을 뜻한다. 사이좋게 지낸다는 건 돈에 ‘먹히지’ 않고, 돈을 통하여 삶을 창조하는 걸 의미한다. ……화폐는 탄생 이래 늘 공동체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 화폐가 공동체적 삶의 다양성을 먹어 치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19세기 사회학자들은 코뮤니타스를 특별히 ‘화폐에 대항하는 공동체’라고 명명하였다. 화폐의 ‘식성’에 맞서 삶의 창조성을 지켜 내고자 한 것이다.”(「돈의 달인이 호모 코뮤니타스가 된 사연은」, 7쪽)
돈의 달인이 되고, 돈과 사이좋게 지내는 것… 이런 것들은 사실 우리 모두가 꾸는 꿈이 아니던가 그러나 사람들은 화폐에 대항하기 이전에 “먹고사는 데”, 혹은 “많은 걸 바라는 게 아니고 그저 남들처럼만 살려면” 어느 정도의 돈이 필요하다고 상정한다. 그래서 입만 열었다 하면 “돈! 돈! 돈!”을 외치게 된다. 그러나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의 속내를 들여다보면 거기엔 ‘서울 중산층의 삶’이라는 기준이 버티고 있다. 넉넉한 평수의 아파트, 주눅 들지 않을 정도의 차, 적당한 해외여행……. 따라서 ‘서울 중산층’을 내적 기준으로 받아들인 사람들에게 “왜 그렇게 많은 돈이 필요하냐”는 질문은 더 이상 무의미하다. 정말로 내가 돈이 없거나 부족한지, 부족하다면 얼마나 어떻게 부족한지에 대해서 단 한 번도 제대로 고찰해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은 평균 혹은 합리적이란 이름의 덫에 걸려 명확한 것 하나 없는 ‘기준’에 삶을 잠식당한다. 이 책에서 고미숙이 실험하고자 하는 것은 각자의 욕망과 각자의 윤리를 가지고 각자의 삶을 살 때, 경제와 일상은 재구성될 수 있을까, 혹은 화폐와 삶이 어떻게 자유의 새로운 공간을 열어갈 수 있는가이다. 여기서 관건은 단지 허구일 뿐인 돈에 대한 기준을 내려놓는 것, 그리고 우리 스스로 헐떡거리는 삶을 중지하고 자본의 노예에서 벗어나는 한발을 내딛는 것이다.
현장성을 획득한 인문학적 화폐 탐구의 가능성!
백수들 가득한 ''수유+너머'' 경제의 비밀 아닌 비밀!
고미숙의 활동 기반인 ''연구공간 수유+너머''는 박사 실업자, 혹은 그냥 백수들로 가득하다. 혹시라도 방문을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넉넉한 공간에, 주방과 넓은 강의실까지 있는 연구실은 그 규모가 꽤 크다. 그래서 드는 의문― ‘제대로 돈 버는 사람도 없는 이곳이 어떻게 굴러가는 걸까!’
이 책, 돈의 달인, 호모 코뮤니타스는 정규직 하나 없이 다양한 계층과 나이대별의 백수 및 비정규직을 망라하고 있는 연구실이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경제적 어려움에 처한 적이 없다는 놀라운 이야기를 밝히며 그와 함께, 이 자본주의의 포화 속에서 어떻게 돈 없는 사람들이 그렇게 큰 규모의 연구실을 꾸리고 있는지 그 실상을 드러내고 있는데, 그 연구실 경제의 비밀이라는 게 알면 알수록 미스터리가 따로 없다.
“회비부터… 한마디로 중구난방이다. 세대가 다르고, 자기가 처한 조건이 다르고, 무엇보다 경제력이 다른데, 어떻게 회비를 똑같이 낸단 말인가”―연구실에서 추구하는 평등은 수학적인 평등이 아니다. 차이가 살아 있는 평등, 그것이 진짜 평등이기 때문. 그리고 또 하나. “작년에는 백수였지만, 올해는 좀 번다 싶으면 스스로 회비를 조정한다. ……다들 수입이 불규칙하다 보니 느닷없이 수입이 생길 때… 크게 선심을 쓰는 것이다. 말하자면, 특별회비는 돈으로 하는 ‘선물’인 셈이다.”―축적을 지향해선 안 된다는 공동체적 마인드로 흘러오는 만큼 다시 흘러가게 해야 하므로, 사람들은 아무리 돈이 없다가 큰돈이 들어와도 자연스럽게 특별회비를 내고, 동료들에게 베푸는 것을 잊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축적·증식이 아니라 돈을 통해 삶이 구성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공동체 내에서 요구되는 이런 식의 ‘차이/흐름의 돈 쓰기’는 평소 고미숙의 경제론과 아주 가까이 닿아 있다.
