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100년만의 귀향, 고종 황제 비밀 국새
대한제국의 멸망과 함께 어디론가 사라졌던 고종 황제의 국새가 발견되었다.
조선시대를 포함하여 역대 국새가 단 한 과도 남아있지 않은 현실에서
새롭게 발견된 고종황제의 국새가 문화재로서 지니는 가치는 두말할 필요가 없다.
한일병합 100주년을 맞이하는 이 때, 고종 황제의 국새를 살펴보면서,
이 국새가 사용되었던 대한제국 당시 상황을 되짚어보려고 한다.
어떻게 생겼나? _ 수천년 동아시아 전통과 국새
이번에 발견된 국새에는 ''황제어새皇帝御璽''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이 문구는 물론이고 서체 자체도 진대 이래 오랜 역사적 전통과 곡절을 담고 있다.
이 책에서는 고려와 조선의 역대 국새 전통과 아울러 황제어새의 인문과 서체에 담긴 역사성을 상세히 설명하였다.
“국새가 처음 발견되었을 때, 일각에서는 인문의 ‘皇’자 위에 白 대신 自를 새겨 독립의 의지를 드높였다고 주장하였다.” _ 서울대학교 이태진 교수, 한국경제신문 2009.06.19일자.
그러나 진시황대의 석각에서 이미 이러한 서체가 발견되므로 이러한 주장은 사실이라 말하기에는 그 근거가 확실하지 않음이 밝혀졌다.
문화재 하나를 꼼꼼히 들여다봐야 하는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이러한 억측을 불식하는 일이다.
어디에 사용되었나?_ 긴박했던 한말의 역사
이번에 발견된 국새가 사용된 문서들은 모두 고종 황제와 내밀한 관계에 있었던 수신자들에게 보내는 친서에 사용되었다. 러시아 황제와 독일 황제 등 미?일?영 제국주의 카르텔의 반대편에 있었던 세력에게 보낸 친서나 헤이그 특사를 파견하여 대한제국의 실상을 세계에 알리려는 노력 등과 같은 것에서 볼 수 있다. 제국의 운명이 벼랑 끝에 놓여 있을 당시, 고종 황제가 마지막 외교적 노력을 기울였던 흔적이 생생하다.
왜 비밀 국새인가?
당시 대한제국의 공식 국새가 엄연하게 존재하였지만, 이미 고종은 자신의 의지에 따라 국새를 사용할 수 없었다. 일제의 감시가 고종의 침실에까지 미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이 국새가 사용된 문서들을 종합하여 역추적한 결과, 이 국새는 고종이 비밀리에 사용하는 문서에 사용되었음이 밝혀졌다. 손발이 묶인 황제의 자리에서도 고종은 수동적으로 가만히 있지만은 않았다. 비밀 국새의 사용은 당시 정치 상황은 물론, 고종의 의지와 활동 범위까지 추측케 하는 소중한 유물이라 하겠다.
문화재는 말한다, 고종의 성과와 한계
한때 고종은 망국의 군주라는 극도의 비판에 시달렸다. 최근에는 근대화에 앞장섰고 독립의지가 강했던 성군이지만, 일제의 피해에 어쩔 수 없었다는 주장도 있다. 거대담론과 입장의 차이에 따라 평가는 극과 극이기 마련이다. 그러나 적어도 국새 1과가 말해주는 진실이 있다. 고종이 얼마나 전통에 충실했는지, 고종이 당시 정세에서 어떤 정치적인 노력을 기울였는지, 엄존한 국제정세 속에서 고종이 어떤 점을 이해하고 어떤 점을 오해했는지, 그 단서를 밝혀주는 것이 바로 작은 비밀 국새 한 점이다.
▣ 작가 소개
저자 : 성인근 成仁根
계명대학교 미술대학 서예학과를 졸업하고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에서 『조선시대 印章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주요 논문으로 「성암고서박물관 소장 銅印의 유형」, 「조선시대와 대한제국기 國璽의 변화상」, 「조선시대 후기 官印의 양식 연구」, 「조선후기 印譜의 유입과 제작 양상」 등이 있다.
▣ 주요 목차
머리말
I ━ 우리나라 국새의 흐름
1. 국새의 기원과 전통
2. 고려시대
3. 조선시대
4. 대한제국
5. 대한민국
II ━ 고종시대의 국새
1. 개화기
2. 대한제국기
3. 유실 과정과 현황
III ━ 「황제어새」의 형태와 의미
1. 발견과정 및 개요
2. 인문의 자형과 의미
3. 손잡이의 형태와 상징
4. 재질과 제조방식
IV ━ 비밀 국새가 찍힌 문서
1. 「군주어새」의 제작과 사용 - 1897년
2. 러일전쟁 전후의 친서 - 1903~1905년
3. 을사늑약 이후의 친서 - 1905~1906년
4. 헤이그 밀사 파견문서 - 1907년
5. 강제퇴위 이후의 친서 - 1908~1909년
맺음말
부록. 고종의 비밀 국새가 찍힌 친서親書 일람표
참고문헌
도판목록
찾아보기
100년만의 귀향, 고종 황제 비밀 국새
대한제국의 멸망과 함께 어디론가 사라졌던 고종 황제의 국새가 발견되었다.
