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1. 일흔일곱 소년이 쓴 샘물 같은 동시
민중 시인으로 한국문학을 이끌어 온 시인은 어느덧 희수(喜壽)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첫 동시집을 출간한 데에는 동심의 근원을 찾아서 떠난 한 소년의 발자취라고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는 신경림 시인의 시심이 아직도 젊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리라. 그렇다면 신경림 시인은 왜 뒤늦게 동시를 쓰게 되었던 걸까? 시인에게 있어 동시란 어떤 것을 의미할까? 이에 대한 시인의 생각을 읽어 보자.
내가 정말로 동시를 써 보고 싶다는 생각을 절실히 한 것은 손자가 생기면서다. 서로 이웃해 살면서 손자와 만날 기회가 잦았고 이미 나도 많은 일에서 손을 떼어 손자와 보낼 시간이 충분했다. 나로서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손자의 생각과 행동을 읽으면서 이것을 형상화하면 정말로 훌륭한 문학이 되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어쩌면 성인의 삶을 그리는 것 이상의 본격적인 인간탐구의 문학이 될 수 있다고도 생각했다. 그래서 동시를 쓰기 시작했다. 처음 작정했듯 한 권의 동시집이 될 만큼의 동시를 써 보니 동시를 쓰는 일은 역시 즐겁다._산문 「나와 동시」 부분
이처럼 시인에게 있어 동시란 손자와 친구가 되어 어린아이의 눈으로 세계를 바라보고, 느껴 보는 천진함이라고 할 수 있다. 천진함이 하늘이 내린 인간의 투명하고 순수한 본성을 드러내는 일이라고 한다면 이번 동시집은 인간탐구의 가장 근원적이고 순수한 문학적 여정의 결과이다. 따라서 이번 동시집의 가장 큰 특징은 대시인의 눈으로 바라보는 아이들의 천진함(동심)을 그대로 담았으며, 이것은 인간 본성의 근원적 탐구라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격변의 현대사를 통과해 온 노시인이 아이들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과 아이들의 마음을 어떻게 작품으로 형상화하였는지 작품을 통해 살펴보자.
2. 비밀이 가득한 동심의 세계
부모들은 자신이 통과해 온 어린 시절의 마음을 기억할 수 없다. 그렇기에 아이들의 마음을 읽을 수가 없다. 그러나 노인들은 아이들의 마음을 읽을 수가 있다. 어린 시절의 마음을 기억해서가 아니라 아이들의 순수함을 엿볼 수 있는 통찰력이 생기기 때문이다.
동심에 대한 신경림 시인의 시적 발로는 손자를 통해 이루어졌다. 어른들은 모르는 아이들의 속마음을 보게 된 것이다. 어려운 비유나 상징이 아닌 단순한 상황 묘사만으로도 훌륭하게 동심을 표현해 내고 있다.
붉고 노란 꽃밭이 된
아파트 빈터
아빠와 엄마는 아름답다고
정말 아름답다고
나는 끝내 말 않을 거야
그 꽃들을 내가 심었다는 걸
싸우고서 말도 안 하던 동무가
아무도 모르게 생일 선물로 준
꽃씨 한 봉지 -「비밀」 부분
어른이 된다는 것은 어쩌면 비밀을 하나씩 잃어가기 때문에 찾아오는 것은 아닐까. 동심이라는 것은 결국 자신만의 비밀을 간직할 수 있는 그런 마음이다. 그래서 어른들은 잃어버린 비밀을 대신해서 숫자와 명예, 돈, 권력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 시를 통해 신경림 시인은 동심이라는 것은 어쩌면 이런 것이 아니겠느냐는 날카로운 통찰력을 보여주고 있다. 다른 동시에서는 이런 동심으로 어린아이들의 고민을 대신해서 보여주고 있다.
