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서양 과학을 배워 나라를 부강하게 하라!
우리 역사에서 가장 어두운 때는 언제일까?
역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일제강점기 직전의 시대를 공부하기 꺼려한답니다. 왜 그럴까요? 아무리 노력해도 어차피 식민지가 될 거라는 걸 알기 때문이지요. 역사학자뿐만 아니라 일반 사람들에게도 일제강점기는 우리 역사에서 가장 어두운 시기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40년에 가까운 식민지 지배를 겪고 난 다음 사람들은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던 우리 모습을 창피해하고 고통스러운 마음으로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우리 민족이 원래 어리석었기 때문에 식민지가 되었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아졌지요.
조선 시대 임금 가운데 가장 욕을 많이 먹은 사람은?
고종은 일제 식민지가 되기 전 마지막 임금이었습니다. 그래서 나라를 망하게 한 무능한 임금이라며 손가락질을 받았지요. 일본도 조선을 식민지로 만든 이유가 자기들 욕심 때문이 아니라 조선의 잘못 때문이라는 변명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조선은 지도가 무능해서 바깥세상과 제대로 교류하지 못했다. 일본은 그런 조선을 교육시켜 문명 세계로 이끌어 주었다.”라고 거짓 선전을 했답니다. 이런 생각은 오랫동안 사람들의 머릿속에 남아 있었고 그 무렵의 역사를 무조건 부끄럽게만 기억하게 만들었습니다.
남의 눈이 아닌 우리 스스로 역사를 돌아보자
물론 고종 임금이 잘못한 점이 많고, 그 시대가 백성들이 제대로 살 수 있었던 시기가 아니라는 점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스스로 나라의 문을 열고 서양의 앞선 문명을 배워 나라를 부강하게 하려고 노력했던 역사까지 잊어버려는 안 될 것입니다. 고종은 나라의 문을 연 다음 곧바로 서양 과학 기술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래서 짧은 시간 안에 전기, 전차, 전신 제도 등을 갖출 수 있게 되었지요. 비록 일본의 식민지가 되면서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지만 이때의 경험은 해방 후 새 나라를 건설하는 데 좋은 밑거름이 되었답니다.
과학이 가져다 준 변화들
고종이 도입한 서양 과학 문물은 잠시 나타났다 사라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천문학은 하늘에 대한 생각을 바꾸었고, 전신 기술은 500년을 이어오던 통신 제도를 대신했습니다. 그리고 많은 학생들이 서양식 학교에서 공부를 하며 새로운 세계에 눈을 떴지요. 이렇듯 고종 시대는 비록 실패했을지언정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 때였습니다. 저자 김연희 선생님이 『고종 시대의 과학 이야기』를 쓴 이유가 바로 그런 점을 잊지 말고 세계 속의 한국을 만들어가는 데 교훈으로 삼자는 것입니다.
* 내용 소개
‘별 볼 일’이 없어진 하늘
조선은 천문 관측이 매우 발달한 나라였습니다. 그래서 세종 때 만든 간의 같은 천문 관측기구가 많이 있었답니다. 조선이 천문 관측을 중요하게 여긴 이유는 해, 달, 별 같은 하늘의 변화에 하늘의 뜻과 임금의 권위가 담겨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서양에서 들어온 천문학은 그냥 과학적이고 기계적인 운동일 뿐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고종은 임금의 권위를 포기하면서까지 서양 천문학을 소개하는 데 열심이었습니다. 이런 생각의 변화가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 거라 믿었기 때문이지요.
우리도 서양 무기를 갖추자
서양 나라들이 힘이 센 이유는 다름 아닌 좋은 무기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고종도 서양식 무기를 갖추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가까운 청나라 무기 공장에 견습생을 파견했고, 그들이 돌아오자 무기 공장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돈이 너무 많이 들었기 때문에 최신식 무기를 갖추지는 못했습니다. 고종은 서양식 무기를 갖추는 것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음을 깨달았습니다.
최초의 전등불은 어디서 켜졌을까?
우리나라에서 처음 전깃불이 켜진 곳은 경복궁이었습니다. 고종은 낮에 자고 밤에 깨서 일하는 ‘올빼미’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서양의 전깃불을 궁궐에 설치하고 무척 기뻐했지요. 전깃불은 점차 궁궐 밖으로 퍼져 나갔습니다. 서울 진고개의 일본인 거주지와 정동 외교관 거리에 전등이 설치되었지요. 전등은 편리한 물건이기도 했지만 ‘밤은 어둡고 낮은 밝다’라는 사람들의 생각을 크게 바꾸었습니다.
고종이 아낀 전신과 전차
고종은 서양 과학 문물 중에서도 전신 제도와 전차에 많은 공을 들였습니다. 전신은 나라를 효율적으로 다스리기 위해 꼭 필요한 통신 제도였습니다. 그리고 전차는 일본인에게 점차 빼앗기고 있는 서울의 상권을 지키기 위해 도입한 것이고요. 고종의 끈질긴 노력 덕분에 전신 제도가 자리를 잡았습니다. 전국으로 전신선이 뻗어 나갔고, 전신 학교에서 기술자들이 차근차근 길러졌습니다. 전차도 어느새 서울의 명물이 되어 사람들의 편리한 교통수단이 되었지요. 고종 시대에 가장 성공한 과학 문물을 꼽으라면 단연 전신 제도와 전차, 이 두 가지랍니다.