“경제력이 비슷하다고 해서 똑같은 방식으로 돈을 쓰는 건 좀 이상하지 않은가 돈을 쓰는 데도 모름지기 개성과 스타일이 있어야 한다. 다른 분야에선 그렇게 튀지 못해 안달하면서 돈의 용법에 있어서는 우째 그리 몰개성을 추구하는지. 혹시 주변에 경제력이 비슷한 사람들만 있어서 그런 거라면 그건 더 심각한 사태다. 세대와 계층, 국경을 가로지르는 이 ‘글로벌’한 시대에 그렇게 균질적인 네트워크밖에 없다니. 그거야말로 재산규모와 삶의 크기가 똑같다는 걸 증명하는 꼴이다.”(175쪽)
44만원 세대+88만원 세대+청년백수=이보다 더 리얼할 수 없는 현장리포트
책의 첫머리에서 저자가 밝히고 있듯이 이 책은 사례탐구와 함께 진행되었다. 책의 말미에 부록으로 실려 있는 세 편의 리포트는 각각 ①탈학교한 10대 소녀, 중졸 백수의 44만 원 세대의 돈 이야기, ②친구들 중에 비정규직과 계약직 혹은 백수가 더 많은 20대의 88만 원 세대 리포트, ③마지막으로 10년 만에 대학을 졸업하고 난 다음, 저소득층 자녀들의 공부를 지원하기 위한 기금을 맡아서 고군분투한 청년백수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들의 현장감 있는 리포트는 막연히 추측만 하고 혀를 차던 젊은이들의 돈에 대한 개념도를 노골적이고 구체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당장 돈 100만 원이 생기면 무엇을 하겠냐는 질문에 “명품매장으로 달려가겠다”고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한 어느 청소년, 모은 돈을 어디다 쓸지 몰라 명품을 하나둘 사 모으면서도 그 돈으로 후원을 하는 건 어떠냐는 권유에는 “나 돈 없어”라며 손을 내젓는 어떤 20대, 부유한 집에 자랐음에도 젊을 때 바짝 돈을 벌어 나중에 자식에게 물려주는 게 꿈인 어느 청년…. 고미숙은 이런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임상사례를 가지고 인문학적 분석을 시도한다.
“우리 시대 사회적 관계는 쇼핑과 회식을 통해서만 구성된다. 뭔가 관계를 맺으려면 이 회로를 따라 움직여야만 하는 것이다.…친구란, ‘함께 소비할 수 있는 사람’으로 정의된다.…그러니 늘 ‘돈 없어!’ ‘돈이 필요해!’를 연발하고, 그러다 보면 어느덧 돈이 인생의 꿈이 되어 버린다. 꿈 이 낱말은 부적절하다. 꿈이라면 그건 한바탕 악몽에 가깝다. 삶을 소외시키고 욕망을 소거해 버리는 끔찍한 악몽.”(58~59쪽)
다른 삶이 진짜로 시작되는 몇 가지 방법―비자본 생존 노하우
집 없어 서러운 청춘들에게 희소식, 더부살이 프로젝트
서울의 경우, 1억이라는 엄청난 돈을 가지고도 전세방 하나 구하기가 어렵다는 것이 놀랍지만 ‘현실’이다. 2,30대 젊은이?이 독립을 하려고 해도 어지간한 종잣돈이 없고서는 불가능하다는 말이다. 지방에 살다가 대학 때문에 서울에서 지내는 경우, 혹 운이 좋아 기숙사에 살게 되더라도 방학이 되면 방을 비워 주어야 한다. 그렇게 갈 곳 없어 서러운 청춘들에게 이 책이 권하는 한 가지는, “같이 살라”는 것. ''수유+너머''에서는 2004년부터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목돈을 보증금에 보태어 50평 규모의 큰집을 빌려 그곳에서 공동주거운동을 하고 있다. 보통 10~15명 정도의 청년들이 함께 살면서 월세를 나누어 낸다. 혹시 연구실에 외국이나 먼 지방에서 손님이 찾아올 경우 게스트룸으로 이용되기도 하고, 막차를 놓친 사람이라면 하루 5천 원에 묵어갈 수도 있다.
