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참신함과 기묘함으로 한국 아동문학에 새바람을 불어넣은 송미경 작가의 장편동화
2008년 『학교 가기 싫은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로 웅진주니어문학상을 수상하며 등단한 송미경 작가는 새로운 작가의 출현, 기존에 없던 동화, 기묘한 판타지 등등 온갖 수식어구를 얻으며 무서운 신예로 자리매김했다. 2013년 동화집 『어떤 아이가』로 한국출판문화상을 수상하며 독특한 작품 세계를 인정받은 작가는 『복수의 여신』, 『돌 씹어 먹는 아이』등 단편동화들을 통해 참신함과 기묘함으로 한국 아동문학에 새바람을 불어넣었다. 신작 『바느질 소녀』는 동화집으로 주목받아 온 작가가 동화의 본질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가고자 애쓰고, 어린이 독자들에게 그 어느 때보다 힘껏 손 내미는 작품이다. 우리는 그동안 사실주의 동화에 길들여져 왔다.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것을 추구하는 시대이다 보니 동화라기보다는 ‘아동소설’에 가까운 생활동화들이 아동문학의 대부분을 차지하게 되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동화의 본질은 ‘판타지’이다. 독특한 환상성을 기본으로 하면서 아이들의 따뜻한 세계를 마법처럼 펼쳐 보이는 『바느질 소녀』는 주목받는 동화 작가로 7년을 지내오면서 ‘동화가 무엇인지’ 새롭게 자각한 작가가 스스로에게 낸 숙제 같은 작품이다.
평범한 동네에 사는 평범한 아이, 수지에게 생긴 특별한 일
수지는 변두리 동네에 사는 평범한 소녀다. 공부를 잘하거나 빼어나게 예쁘거나 집이 부자도 아니다. 그런 수지에게는 강아지가 있다. 구름처럼 북실북실한 하얀 털을 가진 구름이. 구름이는 할머니네서 얻어 온 강아지다. 태어날 때 한쪽 다리가 몸에 붙은 채 태어나 걷는 게 어색하다. 수지에게는 단짝 친구도 있다. 같은 반 친구 준하는 5학년인데 나눗셈 곱셈도 제대로 못하지만 줄넘기 하나는 세계 선수감이다. 또 동네 친구 수목이는 수지보다 어리고 학교에 다니지 않는다. 집에서 운영하는 수목 떡집에서 엄마 아빠 일을 돕는다. 수목이 아빠는 낮에는 수목이 엄마와 함께 떡 장사를 하다가 저녁이면 술을 먹고 나타나서 수목이와 수목이 엄마를 괴롭히는 것으로 동네에 유명하다.
어느 날, 수지는 구름이를 잃어버린다. 구름이가 갑자기 집에서 안 보이는 것이다. 수지는 구름이를 찾아 온 동네를 헤매고 다니다 피리 소리에 이끌려 반달 공원으로 발을 들인다. 반달 공원은 동네에 새로 분수 공원이 생기면서, 노숙자나 거지들만 간간이 찾는 인적 드문 공원이다. 여기엔 평소처럼 거지 소녀가 구부정한 자세로 앉아 있다. 정확히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거지 소녀는 이른 봄부터 공원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었다. 수지는 소녀 옆에서 구름이를 발견한다. 아니 구름이와 똑 닮은, 네 다리가 멀쩡한 강아지다. 구름이일 리는 없는데 어쩜 이리 똑같이 생겼을까 하며 자세히 살펴보니 표정이며 행동이 완전 구름이다. 게다가 수지가 직접 뜨개질해서 목에 걸어 준 실목걸이는 확실한 증표가 되어 준다. 믿을 수 없지만 구름이가 틀림없으니 수지는 기쁨과 안도, 놀라움 속에 구름이를 데리고 집으로 간다.
“너 이 얘기 아무한테도 하지 마. 알았지?”
“왜? 좋은 일인데.”
“사람들이 믿겠어? 여하튼 진짜 구름이를 찾을 때까진 비밀로 해.”
“얘가 우리 구름인데 구름일 또 어디서 찾아? 엄마도 봐서 알잖아.”
“꼭 닮은 강아지일 거야.”