엄마한테서 전화가 왔다
“열 시까지 갈게”
엄마는 야근
아빠는 회식
학원에 갔다 와서
라면 하나 먹고
(중략)
텔레비전을 틀었다가
핸드폰을 열었다가
깜박 텔레비전 앞에
잠이 들었다
이윽고 귓전에
엄마 목소리
“얘는 날마다
텔레비전만 보나 봐”
엄마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엄마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부분
이 시는 맞벌이 부모를 둔 어린아이가 부모님을 기다리며 외롭게 잠들었다가 엄마에게 텔레비전만 본다는 꾸중을 듣는 장면이다. 외로운 저녁을 보내는 아이의 심경도 잘 드러났지만 그런 아이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엄마의 목소리는 더욱 아이를 슬프게 한다. 동심은 어른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려 들지 않는 까닭에 비밀처럼 보이는 것은 아닐까.
3. 아이들의 눈은 정직하다
아이들의 눈으로 바라 본 어른들의 세계는 어떤 모습으로 비춰질까?
때론 어떤 비유나 상징보다 사실성이 주는 인식의 충격은 더 크게 작용한다. 어떤 정치적 이데올로기보다 더 큰 울림으로 현실의 문제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은 바로 천진한 아이들의 시선이다. 아이들의 시선은 정치적 이해관계를 벗어나 본질을 그대로 투영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아이들의 눈은 어른들보다 정직하다. 신경림 시인은 이런 아이들의 눈으로 우리 어른들의 세계를 들여다본다.
자전거를 타고 달리고 싶다
휴전선 너머까지 달리고 싶다
압록강을 건너 달리고 싶다
평양에 가선 평양 아이들을 만나고
몽골에 가선 몽골 아�들을 만나서
동무가 되어 달리고 싶다 -「자전거를 타고」 부분
이 동시는 어른들의 세상과 관계없이 그저 자전거를 타고 평양이나 몽골에 가서 친구들을 만나고 싶은 아이의 천진한 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왜 아이들이 어른들의 정치적 이념으로 인해 서로 만날 수 없는 현실이 된 것일까. 이것은 아이들의 눈으로 보면 너무나 이상한 일이다. 이해할 수 없는 어른들의 세계는 또 있다.
강물은 얼마나 아플까
불도저와 다이너마이트로 온몸을 온통
깨고 부수고 파헤쳐 놓았으니
강물은 얼마나 서러울까
모래무지 가물치 버들치가 놀 곳을 잃어
떠나서는 영 돌아오지 않으니 - 「가엾은 강물」 중에서
개발이라는 미명하에 자연이 파괴되는 현실은 어린아이들의 눈으로 보아도 파괴적이고 죽음의 공간으로 비춰지고 있다. 바로 정부의 4대강 사업으로 인해 자연이 몸살을 앓고 있는 모습은 이해관계가 없는 아이들의 정직한 눈에는 그저 부수고 파헤치는 모습일 뿐이다. 우리의 강산은 어른들의 소유물이 아니라 미래의 우리 아이들에게 있다. 이제 그들에게 물려줄 자연은 어른들의 욕심으로 인해 파괴되고 있으며, 서럽고 외로운 모습으로 남았다.
이번 신경림 동시집 『엄마는 아무것도 모르면서』의 전체 구성을 보면 1부에서는 어린아이들의 주변 환경과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들로 이루어졌다. 특히 이주노동자들의 애환과 다문화가정 친구들을 바라보는 순수한 어린아이들의 따뜻한 시선이 담겨있다. 2부에서는 아기 다람쥐, 곰, 아기 노루, 고양이, 잉어 등의 동물들과 친구가 되어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 3부에서는 순수하고 평화로운 세계를 펼쳐 보이고 있다. 아기의 옹알대는 소리와 싸락눈 오는 소리, 애벌레 숨 쉬는 소리, 아기 곰이 쿨쿨 잠든 모습들은 아름답고 정겹기만 하다. 4부에서는 동화적 민중 서사시가 3편이 마련되었다. 각각이 하나의 완결된 이야기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할아버지가 손주에게 들려주는 옛날 얘기처럼 재미있게 구성되었다.
