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디자이너, 농업에 브랜드를 심다
*지속 가능한 농업을 위한 대안, 브랜드에 있다
*1만 명이 기다리는 토마토 브랜드, ‘기토’ 탄생기
홍익대 미대 출신 디자이너, 브랜드파머가 되다
‘할 일 없으면 농사나 지어라’라는 말이 있다. 땅만 있으면, 혹은 땅이 없어도 빌리기만 하면 누구나 농사를 지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귀농에 대한 관심은 사실 이런 편견에 뿌리를 두고 있다. 전문성이 없어도 할 수 있는 일. 여기에 여유 있는 전원 생활을 즐기는 킨포크 라이프 스타일이 트렌드로 떠오르면서 ‘유유자적하는 일상을 즐기는 농부’가 많은 이들의 버킷리스트에 담겼다.
그러나 농업은 치열한 삶의 현장이다. 유사 이래 농업이 쉬운 일이었던 적은 없다. 농촌에 대한 로망을 안고 귀농을 한 이들 대부분이 실패하는 이유는 ‘일상 탈출’이라는 목표만으로 농업에 섣부른 도전을 했기 때문이다.
《토마토 밭에서 꿈을 짓다》의 저자 원승현 그래도팜 대표는 특이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홍익대에서 프로덕트디자인을 전공하고 디자이너로 일하던 중 고향인 강원도로 귀농을 감행했다. 그도 여느 귀농인들처럼 삭막한 도시 생활에 염증을 느끼고 ‘낭만 농부’가 되기를 꿈꾼 것이다. 그러나 농업 현장은 그가 생각한 낭만과는 거리가 멀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농사라는 마음가짐으로는 삶의 기반마저 흔들린다. 무엇보다도 농업이 지닌 문제점을 해결하지 않으면 우리 먹거리의 근간까지 흔들리게 된다. 이런 문제의식을 가지면서 원승현 대표는 땅에서 브랜드를 짓는 ‘브랜드파머(brand-farmer)'가 되기로 결심했다.
디자이너의 시각으로 풀어 낸 지속 가능한 농업 솔루션
디자이너는 그림을 그리고 설계하는 사람이 아닌, 문제를 해결하는 솔루션을 제공하는 일을 한다. 제품을 완성하고 소비자에게 전달하기까지 모든 과정에서 부딪히는 문제점을 해결하는 일이 디자이너의 몫이다.
원승현 대표는 농업 현장 전반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디자인적 사고를 도입했다. 그 과정에서 찾은 대안이 농업의 브랜드화다. 흔히 브랜드를 만든다고 하면 이름과 상표를 만들어 제품에 붙이는 과정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이런 과정만으로는 절대 차별성을 얻을 수 없다. 당장 마트에 가서 농산물을 볼 때 기억에 남는 상표가 있는지 생각해 보자. 상표가 아무리 기발하고 멋져도 고만고만한 상품으로는 결국 소비자의 마음을 얻지 못한다.
브랜딩은 생산부터 판매에 이르는 모든 과정을 포괄한다. 제일 먼저 땅을 돌보고 농산물을 기르며 어느 시점에 수확하고 어떻게 소비자에게 전달할까를 치열하게 고민해야 한다. 제품부터 차별화하고 농부가 농산물에 부여하는 가치를 소비자에게 전달하는 과정이 브랜딩이다.
농업이 사양 산업인 것은 단순히 낙후된 농촌과 수입 농산물 때문만은 아니다. 다른 농장과 경쟁하고 가치를 담아내는 고민이 없는 게 진짜 문제다. 농업의 본질은 소비자에게 더 좋고 맛있는 먹거리를 제공하는 것이다. 그 가치를 소비자에게 전달하고 공유하는 것이 브랜딩이다. 지속가능한 농업을 위해서 브랜드에 주목하는 이유다.
1만 명이 기다리는 토마토, ‘기토’ 브랜딩 스토리
원승현 대표의 그래도팜은 ‘기토’라는 브랜드로 토마토를 생산한다.