엄마는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한숨을 쉬며 구름이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21쪽)
엄마는 구름이가 맞지만 구름이면 안 되는 멀쩡한 다리를 보고 수지에게 입단속을 시킨다. 사람들에게는 비밀로 하라고.
거지 소녀와의 만남
수지는 구름이의 다리가 멀쩡해진 것을 보고 수목이네 고양이를 떠올린다. 수목이가 정붙이며 돌보는 것은 꼬리가 잘리거나 다친 동네 길고양이들이다. 새끼 때부터 돌본 검은 고양이 멜론은 수목이가 특별히 아끼는 고양이다. 꼬리가 잘린 고양이들이 동네에서 순식간에 사라져 그동안 동네에는 고양이들이 모두 죽었다는 소문만 떠돌았다. 수지는 죽은 줄 알았던 멜론을 여전히 수목이가 돌보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거지 소녀와 관계가 있음을 깨닫고 반달 공원으로 거지 소녀를 만나러 간다.
“너 지금 무슨 못된 짓을 하는 거니?”
수지가 뒷걸음치며 말했다. 몸이 떨려서 제대로 걸음을 떼지 못했다.
“쥐덫에 다쳤대. 꿰매 주고 있는 거야.”
거지 소녀는 태연하게 바느질을 하며 대답했다.
“바늘로 찌르면 아플 텐데. 고양이가 가만히 있네.”
“곧 나을 테니까.”
“그렇게 하면 낫는다는 거니?”
수지는 몇 걸음 떨어진 곳에 서서 가만히 거지 소녀를 바라보았다. (30쪽)
수지는 거지 소녀의 바느질로 고양이의 상처가 낫는 것을 본다. 소녀는 곱사등에, 허름한 옷을 입고, 작은 키에, 늘 힘이 없다. 바느질로 동물들을 원래대로 고쳐 놓고서 공원 쓰레기통을 뒤져 피자 조각이나 먹다 남은 케이크를 꺼내 아무렇지도 않은 듯 먹는다. 그 전까지는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던 거지 소녀에게 수지는 마음이 쓰인다. 그래서 준하와 함께 급식 음식을 도시락에 담아 소녀에게 가져다준다. 셋은 함께 줄넘기도 한다. 줄넘기를 할 때나 도시락을 먹을 때 편식하는 걸 보면 소녀 역시 영락없는 어린이다.
바느질 소녀의 신비한 치유력
거지 소녀는 ‘밤의 축제’에 수지와 준하를 초대한다. 한밤중 모두가 깊이 잠든 시간에 거지 소녀의 피리 소리를 듣고 저 멀리에서부터 다친 동물들이 반달 공원으로 찾아온다. 자신의 이익만을 챙기려는 사람들의 이기심에 상처 받고 다친 곰, 원숭이, 호랑이 등이다. 소녀는 그들의 이야기에 진심으로 가슴 아파하고, 정성껏 치료해 준다.
거지 소녀가 호랑이의 상처 난 목에 약초를 바르고 손으로 어루만진 뒤 정성껏 꿰매 주었다.
“이제 곧 괜찮아지겠지?”
수지가 말했다.
“이 호랑이는 억지로 더 살고 싶지 않대. 고향까지 갈 수 없겠지만, 그저 자기가 떠나는 길을 지켜봐 달래.”
수지는 조심스레 손을 뻗어 호랑이의 등을 쓰다듬어 주었다. 어느새 준하도 내려와 호랑이를 어루만졌다. 무섭다는 생각은 사라지고 없었다. (68쪽)
소녀의 신비한 능력은 바느질이 아니라 마음 깊은 곳에 있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소녀에게서 종교적 구원의 메시지를 읽거나 메르헨이나 전래 동화에 등장하는 난쟁이 같은 존재를 떠올릴 수도 있다. 거지 생활을 하는, 몸도 약한 바느질 소녀는 움막에서 들짐승들과 함께 하루하루 끼니를 채우며 살아가는 존재다. 남들보다 뛰어난 재능이나 든든한 가정도 없는 연약한 소녀는 하찮아 보이는 작은 바늘에 실을 꿰고 바느질을 하고 매듭을 묶는 손놀림으로 자신을 찾아오는 병든 이들을 어루만진다.