서양식 학교를 세워 나라의 인재를 기르다
고종은 눈에 보이는 과학 문물만 들여 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미래에 나라를 이끌어갈 인재를 기르기 위해 서양식 학교를 세웠지요. 이때 공부한 학생들은 나라가 위태로워지자 일본으로 건너가 조선이 서양 학문을 받아들이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국내에 남아 있던 사람들도 지식을 전하고 애국심을 깨우치는 운동에 참여했지요. 1904년과 1905년을 지나면서 나라 전체에 학교가 2천 개 넘게 세워졌습니다. 나라를 구하기 위한 노력을 교육에 쏟아 부은 것입니다.
고종 시대의 변화는 무엇을 의미할까?
고종은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결국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나라가 식민지로 굴러떨어졌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실패했더라도 고종 시대에 도입한 여러 과학 사상과 문물, 서양 학교들은 훗날 독립을 이루어내고, 새 나라를 건설하는 데 큰 밑거름이 되었답니다.
▣ 작가 소개
저자 : 김연희
1962년 진해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랐습니다. 이화여자대학교 과학교육과를 졸업했고, 서울대학교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에서 한국과학사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서울대학교 기초과학연구원 연구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창덕궁에서 만나는 우리 과학』을 썼습니다.
그림 : 김효진
한국종합예술학교와 영국 킹스턴 대학에서 공부하고 ‘보림창작그림책’ 공모전과 ‘노마콩쿠르’에 입상했습니다. 지금은 짧은 이야기를 짓고 작은 그림들을 그리면서 그림책을 만들고 있습니다. 그림을 그린 책으로는 『나랑 화장실 갈 사람?』, 『마음아, 작아지지 마』, 『손으로 그려 봐야 우리 땅을 잘 알지』, 『톨스토이 할아버지네 헌책방』, 『칸트 아저씨네 연극반』 등이 있습니다.
▣ 주요 목차
1장 천지개벽을 하다 12
2장 칠 일에 한 번 하루를 쉬다 24
3장 나라를 지키는 새로운 무기들 34
4장 밤이 낮이 되다 56
5장 바람보다 빨리 소식을 전하다 70
6장 전깃줄에 매달린 수레, 전차 90
7장 학교에서 신학문을 가르치다 104
서양 과학을 배워 나라를 부강하게 하라!
우리 역사에서 가장 어두운 때는 언제일까?
역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일제강점기 직전의 시대를 공부하기 꺼려한답니다. 왜 그럴까요? 아무리 노력해도 어차피 식민지가 될 거라는 걸 알기 때문이지요. 역사학자뿐만 아니라 일반 사람들에게도 일제강점기는 우리 역사에서 가장 어두운 시기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40년에 가까운 식민지 지배를 겪고 난 다음 사람들은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던 우리 모습을 창피해하고 고통스러운 마음으로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우리 민족이 원래 어리석었기 때문에 식민지가 되었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아졌지요.
조선 시대 임금 가운데 가장 욕을 많이 먹은 사람은?
고종은 일제 식민지가 되기 전 마지막 임금이었습니다. 그래서 나라를 망하게 한 무능한 임금이라며 손가락질을 받았지요. 일본도 조선을 식민지로 만든 이유가 자기들 욕심 때문이 아니라 조선의 잘못 때문이라는 변명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조선은 지도가 무능해서 바깥세상과 제대로 교류하지 못했다. 일본은 그런 조선을 교육시켜 문명 세계로 이끌어 주었다.”라고 거짓 선전을 했답니다. 이런 생각은 오랫동안 사람들의 머릿속에 남아 있었고 그 무렵의 역사를 무조건 부끄럽게만 기억하게 만들었습니다.
남의 눈이 아닌 우리 스스로 역사를 돌아보자
물론 고종 임금이 잘못한 점이 많고, 그 시대가 백성들이 제대로 살 수 있었던 시기가 아니라는 점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스스로 나라의 문을 열고 서양의 앞선 문명을 배워 나라를 부강하게 하려고 노력했던 역사까지 잊어버려는 안 될 것입니다. 고종은 나라의 문을 연 다음 곧바로 서양 과학 기술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래서 짧은 시간 안에 전기, 전차, 전신 제도 등을 갖출 수 있게 되었지요. 비록 일본의 식민지가 되면서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지만 이때의 경험은 해방 후 새 나라를 건설하는 데 좋은 밑거름이 되었답니다.
과학이 가져다 준 변화들
고종이 도입한 서양 과학 문물은 잠시 나타났다 사라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천문학은 하늘에 대한 생각을 바꾸었고, 전신 기술은 500년을 이어오던 통신 제도를 대신했습니다. 그리고 많은 학생들이 서양식 학교에서 공부를 하며 새로운 세계에 눈을 떴지요. 이렇듯 고종 시대는 비록 실패했을지언정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 때였습니다. 저자 김연희 선생님이 『고종 시대의 과학 이야기』를 쓴 이유가 바로 그런 점을 잊지 말고 세계 속의 한국을 만들어가는 데 교훈으로 삼자는 것입니다.
