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피’(혈세)와 ‘폭탄’(세금 폭탄)으로 대변되는 세금 문제,
그 앞에 드러나는 시민사회의 자기모순과 정치인들의 모호한 태도
한국의 낮은 조세 수준과 광범위한 조세 납부 예외자, 역진적 구조, 조세 거부감은
어떤 경로를 통해 형성되었을까?
이 과정에서 조세 담론은 조세제도 변화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8개 종합 일간지의 사설을 통해 살펴본 조세정책과 조세 담론
…
노무현 정부부터 이명박 정부를 거쳐 박근혜 정부까지,
구체적인 조세정책이 언론의 프레임에 따라 어떻게 제약되고 강화되었는지를
517건의 사설 자료를 바탕으로 확인한다.
“노무현 정부가 도입한 종합부동산세를 둘러싼 ‘세금 폭탄’, 이명박 정부가 추진한 감세 정책이 초래한 ‘부자 감세’, 박근혜 정부가 시도한 연말정산 개혁이 초래한 ‘서민 증세’ 논란을 복기해 보면 조세정책이란 단순히 객관적 합리성이나 경제적 효율성의 영역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복잡다단한 정치적 영역이라는 것에 주목하게 된다.
현대 민주주의 정치체제에서 국가정책은 언론이라는 공론장에서 벌어지는 토론과 논쟁을 거친다. 언론이 조세정책을 어떻게 ‘재현’하며 더 나아가 어떻게 ‘재구성’하는지, 어떤 프레임으로 접근하는지, 어떤 담론 전략을 구사하는지에 주목하는 것은 구체적인 현실 정책을 연구할 때 매우 중요한 영역이다.”
_서론에서
‘피’(혈세)와 ‘폭탄’(세금 폭탄)으로 대변되는 세금 문제
: 시민사회의 자기모순과 정치인들의 모호한 태도 사이에서 헛도는 말들
“일자리 대책, 사회 안전망 구축, 그리고 미래 대책을 제대로 해가기 위해서는 많은 재원이 필요합니다. 그럼에도 오히려 감세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론조사를 해보아도 세금을 올리자는 사람은 없습니다. 아껴 쓰고, 다른 예산을 깎아서 쓰라고 합니다.”
_노무현 대통령
“감세는 포퓰리즘이 아닙니다. 포퓰리즘이면 하지 말아야죠. 감세는 세계적인 추세입니다. 모든 선진국이 지금 감세 경쟁을 하고 있다시피 하기 때문에 이건 포퓰리즘이 아니고, 또 한편으로 우리나라가 그간에 세금이 너무 많이 올랐습니다.”
_이명박 대통령
“증세는 마지막에 국민의 동의를 얻어서 공감대를 형성해서 해야지, 정치권이나 정부나 자기 할 일은 안 하고 국민 세금만 바라보고, 이런 자세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_박근혜 대통령
세금 인상 문제는 갈수록 중요한 정치 쟁점이 되어 가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집권 첫해인 2017년에 제시한 소득세 및 법인세 최고 세율 인상안이 불러일으킨 논쟁은 거셌다. 정권 초기이고 ‘선별 증세’에 대한 지지 여론이 높았음에도 국회 문턱을 어렵사리 넘을 정도였다. 종합부동산세를 비롯한 부동산 보유세 문제를 둘러싼 논란도 그에 못지않았다. 이제 세금 문제는 단순히 전문가의 영역이 아니라 모든 시민들이 첨예한 관심을 기울이는 사안이다. 진보와 보수를 가르는 기준선도 남북 관계에서 감세·증세 문제로 넘어간 지 오래다. 복잡성이 커져 가는 현대사회에서 정부는 더 견실한 재정 건전성과 더 많은 사회 안전망을 동시에 요구받는다. 이는 우리가 어떤 나라를 원하느냐는 근원적인 문제까지 연관돼 있다. 하지만 복지 지출과 안전 등 공적 지출 확대에 대한 사회적 요구는 높아지는 반면 국가의 과세 행위에 대한 신뢰는 오히려 악화되는 상황에서 사회적 합의와 국가 전략적 차원의 고민으로 이어지기는 쉽지 않다. 노무현 정부가 도입한 종합부동산세는 이른바 ‘세금 폭탄’ 논쟁으로 이어졌고, 이명박 정부가 추진한 감세 정책 역시 임기 내내 ‘부자 감세’라는 비판에 직면했다. ‘증세 없는 복지’를 내세운 박근혜 정부에선 오히려 증세 논쟁이 더 격화됐다.