사전적 의미의 ‘구원’은 어려움이나 위험에 빠진 사람을 구하여 주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구원이란 사전에만 등재되어 있을 뿐, 잃어버린 말이 아닐까. 우리는 남의 어려움, 위험을 돌볼 여유가 없다. 나 자신이 처한 어려움이나 위험만으로도 충분히 인생이 고달프니까. 거지 소녀 역시 자신의 한 끼 식사를 걱정해야 할 정도로 어려운 형편인데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동화적 해석을 내리자면 소녀의 내면에는 불가사의한 능력이 있다. 마법의 힘으로 축복을 내리거나 저주를 걸 수 있는 존재처럼. 그래서 정태가 키우는 도사견 돌격이가 수지와 준하를 공격할 때 소녀는 순식간에 돌격이를 개구리로 변신시킨다. 정태는 현실에서는 당연히 그럴 수 없기에 당황하던 차에 발밑에 나타난 개구리를 맘껏 짓밟는다. 어디서 감히 개구리가? 그러나 개구리는 다시 돌격이로 돌아오고 돌격이는 목숨이 위태로운 지경에 놓인다.
아파 본 자만이 타인의 아픔에 공감할 수 있고 다시 일어선 자만이 타인을 치유할 수 있다. 거지 소녀는 상처 입고 버려지고 소외된 흔적을 자신의 몸과 환경에 지녔기에 세상의 고통을 이해하고 가엾게 여기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구체적인 체휼은 그것을 필요로 하는 또 다른 사람들에게 흘러 들어간다. 거지 소녀는 등이 굽어 잘 걷지도 못하고 귀도 안 들려 생활하기 불편한 은비 할머니의 허리도 곧게 펴 주고, 열여덟 살이 되도록 아기 같은 행동을 하는 재호도 멀쩡하게 해 준다. 어쩌면 이 마법이 통한 것은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거나 며느리를 탓하지 않는 은비 할머니나 자식을 낫게 해 달라며 간절한 마음으로 청한 재호 엄마의 숨김없는 정직한 마음 덕일 수도 있다. 우리는 종종 겉모습으로 사람을 판단한다. 그러다 보면 정상적인 생활에서 소외되어 있는 사람들의 눈으로 바라본 현실의 참된 모습을 못 볼 수도 있다. 거지 소녀는 다른 이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들이 자신에 대한 신뢰를 회복해 문제를 해결하게 하는 데 탁월한 능력이 있다. 거지 소녀는 재호 엄마가 고마운 마음으로 사 들고 온 옷도, 돈도 다 거부하고 오로지 그날 하루 자신에게 필요한 먹을 것만 받아먹는다.
낫게도 하고 아프게도 하고, 믿음과 불신의 공존
현대 사회는 소유의 시대라고 한다. 인간을 평가하는 데 그 사람이 갖고 있는 내면적 가치는 보지 않고,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것, 지위나 재산, 학력이 기준이 된다는 말이다. 수지네 동네 사람들이나 학교 선생님들이 정태네 가족을 대하는 모습이 딱 이러하다. 정태네는 아빠가 구청장이고 엄마는 학교 학부모회 회장에 형제 둘 다 공부를 잘한다. 정태 형제는 엄청난 부와 권력과 지적 능력을 가진 것으로도 유명하지만 동네에서 못된 짓을 하고 다니기로 더 유명하다. 게다가 최근에 개통된 전철역이 정태네 아빠 덕분이라는 이야기까지 겹쳐 어느 누구도 감히 이 가족에게 대적할 생각을 못한다. 그 집 도사견 돌격이도 이미 동네에서 사람을 여럿 물어 문제를 일으켰다. 정태의 형 한태는 공부는 엄청 잘하지만 인성은 뒤틀려 있다. 한태는 친구들과 준하네 자전거 수리점에 손님이 맡겨 놓은 자전거를 훔치려다 준하네 개 해피가 짖자 돌격이를 풀어 해피를 만신창이로 만들어 놓는다. 해피는 한쪽 눈이 아예 없어지고 다리도 절게 되지만 거지 소녀가 치료해 준 덕에 원래대로 돌아온다. 해피가 원래대로 돌아오고, 며느리한테 괄시받던 은비 할머니나 동네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던 재호가 멀쩡해지자 동네에는 이상한 소문이 떠돈다.
"거지 소녀의 신비한 능력에 대한 반응은 제각각이다. 수지와 준하처럼 친구처럼 지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수목이처럼 현실에서 벗어나게 해 달라고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도 있다.
