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눈먼 낙관론에서 합리적 비관론으로
정치까지 경제에 잠식당한 우리 사회는 미래가 없다
프랑스 철학자 장 피에르 뒤피가 규제할 수 없는 ‘경제’로 인해 우리 사회가 맞닥뜨린 문제를 조명한다. 그는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경제가 차지하고 있는 위상을 먼저 문제 삼는다. 경제의 위상은 그 한계를 크게 벗어나 있으며 사회 전반과 개인적 삶을 완전히 장악하려 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게다가 경제는 정치를 말 잘 듣는 도구로 여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사람들이 그것을 그저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경제와 사회의 뒤바뀐 위상을 되돌려 놓기 위해 저자는 ‘합리적 비관론’ 혹은 ‘식견 있는 비관론’이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사회 구성원들이 원자력 발전과 핵무기, 그리고 기후 변화가 가까운 미래에 큰 재앙을 일으킬 수 있음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수용의 전제 조건은 무엇보다 정치인들이 더 이상 경제에 굴복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중대한 재앙이 임박해 있음을 알려 주는 정보가 도처에 널려 있어도 우리는 그 사실을 믿지 않으려 한다. 지식이 믿음으로 바뀌지 않기 때문에 행동하지 않는 것이다. ‘합리적 비관론’이 취하는 방법은 재앙의 도래가 ‘우리의 운명인 것처럼’ 생각하는 것인데, 이때의 운명은 우리가 자유롭게 거부할 수 있는 운명이다. 저자는 최악의 경우를 반드시 일어날 수 있는 일로 간주함으로써 그것을 막기 위해 모든 지능과 상상력, 결단력을 동원할 것을 역설한다. ‘합리적 비관론’을 통해 우리 스스로 예상한 미래를 이끌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경제의 지배
금융 위기로 전 세계가 공황 상태에 빠지면 시장과 정치는 이를 진정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기자들은 금융 위기를 자연의 맹목적 재앙에 빗대 기사를 쓴다. 과연 경제 시스템은 자연과 같이 인간의 간섭 없이 작동하는 것인가? 《경제와 미래》는 오늘날 우리가 경제에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는 것처럼 여긴다는 데 문제의식을 가진다.
정작 위기가 발생하면 경제는 우리에게 희생을 요구한다. 알다시피 희생은 신성하다고 여겨지는 것에 행해지는 행위다. 저자는 성스러운 것들이 차례차례 물러나며 공석이 된 자리를 비약적으로 발전한 경제가 차지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스스로도 모르는 사이에 완전히 ‘경제인’, 즉 호모 에코노미쿠스가 되어 버린 시민들이 당연하게 여기고 있는 것이다. 단지 경제의 지배에서 벗어나 동떨어진 시선을 가진 사람만이 이러한 경제의 위상에 경악할 것이다.
경제 이성과 정치 이성을 조정하는 ‘미래’
책에 따르면 우리가 맹목적으로 이끌리고 있는 경제의 ‘합리성’의 바탕에는 ‘미래에 의한 조정’이 있다. 경제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 미래에 이끌려 가지만 결과적으로 그것을 존재하게 하는 미래에 자신을 투영하고 있다. 일종의 시간 역설이다. 자신의 거짓말을 스스로 맹신하는 ‘뮌하우젠 증후군’이 이 역설의 본보기가 될 것이다.
자본주의 경제에서 중요한 특징은 모든 주체가 자기 초월적 미래라는 같은 이미지를 중심으로 자신의 행동을 조정한다는 것이다. ‘윤리’라고 부르는 만병통치약을 제외하면 해결하지 못할 문제를 해결해 주는 주목할 만한 특징이다. 문제는 자기 초월적 미래가 없었다면 (자본주의가) 제대로 기능하지 못했을 미래에 대한 신뢰와 미래의 무한성이다. 이렇게 해서 경제는 윤리가 되고 정치가 된다고 달리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정치는 시민들로 하여금 자신을 초월하여 미래를 향해 과감히 뛰어들 수 있게 이끌어 주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은 이런 능력을 상실했다. 저자는 정치가 이 능력을 되찾기 위해서 돌아볼 곳은 정치에 남아 있는 성스러운 영역이라고 말한다.
