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이 작품을 다시 읽게 되었을 때 시가 새롭게 살아나기 시작했다. 시인의 시선이 대상 속에 치밀하게 들어가 대상의 디테일한 부분을 들먹여 숨죽이던 시의 숨길을 살려 내고 있었다._권영상(시인)
비유가 압권이었다. 은유는 시에 날개를 달아 주어 세계를 확장하게 한다. 능숙하게 말을 잘하는 것이 새로운 것은 분명 아니다. 하지만 이 수상자가 그간 우리가 동시라고 믿어 왔던 것들을 돌아보게 하는 시들을 써내리라 믿는다. _안도현(시인)
여러 번 읽을수록 깊은 맛이 우러난다. 시인이 배치한 말의 징검돌을 하나씩 밟아 가며 한 편을 다 읽고 나면 알이 꽉 찬 가재를 손에 쥔 듯한 뿌듯함, 세련된 언어 감각과 미적 구조를 체험하게 된다._이안(시인)
창비어린이 신인문학상(동시) 수상, 서울신문 신춘문예(시) 당선
동시와 어린이, 그리고 김준현
김준현 시인은 2013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시로 먼저 등단했다. 이후 도서관에서 아이들과 함께 시 읽는 수업을 하면서 자신의 방식대로 세상을 읽는 아이들의 눈, 어른의 질서가 없는 아이들의 말을 만났다. 아이들은 단지 말의 질감이 좋아 괴상한 신조어를 만들기도 하고, 같은 말을 끝없이 반복하면서 즐거워하기도 하고, 자신의 해석이 틀릴까 두려워하지 않으며, 어려워 보인다고 생각한 동시를 오히려 더 즐겁게, 잘 읽어 주었다. 어린이의 눈높이라는 것에 대한 편견을 걷게 됐다는 그. 어린이라는 존재에 국한되지 않는 다양한 생각과 감정의 결을 가진 동시를 고민하다, 2015년 창비어린이 신인문학상(동시)을 수상한다. “삶을 대하는 진지한 태도도 좋았지만 길이가 긴 편임에도 끝까지 긴장을 잃지 않는 모습이 믿음을 주었다. 가벼운 말장난에 머무를 수도 있었던 소재를 울림과 여운이 느껴지도록 풀어”냈다는 평은 대상을 바라보는 시선의 깊이와 시적 말 걸기에 대한 탐구를 어림하게 한다.
품에 간직한 볼펜을 따라 삐뚤빼뚤 곡선으로 나아가다 보면 만나게 되는, 어떤 얼굴들
다 똑같이 생긴 빗방울
떨어지고 싶은 곳은 모두 다르지
분홍 우산 위에서 분홍색 얼굴이 되는 빗방울
노랑 우산 위에서 아기 보름달이 되는 빗방울
유리창에 닭살처럼 돋은 빗방울
?그렇게 추웠니?
풀잎 미끄럼틀을 타고
나무뿌리를 타고 땅속을 구경하다가
빨대 같은 뿌리에 빨려
탱탱한 햇사과 땀으로 흐르는 빗방울
끔벅끔벅 개구리 눈을 닦아 주는 빗방울
혼자 있기 싫어
웅덩이 속으로 들어가서
함께 있는 빗방울
그중에는
한참을 서 있다
비를 맞으며 걸어가는 아이
발자국을 채우는 어떤 빗방울
아이의 뺨 위에서
눈물인 척 함께 흐르는 어떤 빗방울
_「어떤 빗방울」 전문
끔벅거리는 개구리의 눈 위에, 방금 딛고 간 발자국 안에 번지는 빗방울의 체온. 어떤 누군가의 호기심, 어떤 누군가의 그리움, 어떤 누군가의 울음, 어떤 누군가의 꿈을 다독이는 빗방울의 몸짓. 빗방울은 김준현 시인이라는 프리즘을 통과해 그 안의 수많은 ‘어떤’ 얼굴을 내비친다. 우리가 보는 빗방울의 장막 안에, 우리가 아는 언어의 겉껍질 아래 묶여 있던 다채색 얼굴들이 놓여나는 순간 일상의 공간은 시적 공간으로 뒤바뀐다.