또 은비 엄마처럼 마녀 사냥을 하려는 사람이 있고, 정태나 한태처럼 거지 소녀의 능력 자체를 부인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필사적으로 거지 소녀를 위험에 빠뜨리려 하는 사람들도 있다. 우리의 세계에 균열을 일으키는 진실된 존재를 만났을 때 우리는 어떤 반응을 보이게 될까?
결국 소녀는 동네를 떠나기로 한다. 피리 소리로 수지와 준하, 은비 할머니와 재호, 수목이와 정태, 해피와 구름이 등 자신과 관계 맺었던 사람과 동물들을 반달 공원으로 불러내 이별 의식을 치른다. 정태는 진심으로 바느질 소녀와 수지, 준하에게 사과를 하고, 소녀는 공원 한구석에 방치된 채 놓여 있는 돌격이를 살려 낸다. 그러고는 이별을 아쉬워하는 수지와 준하를 뒤로 하고 모여든 동물들의 배웅을 받으며 수목이와 함께 길을 떠난다.
바람이 힘차고 부드럽게 불어오며 짙은 안개를 몰고 와 아이들을 감싸 주었다.
바느질 소녀와 수목이는 불이 밝혀진 촛대를 들고 천천히 숲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모였던 짐승들이 저마다 왔던 곳으로 천천히 돌아가고 돌격이와 정태도 집으로 돌아갔다.
수지와 준하는 그곳에 한참을 서 있었다. 아직 새벽이 밝아 오지 않은 공원엔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만 가득했다." (142쪽)
어딘가에 있을지도 몰라, 우리 모두의 바느질 소녀
『바느질 소녀』는 평범한 주인공 수지를 중간자로 내세워 현실과 환상을 자연스럽게 오간다. 새로운 공간이나 놀라운 모험 대신 우리가 늘 일상에서 보아 온 익숙한 풍경과 새로울 것 없는 현실이 배경인 이 이야기는 상처받고 일그러진 이 세상을 보듬고 치유할 존재로 바느질 소녀를 불러온다. 바느질 소녀는 이 땅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폭력에 고작 작은 바늘 하나를 들고 맞선다. 그리고 마침내 바느질은 이 세계에 작은 균열을 내고 진동을 일으킨다. 하지만 이 세계가 여전히 권력과 폭력의 법칙 안에서 견고히 지탱되길 꿈꾸는 이들에게 거지 소녀는 불청객일 수밖에 없다. 우리는 바느질 소녀와 수지와 준하의 모습을 통해 이 세상을 조금이나마 나아지게 하려는 작은 열쇠를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타인에게 일어난 일들이, 이 땅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폭력이 남의 문제가 아니라 나 자신의 문제이며, 그것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작은 소망이 결코 헛되지 않다는 것이다.
강인한 영웅 대신, 크고 견고한 도구 대신 연약한 존재와 작은 사물로도 세상은 변할 수 있고, 바로 그 변화의 중심에서 모험을 시작하는 주인공은 아주 평범한 어린이라는 사실을 통해 어린이 독자들은 스스로를 이야기 속으로 밀어 넣을 수 있을 것이다.
▣ 작가 소개
글 : 송미경
『학교 가기 싫은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로 2008년 웅진주니어문학상을 수상하며 등단했고, 『어떤 아이가』로 제54회 한국출판문화상을 수상했다. 어린 시절에는 어른들 몰래 집에서 새끼 쥐를 키우고, 학교에 강아지와 병아리를 데리고 가던 아이였다. 지금은 그 아이의 마음을 되살려, 아이들이 공감하는 이야기를 쓰기 위해 애쓰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학교 가기 싫은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 <일기 먹는 일기장> <복수의 여신> <어떤 아이가> 들이 있다.
그림 : 김세진
대학에서 응용미술을 공부했고 그림책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글을 쓰고 그린 첫 그림책 『양들을 부탁해』로 제19회 비룡소 황금도깨비상을 수상했고, 두 번째 창작그림책 『달을 삼킨 코뿔소』를 펴냈다. 『구름 위를 오른 아이』, 『우리 집은 커다란 조개껍데기』, 『나는 독도에서 태어났어요』 등의 책에 그림을 그렸다.
