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경쟁 중심, 이익 극대화로 치닫는 현대 시장경제,
이 안에서 모두 행복하게 사는 건 불가능할까?
콤무니타스는 공동체를 뜻한다. 공동의 땅, 공통의 기반 위에서 친밀함을 나눌 수 있는 생활 공동체가 콤무니타스다. 《콤무니타스 이코노미》는 시장경제를 부정하지 않고 인정하면서, 그 안에서 더불어 잘 사는 법을 모색하는 책이다. 시민경제학, 사회적 경제 분야의 세계적 석학인 루이지노 브루니는 시장 옹호론자인 애덤 스미스와 시장 비판론자인 칼 폴라니의 견해 둘 다를 넘어서 시장경제를 새롭게 보는 눈을 제안한다.
저자에 따르면 애덤 스미스는 개인의 자유와 의사가 존중받는 계약이 있는 시장의 역할을 높이 샀지만 반면에 그 시장을 이루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라는 것을 놓치고 말았다. 그래서 시장경제는 문명의 발달을 이끌었지만 쌓이는 부는 나누어지지 않고 양극화되어 계층 문제, 빈곤, 기아, 실업, 생태 파괴 등의 문제를 드러냈다는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은 ‘진짜 만남’이다. 계약만 있으면 되지 인간은 없어도 크게 문제 될 것 없다고 생각했던 기존의 시장 이해를 넘어 싸늘한 시장경제 안에 ‘만남’과 ‘관계’를 불러와 따뜻한 시장을 만드는 것, 그것이 모두 함께 잘 사는 콤무니타스 이코노미다.
시장경제는 계약만 있는 처절한 전쟁터가 결코 아니다.
따뜻한 시장이 가능하다.
그러자면 이 살벌한 시장에 우리가 불러와야 할 것이 있다.
바로 ‘관계’와 ‘만남’이다.
《국부론》을 통해 현대 경제학의 기초를 다진 애덤 스미스는 시장의 긍정적인 면에 주목했다. 그는 영주와 농노의 관계 속에서 계급적으로 항상 아래에 놓일 수밖에 없었던 인간이, 봉건사회를 떠나 시장에서는 영주도 하나의 개인, 농노도 하나의 개인으로 대등하게 만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저녁을 먹을 수 있는 것은 푸줏간 주인, 양조장 주인, 혹은 빵집 주인의 자비심 덕분이 아니다. 그들은 자신의 이익에 충실했을 뿐이다. 우리는 그들의 인간성이 아니라 이기심에 호소하며, 우리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이익에 대해 이야기한다.”
사람 간에 높고 낮음이 있어 누가 누구에게 허리 굽실대며 어려워할 것 없이 돈과 상품만 주고받으면 되는 깔끔한 사이라니 이 얼마나 간명한가? 그래서 애덤 스미스는 시장의 가장 큰 장점은 계약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자유시장론이 주류 경제학이 되고 시장경제를 자본이 지배하면서 여러 가지 부작용과 그늘이 나타났다. 사회가 점차 낮은 비용과 높은 생산 능력, 경제 발전, 이익의 극대화를 향해 치닫게 되면서 부는 쌓여가지만 나누어지지 않았다. 심각한 빈곤과 기아, 높은 실업률, 생태계 파괴…… 칼 폴라니 같은 경제학자는 이와 같은 문제는 지나친 시장 만능주의 때문에 생긴 것이라고 보고 시장과 사회를 서로 대립하는 것으로 보기도 했다.
애덤 스미스의 원죄?
이 지점에서 루이지노 브루니는 애덤 스미스가 놓친 것을 지적한다. 스미스는 권력 관계에 희생당하지 않는 개인에만 지나치게 주목함으로써, 결과적으로는 화폐 가치로는 셈할 수 없는 인간과 인간 사이의 긍정적인 관계를 놓치고 마는 실수를 저질렀다는 것이다.
스미스는 중재되지 않은 관계는 비문명적이고 봉건적이고 비대칭적이며 수직적인 관계라는 이유로 시장의 중재를 중시했다. 스미스의 논리대로라면 시장에는 계약 혹은 협약만 있으면 된다. 시장에서 우정이니 형제애니 사랑이니를 논할 하등의 이유가 없어진 것이다. 이에 대해 브루니는 애덤 스미스의 이름이 인류의 조상인 ‘아담’과 같다는 데 착안해서 유머러스하게 이를 ‘아담의 원죄’라고 부른다. 즉 애덤 스미스의 ‘원죄’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미개하거나 비대칭적이라고 본 것, 그래서 어떤 관계든 중재된 관계라면 사회를 더 문명화시킨다고 본 것, 그래서 인간관계 전체를 외면한 것이다.