조선시대를 포함하여 역대 국새가 단 한 과도 남아있지 않은 현실에서
새롭게 발견된 고종황제의 국새가 문화재로서 지니는 가치는 두말할 필요가 없다.
한일병합 100주년을 맞이하는 이 때, 고종 황제의 국새를 살펴보면서,
이 국새가 사용되었던 대한제국 당시 상황을 되짚어보려고 한다.
어떻게 생겼나? _ 수천년 동아시아 전통과 국새
이번에 발견된 국새에는 ''황제어새皇帝御璽''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이 문구는 물론이고 서체 자체도 진대 이래 오랜 역사적 전통과 곡절을 담고 있다.
이 책에서는 고려와 조선의 역대 국새 전통과 아울러 황제어새의 인문과 서체에 담긴 역사성을 상세히 설명하였다.
“국새가 처음 발견되었을 때, 일각에서는 인문의 ‘皇’자 위에 白 대신 自를 새겨 독립의 의지를 드높였다고 주장하였다.” _ 서울대학교 이태진 교수, 한국경제신문 2009.06.19일자.
그러나 진시황대의 석각에서 이미 이러한 서체가 발견되므로 이러한 주장은 사실이라 말하기에는 그 근거가 확실하지 않음이 밝혀졌다.
문화재 하나를 꼼꼼히 들여다봐야 하는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이러한 억측을 불식하는 일이다.
어디에 사용되었나?_ 긴박했던 한말의 역사
이번에 발견된 국새가 사용된 문서들은 모두 고종 황제와 내밀한 관계에 있었던 수신자들에게 보내는 친서에 사용되었다. 러시아 황제와 독일 황제 등 미?일?영 제국주의 카르텔의 반대편에 있었던 세력에게 보낸 친서나 헤이그 특사를 파견하여 대한제국의 실상을 세계에 알리려는 노력 등과 같은 것에서 볼 수 있다. 제국의 운명이 벼랑 끝에 놓여 있을 당시, 고종 황제가 마지막 외교적 노력을 기울였던 흔적이 생생하다.
왜 비밀 국새인가?
당시 대한제국의 공식 국새가 엄연하게 존재하였지만, 이미 고종은 자신의 의지에 따라 국새를 사용할 수 없었다. 일제의 감시가 고종의 침실에까지 미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이 국새가 사용된 문서들을 종합하여 역추적한 결과, 이 국새는 고종이 비밀리에 사용하는 문서에 사용되었음이 밝혀졌다. 손발이 묶인 황제의 자리에서도 고종은 수동적으로 가만히 있지만은 않았다. 비밀 국새의 사용은 당시 정치 상황은 물론, 고종의 의지와 활동 범위까지 추측케 하는 소중한 유물이라 하겠다.
문화재는 말한다, 고종의 성과와 한계
한때 고종은 망국의 군주라는 극도의 비판에 시달렸다. 최근에는 근대화에 앞장섰고 독립의지가 강했던 성군이지만, 일제의 피해에 어쩔 수 없었다는 주장도 있다. 거대담론과 입장의 차이에 따라 평가는 극과 극이기 마련이다. 그러나 적어도 국새 1과가 말해주는 진실이 있다. 고종이 얼마나 전통에 충실했는지, 고종이 당시 정세에서 어떤 정치적인 노력을 기울였는지, 엄존한 국제정세 속에서 고종이 어떤 점을 이해하고 어떤 점을 오해했는지, 그 단서를 밝혀주는 것이 바로 작은 비밀 국새 한 점이다.
▣ 작가 소개
저자 : 성인근 成仁根
계명대학교 미술대학 서예학과를 졸업하고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에서 『조선시대 印章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주요 논문으로 「성암고서박물관 소장 銅印의 유형」, 「조선시대와 대한제국기 國璽의 변화상」, 「조선시대 후기 官印의 양식 연구」, 「조선후기 印譜의 유입과 제작 양상」 등이 있다.
▣ 주요 목차
머리말
I ━ 우리나라 국새의 흐름
1. 국새의 기원과 전통
2. 고려시대
3. 조선시대
4. 대한제국
5. 대한민국
II ━ 고종시대의 국새
1. 개화기
2. 대한제국기
3. 유실 과정과 현황
III ━ 「황제어새」의 형태와 의미
1. 발견과정 및 개요
2. 인문의 자형과 의미
3. 손잡이의 형태와 상징
4. 재질과 제조방식
IV ━ 비밀 국새가 찍힌 문서
1. 「군주어새」의 제작과 사용 - 1897년
2. 러일전쟁 전후의 친서 - 1903~1905년
3. 을사늑약 이후의 친서 - 1905~1906년
4. 헤이그 밀사 파견문서 - 1907년
5. 강제퇴위 이후의 친서 - 1908~1909년
맺음말
부록. 고종의 비밀 국새가 찍힌 친서親書 일람표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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