▣ 작가 소개
글 : 신경림
申庚林
1935년 충청북도 충주에서 태어나 동국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했다. 1956년『문학예술』에 『갈대』『墓碑』등이 추천되어 시단에 나오게 되었다. 그는 우리나라 각 지방을 돌아다니며 사람 사는 이야기와 민요들을 모으는 데 관심을 기울였으며 만해문학상, 한국문학작가상을 받았다.
70년대 한국 시단과 독서계에 신경림의 『농무』만큼 큰 충격과 감동을 던진 시집은 없다. 농민들의 삶의 애사(哀史)를 리얼하게 묘사해내면서 민중문학의 힘찬 전진을 예고한 이 시집 한 권으로 신경림은 우리 시단의 가장 영향력 있는 시인 가운데 한 사람이 되었다. 만해문학상을 받은 이 책의 수상평에서 김광섭 시인은 이 시집을 ''상황시''라는 말로 단정한 바 있다. 개발독재의 서슬퍼런 시대에, 이데올로기적으로 눌리고 2, 3차 산업의 활황에 소외된 농촌의 열악한 현실 상황을 시편 하나하나마다 전형적으로 포착하여 그려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민중의 삶에 뿌리박은 빼어난 서정성과 친숙한 가락으로 진정한 리얼리즘을 구현했다고 평가받는 신경림의 시세계는 『농무』 이래 몇단계의 변모를 거쳐왔으나, 언어의 경제에 충실하면서 시와 삶의 본령을 추구해온 발걸음만은 변함없는 것이었다. 1970,80년대 군부독재에 맞선 문단의 자유실천운동 · 민주화운동에 부단히 참여하여 수다한 단체의 주요한 역할을 다하는 가운데서도 구호화된 시에는 경사되지 않았고, 90년대 현실사회주의의 몰락과 자본의 총공세가 펼쳐지는 세태 속에서도 불의와 비인간을 용납지 않는 올곧음은 한결 같았다. 민요의 가락에 심취한 70년대 후반에서 80년대 중반 『새재』 『달 넘세』의 성과를 이은 장시집 『남한강』은 서사 장시의 전형을 보여주었고, 『길』에서는 기행시의 한 경지를 드러냈다. 90년대 중반 이후에는 『어머니와 할머니의 실루엣』 『뿔』 등의 시집에서 인간의 내면과 죽음 같은 주제를 깊이있게 다루면서 시세계를 확장한다.
평론가 염무웅은 신경림의 시가 일찍이 “민중성의 시적 구현”을 성취했으며, 초기 시의 이러한 성취가 실은 “1930년대말 일제 군국주의의 발악에서부터 해방과 분단, 한국전쟁과 반공독재에 이르는 기간의 혹독한 민족사적 시련에 의해 파괴된 시적 전통의 복구”임을 지적하여 한국 현대시사에서 신경림 시문학의 의의를 조명한다. 평론가 이병훈은 신경림 시의 ‘자연스러움의 미학’은 진정한 예술가의 ‘살아 있는 형식’의 표현이며 최고의 재능이라는 찬사와 더불어, 후기 시에 두드러진 ‘내면으로 향한 여행’이 단순히 “내면세계로의 회귀가 아니라 세상의 작고 보잘것없는 것들을 자기 안으로 가지고 들어와 세상을 좀더 깊고 근본적으로 사색하려는 혼신의 힘”이었음을 강조한다.
