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현대음악의 거장 윤이상, 탄생 100주년을 맞다
2017년 올해는 현대음악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윤이상 선생이 탄생한 지 100주년을 맞는 뜻깊은 해다. 윤이상 선생은 [유동의 꿈], [나비의 미망인], [요정의 사랑], [심청] 등 네 편의 오페라를 비롯하여, [바라], [무악], [예악], [광주여 영원히!] 등 20여 편의 관현악곡, 오보에와 첼로를 위한 [동서의 단편] 등 40여 편의 실내악곡, [나의 땅, 나의 민족이여!] 등의 교성곡, 동요에서 오페라에 이르기까지 150여 편의 주옥같은 작품을 남겼다.
또한 현존하는 세계 작곡가 가운데 최정상에 올랐으며, 독일연방 공화국 대공로 훈장을 받았다. 오랜 역사를 지닌 뉴욕 브룩클린 음악원 전 교수들이 2개월 동안 연구하여 선정한 역사상 최고의 음악가 중 클래식 작곡가 19명 속에 포함되었다. 하지만 윤이상 선생 앞에는 ‘현대음악의 거장’이라는 수식어가 붙지만 ‘동백림 사건의 주모자’ ‘친북인사’ ‘재독 음악가’라는 수식어도 붙는다. 그런 탓에 고향 땅 통영을 끝내 밟지 못하고 타국에서 눈을 감아야 했다. 하지만 선생은 눈을 감을 때까지 고향에 대한 애정을 버리지 않았다.
우리 민족이 낳은 세계적인 음악가로서 큰 업적을 남긴 윤이상 선생. 하지만 과거 정부의 잘못으로 불행한 사건을 겪고 명예가 실추되면서 제대로 평가를 받지 못했다. 윤이상 선생은 안타깝게도 세상을 떠났지만 앞으로 우리는 윤이상 선생의 위대한 예술적 업적과 민족 사랑의 정신을 더욱더 널리 알리고 기려야 할 테다.
소리에 영혼을 담은 아이
윤이상 선생은 경상남도 통영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에게는 어머니가 둘이었다. 대를 이을 아들을 낳지 못한 큰어머니, 자신을 낳고 둘째 부인으로 살아온 어머니가 있었다. ‘윤이상’이라는 영특한 아들을 낳았지만 둘째 부인으로 살아온 어머니의 삶은 녹록치 않았을 것이다. 설움을 노래로 풀어낸 어머니의 피를 이어받은 덕분에 윤이상 선생은 어린 시절부터 남다른 재능을 보였다. 그리고 보통학교에서 음악 선생님을 만난 뒤 소리의 집을 짓는 작곡가의 꿈을 품었다. 음악을 포기해야 하는 극한 상황에서도 윤이상 선생은 “목수가 집을 짓듯 오선지 위에 차근차근 음표를 올리는 일”을 해 나갔다. 어린 윤이상의 눈에 세상에는 음악이 아닌 것이 없었다. 파도소리가 들리는 집도, 뒤란에 대나무 숲이 있는 집도, 개구리울음 소리마저도 그에게는 모두 음악의 씨앗이었다.
비가 오면 대나무 숲 사이로 실개천이 생겨 집 마당으로 흘렀고, 밤이면 개구리 울음소리에 귀가 아플 정도였다. 그 소리가 너무 시끄러워 잠이 들지 않을 때면 이상은 눈을 감고 개구리 소리를 따라가 보았다. 한 놈이 개굴개굴하면 그 소리에 또 다른 개구리가 답을 했다. 그리고 두 마리 세 마리가 따라하다 어느 순간 한꺼번에 합창을 하는 것이었다. 그러다 갑자기 뚝 멈추고는 다시 시작하곤 했다. “그 부분은 틀렸어. 다시 해!”
개구리들은 이상의 지휘를 잘 따르고 있었다. 이상은 그것을 오선지에 옮겨 적으며 혼잣말을 했다. “하하, 너희가 우리 반 동무들보다 훨씬 낫다.” 이상은 음악을 만드는 일에 점점 신이 났다.
‘통영’ 바닷가 마을에 살며 어부들의 고단한 삶을 보고 자라서일까. 그의 음악에는 인간 본연의 희로애락이 담겨 있으며 그것은 깊이를 더해준다. 그가 말하는 영혼의 소리는 곧 고향의 바닷소리라고 할 수 있다. 오선지를 펴고 눈을 감으면 그 위로 푸른 고향 바다가 넘실거렸고, 코에 스며들던 싱그러운 갯내며 갈매기들의 울음소리, 뱃사공들의 노랫소리, 누이들의 다듬이 소리도 악보 속으로 스며들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고향 바다는 어머니의 청아한 남도창과 풍물패의 장단, 어린 시절 지리산 자락에서 들었던 한 남자의 슬픈 노래, 제삿날이면 들을 수 있었던 조상들의 달그락거리는 수저 소리까지 실어 왔다. 이 모든 것들은 윤이상 선생이 소리로 짓는 집의 기둥이 되고 지붕이 되고 창문이 되었다.
