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식탁 위에 내려앉은 맛과 멋, 그리고 시간을 품은 이야기
음식은 배고픔 혹은 허전함을 해결하기 위한 도구일 뿐일까?
TV를 켜면 음식과 관련된 프로그램이 넘치는 요즘이다. 요리사가 직접 조리하는 전 과정을 소개하기도 하고, 푸짐하게 차려진 음식 앞에서 황홀한 표정으로 양껏 먹는 장면까지 그야말로 ‘먹방’의 천국이다. 집의 현관문에는 동네 ‘맛집’을 알리는 전단지가 심심찮게 붙기도 한다. 또한 여행이 삶의 질을 가르는 기준이나 되는 듯, 세계 유명 관광지의 먹거리나 식당을 다투어 소개하는 글도 차고 넘친다.
이렇듯 음식과 관련된 이야기가 흔한 세상에서 조금은 엄격한 자태를 가진, 음식에 녹아 있는 역사와 문화와 삶의 이야기가 담긴 셰프의 책이 세상에 나왔다.
음식이 단순한 먹거리의 영역을 넘어 ‘문화’로서의 가치를 가지고 우리의 삶을 풍성하게, 그리고 의미 있게 해주는 매력에 대한 이야기이다.
저자는 이국적인 맛을 탐험하는 탐험가로, 그것을 재해석하여 표현하는 요리사로 유럽의 여러 나라를 탐방하면서 직접 경험하고 발견하고 온몸으로 느낀 바를 섬세하고 세련된 문장으로 엮었다. 미식 탐험을 위해 나선 길에는 흥미롭고 다양한 이야기가 기다리고 있으니 기대가 한가득이다.
저자는 전혀 다른 역사와 문화를 가진 나라에서 우리네 음식과 너무나도 흡사한 음식을 만나 편안함으로 위로받기도 하고, 같은 재료가 서로 다른 대접을 받는 현장에서는 유쾌한 자부심을 느끼기도 한다. 또한 한 나라에서 시작된 음식이 전혀 다른 문화권에서 변신을 거듭하며 정착하거나, 몇몇 재료가 세계 공통의 음식 문화를 만들어내는 기준이 되기도 한 사실을 확인하며 삶의 지혜를 경험한다. 더욱이 농장의 농부들과 가공식품을 만들어 내는 생산자들, 그리고 먹는 이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요리사들 모두가 한결같은 마음과 자세로 대를 이어가며 삶을 빚어내는 경이로움에서 겸손함을 배우며 나아간다.
특히, 요리사의 손에서 완성된 한 그릇의 음식에는 재료에 대한 선택에서부터 출발하여 그 음식을 먹는 이들의 삶의 배경까지가 하나의 스토리로 엮여 있음을 보여준다. 그 스토리 안에는 역사와 함께 피어난 음악, 영화, 그림, 소설 등으로 어우러진 삶의 기쁨과 슬픔, 위로와 희망이 가득 담겨 있다.
문장의 낱말들은 곳곳의 역사와 문화를 음식이라는 접시에 올려 알맞게 조리된 맞춤한 맛을 선사한다. 그리고 그 맛은 읽는 이의 마음을 충분히 사로잡아 음식에 대한 탐험에 기꺼이 동참하고 귀 기울이게 한다.
저자가 다루고 있는 역사와 사회·문화적 배경에 대한 이야기는 음식 안에 담긴 깊은 삶의 철학을 되새기게 하고, 문학과 음악과 미술 작품에 대한 그의 해석은 예술작품으로서 음식을 마주하게 하여 우리의 시각을 확장해서 맛의 깊이 있는 세계로 이끈다.
이는 단순히 지식과 정보를 전달하는 역할에 머물지 않고, 일상에서 마주하는 소소하고 흔한 것들에 대해 소중하게 여기며 자신만의 의미를 부여하는 작업으로 전환시켜 삶에 대해 겸허하고 진실된 태도를 가질 수 있도록 돕는 것이기도 하다.
글 전체는 5개의 장으로 나누어 각 장만이 가지는 의미를 특색 있게 다루었다. 특히 저자가 직접 찍은 각각의 사진은 글맛에 어울려 마치 그곳의 시간 속에서 함께 음식을 나누며 잔잔한 삶의 이야기를 주고받았던 추억의 사진첩마냥 흥미롭다.
1장 <래디컬radical한 래디시radish>는 식재료와 요리들의 맛의 역사를 재해석한다. 2장 <오븐에 5분>은 조리의 과학에 대한 이야기로, 땅과 시간과 사람들이 어우러져 만들어가는 맛의 연금술을 다룬다. 3장 <최대한의 식사>는 프랑스 코스의 일련을 통해 식사의 과정에 뒤따르는 즐거움을 이야기한다. 4장 <최소한의 식사>는 살기 위해 먹는 간이식사의 소중함과 맛에 대한 이야기이다. 5장 <기술技術을 기술記述하는 기술奇術>은 저자가 직접 예술작품에 대해 해석한 바를 특별한 요리로 탄생시키면서 미감味感이 미감美感으로 전환되는 과정을 이야기한다.
한 그릇의 음식이 담지하고 있는 크기는 한 세계의 크기라 해도 무리가 아닐 것이다. 그것에는 역사와 문화와 각각의 삶의 무게가 속속들이 얽혀 도저히 가벼이 여길 수 없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그 중심에서 겸허하게 원칙과 소신을 지키며 맛의 아름다움을 일구어내는 정상원 셰프의 단단한 세계를 이 책을 통해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일은 우리의 즐거움이고 자부심이 될 것이다.
작가 소개
정상원
고려대학교 생명과학부에서 유전공학과 식품공학을 전공하고 현재 레스토랑 <르꼬숑>에서 문화총괄 셰프로 일하고 있다. 라면 레스토랑 <알라면>, 스페인 바스크 식당 <엘세르도>, 카르보나라 전문점 <석탄>과 프렌치 파인 다이닝 <르꼬숑>을 운영하면서 음식과 문화의 접점을 찾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그의 레스토랑은 2010년 <자갓서베이>에 소개되었고, 2017년 <코릿 top10> 2위, 2018년 <미쉐린가이드>, <블루리본 서베이>에 등재되는 등 호평을 받고 있다. 2018년 신구대학교 외식경영학과 겸임교수로 부임하였으며 고려대, 성균관대 등에서 미식과 문화의 융합을 주제로 강의를 하고 있다. 또한, 2015년 한국 최초로 프랑스 정부에서 주관하는 <구드 프랑스>행사에 초청받아 현재까지 매년 참여하고 있다.
목 차
* 추천하는 말
* 들어가는 말
* 1장: 래디컬한 래디시
라만차의 동치미 / 바르샤바의 만둣국 / 부다페스트의 순댓국 / 런던의 카레 / 이스탄불의
고등어 / 마르세유의 생선찌개
* 2장: 오븐에 5분
소금의 꽃 / 치즈가 익어가는 방법 / 시간의 이름 / 달콤한 슬리퍼
* 3장: 최대한의 식사
아뮤즈 부시 / 아페리티프 / 오르되브르 / 화이트 와인 / 앙트레 / 레드 와인 / 플라 / 프로
마주 / 데세르 / 프티 프르 / 라디시옹
* 4장: 최소한의 식사
기내식과 선상식 / 항구의 식당 / 낯선 시간의 식사 / 시장의 음식들 / 숙면을 위한 역설 /
조식, 이불을 개지 않을 권리 / 물설움
* 5장: 기술을 기술하는 기술
미감과 미감 / 문장의 맛 / 조용한 것이 지루한 것은 아니다
* 이야기를 마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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