『바람의 풍경』은 자전 에세이집으로서 유년기, 문학소년시절, 가난과 방황으로 이어졌던 청장년기를 거쳐 현재에 이른 시인의 지난 이야기들을 스스로가 자신을 들여다 보기 위해 잊었던 일들, 잊었던 얼굴들을 생각해 내어 적어내려간 것이다. 『한밤중에 눈을 뜨면』은 진실한 민중시인 신경림의 풍부한 인간미와 문화·사회 전반에 걸친 날카로운 안목을 느낄 수 있는 산문집이며, 『남한강』은 저자 최초의 대서사시이다. 절절한 노랫가락이면서 이야기인 신경림의 긴 시를 읽는 재미는 남다르다. 지금은 충주댐 건설로 없어진 고향, 시인의 노래는 옛 엿장수 가락처럼 애잔해지다가도 꽹과리 소리처럼, 징소리처럼 거세져 닫힌 역사를 꽝꽝 울린다.『길』이라는 시집에는 오랜 민요기행을 하면서 만난 사람들과 찾은 마을, 그리고 바라보고 지나친 바다와 산을 툭 터놓은 마음으로 노래하는 신경림의 시들이 수록되어 있다. 시인은 스스로 낮고 외로운 인간과 사물과 함께 서고, 나아가서 그것들 속의 하나가 되는데 서시의 참길이 열린다는 점을 중시하고 있다.
또한 어린이들을 위한 책으로『겨레의 큰사람 김구』라는 책을 펴내기도 했다. ‘우리나라 정부가 서면 그 마당을 쓸고 그 유리창을 닦고 죽고 싶다.’고 말한 간절한 바람과 나라의 자주적인 통일과 독립을 위하여 피나는 노력을 기울인 김구 선생의 삶을 어린이들에게 들려준다. 이외에 저서로는 『달 넘세』『쓰러진 자의 꿈』『우리겨레의 옛날 이야기 시리즈』『불은 언제나 되살아난다』『나의 문학 이야기』』『여우구슬을 물고 도망치는 아이들』『『민요기행 1·2』『우리 시의 이해』등이 있으며 엮은 책으로는『한국 전래 동요집 1·2』『한국 현대 시선 1·2』등이 있다.
산문집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겹다』는 일제강점 말기와 해방의 공간, 초등학생 허풍선이 땅꼬마 신경림의 좌충우돌 자화상을 비롯해서, 6, 70년대 너나없이 어렵던 시절 이 땅의 글쟁이들의 기행과 헤프닝, 애환, 시국이 만들어 낸 안타까운 사건들의 뒷이야기 등 앞 세대들이 빚어낸 현대 문학사의 향수를 그득하게 담고 있다. 또�, 여러 작가들과 함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추모 시집인 『당신이 많이 그리울 겁니다』를 펴냈고, 최근 『이 땅 이 시간 행복하다면 당신은 바보 아니면 도둑』 『육주 홍기삼과 나』 등의 작품에도 필진으로 참여했다.
그림 : 이은희
이은희 선생님은 1980년 서울에서 태어나 경원대학교 시각디자인학과를 졸업하고 한국일러스트레이션학교에서 공부했습니다. 그림을 그린 책으로 『선생님 나도 업어주세요』, 『우리고전인물』, 『누가 더 놀랐을까』 등이 있습니다. 현재 아이들에게 그림을 가르치며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 중입니다.
▣ 주요 목차
책을 펴내면서
1부 달라서 좋은 내 짝궁
서울 하늘
공사장 아저씨와
오빠 손은 마귀 손
달라서 좋은 내 짝꿍
슬그머니 돌아서서
친구들끼리 둘러앉아
엄마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토요일
어른들은 싫은가 봐
가엾은 강물
어른들은 싸우고
온 세상이 새파랗고 눈부시겠지
산타클로스 할아버지는 다 알고 계셔서
말하면서
2부 자전거를 타고
자전거를 타고
아기 다람쥐의 모험
달려라 꼬마
산길을 조용조용
아기 노루
비밀
짝꿍
겨울밤
닮아서
아파트 마당의 고양이
학교 앞에는 큰 은행나무
잉어 왕자
할머니의 손
3부 추운 별
저 별에도, 또 저 별에도
추운 별
소리
우리 아기 깰라
쿨쿨
쑤욱쑤욱
눈이 온다
너는 콩쥐 나는 팥쥐
옛날 옛날 아주 옛날
해 넘어가기 전
노랗고 빨갛고
빨주노초파남보
매미와 개미
4부 세상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동네
꼬부랑 할머니가
세상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동네
저기 저기 저 눈깔
산문 나와 동시
1. 일흔일곱 소년이 쓴 샘물 같은 동시
민중 시인으로 한국문학을 이끌어 온 시인은 어느덧 희수(喜壽)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첫 동시집을 출간한 데에는 동심의 근원을 찾아서 떠난 한 소년의 발자취라고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는 신경림 시인의 시심이 아직도 젊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리라. 그렇다면 신경림 시인은 왜 뒤늦게 동시를 쓰게 되었던 걸까? 시인에게 있어 동시란 어떤 것을 의미할까? 이에 대한 시인의 생각을 읽어 보자.
