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두려움을 무릅쓰고 증언을 한 할머니들처럼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고, 진심으로 고개 숙여 사죄해야 합니다. 역사 앞에 부끄럽지 않으려면!
《나는 수요일의 소녀입니다》는 시대의 아픔을 상징하는 평화비의 입을 통해 일제 강점기 침략 전쟁의 희생자임에도 불구하고 제 목소리를 낼 수 없었던 이들의 가슴 아픈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이 책에 나오는 소녀의 이름은 오목이입니다. 오목이는 여느 아이들처럼 부모님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랐습니다. 아빠가 장에서 사 온 꽃신을 신고 들로 산으로 나들이를 가고 싶은, 천진난만한 소녀였지요. 그러나 일제 강점기라는 비극의 역사는 한순간 오목이의 행복을 송두리째 앗아가 버렸습니다. 어느 날 친구와 놀다가 집에 온 오목이는 총칼을 찬 일본 헌병에게 머리채를 잡혀 끌려갔지요.
일본군은 오목이를 비롯한 소녀들을 강제로 배에 태워 이름도 모르는 머나먼 타국으로 끌고 갔습니다. 그곳에서 오목이는 ‘위안소’라는 곳에 갇힌 채 일본 군인들의 성 노예가 되어 온갖 고통에 시달립니다. 일본군의 만행은 몸서리칠 만큼 끔찍하고 잔인했습니다. 위안부 여성들이 병이 들면 아무렇지 않게 숲속에 내다 버렸고, 위안소를 탈출하다 발각되면 그길로 총살했지요. 많은 여성들이 군인들의 학대와 굶주림, 질병에 시달리며 죽어 갔습니다. 오목이는 살아서 고향에 돌아가겠다는 일념으로 지옥과도 같은 삶을 버텨 냈지요.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제2차 세계 대전에서 패망하고 우리나라도 해방을 맞이했습니다. 온 나라가 해방의 기쁨에 들떴지만 오목이의 슬픔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일본군 포로 취급을 받으며 꿈에 그리던 고향 마을에 도착했지만 오목이는 이내 발길을 돌리고 맙니다. 집안에 먹칠을 했다고, 더럽혀진 여자라고 손가락질 받는 딸을 보며 평생을 가슴 아파할 부모님을 생각하니 차마 집으로 돌아갈 수 없었던 것이지요. 그 뒤로 수십 년 동안 오목이는 누구에게도 이 끔찍한 기억에 대해 말하지 못했습니다.
오목이는 허구의 인물이지만 일제 강점기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간 수많은 여성들을 대변하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오목이처럼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간 많은 여성들이 일본이 일으킨 침략 전쟁의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피해 사실을 누구에게도 이야기하지 못한 채 꼭꼭 숨기고 살아야 했습니다. 국내에서 일본군 위안부의 피해자임을 처음으로 증언한 김학순 할머니 또한 그랬습니다. 자신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임을 용기 내어 증언하기까지 자그마치 반세기가 걸렸습니다. 1991년, 당시 67세였던 할머니는 17세 소녀 시절 겪은 끔찍한 기억을 세상에 알렸고, 그 용기 있는 증언 덕에 2013년까지 237명의 할머니들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로 등록했습니다. 일본의 사죄를 요구하며 1991년 처음 열린 수요 집회는 20여 년의 세월을 훌쩍 지났고 그동안 자리를 지켰던 할머니들은 어느덧 한 분 두 분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제 우리 곁에서 역사를 증언해 줄 할머니들은 54분밖에 안 계십니다.
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일본 정부는 꿈쩍도 하지 않습니다. 사죄를 하기는커녕 오히려 역사를 왜곡하고 뻔뻔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지요. 일본군 위안부는 돈을 벌기 위해 자발적으로 따라온 것이다, 사기업이 한 일이므로 국가 차원에서 사과할 이유가 없다, 위안부 동원의 규모도 매우 작다는 등 터무니없는 발언을 하며 지속적으로 역사를 왜곡하고 있습니다. 이 책에서 보듯 국가에서 조직적으로 여자들을 납치해 관리한 기록이 버젓이 남아 있는데도 말이지요.
학계에서는 일본군 위안부가 되어 일본, 중국, 남태평양의 이름 모를 섬으로 끌려간 우리나라 여성이 최소 3만 명에서 최대 4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합니다. 이런 대규모 납치 강간 전쟁 범죄에 대해 일본은 끊임없이 모르쇠로 일관하며 자신들만의 광기 어린 역사를 써 나가고 있습니다. 그것도 모자라 교과서를 왜곡하여 일본의 젊은 세대에게 그릇된 역사관을 주입하고 있지요. 각종 통계 자료들은 현재 일본의 젊은 세대들이 일본의 과거사에 대해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실제로 일본의 한 디자이너는 평화비 사진을 ‘일본군 위안부는 매춘부’라는 뜻으로 조작해 인터넷에 퍼뜨렸고, 일본 극우 세력들은 평화비 철거를 요구하며 우리나라를 비롯한 각국에 세워진 평화비를 훼손하고 있습니다. 일본이 전 세계의 지탄을 받으면서도 전쟁 영웅을 기리며 신사 참배를 계속하는 것만 보아도 일본 정부의 무례함이 극으로 치닫고 있음을 알 수 있지요.