올해로 공동주거 6년째인 연구실의 청년 기숙사, ‘서경재’는 현재 12명의 청년들이 한 달에 15만 원씩을 방세로 내고, 월세의 부족분은 연구실에서 보조를 해준다. 연구실에서는 스리랑카의 환율이 적용된다는 우스갯소리처럼, 연구실에서 먹고, 자고 하는 데에 한 달에 30만 원이면 넉넉하다.
“천만 원을 은행에 저축했을 때 돌아오는 건 약간의 금리뿐이다. 하지만 이 돈을 더부살이에 쓰면 하나의 세상이 펼쳐진다. 12명의 청년들이 만들어 내는 새로운 세상이.……금리 따위와는 비교할 수도 없는 엄청난 대가를 받는 셈이다.”(128쪽)
그래서 고미숙은 뜻있는 중년들에게 권한다. 서너 명밖에 되지 않는 식구가 4,50평 넓은 집에서 살지 말고, 알맞은 평수로 줄인 후 그 차액으로 주변의 청년들이나 독신자들이 함께 살 수 있는 공동주택을 운영해 보라고. 그러면서 부동산 재테크나 전략을 넘어 주거공간에 대한 패러다임 자체를 바꾸어 보자고 말한다. 집이란 무엇인지, 집은 무엇으로 존재하는지 등등 우리가 지금껏 가족과 혈연의 테두리 안에서밖에 생각하지 못했던 집과 공간에 대한 생각을 이제는 바꾸자고 말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저자의 말처럼, 도시 안에서도 얼마든지 마을과 네트워크가 만들어질 것이다.
돈은 어떻게 돌고 도는가 보리기금 이야기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아침에 주는 도토리와 저녁에 주는 도토리의 개수를 바꾼 것에 만족한 원숭이, 즉 조삼모사(朝三暮四)의 상황이라고나 할까. 구로 지역의 저소득층 자녀들의 공부를 위하여 열리는 서당에서 강사료를 지급하기 위한 ‘보리기금’은 ''수유+너머''의 연구실 회원들이나 세미나 혹은 강의를 하러 오는 사람들의 돈으로 조성된다. 그리고 그 돈은 아이들의 장학금으로 쓰이고, 그 장학금을 받은 아이들은 다시 연구실에 강의료로 지불한다. 결국 일정 금액의 돈이 돌고 도는 것이다. 강사는 자신이 낸 기금으로 강사료를 받는 것! 그러나 이때 도는 돈은 결코 같은 돈이 아니라는 사실이 중요하다. 아이들이 공부를 하면서 쓴 글들이 재밌다고, 매니저가 보리기금을 꾸리면서 쓰는 일지가 너무 좋다고 사람들이 특별회비를 내고, 집에서 모으던 돼지저금통을 들고 와 보리기금으로 쾌척하기도 한다. 이렇게 모인 돈은 단순한 몇만, 몇십, 몇백만 원이 아니라, 수많은 인연과 인과가 붙어 있는 돈이다. 여러 사람과 사건들 속에서 조성되고 쓰이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아이들 또한 특정 액수의 장학금을 지원받는 것 이상의 배움을 얻는다. 이 ‘보리기금’에서의 돈은 관계를 구성하고 공부의 장(場)을 여는 엄청난 역할을 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인연으로 엮인 모든 사람이 돈이란 것은 소유가 아닌 흐름 속에서 더 큰 효과를 만들어 낸다는 것을 아는 일이다.