내가 정말로 동시를 써 보고 싶다는 생각을 절실히 한 것은 손자가 생기면서다. 서로 이웃해 살면서 손자와 만날 기회가 잦았고 이미 나도 많은 일에서 손을 떼어 손자와 보낼 시간이 충분했다. 나로서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손자의 생각과 행동을 읽으면서 이것을 형상화하면 정말로 훌륭한 문학이 되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어쩌면 성인의 삶을 그리는 것 이상의 본격적인 인간탐구의 문학이 될 수 있다고도 생각했다. 그래서 동시를 쓰기 시작했다. 처음 작정했듯 한 권의 동시집이 될 만큼의 동시를 써 보니 동시를 쓰는 일은 역시 즐겁다._산문 「나와 동시」 부분
이처럼 시인에게 있어 동시란 손자와 친구가 되어 어린아이의 눈으로 세계를 바라보고, 느껴 보는 천진함이라고 할 수 있다. 천진함이 하늘이 내린 인간의 투명하고 순수한 본성을 드러내는 일이라고 한다면 이번 동시집은 인간탐구의 가장 근원적이고 순수한 문학적 여정의 결과이다. 따라서 이번 동시집의 가장 큰 특징은 대시인의 눈으로 바라보는 아이들의 천진함(동심)을 그대로 담았으며, 이것은 인간 본성의 근원적 탐구라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격변의 현대사를 통과해 온 노시인이 아이들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과 아이들의 마음을 어떻게 작품으로 형상화하였는지 작품을 통해 살펴보자.
2. 비밀이 가득한 동심의 세계
부모들은 자신이 통과해 온 어린 시절의 마음을 기억할 수 없다. 그렇기에 아이들의 마음을 읽을 수가 없다. 그러나 노인들은 아이들의 마음을 읽을 수가 있다. 어린 시절의 마음을 기억해서가 아니라 아이들의 순수함을 엿볼 수 있는 통찰력이 생기기 때문이다.
동심에 대한 신경림 시인의 시적 발로는 손자를 통해 이루어졌다. 어른들은 모르는 아이들의 속마음을 보게 된 것이다. 어려운 비유나 상징이 아닌 단순한 상황 묘사만으로도 훌륭하게 동심을 표현해 내고 있다.
붉고 노란 꽃밭이 된
아파트 빈터
아빠와 엄마는 아름답다고
정말 아름답다고
나는 끝내 말 않을 거야
그 꽃들을 내가 심었다는 걸
싸우고서 말도 안 하던 동무가
아무도 모르게 생일 선물로 준
꽃씨 한 봉지 -「비밀」 부분
어른이 된다는 것은 어쩌면 비밀을 하나씩 잃어가기 때문에 찾아오는 것은 아닐까. 동심이라는 것은 결국 자신만의 비밀을 간직할 수 있는 그런 마음이다. 그래서 어른들은 잃어버린 비밀을 대신해서 숫자와 명예, 돈, 권력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 시를 통해 신경림 시인은 동심이라는 것은 어쩌면 이런 것이 아니겠느냐는 날카로운 통찰력을 보여주고 있다. 다른 동시에서는 이런 동심으로 어린아이들의 고민을 대신해서 보여주고 있다.