영국의 총리, 윈스턴 처칠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고 했습니다.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고, 자랑스러운 사례는 계승할 때 발전된 미래를 맞이할 수 있다는 의미이지요. 그런 점에서 일본과 함께 제2차 세계 대전을 일으킨 전범 국가이지만 독일의 자세는 일본과 사뭇 다릅니다. 제2차 세계 대전 나치스 당의 유대인 학살 사건에 대해 독일은 국가 차원에서 전 세계에 사죄하고, 다시는 이러한 잘못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철저하게 교육하고 있습니다. 폴란드 아우슈비츠 수용소, 독일 다하우 수용소 등 부끄러운 역사의 현장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것도 그러한 맥락에서 볼 수 있지요.
점점 더 치밀하고 교묘해져 가는 일본의 역사 왜곡에 맞서려면 울분과 분노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우리 스스로 단단한 논리와 근거로 무장하여 잘못된 논리를 반박하고 분명하게 사죄를 받아 내야 하지요. 그러려면 비록 마주하기 불편하고 가슴 아픈 역사일지라도 외면하지 말고 제대로 들여다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매주 수요일마다 한목소리로 일본 정부의 사죄를 외치는 할머니들에게 귀 기울이고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제는 바로잡아야 합니다. 저렇게 거짓말을 하는데 대체 왜 거짓말을 하는지 모르겠단 말이야. 나올 땐 조금 무서웠어요. 하지만 죽어도 한이 없습니다. 이젠 하고 싶은 말은 꼭 하고 말 거니까. 언제든지 하고야 말 거니까. 내 팔을 잡아끌고 따라오라고 했던 그 사람에게…….”
_국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로 처음 증언을 한 (故)김학순 할머니
“그놈들 한 걸 생각하면 보상을 받는다고 해도 한이 안 풀린다. 나가지 마라 하면 못 나가고, 거기 앉아 죽으라면 앉아 죽고, 살아라 하면 사는 세상이었다. 시간이 지나서 그렇지 하나하나 일기장에 적으면 책을 못 맺을 정도다.”
_(故)김분선 할머니
이처럼 생생한 증언이 있는데 더 이상 무엇이 필요할까요?
2011년, 일본 대사관 앞에 처음으로 평화비가 세워졌습니다. 평화비의 그림자는 가슴에 나비를 단 할머니의 모습입니다. 일제 강점기의 아픈 역사를 온몸으로 겪어 내야 했던 이 땅의 모든 오목이들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할머니 가슴에 달린 나비가 훨훨 날아올라 온 세상에 평화의 메시지를 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루빨리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고 일본 정부의 사죄를 받아 내어 할머니들의 응어리진 한이 풀어지기를 바랍니다.
아울러 어린이 독자들이 《나는 수요일의 소녀입니다》를 읽고 가깝지만 멀게 느껴지는 우리의 근현대사에 관심을 갖고 제대로 된 역사관을 갖추길 바랍니다.
▣ 작가 소개
글 : 안미란
동국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1996년 농민신문사 주최 농민문학상에 중편동화 <바다로 간 게>가 당선되면서 동화 작가로 등단했습니다. 1998년 <웅덩이>로 눈높이아동문학상 동시 부문 당선, 2001년 ≪씨앗을 지키는 사람들≫로 창비 좋은어린이책 창작 부문에 장편동화 대상을 수상하였습니다.
쓴 책으로는 ≪너만의 냄새≫, ≪내가 지켜 줄게≫, ≪부산 소학생 영희, 경성행 기차를 타다≫ 등이 있습니다.
그림 : 이경하
홍익대학교 판화과를 졸업했으며 현재 독일에 머물면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린 책으로는 ≪나쁜 엄마≫, ≪너랑 놀아 줄게≫, ≪빵모자 아저씨≫, ≪엄마와 딸≫, ≪위대한 개츠비≫ 등이 있습니다.
감수 : 한혜인
일본 홋카이도대학 대학원에서 일본 근현대사를 전공했습니다. 강제연행진상규명위원회,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의 조사관을 지냈습니다. 성균관대학교 동아시아역사연구소 연구원을 거쳐 현재, 한국여성인권진흥원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지원 및 기념사업단의 팀장으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두려움을 무릅쓰고 증언을 한 할머니들처럼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고, 진심으로 고개 숙여 사죄해야 합니다. 역사 앞에 부끄럽지 않으려면!