* 내용 소개
‘별 볼 일’이 없어진 하늘
조선은 천문 관측이 매우 발달한 나라였습니다. 그래서 세종 때 만든 간의 같은 천문 관측기구가 많이 있었답니다. 조선이 천문 관측을 중요하게 여긴 이유는 해, 달, 별 같은 하늘의 변화에 하늘의 뜻과 임금의 권위가 담겨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서양에서 들어온 천문학은 그냥 과학적이고 기계적인 운동일 뿐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고종은 임금의 권위를 포기하면서까지 서양 천문학을 소개하는 데 열심이었습니다. 이런 생각의 변화가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 거라 믿었기 때문이지요.
우리도 서양 무기를 갖추자
서양 나라들이 힘이 센 이유는 다름 아닌 좋은 무기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고종도 서양식 무기를 갖추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가까운 청나라 무기 공장에 견습생을 파견했고, 그들이 돌아오자 무기 공장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돈이 너무 많이 들었기 때문에 최신식 무기를 갖추지는 못했습니다. 고종은 서양식 무기를 갖추는 것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음을 깨달았습니다.
최초의 전등불은 어디서 켜졌을까?
우리나라에서 처음 전깃불이 켜진 곳은 경복궁이었습니다. 고종은 낮에 자고 밤에 깨서 일하는 ‘올빼미’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서양의 전깃불을 궁궐에 설치하고 무척 기뻐했지요. 전깃불은 점차 궁궐 밖으로 퍼져 나갔습니다. 서울 진고개의 일본인 거주지와 정동 외교관 거리에 전등이 설치되었지요. 전등은 편리한 물건이기도 했지만 ‘밤은 어둡고 낮은 밝다’라는 사람들의 생각을 크게 바꾸었습니다.
고종이 아낀 전신과 전차
고종은 서양 과학 문물 중에서도 전신 제도와 전차에 많은 공을 들였습니다. 전신은 나라를 효율적으로 다스리기 위해 꼭 필요한 통신 제도였습니다. 그리고 전차는 일본인에게 점차 빼앗기고 있는 서울의 상권을 지키기 위해 도입한 것이고요. 고종의 끈질긴 노력 덕분에 전신 제도가 자리를 잡았습니다. 전국으로 전신선이 뻗어 나갔고, 전신 학교에서 기술자들이 차근차근 길러졌습니다. 전차도 어느새 서울의 명물이 되어 사람들의 편리한 교통수단이 되었지요. 고종 시대에 가장 성공한 과학 문물을 꼽으라면 단연 전신 제도와 전차, 이 두 가지랍니다.
서양식 학교를 세워 나라의 인재를 기르다
고종은 눈에 보이는 과학 문물만 들여 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미래에 나라를 이끌어갈 인재를 기르기 위해 서양식 학교를 세웠지요. 이때 공부한 학생들은 나라가 위태로워지자 일본으로 건너가 조선이 서양 학문을 받아들이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국내에 남아 있던 사람들도 지식을 전하고 애국심을 깨우치는 운동에 참여했지요. 1904년과 1905년을 지나면서 나라 전체에 학교가 2천 개 넘게 세워졌습니다. 나라를 구하기 위한 노력을 교육에 쏟아 부은 것입니다.
고종 시대의 변화는 무엇을 의미할까?
고종은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결국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나라가 식민지로 굴러떨어졌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실패했더라도 고종 시대에 도입한 여러 과학 사상과 문물, 서양 학교들은 훗날 독립을 이루어내고, 새 나라를 건설하는 데 큰 밑거름이 되었답니다.
▣ 작가 소개
저자 : 김연희
1962년 진해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랐습니다. 이화여자대학교 과학교육과를 졸업했고, 서울대학교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에서 한국과학사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서울대학교 기초과학연구원 연구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창덕궁에서 만나는 우리 과학』을 썼습니다.
그림 : 김효진
한국종합예술학교와 영국 킹스턴 대학에서 공부하고 ‘보림창작그림책’ 공모전과 ‘노마콩쿠르’에 입상했습니다. 지금은 짧은 이야기를 짓고 작은 그림들을 그리면서 그림책을 만들고 있습니다. 그림을 그린 책으로는 『나랑 화장실 갈 사람?』, 『마음아, 작아지지 마』, 『손으로 그려 봐야 우리 땅을 잘 알지』, 『톨스토이 할아버지네 헌책방』, 『칸트 아저씨네 연극반』 등이 있습니다.
▣ 주요 목차
1장 천지개벽을 하다 12
2장 칠 일에 한 번 하루를 쉬다 24
3장 나라를 지키는 새로운 무기들 34
4장 밤이 낮이 되다 56
5장 바람보다 빨리 소식을 전하다 70
6장 전깃줄에 매달린 수레, 전차 90
7장 학교에서 신학문을 가르치다 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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