똑같이 생긴 빗방울에서 여러 얼굴을 찾아내는 시인의 품에는 볼펜 하나가 있다. 초봄에 빗길에 나온 지렁이를 보다가 지렁이에게 다섯 개의 심장이 있지, 라는 사실을 상기하다가 툭 풀려 나오는 말의 실타래. 시인의 볼펜은 직선처럼 곧게가 아니라 삐뚤빼뚤하게 그 말타래를 몰고 가 그 말타래 위에 올라탄 우리를 뜻밖의 곳에 훌쩍 떨어뜨려 놓는다. 마치 시의 세계로 안내하는 여행자처럼.
그래서 우리는 여행자의 공책 한 귀퉁이에 웅크린 고양이 등을 쓰다듬을 수 있고 가오리연의 얼레를 돌리며 그리운 누군가에게 메시지를 띄워 볼 수도 있다. 감각세포가 기억하는 이 시적 체험은 실제와 시의 거리를 한층 좁힌다.
비가 내리면 아스팔트로 기어 나오는 지렁이에게는 다섯 개나 되는 심장이 있다
“어차피 말라 죽을 건데 왜 기어 나오니?”
심술쟁이 재민이가 말했지만 심장이 다섯 개나 되면 그건 어쩔 수 없는 거다 아무리 머리가 좋아도 심장 다섯 개가 쿵쾅쿵쾅 빗소리에 빠지면 몸을 S 자로 만들든 ㄹ 자로 만들든 온 힘을 다해 꿈틀거리며 나올 수밖에 없는 거다
_「다섯 개의 심장」 전문
글씨가 흐릿해지며 나오다 안 나오다 할 땐
말보다 기침이 더 많아진 할머니처럼
툭, 툭 가슴을 두드리자
조금씩 나오는 글씨
글자 밑에 밑줄만 긋는 거 말고
칠판 필기만 받아 적는 거 말고
남은 힘으로
공책 한 귀퉁이에 작은 별 하나를 새겨야지
웅크린 고양이를 낳아야지, 아껴 뒀던 혼잣말을 해야지
볼펜을 쥔 사람 마음이 가는 대로
손이 가는 대로
삐뚤빼뚤 다른 세상으로 나아가야지
_「비행」 부분
툭툭 쳐야 나오는 볼펜처럼, 툭툭 가슴을 두드리면, 툭툭 글자를 두드리면
시인은 고인 웅덩이에 어떤 빗방울로 떨어져 물결치거나 어딘가로 이어질지 모르는 길을 내기도 하고 툭툭 가슴을 두드려 대면서, 시 속으로 우리를 이끈다. 더러는 시인의 기억을 만나 새로운 감정을 환기하기도 한다.
씩씩하고 장난스러운 할머니 화자가 등장하는 「바다, 소리」는 외할머니와 친할머니의 기억이 그려낸 시이다. 거의 평생을 바다를 끼고 살았던 외할머니, 지금은 돌아가신 귀가 어두웠던 친할머니에게 바다는 어떤 소리일까로부터 비롯된 이 시는, 게들이 눈 내미는 소리까지 상상하게 하는 힘을 발휘한다.
시인은 혼자서는 아무 뜻도 가질 수 없는 글자 ㅇ, 참새들 틈에 끼어 앉은 물방울 하나, 아무도 봐 주지 않는 순간에도 조금씩 자라고 있는 씨앗을 간질여 그들의 목소리를 들려주고 낯선 물음표를 달아 주고, 글자를 재료로 놀이를 하기도 한다. 반어적인 제목의 「한글 공부」 연작은 한글을 사용한 시간이 얼마 되지 않은 아이들에게 한글에서 질감을 발견해 내는 놀이가 직접적으로 와닿을 것 같다는 생각에서 탄생했다.