그렇다면 애덤 스미스의 원죄를 딛고, 우리가 다시 보아야 할 시장은 어떤 것인가? 그것은 바로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있는 시장,’ 콤무니타스 이코노미다.
행복의 역설, 풍요로운 불행
봉건적 틀을 깨고 나오기 위해서 인류는 영주와 농노라는 수직적 관계 구조를 깨트릴 필요가 있었고, 애덤 스미스가 말한 계약의 시장을 통해 그것을 이루었다. 그리고 이제는 그것이 지나쳐서 사람 냄새라고는 전혀 없는 건조한 계약만 있는 시장이 되었다. 그런 시장경제 시스템 안에서 삶의 질과 행복의 질은 온데간데없어지고 모두들 이윤 창출과 효율성에만 목을 매게 되었다.
그러나 인류는 본디 그런 존재가 아니다. 계산에 의해서만 행동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최근의 실험경제학과 행동경제학이 그것을 증명해준다. 즉 게임 이론이나 의사 결정 이론에 입각한 실험을 통해 보면 사람들은 자신이 보상을 조금 덜 받는 한이 있더라도 상호성의 원칙에 근거하여 상대방에게 어떤 식으로든 보상하거나 벌을 주려고 한다. 예를 들면 어떤 상황에서 상대방이, 스스로 손해를 입을 수 있음을 알면서도 나를 믿고 배려해주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나 역시 오히려 적은 보상을 감수하든지 혹은 나의 보상을 상대와 나누려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의 행복은 부와 경제적 가치라는 하나의 척도로만 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행복의 역설에 관한 연구’가 이를 뒷받침해준다. 행복의 역설이란, 경제적인 풍요와 개인의 주관적인 행복 사이의 상관관계가 미미하다는 이론이다. 한 나라 안에서 소득이 일정한 경계치를 넘고 나면 소득이 증가하는 만큼 행복도 함께 증가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 행복의 역설의 핵심이다. 곧 가장 부자가 가장 행복한 것은 아니라는 소리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조건이 있다. ‘소득이 일정한 경계치를 넘고’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행복의 역설에서 말하는 행복이란 가장 기본적인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되고 나서의 행복이라는 뜻이다. 그럼 우리의 경제 수준이 그런 것을 논할 수 있을 정도에 와 있는가? 당연히 그렇다. 현대 경제학의 이런 불행, 소위 ‘풍요로운 불행’에 대해 이미 해들리 캔트릴, 리처드 이스털린, 티보르 시토프스키 등의 학자가 비판적인 연구를 지속해왔다.
‘진짜 보이지 않는 손,’ 무상성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폐해를 극복하기 위해 브루니가 제안하는 것은 시장을 보는 새로운 눈, 그리고 그것을 통한 행동의 변화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애덤 스미스의 설계대로 대체로 시장을, 이익을 추구하는 개인들의 경쟁의 장으로만 보아왔다. 시장의 교환 관계는 계약의 두 당사자에게 인간적 상처를 주지 않도록 설계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 시장은 형제적 우애를 나눌 수 있고 모두의 공존이 가능한 곳일 수 있다. 경쟁과 성과 제일주의의 현대 시장경제가 몰락하지 않고 이렇게나마 지탱된 진짜 이유는, 계약이라는 보이지 않는 손 때문이 아니라 가격을 매길 수 없어 계산에 넣지 못했던 관계재, 곧 무상성(無償性)이 곳곳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끝내 좋기만 한 것은 있을 수 없다. 봉건사회의 농노에게 인간적 해방을 가져다준 계약과 시장이었지만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간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이제 공(功)만큼이나 과(過) 또한 크게 보이는 지점에 이르렀다.