예술혼은 절대 꺾이지 않는다
윤이상 선생이 촛불로 성숙한 민주주의를 이룬 지금의 모습을 보면 어떠했을까. 분명 정의가, 민주주의가 승리했다고 함께 기뻐했으리라. 그러면서 시대가 달라져도 정치꾼들은 변한 게 없다며 한탄했으리라. “처염상정(處染常淨)―어떤 곳에 있어도 물들지 않고 항상 깨끗하다.” 이는 윤이상 선생 묘비명에 새겨진 불경의 한 구절이다. 선생의 삶을 이보다 더 정확하게 기록한 말은 없을 테다.
요즘 시대 말로 하면 윤이상 선생은 ‘원조 블랙리스트’다. 시대는 달라졌지만 윤이상 선생이 살아온 때와 지금의 정치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한때 그는 동백림 사건에 연루되어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히고 말았다. 정치적 탄압으로 음악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주저앉아야 했다. 하지만 윤이상 선생은 음악으로 정의와 민주주의를 위해 싸웠다. 윤이상 선생의 음악은 촛불이 더 많은 사람에게, 더 멀리 퍼져 나가듯 사람들의 마음속으로 스미고 세상을 움직였다. 그의 음악 정신, 예술혼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세력에게 “예술혼은 절대 꺾이지 않는다”는 일침을 가했다. 예술혼은 그 누구도, 그 무엇도 꺾을 수 없으며 반드시 승리한다는 것을 보여 주며 평생 동안 불굴의 의지를 보였다.
존경과 애정을 담아 쓴 인물 이야기
저자 한수연은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동화작가로 오랜 시간 초등학교 교사로 일했다. 저자는 어린 시절부터 고향 통영에서 학교를 다녔고 윤이상 선생이 만든 교가를 부르며 자랐다. 윤이상 선생이 살아온 고향 통영 땅에서 함께 숨을 쉬고 바다를 바라보면서 그의 예술혼을 오롯이 느끼며 살아서일까. 마치 윤이상 선생을 현재로 불러온 듯 이야기가 생생하게 전해진다. 또한 윤이상 선생의 발자취를 좇고 부인 이수자 여사를 만나면서 윤이상 선생의 삶과 음악 인생을 수를 놓듯 써내려갔다. 문장 사이사이 윤이상 선생에 대한 존경과 애정이 듬뿍 담긴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읽는 이에게도 윤이상 선생의 삶이 온전히 스며든다. 때로는 잔잔한 물결처럼, 때로는 파도가 몰아치듯 쓴 이야기는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함께 읽어도 좋을 정도로 쉽고 재미있다. 특히 미래를 이끌어갈 어린 친구들과 젊은 청년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 작가 소개
글 : 한수연
지은이 한수연 선생님은 경남 통영에서 태어나 마산교육대학을 졸업했습니다. 1976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동화 〈바람골 우체부〉가 당선되어 등단했으며, 경남신문 신춘문예에 수필 〈항아리 소묘〉가 당선되었습니다. 경남아동문학상, 남명특별상을 수상했습니다. 저서로는 창작동화집 『발가락이 달린 해님』 외, 인물전 『할아버지 손은 약손』 외, 역사동화 『내 이름은 혹부리』 외 다수가 있습니다. 현재는 초등학교 교사를 퇴직하고 글쓰기에 전념하고 계십니다.
그림 : 권예실
그린이 권예실 님은 대학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하고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 주요 목차
윤이상, 그 위대한 예술혼을 그리다
예사롭지 않은 꿈
소리에 눈뜨다
소리의 집을 짓는 일
일본 유학길에 오르다
스승 이케노치
목숨으로 지켜 낸 음악
해방된 조국을 위해
조국은 다시 전쟁 속으로
마흔 살에 떠난 유학
음악의 본고장에서 거둔 첫 성공
세계를 향한 비상
사신도가 불러
유럽을 이기다
죄 없는 죄인
상처 입은 용
뮌헨 올림픽의 꽃이 된 오페라 [심청전]
눈물로 작곡한 [광주여 영원히!]
