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정의로운 검찰’은 없다!
정치검찰에서 검찰정치로―
촛불정부가 만든 거대한 아이러니
“문재인 정권의 검찰개혁은 실패했다. ‘대통령 윤석열’이 그 증거다.” 《검찰국가의 탄생》의 첫 문장은 독자의 마음을 무겁게 짓누른다. 그 실패가 한국사회에 짙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기 때문이다. 역대 어느 정권보다 검찰개혁을 강조하며 이를 숙원으로 삼은 문재인 정권의 시도는 왜 끝내 좌초했을까?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검찰정권’이라는 국가적 백래시를 불러왔을까? 이 책은 지난 5년간의 검찰개혁 막전막후를 빠짐없이 지켜본 《한겨레》 전 법조팀장이 회한으로 써내려간 실패의 기록이다.
저자는 수많은 인물과 사건과 어록이 어지럽게 부유하는 이 사건을 ‘인사-시간-민심’이라는 그물로 건져 올려 재구성한다. 이를 통해 박근혜 탄핵 촛불시위 당시 국정농단의 공범으로 지목된 검찰이 정작 촛불정부를 자임한 문 정권에서 ‘정의로운 칼잡이’로 부활하게끔 만든 장본인들, 촛불정부가 개혁의 골든타임(정권 초기 2년)을 허무하게 날려버린 까닭, 검찰개혁에 압도적 지지를 보내온 여론이 돌아서는 변곡점이 드라마틱하게 포착된다. 나아가 그간 물밑에서 정치권력과 상부상조하며 기득권을 누려온 ‘정치검찰’이 막강한 수사권을 무기로 직접 정치판의 선수로 등장한, 즉 ‘검찰정치’로 변모하는 경로가 생생하게 복원된다.
인사,
이보다 더 나쁠 순 없다
검찰개혁의 관건은 청와대 민정수석실-법무부-검찰 수뇌부에 대한 적재적소의 인사다. 저자는 수사권-기소권 분리를 비롯해 후보 시절 문재인의 검찰개혁 구상을 주도한 인재풀(반특권검찰개혁추진단)이 거의 등용되지 못했고, 그 자리를 반개혁적 공안검사 출신들이 차지했음을 지적한다. 청와대-법무부를 꿰찬 이들 ‘트로이 목마’는 청와대 민정수석과 법무부 장관이 아닌 윤석열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의 참모로 움직였다. 비검찰 출신으로 검찰 내부 사정에 어두웠던 초대 민정수석(조국)과 법무부 장관(박상기)은 점차 이들에게 ‘포획’되었고, 결국 ‘윤석열 검찰총장’이라는 최악의 인사 참사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이런 난맥상을 견제해야 할 여당 인사들의 행보는 더욱 가관이다. 대통령의 복심(양정철)-청와대 비서실장(노영민)-국정상황실장(윤건영)은 민주당 안팎에서 울려댄 ‘검찰주의자 윤석열’에 대한 경고음과 ‘임명불가’ 의견에도 아랑곳없이 그를 검찰총장으로 밀었다. 물론 이 모든 사태의 책임은 최종 인사권자인 문재인으로 향한다. 저자는 박근혜 정권 당시의 몇몇 에피소드를 통해 ‘정의로운 검사’로 포장된 윤석열에 혹해, 온갖 비토에도 그를 기어이 검찰의 수장으로 발탁한 문재인이야말로 검찰개혁을 “꿈같은 희망”으로 만든 장본인이라고 지목한다.
적폐청산에 낭비한 골든타임
정부조직법상 법무부의 일개 외청에 불과한 검찰에 대한 개혁이 번번이 좌초한 것은 검찰의 파워가 그만큼 막강하기 때문이다. 이는 2300명에 달하는 검사, 즉 집단의 힘이며 동시에 수사권-기소권을 독점한 권력의 문제이기도 하다. 따라서 검찰개혁의 요체는 ‘검찰의 힘을 빼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문 정권은 정확히 반대로 움직였다. ‘적폐청산’을 내세워 검찰 내 엘리트 집단인 특수부(윤석열 사단)을 역대 최대 규모로 키운 것도 모자라 그들이 자행한 피의사실 공표 등 각종 위법·탈법 수사 방식에 눈감아버린 것이다. 정부와 여당이 적폐청산을 명분으로 전임 정권, 특히 이명박에 대한 복수에 성공하고 연이은 지선-총선 승리에 취해 있는 동안 개혁의 골든타임 2년은 쏜살같이 흘러갔다. 2019년 ‘조국 사태’ 이후 부랴부랴 검찰개혁 카드를 다시 꺼냈을 때, ‘윤석열 검찰’은 이미 손댈 수 없는 무소불위의 권력집단이 되어 있었다.
