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오래된 이야기가 있는 마을 일대기
이 동시집의 배경이 된 마을, 오도 가도 못하게 고라니의 마음을 묶어놓은 산골 마을은 경상북도 산북면 가좌리이다. 전쟁이 나기 전엔 큰마을, 새터, 산막, 묵은터, 네 개의 마을이었다가 이후 묵은터 사람들을 큰마을로 이주시켜 세 개의 부락이 되었는데, 동네 지형이 달라져도 이 마을엔 그곳을 지키며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
팥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믿음이 가는 재혁이 아재, 어릴 적 세상을 떠난 절름발이 친구 정삼이, 중학교 간 혁이 오빠에게 설레어하는 아이와 새의 죽음에 예의를 갖출 줄 아는 강아지 보리, 그리고 할머니들의 고장 난 텔레비전이나 보일러를 고쳐 주는가 하면 밤참으로 제삿밥을 얻어먹고 어울려 화투 치고 자장면 내기도 하는 시인 장동이가 그들이다. 할머니들은 동네에 밥 짓는 연기 보기 어렵던 흉년이어도, 자식들이 다 떠나가 텅 빈 땅이어도 감나무처럼 굳게 이 오지를 지켜왔다. 곳곳이 이야기로 무성한 이 마을을 시인은 고대로 떠내 종이에 옮겨 놓았다.
뭐든지 너무 아는 척해 싸서 싫어.
뭘 고렇게 아는 척하는지 몰라.
요 며칠, 고 할마이네
아무도 마실 안 가 뿌��어.
고 할마이네 가 봤어
집구석에 콕 처박혀 안 나오데!
요 며칠, 봉순네서 놀았자네.
내가 무슨 말만 하면 할마이들이
울매나 쿠사리를 주던지
요 며칠, 꼴도 안 비치서
내 속이 다 시원하네.
그런데 장동이 양반,
요누무 할마이들이
요 며칠, 누들 집에 모이등가
「요 며칠」 전문
두 할머니가 넌지시 묻는 서로의 안부 내지 염탐이 재미있다. 할매 방에 앉아 군밤이라도 까먹으며 듣는 것 같은 착각이 인다. 시인은 여기에 어떤 해설도 달지 않는다. 때로 할머니들은 “망할 눔의 다람쥐”가 들깨를 훔쳐 달아났다고 욕하면서 다람쥐 먹이인 도토리를 산에서 잔뜩 주워 오기도 하고, 이웃이 집을 비운 줄 알고 이웃집 개한테 욕을 하기도 한다. 편집되지 않은 할머니들의 일상이 무구해서 더 실감난다. 일상뿐 아니라 오랜 시간을 지나며 얻은 혜안과 삶의 자세도 담았다. 밥은 한 술이라도 나눠 먹어야 한다는 연산댁 할매의 음식 철학이 지동 할매에게 대물림되고(「지동 할매」), 혼자 사는 까불 할매는 운수 사납다는 아이들의 운수를 모두 다 사 버리며 무조건적인 사랑을 베풀기도 한다(「까불 할매」). 아이들이 공감해 줄까, 할머니들을 시화하며 시인에게 고민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시인은 아이들이 겪어 보지 못한 삶과 마을에 대해 말해 주기로 한다.
『엄마 몰래』에는 마을에서 5킬로 거리에 있는 분교에서 시인이 함께 글쓰기를 하며 만난 아이들도 있다. 첫싸움을 하거나 첫사랑에 눈뜨거나 어른들의 겉과 속이 다른 말에 고개를 갸웃하는 아이들의 이야기는 웃음을 짓게 한다. 자라는 환경은 다르지만 어느 아이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다.
마을이 품은 오늘의 이야기, 마을을 품은 우주의 이야기
이 모두가 어우렁더우렁 살아가는 동네 이야기를 들려준 시인은 이 동네에 공존하는, 이 동네를 품고 있는 자연으로 우리를 데려간다. 평론가 김이구는 이 안에선 “머위는 머위 방식대로, 달팽이는 달팽이 방식대로, 나비는 나비 방식대로 살고, 계절이 바뀌고 비가 오는 자연의 변화에 거스름 없이 조화롭게” 지낸다고 말한다. 모두 제 몫을 살며 하나의 우주를 이루는 것이다.