‘부자 증세’만으로는 필요한 만큼의 세입 증대 효과를 거둘 수 없지만, ‘보편 증세’를 지지하는 여론은 충분히 높지 않다. 일례로 대다수 국민들은 ‘유리 지갑’인 임금노동자에 비해 자영업자가 세금을 더 적게 낸다고 생각하지만(실제로는 상위 소득 계층에선 임금노동자의 부담이 더 많고, 광범위한 근로소득공제 등의 영향으로 중간 소득 계층에선 자영업자의 소득세 부담이 다소 많다), 한국은 다른 선진국에 비해 자영업자든 임금노동자든 모두가 소득세 자체를 적게 낸다. 산업화를 위한 재원 마련에 부심했던 1960년대 박정희 정부, 1987년 6월 항쟁 이후 민주화 열기와 여소·야대 상황에서 집권한 노태우 정부 전반기, 대통령이 나서서 증세 문제를 공론화하려 한 노무현 정부 후반기가 예외였을 뿐 한국 사회는 정부 수립 이래 전반적으로 감세를 지향했다. 담론 지형에서 여전히 헤게모니를 쥐고 있는 것도 감세·긴축에 입각한 재정 건전성 담론이다.
한국의 주류 담론은 재정 건전성을 근거 삼아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재정 위험을 강조하지만 정작 저출산·고령화에 대응하려는 재정지출 시도에는 재정 건전성을 이유로 반대한다. 통일에 대비하기 위한 재정 건전성을 강조하면서도 정작 이명박 대통령이 통일을 위한 선제적 재정 확충을 들어 통일세 얘기를 꺼냈을 때 재정 건전성 유지가 먼저라며 격렬히 반대했다. ‘복지 정책을 위해서는 돈이 든다’며, 증세 없는 복지 강화를 내세운 민주당을 비판했지만 ‘복지는 하되 돈이 들면 안 된다’고 주장한다. 복지 강화 여론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정치권을 포퓰리즘이라 비판하다 보니, 재정 건전성이 아니라 ‘부자 감세’를 최우선 목표로 삼았던 이명박 정부에 재정 건전성을 수호하라고 요구하는 자기모순적 결론에 도달하는 등 세금을 둘러싼 논쟁은 자주 헛돈다.
조세 담론의 정치학
: 8개 종합 일간지의 사설을 통해 살펴본 조세정책과 조세 담론
“조세정책 연구야말로 한 사회의 정치적 삶을 이해하는 가장 좋은 출발점이다.”
_조지프 슘페터
“생각은 바이러스와 같아. 회복이 빠르고 전염성이 강해. 가장 작은 생각의 씨앗도 자라날 수 있어. 자라나서 너를 규정하거나 파괴하기도 해.”
_영화 <인셉션>에서
어떤 조세정책을 선택하는지는 그 국가의 성격을 이해하는 나침반 구실을 한다. 이 책은 갈수록 격화되는 조세정책을 둘러싼 갈등을 해소할 정책적 실마리를 조세 담론 연구에서 찾을 수 있다는 고민에서 출발했다. 조세 담론은 조세제도라는 맥락에서 확산하거나 쇠퇴하며, 그렇게 형성되고 변화하는 조세 담론이 조세제도 변화를 촉진하거나 제약한다. 이 책은 조세정책이 ‘어떻게 존재하는가’보다는 ‘누가 말하는가’와 ‘어떻게 말하는가’라는 권력 작용에 주목한다. 현대 민주주의 정치체제 아래 국가정책은 언론에서 벌어지는 토론과 논쟁을 거친다. 정부와 정당, 언론 등은 담론 정치의 주요 행위자로서 담론 연합을 형성해 정책 결정, 의제 설정, 의식 주조라는 세 가지 차원에서 헤게모니를 확보하기 위한 담론 투쟁을 수행한다. 특히 언론은 조세제도 형성과 변화 과정에서 ‘촉매제’가 되기도 하고 ‘거부점’이 되기도 한다.