엄마한테서 전화가 왔다
“열 시까지 갈게”
엄마는 야근
아빠는 회식
학원에 갔다 와서
라면 하나 먹고
(중략)
텔레비전을 틀었다가
핸드폰을 열었다가
깜박 텔레비전 앞에
잠이 들었다
이윽고 귓전에
엄마 목소리
“얘는 날마다
텔레비전만 보나 봐”
엄마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엄마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부분
이 시는 맞벌이 부모를 둔 어린아이가 부모님을 기다리며 외롭게 잠들었다가 엄마에게 텔레비전만 본다는 꾸중을 듣는 장면이다. 외로운 저녁을 보내는 아이의 심경도 잘 드러났지만 그런 아이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엄마의 목소리는 더욱 아이를 슬프게 한다. 동심은 어른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려 들지 않는 까닭에 비밀처럼 보이는 것은 아닐까.
3. 아이들의 눈은 정직하다
아이들의 눈으로 바라 본 어른들의 세계는 어떤 모습으로 비춰질까?
때론 어떤 비유나 상징보다 사실성이 주는 인식의 충격은 더 크게 작용한다. 어떤 정치적 이데올로기보다 더 큰 울림으로 현실의 문제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은 바로 천진한 아이들의 시선이다. 아이들의 시선은 정치적 이해관계를 벗어나 본질을 그대로 투영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아이들의 눈은 어른들보다 정직하다. 신경림 시인은 이런 아이들의 눈으로 우리 어른들의 세계를 들여다본다.
자전거를 타고 달리고 싶다
휴전선 너머까지 달리고 싶다
압록강을 건너 달리고 싶다
평양에 가선 평양 아이들을 만나고
몽골에 가선 몽골 아�들을 만나서
동무가 되어 달리고 싶다 -「자전거를 타고」 부분
이 동시는 어른들의 세상과 관계없이 그저 자전거를 타고 평양이나 몽골에 가서 친구들을 만나고 싶은 아이의 천진한 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왜 아이들이 어른들의 정치적 이념으로 인해 서로 만날 수 없는 현실이 된 것일까. 이것은 아이들의 눈으로 보면 너무나 이상한 일이다. 이해할 수 없는 어른들의 세계는 또 있다.
강물은 얼마나 아플까
불도저와 다이너마이트로 온몸을 온통
깨고 부수고 파헤쳐 놓았으니
강물은 얼마나 서러울까
모래무지 가물치 버들치가 놀 곳을 잃어
떠나서는 영 돌아오지 않으니 - 「가엾은 강물」 중에서
개발이라는 미명하에 자연이 파괴되는 현실은 어린아이들의 눈으로 보아도 파괴적이고 죽음의 공간으로 비춰지고 있다. 바로 정부의 4대강 사업으로 인해 자연이 몸살을 앓고 있는 모습은 이해관계가 없는 아이들의 정직한 눈에는 그저 부수고 파헤치는 모습일 뿐이다. 우리의 강산은 어른들의 소유물이 아니라 미래의 우리 아이들에게 있다. 이제 그들에게 물려줄 자연은 어른들의 욕심으로 인해 파괴되고 있으며, 서럽고 외로운 모습으로 남았다.
이번 신경림 동시집 『엄마는 아무것도 모르면서』의 전체 구성을 보면 1부에서는 어린아이들의 주변 환경과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들로 이루어졌다. 특히 이주노동자들의 애환과 다문화가정 친구들을 바라보는 순수한 어린아이들의 따뜻한 시선이 담겨있다. 2부에서는 아기 다람쥐, 곰, 아기 노루, 고양이, 잉어 등의 동물들과 친구가 되어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 3부에서는 순수하고 평화로운 세계를 펼쳐 보이고 있다. 아기의 옹알대는 소리와 싸락눈 오는 소리, 애벌레 숨 쉬는 소리, 아기 곰이 쿨쿨 잠든 모습들은 아름답고 정겹기만 하다. 4부에서는 동화적 민중 서사시가 3편이 마련되었다. 각각이 하나의 완결된 이야기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할아버지가 손주에게 들려주는 옛날 얘기처럼 재미있게 구성되었다.
