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맨큐의 경제학』이 담지 못한
더 큰 경제학
“교수님들, 저희는 이런 획일적인 경제학 교육에 반대합니다. 더 다양한 학문 분야를 포함해주십시오.”
학생들이 교수와 학과에 이런 요구를 한다? 적어도 우리 학문 풍토에서는 불가능해 보인다. 그러나 유럽의 대학을 중심으로 세계 곳곳에서는 그런 요구를 내세운 운동이 전개중이다. 바로 ‘리씽킹 이코노믹스’라는 이름의 국제적 학문 네트워크가 그것이다. 젊은 경제학도를 중심으로 구성된 이 단체는 이름 그대로 ‘경제학을 다시 생각할 것’을 경제학계에 주문한다.
리씽킹 이코노믹스의 배경에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놓여 있다. 이 시기를 즈음하여 경제학과에 진학한 학생들은 대공황 이후 최대의 경제위기라는 이 사태에 대한 설명과 대안을 배울 것을 기대다. 하지만 학교에서는 이전과 다를 바 없이 수요-공급 곡선과 효율적으로 작동하는 시장 등등 문제집만 풀어댈 뿐이었다. 답답함과 실망감 속에 경제학 교육의 변화를 바라는 학생들의 모임이 꾸려지기 시작했고 이런 흐름들이 한데 모아져 2012년 리씽킹 이코노믹스가 발족되었다. 이들은 경제학 커리큘럼의 개혁을 포함해, 경제학의 다원화와 민주화를 위한 여러 활동에 나서고 있다. 시작 당시에는 유럽의 14개 대학에 리씽킹 이코노믹스 지역 모임이 있었지만, 현재는 유럽·북미·아프리카·아시아 등지에 60개의 모임이 있다.(한국은 아직 없다.)
이 책은 리씽킹 이코노믹스가 추구하는 경제학, 바로 ‘다원주의 경제학’을 위한 입문서다. 그것은 한 가지 관점만으로는 ‘경제’라는 광대하고 복잡한 영역을 다 설명할 수 없다는 걸 인정하고, 다양한 전통과 사상에 근거한 경제학들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발상에서 출발한다. 이런 인식 위에서 경제학이 가르쳐지기를 희망하며, 이 책이 기획되었다.
9개의 학파가 그리는 경제학의 다채로운 세계
: 포스트케인스경제학에서 생태경제학까지
이 책은 그런 기획의도 아래 현재의 주류 경제학인 신고전주의경제학과 다른 방향에서 출발하는 9개 경제학 학파를 소개한다. 그 목록은 포스트케인스경제학, 마르크스경제학, 오스트리아경제학, 제도경제학, 페미니즘경제학, 행동경제학, 복잡계경제학, 협동조합경제학, 생태경제학이다. 리씽킹 이코노믹스의 멤버 5명이 편집을 맡고, 해당 분야의 저명한 학자와 전문가들이 집필과 감수를 맡았다.
각 장은 해당 경제학 학파들이 각기 어떤 가정과 방법론으로 경제를 다루는지를 보여주는 데 주력하며, 특징적인 차이점들을 부각시킨다. 그럼으로써 경제학이 정체되고 고정된 사실을 배우는 학문이 아니며, 각자의 패러다임과 관점에 따라 다른 해석과 답변을 내놓는 다채로운 학문임을 깨닫게 해준다.
잠시 몇 학파의 고유한 분석과 기여에 대해 일별해보자면.
-페미니즘경제학: 기존의 경제학은 집 안으로는 들어가지 않았다. 신고전주의경제학은 경제행위를 개인의 의사결정으로 바라보는 개인주의적 관점을 취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여러 개인으로 구성된 가계를 단일한 경제행위자로 간주한다. 하지만 페미니즘경제학은 가계의 구성원들 간에(예컨대 남편과 아내 간에) 이해관계가 다를 수 있다고 본다. 따라서 가계 전체의 이익을 위해서 개인(대체로 여성)의 이익이 희생되는 일도 가능하다.
-제도경제학: 이 책에 소개된 경제학파 대다수가 인간을 원자적인 개인으로 바라보는 신고전주의경제학의 관점에 반대하여, 개인이 자신이 속한 사회와 문화 및 환경에 영향을 받는다는 입장을 취한다. 그중에서 특히 제도경제학은 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제도(법·관습·규범·언어·화폐제도·정치 등등)의 영향력을 연구한다. 예컨대 주류 경제학자들은 경제행위자가 고정된 선호를 가지고 합리적으로 행동한다고 가정하는데, 제도경제학자들은 개인이 어떻게 특정한 선호를 가지게 되고 또 그것이 어떻게 변화하게 되는지를 묻는다.
-협동조합경제학: 대부분의 경제학은 생산자와 소비자를 대립적인 존재로 보지만, 협동조합경제학은 생산자와 소비자가 협력하는 경제 모델을 제안한다. 협동조합경제학은 우리 모두를 생산자인 동시에 소비자로 바라본다. 그래서 낮은 가격이 소비자에게 이익이 된다는 주장에 대해, 그로 인해 임금이 저렴한 해외 국가로 생산지가 이동해버리면서 우리가 생산자로서 활동할 기회를 잃을 수도 있다고 지적한다.