‘기발한 기술, 기름진 토양, 기차게 잘 자란,
기묘한 식감, 기막힌 향, 기똥찬 맛, 기다리고 기다려야 맛볼 수 있는,
기적의 토마토’
상품의 특성과 소비자의 반응, 담고자 하는 가치를 디자이너의 관점에서 ‘관련 짓고’, ‘이름 짓고’, ‘구분 지으’면서 나온 키워드. 여기서 공통되는 ‘기’라는 글자와 토마토를 합쳐 ‘기토’를 만들었다. 소비자들이 이 가운데 하나라도 공감할 수 있다면 기토는 다른 토마토와는 차별화되는 브랜드가 된다.
여기에 하나 더 중요한 게 있다. 소비자들은 단순한 구매자가 아닌 농장의 가치를 공유하는 후원자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1년에 2회 수확해서 직거래를 마치면 고객들은 조용히 다음 작기를 기다린다. 이들은 단순한 소비자가 아니다. 그래도팜 농장을 지키고 함께 성장하는 든든한 후원자들이다. 이런 이들이 1만 명 이상이다. 그래도팜 농장의 기토 브랜드의 가치를 공유하는 이들이다.
원승현 대표의 목표는 이들 소비자들과 농장을 ‘관계 짓는’ 것이다. 소비자들이 농장을 돕는 게 아닌, 농장이 자신들을 돕고 있다고 여기게 하는 것이다. 좋은 농산물을 생산하는 농장이 사라지면, 궁극적으로 자신들이 가장 피해를 보게 된다는 것을 알리고 싶은 것이다. 농산물의 생산부터 소비자까지 모든 것을 묶어 하나의 지속 가능한 생태계로 만드는 것. 이것이 우리 농업이 살아남는 궁극적인 방향이다.
농업은 땅에서 시작되어 식탁에서 완성된다
원승현 대표에게 출간을 제의한 것은 디자이너 출신 청년 농부가 주는 호기심 때문이었다. 그의 귀농 스토리가 흥미롭게 들렸고, 그의 이야기를 통해 귀농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올바른 지침을 주고자 하는 의도였다. 그러나 저자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출판 기획은 바뀌지 않을 수 없었다.
첫 번째 이유는 그가 사실상 ‘금삽’이었기 때문이다. 그의 아버지는 30년간 유기농을 고집해 온 농부다. 귀농을 모티브로 삼은 기획에 금이 가는 순간이었다. 베테랑 농부를 아버지로 둔 이가 어떤 조언을 해도 속 편히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게 있었다. 농업은 전문직이다. 수십 년간 농사를 지었어도 누구도 농사의 장인이라고 할 수 없다. 경험이 중요한 농업에서는 특히나 노하우를 가르쳐 줄 수 있는 멘토가 중요하다. 기본기를 다지고 나서야 더 깊은 이야기를 할 수 있다. 앞마당 텃밭 정도 가꿔 본 경험으로 귀농을 해서 실패하는 건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다. 농업에 진지하게 도전하려면, 먼저 최소한의 기초는 갖추고 있어야 한다. 저자는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금삽’을 바탕으로 농부로서 성장하고 있었다.
둘째는 디자이너로서의 관점이다. 그의 이야기에는 디자이너 출신 귀농자의 좌충우돌 농촌 적응기가 아닌 디자이너 출신 농사꾼으로서 어떻게 농사를 지을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담겨 있었다. 그의 고민은 한마디로 ‘땅과 식탁을 연결’하는 데 있다. 땅을 잘 가꾸어 최고의 제품을 생산하고, 그 가치를 소비자와 공유하며, 소비자의 식탁을 풍요롭게 하는 게 농업의 본질이라는 의미다.
듣고 보면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우리는 식탁 위의 본질을 잊고 살아왔다는 걸 금세 깨닫지 않을 수 없었다. 마트에 가면 사시사철 계절을 잊은 채소와 과일이 나오고 우리는 편리하다는 이유로 그것들을 식탁에 올린다. 그러나 배양액을 맞고 24시간 빛을 쬐며 혹사당한 농산물은 건강한 흙에 뿌리내리고 밤낮을 겪으며 내실을 다진 농산물을 따라갈 수 없다. 농산물도 살아 있는 생물이다. 사람이 모든 영양성분이 다 들어 있는 링거만 맞고서 건강한 삶을 살 수는 없는 것과 같다.