▣ 작가 소개
글 : 신경림
申庚林
1935년 충청북도 충주에서 태어나 동국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했다. 1956년『문학예술』에 『갈대』『墓碑』등이 추천되어 시단에 나오게 되었다. 그는 우리나라 각 지방을 돌아다니며 사람 사는 이야기와 민요들을 모으는 데 관심을 기울였으며 만해문학상, 한국문학작가상을 받았다.
70년대 한국 시단과 독서계에 신경림의 『농무』만큼 큰 충격과 감동을 던진 시집은 없다. 농민들의 삶의 애사(哀史)를 리얼하게 묘사해내면서 민중문학의 힘찬 전진을 예고한 이 시집 한 권으로 신경림은 우리 시단의 가장 영향력 있는 시인 가운데 한 사람이 되었다. 만해문학상을 받은 이 책의 수상평에서 김광섭 시인은 이 시집을 ''상황시''라는 말로 단정한 바 있다. 개발독재의 서슬퍼런 시대에, 이데올로기적으로 눌리고 2, 3차 산업의 활황에 소외된 농촌의 열악한 현실 상황을 시편 하나하나마다 전형적으로 포착하여 그려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민중의 삶에 뿌리박은 빼어난 서정성과 친숙한 가락으로 진정한 리얼리즘을 구현했다고 평가받는 신경림의 시세계는 『농무』 이래 몇단계의 변모를 거쳐왔으나, 언어의 경제에 충실하면서 시와 삶의 본령을 추구해온 발걸음만은 변함없는 것이었다. 1970,80년대 군부독재에 맞선 문단의 자유실천운동 · 민주화운동에 부단히 참여하여 수다한 단체의 주요한 역할을 다하는 가운데서도 구호화된 시에는 경사되지 않았고, 90년대 현실사회주의의 몰락과 자본의 총공세가 펼쳐지는 세태 속에서도 불의와 비인간을 용납지 않는 올곧음은 한결 같았다. 민요의 가락에 심취한 70년대 후반에서 80년대 중반 『새재』 『달 넘세』의 성과를 이은 장시집 『남한강』은 서사 장시의 전형을 보여주었고, 『길』에서는 기행시의 한 경지를 드러냈다. 90년대 중반 이후에는 『어머니와 할머니의 실루엣』 『뿔』 등의 시집에서 인간의 내면과 죽음 같은 주제를 깊이있게 다루면서 시세계를 확장한다.
평론가 염무웅은 신경림의 시가 일찍이 “민중성의 시적 구현”을 성취했으며, 초기 시의 이러한 성취가 실은 “1930년대말 일제 군국주의의 발악에서부터 해방과 분단, 한국전쟁과 반공독재에 이르는 기간의 혹독한 민족사적 시련에 의해 파괴된 시적 전통의 복구”임을 지적하여 한국 현대시사에서 신경림 시문학의 의의를 조명한다. 평론가 이병훈은 신경림 시의 ‘자연스러움의 미학’은 진정한 예술가의 ‘살아 있는 형식’의 표현이며 최고의 재능이라는 찬사와 더불어, 후기 시에 두드러진 ‘내면으로 향한 여행’이 단순히 “내면세계로의 회귀가 아니라 세상의 작고 보잘것없는 것들을 자기 안으로 가지고 들어와 세상을 좀더 깊고 근본적으로 사색하려는 혼신의 힘”이었음을 강조한다.