참신함과 기묘함으로 한국 아동문학에 새바람을 불어넣은 송미경 작가의 장편동화
2008년 『학교 가기 싫은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로 웅진주니어문학상을 수상하며 등단한 송미경 작가는 새로운 작가의 출현, 기존에 없던 동화, 기묘한 판타지 등등 온갖 수식어구를 얻으며 무서운 신예로 자리매김했다. 2013년 동화집 『어떤 아이가』로 한국출판문화상을 수상하며 독특한 작품 세계를 인정받은 작가는 『복수의 여신』, 『돌 씹어 먹는 아이』등 단편동화들을 통해 참신함과 기묘함으로 한국 아동문학에 새바람을 불어넣었다. 신작 『바느질 소녀』는 동화집으로 주목받아 온 작가가 동화의 본질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가고자 애쓰고, 어린이 독자들에게 그 어느 때보다 힘껏 손 내미는 작품이다. 우리는 그동안 사실주의 동화에 길들여져 왔다.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것을 추구하는 시대이다 보니 동화라기보다는 ‘아동소설’에 가까운 생활동화들이 아동문학의 대부분을 차지하게 되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동화의 본질은 ‘판타지’이다. 독특한 환상성을 기본으로 하면서 아이들의 따뜻한 세계를 마법처럼 펼쳐 보이는 『바느질 소녀』는 주목받는 동화 작가로 7년을 지내오면서 ‘동화가 무엇인지’ 새롭게 자각한 작가가 스스로에게 낸 숙제 같은 작품이다.
평범한 동네에 사는 평범한 아이, 수지에게 생긴 특별한 일
수지는 변두리 동네에 사는 평범한 소녀다. 공부를 잘하거나 빼어나게 예쁘거나 집이 부자도 아니다. 그런 수지에게는 강아지가 있다. 구름처럼 북실북실한 하얀 털을 가진 구름이. 구름이는 할머니네서 얻어 온 강아지다. 태어날 때 한쪽 다리가 몸에 붙은 채 태어나 걷는 게 어색하다. 수지에게는 단짝 친구도 있다. 같은 반 친구 준하는 5학년인데 나눗셈 곱셈도 제대로 못하지만 줄넘기 하나는 세계 선수감이다. 또 동네 친구 수목이는 수지보다 어리고 학교에 다니지 않는다. 집에서 운영하는 수목 떡집에서 엄마 아빠 일을 돕는다. 수목이 아빠는 낮에는 수목이 엄마와 함께 떡 장사를 하다가 저녁이면 술을 먹고 나타나서 수목이와 수목이 엄마를 괴롭히는 것으로 동네에 유명하다.
어느 날, 수지는 구름이를 잃어버린다. 구름이가 갑자기 집에서 안 보이는 것이다. 수지는 구름이를 찾아 온 동네를 헤매고 다니다 피리 소리에 이끌려 반달 공원으로 발을 들인다. 반달 공원은 동네에 새로 분수 공원이 생기면서, 노숙자나 거지들만 간간이 찾는 인적 드문 공원이다. 여기엔 평소처럼 거지 소녀가 구부정한 자세로 앉아 있다. 정확히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거지 소녀는 이른 봄부터 공원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었다. 수지는 소녀 옆에서 구름이를 발견한다. 아니 구름이와 똑 닮은, 네 다리가 멀쩡한 강아지다. 구름이일 리는 없는데 어쩜 이리 똑같이 생겼을까 하며 자세히 살펴보니 표정이며 행동이 완전 구름이다. 게다가 수지가 직접 뜨개질해서 목에 걸어 준 실목걸이는 확실한 증표가 되어 준다. 믿을 수 없지만 구름이가 틀림없으니 수지는 기쁨과 안도, 놀라움 속에 구름이를 데리고 집으로 간다.
“너 이 얘기 아무한테도 하지 마. 알았지?”
“왜? 좋은 일인데.”
“사람들이 믿겠어? 여하튼 진짜 구름이를 찾을 때까진 비밀로 해.”
“얘가 우리 구름인데 구름일 또 어디서 찾아? 엄마도 봐서 알잖아.”
“꼭 닮은 강아지일 거야.”