자, 이제 다 무너뜨리고 처음부터 다시 새집을 지을 것인가, 아니면 낡고 허물어진 곳을 손보고 개조해서 계속 살 것인가? 브루니는, 시장경제를 손보고 개조하면 그 처음의 장점을 살리고 미래의 장점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인간은 사라지고 계약만 남은 싸늘한 시장을 따뜻하게 해줄 온기를 불러오면 된다는 것이다. 그 온기란 다름 아닌 인간과 인간의 만남이다. 서로 부딪칠 일 없이 설계된 아파트 안에서 모니터와 블루투스 이어폰으로 소통하는 스쳐 지나가는 만남이 아니라 얼굴을 마주 보고 웃으며 나의 선의와 상대의 배려가 서로 부딪칠 수 있는 ‘진짜 만남,’ ‘진정한 관계’를 회복할 때에야 우리는 인류의 공존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함께 꾸는 꿈
이 책을 번역한 9명의 번역자는 시장경제의 대안을 모색하며 모두를 위한 경제를 꿈꾸는 학자들이다. 한국의 사회적 경제 활동과 협동조합 운동에도 뜻을 두고 오랫동안 지지와 실천을 함께 해온 이들은 2년이 넘는 기간 동안 같이 글을 읽고 번역문을 다듬으며 공동번역 작업을 해왔다.
한 사람이 꾸면 꿈일 뿐이지만 여럿이 함께 꾸면 현실이 된다고 했던가? 패배자는 설 곳 없는 냉정하기 이를 데 없는 싸움터가 되어버린 시장에 사람을 소환해서 웃고 싸우고 다치고 화해하며 살아보자는 루이지노 브루니의 희망과 격려를 나누어보자.
작가 소개
지은이 : 루이지노 브루니
이탈리아 로마의 룸사대학 정치경제학과 교수이자 칼럼리스트이다. ‘인간적 경제’와 ‘모두를 위한 경제(Economy of Communion)’의 이론적 토대를 마련하였고 ‘인간적 경제’가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있다는 21세기 경제 모델을 제시하였다. 2016년 제7회 한겨레 아시아미래포럼에서 기조연설을 하여 한국 독자들에게도 친숙한 경제학자이다. 저서 가운데 『21세기 시민경제학의 탄생』(스테파노 자마니 공저, 2015), 『익명의 너를 신뢰하라』(2016), 『콤무니타스 이코노미』(2020)가 한국어로 번역 출판되었다. 이외에도 70여 권의 저서가 있으며, 여러 나라 언어로 출판되었다.
목 차
한국의 독자들에게
역자 해제 - 국가도 시장도 아닌, 무엇이 있을 수 있는가?
대안을 찾아서: 포기란 없다 | 시장과 사회, 그리고 둘 사이의 관계 | 사회적 경제와 한국 경제, 그리고 이 책의 의미
서론-그래도 우리는 만나야 한다
제1장 왜 우리는 개인주의를 좋아하게 되었을까?
고독한 인간과 사회적 인간 | 공동체적 삶에 깃든 고통의 상흔 | 절대자의 중재 | ‘너’의 발견, 천사가 타인이 되다
제2장 무상성이 없는 과학, 현대 경제학
애덤 스미스의 ‘원죄’ | ‘선행’ 없는 경제학 | 상호성, 상대의 반응에 따라 행동이 달라진다 | 위험을 감수할 때 커지는 축복
제3장 기업은 사회와 만날 수 있을까?
상처를 피하기 위해 생각해낸 것 | 시장과 위계 구조 | 모순을 넘어선 일관성 | 공동체의 책임에 관한 다른 생각 | 시장에서 기업으로, 기업에서 시장으로 | 시민경제의 역동성을 지키기 위해
제4장 경제학이 사랑을 말해야 하는 이유
가장 값진, 그러나 상처도 되는 무상성 | 하나이자 여럿인 인간의 사랑 | 공동선은 가능한가? | 의도하지 않은, 자기기만으로서의 공동선 | ‘에로스적’ 경제학을 넘어서 | 누룩 같은 아가페, 소금 같은 무상성
제5장 경제학의 관심은 행복이었다
변질된 행복의 약속 | ‘공공행복’과 제노베시의 시민경제 | 관계성과 행복 | 왜 우리는 많이 누리면서도 그만큼 행복하지 못할까? | 풍요로운 불행이라는 역설 | 행복 연구는 어떤 의미가 있는가?
제6장 돈과 행복의 크기가 같지 않은 이유
고전 경제학이 놓친 것, 관계성 | 관계재, 만남의 결과 | 만남의 본질과 가치 | ‘타인은 지옥이다’
제7장 상처 너머의 축복을 보는 사람들
‘다른 시선’이라는 선물 | 혁신을 부르는 카리스마 | 기쁨을 주는 것, 인간다움의 본질인 무상성
결론-인간적 경제를 향하여
출간 10년, 나의 발전에 분수령이 된 책
생명체로 태어나 성장하다 | 형제애와 축복을 갈구하는 사람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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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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