동시는 시 앞에 동그란 바퀴가 달린 거지
동글동글 굴러가는
세발자전거처럼
이응을 굴려
어린이들을 태우고
어린이들이 있는 곳으로
온 동네로 동동
_「한글 공부-이응(ㅇ)」 전문
자전거도 웅덩이를 지나면
꼬리 그림자를 길게 남기고 가고
비행기도 하늘 가운데로
흰 구름 꼬리를 남기고 간다
“너 꼴이 그게 뭐니!”
밖에서 종일 축구하고 돌아온 날이면
나한테도 꼬리가 있는 것처럼
엄마가 내 흙 묻은 꼬리를 보고 있다
_「한글 공부-꼬리」 부분
“한글은 문자이지만 미적인 모양을 갖고 있어요. 한글 속에는 현실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는 도형들도 많고요. 또 단어가 조사와 결합하면서 중의적으로 읽히기도 하고요. 봉산탈춤 같은 작품을 보면 등장인물들이 말할 때 언어유희를 사용하거나 파자놀이 같은 걸 하는 게 나와요. 한글이나 숫자를 사용한 다른 시인들의 작품들에서도 좋은 영향을 받기도 했고요. 저도 한글이 가진 조형학적인 즐거움, 발음의 즐거움을 하나씩 실생활 속에서 찾아보자, 하는 마음으로 한 편씩 쓰기 시작했어요.”_김준현
아이들을 태우고 어디로든 가는 동시, 어딘가 있을 누군가에게 닿을 동시
시를 쓰는 동안엔 처음 가 보는 시간-공간을 걷는 여행자가 되고, 한 글자 한 글자가 밝히는 등불 속에서 자신도 모르던 내면의 풍경을 들여다보게 된다는 시인. 「나는 법」에 실린 한 글자 한 글자는 시를 읽는 독자에게도 그와 가까운 경험을 안긴다. 아이, 어른의 경계 없이 읽히는 동시, 현실에서의 경험만큼이나 선명하게 하나의 경험으로 남는 동시, 읽고 난 다음 아주 조금, 아주 잠깐이라도 마음에 자신만의 이미지 하나를 남게 하는 동시를 쓰고 싶다는 바람으로 시인은 “마침표까지는 아직 멀고 먼 말들”을 부려놓는다. 짝사랑하는 아이의 집 앞을 맴도는 아이 곁에, 얼마 전 죽은 카나리아를 기억하는 아이 옆에, 쉬는 시간 아무하고도 관계없는 사람처럼 앉은 아이 옆에, 아스팔트로 기어 나온 지렁이의 심장 옆에, 단단하고 차가운 자물쇠의 배꼽 옆에. 어딘가 있을 누군가에게 닿을 동시를. 아이들을 태우고 어디로든 갈 수 있는 동시를.
시를 따라 펼쳐지는 이미지의 공간, 그 안에서 잠시 쉬었다 갈 수 있는 긴 의자 하나
비 갠 뒤 깨끗한 하늘, 살찐 구름, 부드러운 미풍에 싸여 어떤 익명의 동네를 여행하는 느낌. 차상미 화가의 그림에서는 피부에 닿는 듯한 대기의 질감이 느껴진다. 그 동네에서 우리는 편안한 일상의 어긋난 틈으로 스며든 판타지를 만나기도 하고 판타지 속에서 공감의 요소를 만나기도 한다. 그림을 보는 이들에게 조금이나마 행복과 위안이 되었으면 하는 화가의 바람은 시의 동네에서 잠시 쉬었다 갈, 긴 의자 하나를 놓아 주었다.