음악으로 이룬 민족 통일
불사조 같은 예술혼으로
윤이상 선생 약력
현대음악의 거장 윤이상, 탄생 100주년을 맞다
2017년 올해는 현대음악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윤이상 선생이 탄생한 지 100주년을 맞는 뜻깊은 해다. 윤이상 선생은 [유동의 꿈], [나비의 미망인], [요정의 사랑], [심청] 등 네 편의 오페라를 비롯하여, [바라], [무악], [예악], [광주여 영원히!] 등 20여 편의 관현악곡, 오보에와 첼로를 위한 [동서의 단편] 등 40여 편의 실내악곡, [나의 땅, 나의 민족이여!] 등의 교성곡, 동요에서 오페라에 이르기까지 150여 편의 주옥같은 작품을 남겼다.
또한 현존하는 세계 작곡가 가운데 최정상에 올랐으며, 독일연방 공화국 대공로 훈장을 받았다. 오랜 역사를 지닌 뉴욕 브룩클린 음악원 전 교수들이 2개월 동안 연구하여 선정한 역사상 최고의 음악가 중 클래식 작곡가 19명 속에 포함되었다. 하지만 윤이상 선생 앞에는 ‘현대음악의 거장’이라는 수식어가 붙지만 ‘동백림 사건의 주모자’ ‘친북인사’ ‘재독 음악가’라는 수식어도 붙는다. 그런 탓에 고향 땅 통영을 끝내 밟지 못하고 타국에서 눈을 감아야 했다. 하지만 선생은 눈을 감을 때까지 고향에 대한 애정을 버리지 않았다.
우리 민족이 낳은 세계적인 음악가로서 큰 업적을 남긴 윤이상 선생. 하지만 과거 정부의 잘못으로 불행한 사건을 겪고 명예가 실추되면서 제대로 평가를 받지 못했다. 윤이상 선생은 안타깝게도 세상을 떠났지만 앞으로 우리는 윤이상 선생의 위대한 예술적 업적과 민족 사랑의 정신을 더욱더 널리 알리고 기려야 할 테다.
소리에 영혼을 담은 아이
윤이상 선생은 경상남도 통영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에게는 어머니가 둘이었다. 대를 이을 아들을 낳지 못한 큰어머니, 자신을 낳고 둘째 부인으로 살아온 어머니가 있었다. ‘윤이상’이라는 영특한 아들을 낳았지만 둘째 부인으로 살아온 어머니의 삶은 녹록치 않았을 것이다. 설움을 노래로 풀어낸 어머니의 피를 이어받은 덕분에 윤이상 선생은 어린 시절부터 남다른 재능을 보였다. 그리고 보통학교에서 음악 선생님을 만난 뒤 소리의 집을 짓는 작곡가의 꿈을 품었다. 음악을 포기해야 하는 극한 상황에서도 윤이상 선생은 “목수가 집을 짓듯 오선지 위에 차근차근 음표를 올리는 일”을 해 나갔다. 어린 윤이상의 눈에 세상에는 음악이 아닌 것이 없었다. 파도소리가 들리는 집도, 뒤란에 대나무 숲이 있는 집도, 개구리울음 소리마저도 그에게는 모두 음악의 씨앗이었다.
비가 오면 대나무 숲 사이로 실개천이 생겨 집 마당으로 흘렀고, 밤이면 개구리 울음소리에 귀가 아플 정도였다. 그 소리가 너무 시끄러워 잠이 들지 않을 때면 이상은 눈을 감고 개구리 소리를 따라가 보았다. 한 놈이 개굴개굴하면 그 소리에 또 다른 개구리가 답을 했다. 그리고 두 마리 세 마리가 따라하다 어느 순간 한꺼번에 합창을 하는 것이었다. 그러다 갑자기 뚝 멈추고는 다시 시작하곤 했다. “그 부분은 틀렸어. 다시 해!”
개구리들은 이상의 지휘를 잘 따르고 있었다. 이상은 그것을 오선지에 옮겨 적으며 혼잣말을 했다. “하하, 너희가 우리 반 동무들보다 훨씬 낫다.” 이상은 음악을 만드는 일에 점점 신이 났다.
‘통영’ 바닷가 마을에 살며 어부들의 고단한 삶을 보고 자라서일까. 그의 음악에는 인간 본연의 희로애락이 담겨 있으며 그것은 깊이를 더해준다. 그가 말하는 영혼의 소리는 곧 고향의 바닷소리라고 할 수 있다. 오선지를 펴고 눈을 감으면 그 위로 푸른 고향 바다가 넘실거렸고, 코에 스며들던 싱그러운 갯내며 갈매기들의 울음소리, 뱃사공들의 노랫소리, 누이들의 다듬이 소리도 악보 속으로 스며들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고향 바다는 어머니의 청아한 남도창과 풍물패의 장단, 어린 시절 지리산 자락에서 들었던 한 남자의 슬픈 노래, 제삿날이면 들을 수 있었던 조상들의 달그락거리는 수저 소리까지 실어 왔다. 이 모든 것들은 윤이상 선생이 소리로 짓는 집의 기둥이 되고 지붕이 되고 창문이 되었다.