《나는 수요일의 소녀입니다》는 시대의 아픔을 상징하는 평화비의 입을 통해 일제 강점기 침략 전쟁의 희생자임에도 불구하고 제 목소리를 낼 수 없었던 이들의 가슴 아픈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이 책에 나오는 소녀의 이름은 오목이입니다. 오목이는 여느 아이들처럼 부모님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랐습니다. 아빠가 장에서 사 온 꽃신을 신고 들로 산으로 나들이를 가고 싶은, 천진난만한 소녀였지요. 그러나 일제 강점기라는 비극의 역사는 한순간 오목이의 행복을 송두리째 앗아가 버렸습니다. 어느 날 친구와 놀다가 집에 온 오목이는 총칼을 찬 일본 헌병에게 머리채를 잡혀 끌려갔지요.
일본군은 오목이를 비롯한 소녀들을 강제로 배에 태워 이름도 모르는 머나먼 타국으로 끌고 갔습니다. 그곳에서 오목이는 ‘위안소’라는 곳에 갇힌 채 일본 군인들의 성 노예가 되어 온갖 고통에 시달립니다. 일본군의 만행은 몸서리칠 만큼 끔찍하고 잔인했습니다. 위안부 여성들이 병이 들면 아무렇지 않게 숲속에 내다 버렸고, 위안소를 탈출하다 발각되면 그길로 총살했지요. 많은 여성들이 군인들의 학대와 굶주림, 질병에 시달리며 죽어 갔습니다. 오목이는 살아서 고향에 돌아가겠다는 일념으로 지옥과도 같은 삶을 버텨 냈지요.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제2차 세계 대전에서 패망하고 우리나라도 해방을 맞이했습니다. 온 나라가 해방의 기쁨에 들떴지만 오목이의 슬픔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일본군 포로 취급을 받으며 꿈에 그리던 고향 마을에 도착했지만 오목이는 이내 발길을 돌리고 맙니다. 집안에 먹칠을 했다고, 더럽혀진 여자라고 손가락질 받는 딸을 보며 평생을 가슴 아파할 부모님을 생각하니 차마 집으로 돌아갈 수 없었던 것이지요. 그 뒤로 수십 년 동안 오목이는 누구에게도 이 끔찍한 기억에 대해 말하지 못했습니다.
오목이는 허구의 인물이지만 일제 강점기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간 수많은 여성들을 대변하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오목이처럼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간 많은 여성들이 일본이 일으킨 침략 전쟁의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피해 사실을 누구에게도 이야기하지 못한 채 꼭꼭 숨기고 살아야 했습니다. 국내에서 일본군 위안부의 피해자임을 처음으로 증언한 김학순 할머니 또한 그랬습니다. 자신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임을 용기 내어 증언하기까지 자그마치 반세기가 걸렸습니다. 1991년, 당시 67세였던 할머니는 17세 소녀 시절 겪은 끔찍한 기억을 세상에 알렸고, 그 용기 있는 증언 덕에 2013년까지 237명의 할머니들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로 등록했습니다. 일본의 사죄를 요구하며 1991년 처음 열린 수요 집회는 20여 년의 세월을 훌쩍 지났고 그동안 자리를 지켰던 할머니들은 어느덧 한 분 두 분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제 우리 곁에서 역사를 증언해 줄 할머니들은 54분밖에 안 계십니다.
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일본 정부는 꿈쩍도 하지 않습니다. 사죄를 하기는커녕 오히려 역사를 왜곡하고 뻔뻔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지요. 일본군 위안부는 돈을 벌기 위해 자발적으로 따라온 것이다, 사기업이 한 일이므로 국가 차원에서 사과할 이유가 없다, 위안부 동원의 규모도 매우 작다는 등 터무니없는 발언을 하며 지속적으로 역사를 왜곡하고 있습니다. 이 책에서 보듯 국가에서 조직적으로 여자들을 납치해 관리한 기록이 버젓이 남아 있는데도 말이지요.
학계에서는 일본군 위안부가 되어 일본, 중국, 남태평양의 이름 모를 섬으로 끌려간 우리나라 여성이 최소 3만 명에서 최대 4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합니다. 이런 대규모 납치 강간 전쟁 범죄에 대해 일본은 끊임없이 모르쇠로 일관하며 자신들만의 광기 어린 역사를 써 나가고 있습니다. 그것도 모자라 교과서를 왜곡하여 일본의 젊은 세대에게 그릇된 역사관을 주입하고 있지요. 각종 통계 자료들은 현재 일본의 젊은 세대들이 일본의 과거사에 대해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실제로 일본의 한 디자이너는 평화비 사진을 ‘일본군 위안부는 매춘부’라는 뜻으로 조작해 인터넷에 퍼뜨렸고, 일본 극우 세력들은 평화비 철거를 요구하며 우리나라를 비롯한 각국에 세워진 평화비를 훼손하고 있습니다. 일본이 전 세계의 지탄을 받으면서도 전쟁 영웅을 기리며 신사 참배를 계속하는 것만 보아도 일본 정부의 무례함이 극으로 치닫고 있음을 알 수 있지요.