엄마는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한숨을 쉬며 구름이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21쪽)
엄마는 구름이가 맞지만 구름이면 안 되는 멀쩡한 다리를 보고 수지에게 입단속을 시킨다. 사람들에게는 비밀로 하라고.
거지 소녀와의 만남
수지는 구름이의 다리가 멀쩡해진 것을 보고 수목이네 고양이를 떠올린다. 수목이가 정붙이며 돌보는 것은 꼬리가 잘리거나 다친 동네 길고양이들이다. 새끼 때부터 돌본 검은 고양이 멜론은 수목이가 특별히 아끼는 고양이다. 꼬리가 잘린 고양이들이 동네에서 순식간에 사라져 그동안 동네에는 고양이들이 모두 죽었다는 소문만 떠돌았다. 수지는 죽은 줄 알았던 멜론을 여전히 수목이가 돌보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거지 소녀와 관계가 있음을 깨닫고 반달 공원으로 거지 소녀를 만나러 간다.
“너 지금 무슨 못된 짓을 하는 거니?”
수지가 뒷걸음치며 말했다. 몸이 떨려서 제대로 걸음을 떼지 못했다.
“쥐덫에 다쳤대. 꿰매 주고 있는 거야.”
거지 소녀는 태연하게 바느질을 하며 대답했다.
“바늘로 찌르면 아플 텐데. 고양이가 가만히 있네.”
“곧 나을 테니까.”
“그렇게 하면 낫는다는 거니?”
수지는 몇 걸음 떨어진 곳에 서서 가만히 거지 소녀를 바라보았다. (30쪽)
수지는 거지 소녀의 바느질로 고양이의 상처가 낫는 것을 본다. 소녀는 곱사등에, 허름한 옷을 입고, 작은 키에, 늘 힘이 없다. 바느질로 동물들을 원래대로 고쳐 놓고서 공원 쓰레기통을 뒤져 피자 조각이나 먹다 남은 케이크를 꺼내 아무렇지도 않은 듯 먹는다. 그 전까지는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던 거지 소녀에게 수지는 마음이 쓰인다. 그래서 준하와 함께 급식 음식을 도시락에 담아 소녀에게 가져다준다. 셋은 함께 줄넘기도 한다. 줄넘기를 할 때나 도시락을 먹을 때 편식하는 걸 보면 소녀 역시 영락없는 어린이다.
바느질 소녀의 신비한 치유력
거지 소녀는 ‘밤의 축제’에 수지와 준하를 초대한다. 한밤중 모두가 깊이 잠든 시간에 거지 소녀의 피리 소리를 듣고 저 멀리에서부터 다친 동물들이 반달 공원으로 찾아온다. 자신의 이익만을 챙기려는 사람들의 이기심에 상처 받고 다친 곰, 원숭이, 호랑이 등이다. 소녀는 그들의 이야기에 진심으로 가슴 아파하고, 정성껏 치료해 준다.
거지 소녀가 호랑이의 상처 난 목에 약초를 바르고 손으로 어루만진 뒤 정성껏 꿰매 주었다.
“이제 곧 괜찮아지겠지?”
수지가 말했다.
“이 호랑이는 억지로 더 살고 싶지 않대. 고향까지 갈 수 없겠지만, 그저 자기가 떠나는 길을 지켜봐 달래.”
수지는 조심스레 손을 뻗어 호랑이의 등을 쓰다듬어 주었다. 어느새 준하도 내려와 호랑이를 어루만졌다. 무섭다는 생각은 사라지고 없었다. (68쪽)
소녀의 신비한 능력은 바느질이 아니라 마음 깊은 곳에 있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소녀에게서 종교적 구원의 메시지를 읽거나 메르헨이나 전래 동화에 등장하는 난쟁이 같은 존재를 떠올릴 수도 있다. 거지 생활을 하는, 몸도 약한 바느질 소녀는 움막에서 들짐승들과 함께 하루하루 끼니를 채우며 살아가는 존재다. 남들보다 뛰어난 재능이나 든든한 가정도 없는 연약한 소녀는 하찮아 보이는 작은 바늘에 실을 꿰고 바느질을 하고 매듭을 묶는 손놀림으로 자신을 찾아오는 병든 이들을 어루만진다.