“기금은 일단 강사들의 생활비로 들어간다. 생활비의 일부는 다시 연구실에서 생활하는 비용으로 흘러들어간다. 그리고 생활비로 책을 사보거나 강의를 듣는다. 기금은 아이들을 가르치는 데 쓰이기 위한 것이지만 동시에 강사가 공부할 수 있는 물적 토대를 만들어 준다. 아이들을 가르쳐서 생활비를 받고 그 돈으로 강의를 듣고 다시 아이들을 가르치고. 여기엔 돈의 순환뿐만 아니라 배움의 순환 역시 작동한다.”(부록3, 우리 모두 ‘보리’합시다. 259~260쪽)
서로에게 선물이 되는 새로운 경제학을 위하여
책에서 저자가 돈의 달인 중 한 사람으로 꼽는 인도의 성자 비노바 바베(Vinoba Bhave)는 그의 동료에게 여행을 떠날 때 돈을 가져가지 말라고 조언했다. 그 이유는 돈은 사람을 오만하게 만들기 때문. 여행 중 하루에 먼 길을 걸어 지치고 피곤하고 배가 고플 때, 끼니를 해결하고 하룻밤 묵어갈 숙소를 찾아야 할 때 만약 돈을 가지고 있다면 다른 누구의 도움도 없이 그냥 간단히 돈으로 해결할 수 있다. 그러나 돈이 없다면, 끼니와 잠자리를 제공해 줄 누군가를 간절히 찾아야 하고, 그런 간절함으로 겸손해지는 법, 누구도 선택하지 않고 판단하지 않고 차별하지 않는 법을 배울 수 있다는 것이다.
비록 우리는 참으로 오랫동안 돈만 있으면 모든 게 다 이루어지는 자본주의적 교환의 세상에서 살아왔지뢸, 이제는 돈에 붙어 온 인과, 돈이 불러올 수많은 인연들을 생각하며 돈 앞에서 조금은 더 겸손해지고, 때로는 돈 앞에서 조금은 더 당당해질 필요가 있지 않을까 이 책, 돈의 달인, 호모 코뮤니타스는 그렇게 당당함과 겸허함으로 돈을 ‘제대로’ 쓸 것을 역설하며 실제로 하나의 세계가 순수증여와 선물로도 충분히 가능함을, 저자가 자신의 삶과 네트워크로 증명하고 있는 책이다. 10여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수유+너머''라는 공동체를 꾸려오며, 형편이 어려운 후배들의 학자금을 지원해 주고, 주변 사람들에게 밥을 퍼주면서 고미숙은 아무리 작은 돈이라도 허투루 다루지 않는 투명함, 아무리 큰돈이라도 단호하게 처리할 수 있는 결단력, 돈 앞에서 절대 머리 숙이지 않는 당당함으로 그 존재의 크기를 증명했다.
그는 가난을 참고 견디라고 말하지 않는다. 가난해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거 아니냐고 순진하게 말하지도 않는다. 고미숙이 꿈꾸는 것이 하나 있다면, 각자의 존재가 서로에게 선물이자 순수증여가 되는 세상. 그렇게 새로운 세상이 우리를 통해서 태어나기를 고대하고 있을 뿐이다.
▣ 작가 소개
저 : 고미숙
Ko Mi Sook,高美淑
고전평론가. 1960년 강원도 정선군 함백에서 태어났다. 고려대학교 어문학부에 입학하여 독일문학을 전공하였으나, 대학교 4학년 때 김흥규 선생님의 강의를 듣고 고전문학에 매료되어 한국 고전문학으로 진로를 바꾸었다. 이후 고려대학교 대학원 국문과에 진학하여 마르크스를 공부하면서 역사와 실천, 삶과 혁명, 혁명과 구도 등 인생을 걸 만한 문제들과 대면하게 된다. 19세기 예술사로 논문을 써 박사 학위를 받았고, 이후 잠시 비평활동을 한 적이 있다. 이 때 『비평기계』라는 비평집을 내기도 했다.