칼뱅주의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슈퍼마켓
미래에 의한 조정은 사전 예정이라 부를 수밖에 없는 것과 경제 주체들이 지닌 선택의 자유를 한데 결합하게 된다. 이것이 경제가 다시 합리적인 것이 될 수 있는 조건들이다. 여기서 칼뱅주의의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의 관련성에 관한 막스 베버의 그 유명한 주장이 등장한다. 저자는 베버의 주장을 되짚어 봄으로써 지금까지 굳건히 서 있던 합리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원칙들을 하나씩 무너뜨린다. 칼뱅주의의 운명론과 합리적 선택을 설명하기 위해 뉴컴의 역설을 제시하며, 운명론과 자유 의지가 이상한 방식으로 공존하는 실존주의를 살핀다. 즉 사르트르가 ‘허위의식’이라 명명한 바 있는 부정적 진실을 포함한 신념의 문제에까지 이르는 것이다. 많은 의미를 담고 있는 모호한 표현인 ‘미래에 대한 신뢰’가 없으면 경제는 더 이상 작동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저자에 따르면 진정한 운명론자는 흔히 짐작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 경제에 현혹된 세계에 존재하는 가짜 개인주의의 희생양이다. 예컨대 여러 개의 세탁비누 중 하나를 선택하는 슈퍼마켓의 자유와 진정한 자유를 혼동하고 있는 사람이다. 우리 앞에는 언제나 택할 수 있는 수많은 선택지와 수많은 길이 있고, 그래서 우리는 최선의 것을 선택한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평범한 이런 반운명론은 여지없이 지배 전략의 온갖 함정에 빠져버리고 만다.
운명론이 있다고 생각하는 거기에는 운명이 없다
처참한 결과를 피한다고 생각하는 것보다 운명을 거부하는 것이 훨씬 더 어려울 수 있다. 운명으로 표현되는 재앙은 사람들로부터 더 많은 신뢰를 받을 수 있다. 재앙이 확실하다는 신뢰가 생겨나면 움직임이 촉발될 것이다. 재앙을 막아 내는 데 필요한 우리의 모든 능력이 발휘될 것이다. 그러므로 이 방법은 운명론을 제외한 모든 방법이라 할 수 있다. 운명이라는 허구에 의지하는 이런 방법은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라는 라이프니츠의 말처럼 일종의 ‘우회’라고 할 수 있다. 필연에 대적할 수 있는 참된 자유의 수단을 획득하기 위해 통속적이고 ‘가벼운’ 개념의 자유를 멀리하는 것. 그것이 우리의 첫걸음이 될 것이다.
작가 소개
지은이 : 장 피에르 뒤피
파리 공과대학(에콜폴리테크니크)과 스탠퍼드 대학의 명예교수. 현대 프랑스를 대표하는 철학자로 1941년 파리에서 태어나 파리 공과대학을 졸업했다. 주로 사회 철학과 정치학, 과학기술 윤리를 강의했다. 주요 저서로 《질서와 무질서 Ordres et Desordres》(1976), 《사물의 지옥 L’enfer des choses》(1979, 공저), 《양식 있는 재앙론을 위하여 Pour un catastrophisme eclaire》(2002), 《재앙이냐 생명이냐 La Catastrophe ou la vie》(2021) 등이 있다.
옮긴이 : 김진식
울산대학 프랑스학과 명예교수. 서울대학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주요 저서로 《르네 지라르에 의지한 경제논리비판》(2005), 《알베르 카뮈와 통일성의 미학》(2005), 《르네 지라르》(2018), 《모방이론으로 본 시장경제》(2020)가 있다. 역서로 《폭력과 성스러움》(1993), 《희생양》(1998), 《알베르 카뮈: 부조리와 반항의 정신 1・2》(2000), 《나는 사탄이 번개처럼 떨어지는 것을 본다》(2004), 《문화의 기원》(2006), 《그를 통해 스캔들이 왔다》(2007), 《욕망의 탄생》(2018), 《유럽을 성찰하다》(2020) 등이 있다.
목 차
서문: 정치, 경제의 현혹에서 벗어나기
1장 경제와 악의 문제
1. 악의 문제
2. 경제의 폭력
3. 폭력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주는 경제
4. 경제와 성스러움
5. 경제의 자기 초월성과 패닉
6. 경제에 의한 윤리의 타락
2장 자기 초월성
1. 가격의 자기 초월성
2. 자기 초월로서의 미래
3. 금융 위기에 대한 공적 발언
4. 대참사와 의사소통
5. 말 없는 자기 초월성
6. 고문의 아바타들
7. 정치적 자기 초월성
3장 종말의 경제와 경제의 종말
1. 앞날의 문제
2. 경제와 죽음
3. 통계상 사망과 가상 사망의 경제
4. 기다림: 자신의 죽음과 거품 붕괴
5. 종말의 경제
4장 경제 이성 비판
1. 칼뱅주의 선택의 비합리성과 자본주의의 동력
2. 예정설 선택하기
3. 허위의식과 칼뱅의 선택
4. 개인주의라는 거짓말
결론: 운명론에서 벗어나기
부록: 시간의 역설
주
옮긴이의 글: 경제에 던지는 관념적 포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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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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