사전적 의미의 ‘구원’은 어려움이나 위험에 빠진 사람을 구하여 주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구원이란 사전에만 등재되어 있을 뿐, 잃어버린 말이 아닐까. 우리는 남의 어려움, 위험을 돌볼 여유가 없다. 나 자신이 처한 어려움이나 위험만으로도 충분히 인생이 고달프니까. 거지 소녀 역시 자신의 한 끼 식사를 걱정해야 할 정도로 어려운 형편인데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동화적 해석을 내리자면 소녀의 내면에는 불가사의한 능력이 있다. 마법의 힘으로 축복을 내리거나 저주를 걸 수 있는 존재처럼. 그래서 정태가 키우는 도사견 돌격이가 수지와 준하를 공격할 때 소녀는 순식간에 돌격이를 개구리로 변신시킨다. 정태는 현실에서는 당연히 그럴 수 없기에 당황하던 차에 발밑에 나타난 개구리를 맘껏 짓밟는다. 어디서 감히 개구리가? 그러나 개구리는 다시 돌격이로 돌아오고 돌격이는 목숨이 위태로운 지경에 놓인다.
아파 본 자만이 타인의 아픔에 공감할 수 있고 다시 일어선 자만이 타인을 치유할 수 있다. 거지 소녀는 상처 입고 버려지고 소외된 흔적을 자신의 몸과 환경에 지녔기에 세상의 고통을 이해하고 가엾게 여기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구체적인 체휼은 그것을 필요로 하는 또 다른 사람들에게 흘러 들어간다. 거지 소녀는 등이 굽어 잘 걷지도 못하고 귀도 안 들려 생활하기 불편한 은비 할머니의 허리도 곧게 펴 주고, 열여덟 살이 되도록 아기 같은 행동을 하는 재호도 멀쩡하게 해 준다. 어쩌면 이 마법이 통한 것은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거나 며느리를 탓하지 않는 은비 할머니나 자식을 낫게 해 달라며 간절한 마음으로 청한 재호 엄마의 숨김없는 정직한 마음 덕일 수도 있다. 우리는 종종 겉모습으로 사람을 판단한다. 그러다 보면 정상적인 생활에서 소외되어 있는 사람들의 눈으로 바라본 현실의 참된 모습을 못 볼 수도 있다. 거지 소녀는 다른 이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들이 자신에 대한 신뢰를 회복해 문제를 해결하게 하는 데 탁월한 능력이 있다. 거지 소녀는 재호 엄마가 고마운 마음으로 사 들고 온 옷도, 돈도 다 거부하고 오로지 그날 하루 자신에게 필요한 먹을 것만 받아먹는다.
낫게도 하고 아프게도 하고, 믿음과 불신의 공존
현대 사회는 소유의 시대라고 한다. 인간을 평가하는 데 그 사람이 갖고 있는 내면적 가치는 보지 않고,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것, 지위나 재산, 학력이 기준이 된다는 말이다. 수지네 동네 사람들이나 학교 선생님들이 정태네 가족을 대하는 모습이 딱 이러하다. 정태네는 아빠가 구청장이고 엄마는 학교 학부모회 회장에 형제 둘 다 공부를 잘한다. 정태 형제는 엄청난 부와 권력과 지적 능력을 가진 것으로도 유명하지만 동네에서 못된 짓을 하고 다니기로 더 유명하다. 게다가 최근에 개통된 전철역이 정태네 아빠 덕분이라는 이야기까지 겹쳐 어느 누구도 감히 이 가족에게 대적할 생각을 못한다. 그 집 도사견 돌격이도 이미 동네에서 사람을 여럿 물어 문제를 일으켰다. 정태의 형 한태는 공부는 엄청 잘하지만 인성은 뒤틀려 있다. 한태는 친구들과 준하네 자전거 수리점에 손님이 맡겨 놓은 자전거를 훔치려다 준하네 개 해피가 짖자 돌격이를 풀어 해피를 만신창이로 만들어 놓는다. 해피는 한쪽 눈이 아예 없어지고 다리도 절게 되지만 거지 소녀가 치료해 준 덕에 원래대로 돌아온다. 해피가 원래대로 돌아오고, 며느리한테 괄시받던 은비 할머니나 동네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던 재호가 멀쩡해지자 동네에는 이상한 소문이 떠돈다.
"거지 소녀의 신비한 능력에 대한 반응은 제각각이다. 수지와 준하처럼 친구처럼 지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수목이처럼 현실에서 벗어나게 해 달라고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도 있다.