그러던 중 수유리 강북구청 옆 조그만 사무실을 열어 ''수유+너머''라는 세미나를 조직했다. 처음은 고미숙과 권보드래가 주도한 ''계몽기 신문세미나''로 출발했고, 고병권, 이진경 등이 참여해 니체에 관한 강의를 듣고 푸코의 『말과 사물』을 집중 강독하는 등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더 많은 친구들이 참여하게 되었고, 지금은 대학로로 자리를 옮겨 <수유연구실+연구공간 ''너머''>(www.transs.pe.kr)라는 방대한 ''지식인 코뮌''을 꾸리게 되었다. 연구실에서 하는 일은 세미나와 강좌, 토론회 등. 연구실 사람들의 구성도 다채롭다. 전문연구자들부터 시작해서 예비박사들, 석사과정은 물론이고 학부졸업생, 직장인에서 전업주부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 또한 회원들의 전공 역시 국문학, 철학, 사회학뿐만 아니라 수학, 중문학, 역사학, 여성학, 교육학, 종교학, 산업디자인 등 점차 폭이 넓어지고 있다.
그녀는 스스로를 ''고전평론가''로 불러주길 바란다. 그녀 스스로 만든 직업이라고 하는데, ''고전을 싱싱하게 재구성하여 현대의 독자들과 만나게 해주는 일종의 매니저''라고 이해하면 된다고 한다. 지금까지 쓴 책으로는 『19세기 시조의 예술사적 의미』, 『18세기에서 20세기 초 한국 시가사의 구도』, 『한국의 근대성, 그 기원을 찾아서』,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아무도 기획하지 않은 자유』, 『나비와 전사 - 근대! 18세기와 탈근대를 만나다』, 『한국고전시가선』, 『18세기에서 20세기초 한국시가사의 구도』 등이 있다.
▣ 주요 목차
책머리에
프롤로그 : 돈에 대한 ‘아주 원초적’ 질문 셋
하나 청춘의 꿈, 10억
둘 미워하거나 무관심하거나!
셋 낙타와 포대화상
1부 문제는 돈이다 - 돈타령 ‘천태만상’
돈은 ‘내 운명’_요람에서 무덤까지
한방을 기다리는 마지막 ‘버블’ 히어로들!
아파트 ‘토테미즘’_21세기판 ‘전설의 고향’
우리를 ‘술푸게’ 하는 것들 _대출과 보험
악착같이 모아서 가족한테
소비의 ‘거룩한’( ) 형식 _쇼핑과 회식
서글픈 ‘왕복달리기’_탐욕 아니면 청승
대체 돈이 뭐길래 _생명과 화폐
2부 돈 - 잘! 벌고 잘 쓰는! 실전 ‘노하우’
부자가 되려면 학교에 다니지 마라
유산과다=위산과다
젊어 고생, 사서 하라
비자본 생존 노하우1 _돈 없이 살아남기
비자본 생존 노하우2 _21세기 新 백수론
우정의 정치경제학 _청년실업의 대안
여자들이 밥을 사는 그날까지!
돈에 대한 공부를 일상화하라
이벤트 _돈이 아니라 몸으로!
더부살이 프로젝트
‘북드라망’에 접속하라!
성공의 새로운 척도, ‘호모 에렉투스’-되기
3부 돈에 대한 우주적 상상력 - 카오스 경제학을 향하여!
쓰면서, 행복하라! _ 교환에서 증여로
돈은 ‘물’이다 _돈을 ‘물’ 쓰듯!
선물의 경제학 혹은 ‘인디언-되기’
이매진 노 머니(Imagine No Money)!
공동체, 최고의 생존전략 _마을이 세계를 구한다!
카오스 경제학의 기초개념
문제는 돈이 아니다 _소유에서 자유로!
순수증여 _다시 포대화상으로!
돈 벌어서 남주자! _‘곰-되기’, ‘코끼리-되기’
덧달기 : 우주에는 ‘공짜점심’이 없다 _ 돈과 사주명리학
에필로그 : 돈의 달인들 - ‘호모 코뮤니타스’의 향연
하나 흥부의 눈부신 카리스마
둘 방랑하는 교사, 움직이는 대학
셋 가난한 사람들의 은행가, 무하마드 유누스
부록
1. 중졸 백수의 ‘44만 원 세대 보고서’ _44만 원 세대의 돈 이야기 (김해완)
2. 정규직 3년차의 ‘20대를 위한 변명’ _88만 원 세대의 돈 쓰기 (임군)
3. 청년백수의 ‘좌충우돌 보리기금 운영기’ _우리 모두 ‘보리’합시다 (류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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