비유가 압권이었다. 은유는 시에 날개를 달아 주어 세계를 확장하게 한다. 능숙하게 말을 잘하는 것이 새로운 것은 분명 아니다. 하지만 이 수상자가 그간 우리가 동시라고 믿어 왔던 것들을 돌아보게 하는 시들을 써내리라 믿는다. _안도현(시인)
여러 번 읽을수록 깊은 맛이 우러난다. 시인이 배치한 말의 징검돌을 하나씩 밟아 가며 한 편을 다 읽고 나면 알이 꽉 찬 가재를 손에 쥔 듯한 뿌듯함, 세련된 언어 감각과 미적 구조를 체험하게 된다._이안(시인)
창비어린이 신인문학상(동시) 수상, 서울신문 신춘문예(시) 당선
동시와 어린이, 그리고 김준현
김준현 시인은 2013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시로 먼저 등단했다. 이후 도서관에서 아이들과 함께 시 읽는 수업을 하면서 자신의 방식대로 세상을 읽는 아이들의 눈, 어른의 질서가 없는 아이들의 말을 만났다. 아이들은 단지 말의 질감이 좋아 괴상한 신조어를 만들기도 하고, 같은 말을 끝없이 반복하면서 즐거워하기도 하고, 자신의 해석이 틀릴까 두려워하지 않으며, 어려워 보인다고 생각한 동시를 오히려 더 즐겁게, 잘 읽어 주었다. 어린이의 눈높이라는 것에 대한 편견을 걷게 됐다는 그. 어린이라는 존재에 국한되지 않는 다양한 생각과 감정의 결을 가진 동시를 고민하다, 2015년 창비어린이 신인문학상(동시)을 수상한다. “삶을 대하는 진지한 태도도 좋았지만 길이가 긴 편임에도 끝까지 긴장을 잃지 않는 모습이 믿음을 주었다. 가벼운 말장난에 머무를 수도 있었던 소재를 울림과 여운이 느껴지도록 풀어”냈다는 평은 대상을 바라보는 시선의 깊이와 시적 말 걸기에 대한 탐구를 어림하게 한다.
품에 간직한 볼펜을 따라 삐뚤빼뚤 곡선으로 나아가다 보면 만나게 되는, 어떤 얼굴들
다 똑같이 생긴 빗방울
떨어지고 싶은 곳은 모두 다르지
분홍 우산 위에서 분홍색 얼굴이 되는 빗방울
노랑 우산 위에서 아기 보름달이 되는 빗방울
유리창에 닭살처럼 돋은 빗방울
?그렇게 추웠니?
풀잎 미끄럼틀을 타고
나무뿌리를 타고 땅속을 구경하다가
빨대 같은 뿌리에 빨려
탱탱한 햇사과 땀으로 흐르는 빗방울
끔벅끔벅 개구리 눈을 닦아 주는 빗방울
혼자 있기 싫어
웅덩이 속으로 들어가서
함께 있는 빗방울
그중에는
한참을 서 있다
비를 맞으며 걸어가는 아이
발자국을 채우는 어떤 빗방울
아이의 뺨 위에서
눈물인 척 함께 흐르는 어떤 빗방울
_「어떤 빗방울」 전문
끔벅거리는 개구리의 눈 위에, 방금 딛고 간 발자국 안에 번지는 빗방울의 체온. 어떤 누군가의 호기심, 어떤 누군가의 그리움, 어떤 누군가의 울음, 어떤 누군가의 꿈을 다독이는 빗방울의 몸짓. 빗방울은 김준현 시인이라는 프리즘을 통과해 그 안의 수많은 ‘어떤’ 얼굴을 내비친다. 우리가 보는 빗방울의 장막 안에, 우리가 아는 언어의 겉껍질 아래 묶여 있던 다채색 얼굴들이 놓여나는 순간 일상의 공간은 시적 공간으로 뒤바뀐다.