또 은비 엄마처럼 마녀 사냥을 하려는 사람이 있고, 정태나 한태처럼 거지 소녀의 능력 자체를 부인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필사적으로 거지 소녀를 위험에 빠뜨리려 하는 사람들도 있다. 우리의 세계에 균열을 일으키는 진실된 존재를 만났을 때 우리는 어떤 반응을 보이게 될까?
결국 소녀는 동네를 떠나기로 한다. 피리 소리로 수지와 준하, 은비 할머니와 재호, 수목이와 정태, 해피와 구름이 등 자신과 관계 맺었던 사람과 동물들을 반달 공원으로 불러내 이별 의식을 치른다. 정태는 진심으로 바느질 소녀와 수지, 준하에게 사과를 하고, 소녀는 공원 한구석에 방치된 채 놓여 있는 돌격이를 살려 낸다. 그러고는 이별을 아쉬워하는 수지와 준하를 뒤로 하고 모여든 동물들의 배웅을 받으며 수목이와 함께 길을 떠난다.
바람이 힘차고 부드럽게 불어오며 짙은 안개를 몰고 와 아이들을 감싸 주었다.
바느질 소녀와 수목이는 불이 밝혀진 촛대를 들고 천천히 숲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모였던 짐승들이 저마다 왔던 곳으로 천천히 돌아가고 돌격이와 정태도 집으로 돌아갔다.
수지와 준하는 그곳에 한참을 서 있었다. 아직 새벽이 밝아 오지 않은 공원엔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만 가득했다." (142쪽)
어딘가에 있을지도 몰라, 우리 모두의 바느질 소녀
『바느질 소녀』는 평범한 주인공 수지를 중간자로 내세워 현실과 환상을 자연스럽게 오간다. 새로운 공간이나 놀라운 모험 대신 우리가 늘 일상에서 보아 온 익숙한 풍경과 새로울 것 없는 현실이 배경인 이 이야기는 상처받고 일그러진 이 세상을 보듬고 치유할 존재로 바느질 소녀를 불러온다. 바느질 소녀는 이 땅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폭력에 고작 작은 바늘 하나를 들고 맞선다. 그리고 마침내 바느질은 이 세계에 작은 균열을 내고 진동을 일으킨다. 하지만 이 세계가 여전히 권력과 폭력의 법칙 안에서 견고히 지탱되길 꿈꾸는 이들에게 거지 소녀는 불청객일 수밖에 없다. 우리는 바느질 소녀와 수지와 준하의 모습을 통해 이 세상을 조금이나마 나아지게 하려는 작은 열쇠를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타인에게 일어난 일들이, 이 땅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폭력이 남의 문제가 아니라 나 자신의 문제이며, 그것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작은 소망이 결코 헛되지 않다는 것이다.
강인한 영웅 대신, 크고 견고한 도구 대신 연약한 존재와 작은 사물로도 세상은 변할 수 있고, 바로 그 변화의 중심에서 모험을 시작하는 주인공은 아주 평범한 어린이라는 사실을 통해 어린이 독자들은 스스로를 이야기 속으로 밀어 넣을 수 있을 것이다.
▣ 작가 소개
글 : 송미경
『학교 가기 싫은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로 2008년 웅진주니어문학상을 수상하며 등단했고, 『어떤 아이가』로 제54회 한국출판문화상을 수상했다. 어린 시절에는 어른들 몰래 집에서 새끼 쥐를 키우고, 학교에 강아지와 병아리를 데리고 가던 아이였다. 지금은 그 아이의 마음을 되살려, 아이들이 공감하는 이야기를 쓰기 위해 애쓰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학교 가기 싫은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 <일기 먹는 일기장> <복수의 여신> <어떤 아이가> 들이 있다.
그림 : 김세진
대학에서 응용미술을 공부했고 그림책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글을 쓰고 그린 첫 그림책 『양들을 부탁해』로 제19회 비룡소 황금도깨비상을 수상했고, 두 번째 창작그림책 『달을 삼킨 코뿔소』를 펴냈다. 『구름 위를 오른 아이』, 『우리 집은 커다란 조개껍데기』, 『나는 독도에서 태어났어요』 등의 책에 그림을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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