영국의 총리, 윈스턴 처칠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고 했습니다.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고, 자랑스러운 사례는 계승할 때 발전된 미래를 맞이할 수 있다는 의미이지요. 그런 점에서 일본과 함께 제2차 세계 대전을 일으킨 전범 국가이지만 독일의 자세는 일본과 사뭇 다릅니다. 제2차 세계 대전 나치스 당의 유대인 학살 사건에 대해 독일은 국가 차원에서 전 세계에 사죄하고, 다시는 이러한 잘못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철저하게 교육하고 있습니다. 폴란드 아우슈비츠 수용소, 독일 다하우 수용소 등 부끄러운 역사의 현장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것도 그러한 맥락에서 볼 수 있지요.
점점 더 치밀하고 교묘해져 가는 일본의 역사 왜곡에 맞서려면 울분과 분노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우리 스스로 단단한 논리와 근거로 무장하여 잘못된 논리를 반박하고 분명하게 사죄를 받아 내야 하지요. 그러려면 비록 마주하기 불편하고 가슴 아픈 역사일지라도 외면하지 말고 제대로 들여다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매주 수요일마다 한목소리로 일본 정부의 사죄를 외치는 할머니들에게 귀 기울이고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제는 바로잡아야 합니다. 저렇게 거짓말을 하는데 대체 왜 거짓말을 하는지 모르겠단 말이야. 나올 땐 조금 무서웠어요. 하지만 죽어도 한이 없습니다. 이젠 하고 싶은 말은 꼭 하고 말 거니까. 언제든지 하고야 말 거니까. 내 팔을 잡아끌고 따라오라고 했던 그 사람에게…….”
_국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로 처음 증언을 한 (故)김학순 할머니
“그놈들 한 걸 생각하면 보상을 받는다고 해도 한이 안 풀린다. 나가지 마라 하면 못 나가고, 거기 앉아 죽으라면 앉아 죽고, 살아라 하면 사는 세상이었다. 시간이 지나서 그렇지 하나하나 일기장에 적으면 책을 못 맺을 정도다.”
_(故)김분선 할머니
이처럼 생생한 증언이 있는데 더 이상 무엇이 필요할까요?
2011년, 일본 대사관 앞에 처음으로 평화비가 세워졌습니다. 평화비의 그림자는 가슴에 나비를 단 할머니의 모습입니다. 일제 강점기의 아픈 역사를 온몸으로 겪어 내야 했던 이 땅의 모든 오목이들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할머니 가슴에 달린 나비가 훨훨 날아올라 온 세상에 평화의 메시지를 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루빨리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고 일본 정부의 사죄를 받아 내어 할머니들의 응어리진 한이 풀어지기를 바랍니다.
아울러 어린이 독자들이 《나는 수요일의 소녀입니다》를 읽고 가깝지만 멀게 느껴지는 우리의 근현대사에 관심을 갖고 제대로 된 역사관을 갖추길 바랍니다.
▣ 작가 소개
글 : 안미란
동국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1996년 농민신문사 주최 농민문학상에 중편동화 <바다로 간 게>가 당선되면서 동화 작가로 등단했습니다. 1998년 <웅덩이>로 눈높이아동문학상 동시 부문 당선, 2001년 ≪씨앗을 지키는 사람들≫로 창비 좋은어린이책 창작 부문에 장편동화 대상을 수상하였습니다.
쓴 책으로는 ≪너만의 냄새≫, ≪내가 지켜 줄게≫, ≪부산 소학생 영희, 경성행 기차를 타다≫ 등이 있습니다.
그림 : 이경하
홍익대학교 판화과를 졸업했으며 현재 독일에 머물면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린 책으로는 ≪나쁜 엄마≫, ≪너랑 놀아 줄게≫, ≪빵모자 아저씨≫, ≪엄마와 딸≫, ≪위대한 개츠비≫ 등이 있습니다.
감수 : 한혜인
일본 홋카이도대학 대학원에서 일본 근현대사를 전공했습니다. 강제연행진상규명위원회,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의 조사관을 지냈습니다. 성균관대학교 동아시아역사연구소 연구원을 거쳐 현재, 한국여성인권진흥원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지원 및 기념사업단의 팀장으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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