똑같이 생긴 빗방울에서 여러 얼굴을 찾아내는 시인의 품에는 볼펜 하나가 있다. 초봄에 빗길에 나온 지렁이를 보다가 지렁이에게 다섯 개의 심장이 있지, 라는 사실을 상기하다가 툭 풀려 나오는 말의 실타래. 시인의 볼펜은 직선처럼 곧게가 아니라 삐뚤빼뚤하게 그 말타래를 몰고 가 그 말타래 위에 올라탄 우리를 뜻밖의 곳에 훌쩍 떨어뜨려 놓는다. 마치 시의 세계로 안내하는 여행자처럼.
그래서 우리는 여행자의 공책 한 귀퉁이에 웅크린 고양이 등을 쓰다듬을 수 있고 가오리연의 얼레를 돌리며 그리운 누군가에게 메시지를 띄워 볼 수도 있다. 감각세포가 기억하는 이 시적 체험은 실제와 시의 거리를 한층 좁힌다.
비가 내리면 아스팔트로 기어 나오는 지렁이에게는 다섯 개나 되는 심장이 있다
“어차피 말라 죽을 건데 왜 기어 나오니?”
심술쟁이 재민이가 말했지만 심장이 다섯 개나 되면 그건 어쩔 수 없는 거다 아무리 머리가 좋아도 심장 다섯 개가 쿵쾅쿵쾅 빗소리에 빠지면 몸을 S 자로 만들든 ㄹ 자로 만들든 온 힘을 다해 꿈틀거리며 나올 수밖에 없는 거다
_「다섯 개의 심장」 전문
글씨가 흐릿해지며 나오다 안 나오다 할 땐
말보다 기침이 더 많아진 할머니처럼
툭, 툭 가슴을 두드리자
조금씩 나오는 글씨
글자 밑에 밑줄만 긋는 거 말고
칠판 필기만 받아 적는 거 말고
남은 힘으로
공책 한 귀퉁이에 작은 별 하나를 새겨야지
웅크린 고양이를 낳아야지, 아껴 뒀던 혼잣말을 해야지
볼펜을 쥔 사람 마음이 가는 대로
손이 가는 대로
삐뚤빼뚤 다른 세상으로 나아가야지
_「비행」 부분
툭툭 쳐야 나오는 볼펜처럼, 툭툭 가슴을 두드리면, 툭툭 글자를 두드리면
시인은 고인 웅덩이에 어떤 빗방울로 떨어져 물결치거나 어딘가로 이어질지 모르는 길을 내기도 하고 툭툭 가슴을 두드려 대면서, 시 속으로 우리를 이끈다. 더러는 시인의 기억을 만나 새로운 감정을 환기하기도 한다.
씩씩하고 장난스러운 할머니 화자가 등장하는 「바다, 소리」는 외할머니와 친할머니의 기억이 그려낸 시이다. 거의 평생을 바다를 끼고 살았던 외할머니, 지금은 돌아가신 귀가 어두웠던 친할머니에게 바다는 어떤 소리일까로부터 비롯된 이 시는, 게들이 눈 내미는 소리까지 상상하게 하는 힘을 발휘한다.
시인은 혼자서는 아무 뜻도 가질 수 없는 글자 ㅇ, 참새들 틈에 끼어 앉은 물방울 하나, 아무도 봐 주지 않는 순간에도 조금씩 자라고 있는 씨앗을 간질여 그들의 목소리를 들려주고 낯선 물음표를 달아 주고, 글자를 재료로 놀이를 하기도 한다. 반어적인 제목의 「한글 공부」 연작은 한글을 사용한 시간이 얼마 되지 않은 아이들에게 한글에서 질감을 발견해 내는 놀이가 직접적으로 와닿을 것 같다는 생각에서 탄생했다.
동시는 시 앞에 동그란 바퀴가 달린 거지
동글동글 굴러가는
세발자전거처럼
이응을 굴려
어린이들을 태우고
어린이들이 있는 곳으로
온 동네로 동동
_「한글 공부-이응(ㅇ)」 전문
자전거도 웅덩이를 지나면
꼬리 그림자를 길게 남기고 가고
비행기도 하늘 가운데로
흰 구름 꼬리를 남기고 간다
“너 꼴이 그게 뭐니!”