이른 아침 담벼락 밑
꽃잎 한 장,
꽃에서 꽃으로만 다니더니!
「나비」 전문
이른 아침 담 밑에서 발견한 죽은 나비. 꽃에서 꽃으로만 다니더니, 땅 위에 피어난 꽃잎인 듯 누워 있다. 단 세 줄로도 나비의 삶과 죽음을 감당한다. 간결하여 읽는 이에게 더 많은 생각의 길을 열어 준다.
꽃주먹을 내밀며 처음 세상을 만나는 머위에게서 힘을 얻고(「머위의 봄」), 고라니의 목소리를 빌려 저밖에 모르는 사람들에게 쓴소리를 하고(「고라니의 말」), 사과를 통째 다 먹지 않고 남겨 놓는 새들(「사과밭 새들은」)을 통해 공존을 말하기도 한다.
그러고 보면, 고라니를 만나면 참견하지 말고 못 본 척 지나치라는 말이 아까와는 다르게 다가온다. 고라니가 다치지 않고 무사히 엄마 곁으로 돌아가기를 바라는 마음. 자연을 해치고 간섭하는 사람들에게 ‘함께 삶’을 묻는 말은 아닐까.
시인은 현재 농사를 지으며, 동시전문지 『동시마중』의 2기 편집위원으로 4년째 활동하고 있다. 그사이 동시 문단은 더 풍성해지고 유연해졌다. 여기에 동시의 폭을 한 발 더 확장한 장동이 시인, 그의 두 번째 동시집은 얼마나 더 넓은 마을을 그릴지 기대해 본다.
▣ 작가 소개
글 : 장동이
1962년 경북 문경에서 태어났습니다. 2010년 『동시마중』 제3호로 등단했으며, 현재 동시 전문지 『동시마중』 편집위원입니다.
그림 : 한차연
중앙대학교 시각디자인학과를 졸업하고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씨네21』『어라운드』 등의 잡지와 단행본 『우리, 괜찮을까』 『어디까지나 개인적인』에 그림을 그렸으며 독립출판물을 만듭니다.
오래된 이야기가 있는 마을 일대기
이 동시집의 배경이 된 마을, 오도 가도 못하게 고라니의 마음을 묶어놓은 산골 마을은 경상북도 산북면 가좌리이다. 전쟁이 나기 전엔 큰마을, 새터, 산막, 묵은터, 네 개의 마을이었다가 이후 묵은터 사람들을 큰마을로 이주시켜 세 개의 부락이 되었는데, 동네 지형이 달라져도 이 마을엔 그곳을 지키며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
팥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믿음이 가는 재혁이 아재, 어릴 적 세상을 떠난 절름발이 친구 정삼이, 중학교 간 혁이 오빠에게 설레어하는 아이와 새의 죽음에 예의를 갖출 줄 아는 강아지 보리, 그리고 할머니들의 고장 난 텔레비전이나 보일러를 고쳐 주는가 하면 밤참으로 제삿밥을 얻어먹고 어울려 화투 치고 자장면 내기도 하는 시인 장동이가 그들이다. 할머니들은 동네에 밥 짓는 연기 보기 어렵던 흉년이어도, 자식들이 다 떠나가 텅 빈 땅이어도 감나무처럼 굳게 이 오지를 지켜왔다. 곳곳이 이야기로 무성한 이 마을을 시인은 고대로 떠내 종이에 옮겨 놓았다.
뭐든지 너무 아는 척해 싸서 싫어.
뭘 고렇게 아는 척하는지 몰라.
요 며칠, 고 할마이네
아무도 마실 안 가 뿌��어.
고 할마이네 가 봤어
집구석에 콕 처박혀 안 나오데!
요 며칠, 봉순네서 놀았자네.
내가 무슨 말만 하면 할마이들이
울매나 쿠사리를 주던지
요 며칠, 꼴도 안 비치서
내 속이 다 시원하네.