『바람의 풍경』은 자전 에세이집으로서 유년기, 문학소년시절, 가난과 방황으로 이어졌던 청장년기를 거쳐 현재에 이른 시인의 지난 이야기들을 스스로가 자신을 들여다 보기 위해 잊었던 일들, 잊었던 얼굴들을 생각해 내어 적어내려간 것이다. 『한밤중에 눈을 뜨면』은 진실한 민중시인 신경림의 풍부한 인간미와 문화·사회 전반에 걸친 날카로운 안목을 느낄 수 있는 산문집이며, 『남한강』은 저자 최초의 대서사시이다. 절절한 노랫가락이면서 이야기인 신경림의 긴 시를 읽는 재미는 남다르다. 지금은 충주댐 건설로 없어진 고향, 시인의 노래는 옛 엿장수 가락처럼 애잔해지다가도 꽹과리 소리처럼, 징소리처럼 거세져 닫힌 역사를 꽝꽝 울린다.『길』이라는 시집에는 오랜 민요기행을 하면서 만난 사람들과 찾은 마을, 그리고 바라보고 지나친 바다와 산을 툭 터놓은 마음으로 노래하는 신경림의 시들이 수록되어 있다. 시인은 스스로 낮고 외로운 인간과 사물과 함께 서고, 나아가서 그것들 속의 하나가 되는데 서시의 참길이 열린다는 점을 중시하고 있다.
또한 어린이들을 위한 책으로『겨레의 큰사람 김구』라는 책을 펴내기도 했다. ‘우리나라 정부가 서면 그 마당을 쓸고 그 유리창을 닦고 죽고 싶다.’고 말한 간절한 바람과 나라의 자주적인 통일과 독립을 위하여 피나는 노력을 기울인 김구 선생의 삶을 어린이들에게 들려준다. 이외에 저서로는 『달 넘세』『쓰러진 자의 꿈』『우리겨레의 옛날 이야기 시리즈』『불은 언제나 되살아난다』『나의 문학 이야기』』『여우구슬을 물고 도망치는 아이들』『『민요기행 1·2』『우리 시의 이해』등이 있으며 엮은 책으로는『한국 전래 동요집 1·2』『한국 현대 시선 1·2』등이 있다.
산문집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겹다』는 일제강점 말기와 해방의 공간, 초등학생 허풍선이 땅꼬마 신경림의 좌충우돌 자화상을 비롯해서, 6, 70년대 너나없이 어렵던 시절 이 땅의 글쟁이들의 기행과 헤프닝, 애환, 시국이 만들어 낸 안타까운 사건들의 뒷이야기 등 앞 세대들이 빚어낸 현대 문학사의 향수를 그득하게 담고 있다. 또�, 여러 작가들과 함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추모 시집인 『당신이 많이 그리울 겁니다』를 펴냈고, 최근 『이 땅 이 시간 행복하다면 당신은 바보 아니면 도둑』 『육주 홍기삼과 나』 등의 작품에도 필진으로 참여했다.
그림 : 이은희
이은희 선생님은 1980년 서울에서 태어나 경원대학교 시각디자인학과를 졸업하고 한국일러스트레이션학교에서 공부했습니다. 그림을 그린 책으로 『선생님 나도 업어주세요』, 『우리고전인물』, 『누가 더 놀랐을까』 등이 있습니다. 현재 아이들에게 그림을 가르치며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 중입니다.
▣ 주요 목차
책을 펴내면서
1부 달라서 좋은 내 짝궁
서울 하늘
공사장 아저씨와
오빠 손은 마귀 손
달라서 좋은 내 짝꿍
슬그머니 돌아서서
친구들끼리 둘러앉아
엄마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토요일
어른들은 싫은가 봐
가엾은 강물
어른들은 싸우고
온 세상이 새파랗고 눈부시겠지
산타클로스 할아버지는 다 알고 계셔서
말하면서
2부 자전거를 타고
자전거를 타고
아기 다람쥐의 모험
달려라 꼬마
산길을 조용조용
아기 노루
비밀
짝꿍
겨울밤
닮아서
아파트 마당의 고양이
학교 앞에는 큰 은행나무
잉어 왕자
할머니의 손
3부 추운 별
저 별에도, 또 저 별에도
추운 별
소리
우리 아기 깰라
쿨쿨
쑤욱쑤욱
눈이 온다
너는 콩쥐 나는 팥쥐
옛날 옛날 아주 옛날
해 넘어가기 전
노랗고 빨갛고
빨주노초파남보
매미와 개미
4부 세상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동네
꼬부랑 할머니가
세상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동네
저기 저기 저 눈깔
산문 나와 동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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