민심의 변곡점,
‘조국 사태’와 ‘추윤 갈등’
“검찰개혁은 국민의 지지가 없으면 이뤄질 수 없다”(문재인, 2011년). 노무현의 실패를 함께한 문재인은 기득권 집단을 개혁하는 동력이 민심의 압도적 지지에서 나온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았다. 민심은 개혁에 대한 진심이 느껴질 때는 호응하지만 그 반대, 즉 개혁 주체가 도덕성과 일관성을 상실하는 순간 가차 없이 등을 돌린다. 저자는 임기 후반 문 정권이 검찰개혁의 승부수로 던진 조국-추미애 법무부 장관 카드를 나란히 ‘민심의 변곡점’으로 꼽는다.
자녀 입시비리와 사모펀드 불법 투자, 증거인멸 혐의로 점철된 ‘조국 사태’에서 민주당은 검찰의 표적·과잉 수사를 문제 삼으며 ‘조국수호=검찰개혁’으로 등치시켰다. 조국에 이어 법무부 장관에 오른 추미애는 ‘윤석열 제거=검찰개혁’이란 논리로 검찰총장 직무배제와 징계를 강행했고, 문재인은 빠른 재가로 이에 동의했다. 이 두 사건에서 민심은 문 정권의 책임이 더 크다는 쪽의 손을 들었다. 당시 여론 흐름을 면밀하게 분석한 저자는 조국 사태가 정권의 도덕성과 일관성에 치명타를 안겼으며, 추윤 갈등은 ‘개혁은 핑계일 뿐, 정권 말을 듣지 않는 검찰 손보기가 목적’이라는 의심 속에 검찰개혁의 동력을 완전히 상실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지적한다.
검찰국가는
검찰개혁의 대안이 될 수 없다
검찰개혁의 실패는 검찰국가의 등장으로 귀결된다. 문 정권의 지지부진한 개혁에 실망한 유권자들이 차라리 ‘권력에 맞서 그들을 단죄해온’ 검사 대통령을 택한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에서 장차관까지 ‘범죄 소탕 전문가들’이 점령한 검찰정권에 대한 전망이 밝아보이진 않는다. 출범 100일도 안 돼 발생한 국정평가 데드크로스, 이태원 참사와 화물연대 파업 등 사회문제에서 노골적으로 드러난 ‘법 기술자적 면모(사람에 대한 몰이해)’는 검찰정권이 결코 실패한 검찰개혁의 대안이 될 수 없음을 보여준다. 결국 목적지는 검찰국가가 아니라 ‘검찰권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되어야 한다. 30년간 법조 전문 저널리스트로 살아온 저자는 단언한다. “정의로운 검찰은 없다.” 다음 정권이 검찰의 힘을 줄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검찰의 칼을 정치의 장에 들여놓지 말아야 한다. 문재인 정권의 실패가 남긴 교훈이다.
작가 소개
이춘재
저널리스트. 1996년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 재판 취재를 시작으로 기자 이력의 대부분을 법조 분야에서 쌓았다. 《한겨레》 법조팀장과 사회부장을 지냈고, 지금은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선임기자로 있다. 2007년 김용철 변호사(전 삼성 법무팀장)의 내부고발로 시작된 ‘이건희 비자금 사건’과, 2016년 박근혜 정권 말기에 벌어진 일련의 검찰 비위 사건(진경준·홍만표·우병우 사건), 2019~2020년 ‘조국 사태’와 ‘추미애-윤석열 충돌’ 등을 현장에서 취재했다.
노무현 정권 당시 진보 성향 대법관 5명의 활약상을 그린 《기울어진 저울》(2013년)을 후배 기자와 함께 썼다. 대법관 구성의 다양화를 통해 대법원을 개혁하고자 했던 노무현의 꿈이 정권교체와 함께 좌절된 과정을 추적한 당시의 경험은, 이 책 《검찰개혁은 왜 실패했는가》를 쓰는 데 소중한 밑거름이 되었다.
목 차
1 사람이 문제다
○ 이보다 더 나쁠 순 없다
○ 검찰주의자 윤석열
○ 문제는 문재인이다
2 시간은 개혁의 편이 아니다
○ 적폐청산의 달콤한 유혹
○ 윤석열 사단에 포획되다
○ 날아간 개혁의 골든타임
3 민심이 바뀌다
○ 조국 사태와 내로남불
○ 추미애가 쏘아 올린 정권교체론
○ 문재인 정권은 검찰개혁에 진심이었을까?
● 에필로그: 검찰국가가 온다
● 주
역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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