그 외에도 행동경제학은 합리적 개인에 대한 비현실적 가정을 폐기하고 인간의 실제 심리에 근거한 경제정책을 제안하며, 복잡계경제학은 개인이 아닌 집단을 대상으로 물리학적 연구 방식을 적용하여 경제현상을 설명한다. 생태경제학은 경제시스템이 자연환경에 의존하고 있음을 밝히면서 성장의 물질적 한계를 지적한다.
이 책에 나오는 여러 학파들은 각기 설득력 있는 논리로 기존의 경제학이 포착하지 못하고 있는 지점을 건드린다. 그렇기에 독자들은 이 책을 읽어나가면서, 이 다양한 의견대립이 경제학을 분열시키는 것이 아니라 더욱 풍성하게 하고 서로를 보완한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경제학의 여러 지류가 모여 더 큰 바다를 이루는 셈이다.
‘정통’은 없다
: 주류의 교체가 아닌 주류의 해체로
강조해야 할 점이 한 가지 있다. 이 책은 현재 주류인 신고전주의경제학을 비판하거나, 비주류 경제학(책에서는 이단라는 표현으로 일컬어진다)을 옹호하기 위해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비판의 대상은 신고전주의경제학만이 가르쳐지고 중요시되는 경제학계의 풍토지, 신고전주의경제학 자체가 아니다. 리씽킹 이코노믹스가 주장하는 바도 현재의 주류 학파를 다른 것으로 대체하자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여러 학파들이 서로 비판하고 경쟁하면서 발전해가는 경제학을 꿈꾼다. 그것이 다원주의 경제학의 참된 의미이다.
우리의 목표는 다원주의 경제학을 촉진하는 것이다. 다원주의는 경제적 아이디어들로 가득 찬 폭넓은 태피스트리를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한다. 다원주의 교육은 지배적인 이론을 가르치지만 그에 비판적이고 반대되는 의견도 소개한다. 다원주의 교육은 학생들에게 서로 대조적인 주장에 대해 비판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도구를 제공하며, 경제에 관해 새롭고 중요한 질문을 던지고 그 질문들이 경제에서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묻도록 학생들을 격려한다. 그리고 우리는 이러한 종류의 비판적이고 다원주의적인 교육이 ‘주류’로 여겨지는 세상에 살기를 원한다. -본문 중에서
즉 이들이 옹호하는 것은 바로 학문의 다양성이다. 한 가지 종류의 작물만 심는 단일경작 방식은 병충해가 닥쳤을 때 취약하듯이, 한 가지 색으로 물든 경제학 풍토도 위기에 대한 대처 능력이 떨어진다. 그것이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리씽킹 이코노믹스의 참가자들이 목격한 경제학계의 현실이었으며, 이 운동을 시작한 이유이다.
리씽킹 이코노믹스는 하나의 ‘통합 경제학 이론’을 추구하지 않는다. 그보다 그들은 어느 학파라도 경제 지식에 대한 독점권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겸허히 인정하고, 여러 학파가 함께 우리 시대의 경제문제를 고민하는 열린 토론에 나설 것을 제안한다. 이들의 이런 시도는 ‘경제학 다시 생각하기’를 넘어, 경제학의 풍토를 쇄신하고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것으로 기대받고 있다.
작가 소개
엥겔베르트 스톡하머: 영국 킹스턴대학교 경제학 교수
벤 파인: 런던대학교 동양·아프리카학교 경제학 교수
알프레두 사두-필류: 런던대학교 동양·아프리카학교 정치경제 교수
사비에르 메라: 프랑스 르네2대학교 연구조교
귀도 휼스만: 프랑스 앙제대학교 경제학 교수
제프리 호지스: 영국 허트퍼드셔대학교 연구교수
수전 히멜웨이트: 영국 개방대학 명예교수
스티븐 영: 영국 브라이턴대학교 부교수
앨런 커먼: 프랑스 엑스-마르세이유대학교 명예교수
몰리 스콧 카토: 영국 로햄턴대학교 녹색경제학 교수
클라이브 스패시: 빈경제경영대학교 사회경제학부 교수
바바아나 아사라: 빈경제경영대학교 사회경제학부 조교수
목 차
들어가며: 더 넓은 경제학의 세계로
● 포스트케인스경제학
_엥겔베르트 스톡하머
● 마르크스주의경제학
_벤 파인, 알프레두 사드-필류
● 오스트리아경제학
_사비에르 메라, 귀도 휼스만
● 제도경제학
_제프리 호지슨
● 페미니즘경제학
_수전 히멜웨이트
●행동경제학
_스티븐 영
● 복잡계경제학
_앨런 커먼
●협동조합경제학
_몰리 스콧 카토
● 생태경제학
_클라이브 스패시, 비비아나 아사라
나가며: 리씽킹 이코노믹스! 그 내용은 무엇이며 어떻게 참여할 수 있는가?
감사의 말
역자 후기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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