그런데 장동이 양반,
요누무 할마이들이
요 며칠, 누들 집에 모이등가
「요 며칠」 전문
두 할머니가 넌지시 묻는 서로의 안부 내지 염탐이 재미있다. 할매 방에 앉아 군밤이라도 까먹으며 듣는 것 같은 착각이 인다. 시인은 여기에 어떤 해설도 달지 않는다. 때로 할머니들은 “망할 눔의 다람쥐”가 들깨를 훔쳐 달아났다고 욕하면서 다람쥐 먹이인 도토리를 산에서 잔뜩 주워 오기도 하고, 이웃이 집을 비운 줄 알고 이웃집 개한테 욕을 하기도 한다. 편집되지 않은 할머니들의 일상이 무구해서 더 실감난다. 일상뿐 아니라 오랜 시간을 지나며 얻은 혜안과 삶의 자세도 담았다. 밥은 한 술이라도 나눠 먹어야 한다는 연산댁 할매의 음식 철학이 지동 할매에게 대물림되고(「지동 할매」), 혼자 사는 까불 할매는 운수 사납다는 아이들의 운수를 모두 다 사 버리며 무조건적인 사랑을 베풀기도 한다(「까불 할매」). 아이들이 공감해 줄까, 할머니들을 시화하며 시인에게 고민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시인은 아이들이 겪어 보지 못한 삶과 마을에 대해 말해 주기로 한다.
『엄마 몰래』에는 마을에서 5킬로 거리에 있는 분교에서 시인이 함께 글쓰기를 하며 만난 아이들도 있다. 첫싸움을 하거나 첫사랑에 눈뜨거나 어른들의 겉과 속이 다른 말에 고개를 갸웃하는 아이들의 이야기는 웃음을 짓게 한다. 자라는 환경은 다르지만 어느 아이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다.
마을이 품은 오늘의 이야기, 마을을 품은 우주의 이야기
이 모두가 어우렁더우렁 살아가는 동네 이야기를 들려준 시인은 이 동네에 공존하는, 이 동네를 품고 있는 자연으로 우리를 데려간다. 평론가 김이구는 이 안에선 “머위는 머위 방식대로, 달팽이는 달팽이 방식대로, 나비는 나비 방식대로 살고, 계절이 바뀌고 비가 오는 자연의 변화에 거스름 없이 조화롭게” 지낸다고 말한다. 모두 제 몫을 살며 하나의 우주를 이루는 것이다.
이른 아침 담벼락 밑
꽃잎 한 장,
꽃에서 꽃으로만 다니더니!
「나비」 전문
이른 아침 담 밑에서 발견한 죽은 나비. 꽃에서 꽃으로만 다니더니, 땅 위에 피어난 꽃잎인 듯 누워 있다. 단 세 줄로도 나비의 삶과 죽음을 감당한다. 간결하여 읽는 이에게 더 많은 생각의 길을 열어 준다.
꽃주먹을 내밀며 처음 세상을 만나는 머위에게서 힘을 얻고(「머위의 봄」), 고라니의 목소리를 빌려 저밖에 모르는 사람들에게 쓴소리를 하고(「고라니의 말」), 사과를 통째 다 먹지 않고 남겨 놓는 새들(「사과밭 새들은」)을 통해 공존을 말하기도 한다.
그러고 보면, 고라니를 만나면 참견하지 말고 못 본 척 지나치라는 말이 아까와는 다르게 다가온다. 고라니가 다치지 않고 무사히 엄마 곁으로 돌아가기를 바라는 마음. 자연을 해치고 간섭하는 사람들에게 ‘함께 삶’을 묻는 말은 아닐까.
시인은 현재 농사를 지으며, 동시전문지 『동시마중』의 2기 편집위원으로 4년째 활동하고 있다. 그사이 동시 문단은 더 풍성해지고 유연해졌다. 여기에 동시의 폭을 한 발 더 확장한 장동이 시인, 그의 두 번째 동시집은 얼마나 더 넓은 마을을 그릴지 기대해 본다.
▣ 작가 소개
글 : 장동이
1962년 경북 문경에서 태어났습니다. 2010년 『동시마중』 제3호로 등단했으며, 현재 동시 전문지 『동시마중』 편집위원입니다.
그림 : 한차연
중앙대학교 시각디자인학과를 졸업하고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씨네21』『어라운드』 등의 잡지와 단행본 『우리, 괜찮을까』 『어디까지나 개인적인』에 그림을 그렸으며 독립출판물을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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