건강한 삶을 위해서는 건강한 먹거리가 필요하고 건강한 먹거리를 얻기 위해서는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이런 간단한 이치를 망각하고 속도와 편리함이 미덕인 현대 사회에서 땅과 식탁을 연결시키려는 시도는 쉽게 인정받기 어렵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솔루션이 바로 브랜딩이다. 화려한 디자인의 상표와 거창한 이름이 아닌 상품의 본질과 가치를 담아 소비자의 식탁에 올리는 것. 이것이 저자가 말하고 싶은 농업의 본질이다.
작가 소개
그래도팜 대표.
홍익대 프로덕트디자인과를 졸업한 후 디자이너로 활동하다가 유기농장 그래도팜을 운영 중이다. 1983년부터 유기농을 하신 부모님의 뒤를 잇고 있다.
‘밭에서 브랜드를 짓는다’라는 생각으로 낮에는 농사를 짓고 밤에는 브랜드 관리에 여념이 없다. 이 때문에 스스로를 ‘브랜드 파머’로 소개 중이다. 2016년 나우올제 ‘맛있는 토크’에서 농림축산식품부장관상을 수상했고, 2017년에는 강원도 청년 혁신가로서 선정됐다. 〈매거진F〉〈대산농촌문화〉〈행복이 가득한 집〉〈탑클래스〉 등 다수의 매거진에 소개되기도 했다.
목 차
프롤로그_ 그럼에도 불구하고 ‘짓다’
제1부 연관 짓다 attach
우리 농업에 절실한 디자인적 사고 / 브랜드파머, 밭에서 브랜드를 짓다 / 농업 브랜드의 성립 조건, 가치 소비
제2부 농사짓다 discover
토마토 키우는데 토마토를 왜 사 먹어? / 농사는 땅이 짓는 것 / 유기농의 진짜 무기는 안전이 아니다
농부의 자긍심 / 스마트하게 농사짓는 법 / ‘우리 동네’ 농산물이 최고? ?056
대를 잇지 못한 농사에 장인은 없다 / 자연농과 상업농 사이
제3부 관련짓다 storytelling
유기농 1세대, 두 사람의 선택 / 유기농 2세대, ‘흙수저’인 줄 알았던 ‘금삽’ / 아버지 손에 새겨진 것들
일‘손’이 된 ‘손’님 / 유레카! 갈라진 토마토 / 밥 잘 챙겨 먹고 다녀
제4부 이름 짓다 naming
아무 말 대잔치 / 부모님의 세월을 담은 농장 이름, ‘그래도팜’ / 타협하지 않고 지켜 낸 결실
소비자들이 지어 준 이름, ‘기토’ / 프리미엄 라인, ‘그래도팜 땅의 기록’ ?119
제5부 구분 짓다 differentiation
나만의 기준이 만든 차별화 / 토마토가 거기서 거기지 / 22만 원짜리 멜론
그래도팜의 톤 앤 매너 / 결국 한 끗 차이
제6부 관계 짓다 relationships
내가 잡지를 사랑하는 이유 / 골든 트라이앵글 / 손님은 왕이 아닌 동반자
땅을 살피는 요리사 / 밭에서 밥을 짓다
제7부 꿈을 짓다 dreaming
흙과 친구가 된 사람들, ‘소일메이트’ / 신념을 파는 장, ‘파머스 갤러리’ /
지속 가능한 농업을 위한 터전, ‘서스테인 필드’ / 24절기마다 식구가 될 그래도팜
제8부 덧붙이는 이야기_ 농사짓는 디자이너
낭만을 찾아서 / 1년 만에 푼 짐 / 위기 속 기회의 땅
제9부 덧붙이는 이야기_ 토마토 이야기
국내에 토마토 품종이 다양하지 못한 이유 / 똑똑한 토마토 보관법
에필로그_ 마무리 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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