예술혼은 절대 꺾이지 않는다
윤이상 선생이 촛불로 성숙한 민주주의를 이룬 지금의 모습을 보면 어떠했을까. 분명 정의가, 민주주의가 승리했다고 함께 기뻐했으리라. 그러면서 시대가 달라져도 정치꾼들은 변한 게 없다며 한탄했으리라. “처염상정(處染常淨)―어떤 곳에 있어도 물들지 않고 항상 깨끗하다.” 이는 윤이상 선생 묘비명에 새겨진 불경의 한 구절이다. 선생의 삶을 이보다 더 정확하게 기록한 말은 없을 테다.
요즘 시대 말로 하면 윤이상 선생은 ‘원조 블랙리스트’다. 시대는 달라졌지만 윤이상 선생이 살아온 때와 지금의 정치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한때 그는 동백림 사건에 연루되어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히고 말았다. 정치적 탄압으로 음악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주저앉아야 했다. 하지만 윤이상 선생은 음악으로 정의와 민주주의를 위해 싸웠다. 윤이상 선생의 음악은 촛불이 더 많은 사람에게, 더 멀리 퍼져 나가듯 사람들의 마음속으로 스미고 세상을 움직였다. 그의 음악 정신, 예술혼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세력에게 “예술혼은 절대 꺾이지 않는다”는 일침을 가했다. 예술혼은 그 누구도, 그 무엇도 꺾을 수 없으며 반드시 승리한다는 것을 보여 주며 평생 동안 불굴의 의지를 보였다.
존경과 애정을 담아 쓴 인물 이야기
저자 한수연은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동화작가로 오랜 시간 초등학교 교사로 일했다. 저자는 어린 시절부터 고향 통영에서 학교를 다녔고 윤이상 선생이 만든 교가를 부르며 자랐다. 윤이상 선생이 살아온 고향 통영 땅에서 함께 숨을 쉬고 바다를 바라보면서 그의 예술혼을 오롯이 느끼며 살아서일까. 마치 윤이상 선생을 현재로 불러온 듯 이야기가 생생하게 전해진다. 또한 윤이상 선생의 발자취를 좇고 부인 이수자 여사를 만나면서 윤이상 선생의 삶과 음악 인생을 수를 놓듯 써내려갔다. 문장 사이사이 윤이상 선생에 대한 존경과 애정이 듬뿍 담긴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읽는 이에게도 윤이상 선생의 삶이 온전히 스며든다. 때로는 잔잔한 물결처럼, 때로는 파도가 몰아치듯 쓴 이야기는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함께 읽어도 좋을 정도로 쉽고 재미있다. 특히 미래를 이끌어갈 어린 친구들과 젊은 청년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 작가 소개
글 : 한수연
지은이 한수연 선생님은 경남 통영에서 태어나 마산교육대학을 졸업했습니다. 1976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동화 〈바람골 우체부〉가 당선되어 등단했으며, 경남신문 신춘문예에 수필 〈항아리 소묘〉가 당선되었습니다. 경남아동문학상, 남명특별상을 수상했습니다. 저서로는 창작동화집 『발가락이 달린 해님』 외, 인물전 『할아버지 손은 약손』 외, 역사동화 『내 이름은 혹부리』 외 다수가 있습니다. 현재는 초등학교 교사를 퇴직하고 글쓰기에 전념하고 계십니다.
그림 : 권예실
그린이 권예실 님은 대학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하고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 주요 목차
윤이상, 그 위대한 예술혼을 그리다
예사롭지 않은 꿈
소리에 눈뜨다
소리의 집을 짓는 일
일본 유학길에 오르다
스승 이케노치
목숨으로 지켜 낸 음악
해방된 조국을 위해
조국은 다시 전쟁 속으로
마흔 살에 떠난 유학
음악의 본고장에서 거둔 첫 성공
세계를 향한 비상
사신도가 불러
유럽을 이기다
죄 없는 죄인
상처 입은 용
뮌헨 올림픽의 꽃이 된 오페라 [심청전]
눈물로 작곡한 [광주여 영원히!]
음악으로 이룬 민족 통일
불사조 같은 예술혼으로
윤이상 선생 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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