노무현 정부부터 박근혜 정부까지 조세를 둘러싼 갈등은 하나같이 언론이 특정한 프레임으로 구체적인 정책을 진단하고 처방을 내림으로써 정책을 제약하는 양상을 보였다. 이에 대해 언론의 사회적 기능에 대한 많은 비판이 제기되는데, 동시에 이는 언론 보도가 구체적인 조세정책에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음을 의미한다. 이 책은 언론, 그중에서도 주로 8개 종합 일간지(『경향신문』, 『국민일보』, 『동아일보』, 『서울신문』,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 『한국일보』)에 실린 사설을 프리즘 삼아 조세정책을 살폈다. 사설 자료 517건을 수집해 형태소 기반 분석을 거쳐 확인한 299개 지표의 의미 연결망 분석을 통해 ‘실제’와 ‘담론’ 사이의 거리를 확인한다.
일례로 ‘노무현 책임론’과 ‘포퓰리즘 책임론’이 대통령 선거를 앞둔 2007년과 2011년 8월 서울시 주민 투표처럼 특정 국면에 집중적으로 등장한다는 것은 ‘담론의 정치성과 역사성’을 보여 준다. 하지만 더 깊이 주목할 대목은 그 담론이 그토록 효과적이었던 이유이다. 이는 ‘세금 폭탄’이나 ‘부자 감세’를 단순히 정파적 이해관계를 반영한 프로파간다로 보는 걸 넘어서야 한다는 고민과 맞닿는다. 재정 건전성 담론이 헤게모니를 얻은 배경에는 재정 건전성 담론이 내세우는 방만함, 흥청망청, 무책임함 등을 ‘집안 살림’이라는 ‘은유’를 사용해 전달함으로써, 국민들이 ‘아껴야 잘산다’는 도덕적 가치를 재정 건전성에도 적용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언론은 태생적으로 정치 상황 변화에 대응해 프레임을 전략적으로 선택한다. 이 작업이 잘되면 독자들의 신뢰를 얻고 정치적 영향력을 유지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불신받거나 외면당해 정치적 영향력도 줄어들기 때문이다. 이 책은 보수 신문과 진보 신문을 구분하는 일반적인 분석 방식보다는 언론을 대체로 ‘동질적인 실체’로 취급하려고 노력하면서 각 사설이 내포한 조세 담론 자체에 집중했다. 조세 정책을 놓고 각 신문이 보여 주는 차이점 이상으로 광범위한 유사성에 주목했을 때 핵심을 이해하는 데 더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사설은 특정 신문이 지향하는 가치와 문제의식을 가장 직설적으로 압축해 보여 준다는 점에서 분석 대상으로서 가치가 크다. 최근 미디어 담론 분석을 다룬 연구에서도 꾸준히 사설에 주목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작가 소개
강국진
전북 고창에서 태어나 자랐다. 중앙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한 뒤 예산 문제에 관심을 갖고 공부한 끝에 2017년 성균관대학교 국정전문대학원에서 「조세담론의 구조와 변동에 관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남북 경협과 북핵 문제에도 관심이 많아 박한식 조지아대 명예교수와 함께 『선을 넘어 생각하다』를 썼다. 현재 서울신문에서 기자로 일하고 있다.
목 차
1장 한국 조세제도의 특징 23
2장 의미 연결망 분석을 통해 본 조세 담론 71
3장 세금 폭탄론 : 노무현 정부의 조세 담론 83
4장 부자 감세론 : 이명박 정부의 조세 담론 119
5장 서민 증세론 : 박근혜 정부의 조세 담론 163
6장 재정 건전성론 : ‘아껴야 잘산다’는 은유 또는 협박 201
결론 245
보론 : 담론과 제도 277
후주 296
참고문헌 316
찾아보기 3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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