밖에서 종일 축구하고 돌아온 날이면
나한테도 꼬리가 있는 것처럼
엄마가 내 흙 묻은 꼬리를 보고 있다
_「한글 공부-꼬리」 부분
“한글은 문자이지만 미적인 모양을 갖고 있어요. 한글 속에는 현실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는 도형들도 많고요. 또 단어가 조사와 결합하면서 중의적으로 읽히기도 하고요. 봉산탈춤 같은 작품을 보면 등장인물들이 말할 때 언어유희를 사용하거나 파자놀이 같은 걸 하는 게 나와요. 한글이나 숫자를 사용한 다른 시인들의 작품들에서도 좋은 영향을 받기도 했고요. 저도 한글이 가진 조형학적인 즐거움, 발음의 즐거움을 하나씩 실생활 속에서 찾아보자, 하는 마음으로 한 편씩 쓰기 시작했어요.”_김준현
아이들을 태우고 어디로든 가는 동시, 어딘가 있을 누군가에게 닿을 동시
시를 쓰는 동안엔 처음 가 보는 시간-공간을 걷는 여행자가 되고, 한 글자 한 글자가 밝히는 등불 속에서 자신도 모르던 내면의 풍경을 들여다보게 된다는 시인. 「나는 법」에 실린 한 글자 한 글자는 시를 읽는 독자에게도 그와 가까운 경험을 안긴다. 아이, 어른의 경계 없이 읽히는 동시, 현실에서의 경험만큼이나 선명하게 하나의 경험으로 남는 동시, 읽고 난 다음 아주 조금, 아주 잠깐이라도 마음에 자신만의 이미지 하나를 남게 하는 동시를 쓰고 싶다는 바람으로 시인은 “마침표까지는 아직 멀고 먼 말들”을 부려놓는다. 짝사랑하는 아이의 집 앞을 맴도는 아이 곁에, 얼마 전 죽은 카나리아를 기억하는 아이 옆에, 쉬는 시간 아무하고도 관계없는 사람처럼 앉은 아이 옆에, 아스팔트로 기어 나온 지렁이의 심장 옆에, 단단하고 차가운 자물쇠의 배꼽 옆에. 어딘가 있을 누군가에게 닿을 동시를. 아이들을 태우고 어디로든 갈 수 있는 동시를.
시를 따라 펼쳐지는 이미지의 공간, 그 안에서 잠시 쉬었다 갈 수 있는 긴 의자 하나
비 갠 뒤 깨끗한 하늘, 살찐 구름, 부드러운 미풍에 싸여 어떤 익명의 동네를 여행하는 느낌. 차상미 화가의 그림에서는 피부에 닿는 듯한 대기의 질감이 느껴진다. 그 동네에서 우리는 편안한 일상의 어긋난 틈으로 스며든 판타지를 만나기도 하고 판타지 속에서 공감의 요소를 만나기도 한다. 그림을 보는 이들에게 조금이나마 행복과 위안이 되었으면 하는 화가의 바람은 시의 동네에서 잠시 쉬었다 갈, 긴 의자 하나를 놓아 주었다.
작가 소개
글 : 김준현
1987년 포항에서 태어났다. 2013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시)와 2015년 창비 어린이 신인문학상(동시)을 통해 등단했다. 시집 『흰 글씨로 쓰는 것』을 냈다.
그림 : 차상미
시각디자인을 전공했다.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며 책과 영상 등 다양한 매체에 그림을 그리고 있다. 피아노 악보집 ‘궁금해?’ 시리즈, 한국어교재 『K-POP KOREAN』에 그림을 그렸으며, 단행본 『펭귄철도 분실물센터』의 표지를 그렸다.
목 차
1부
나는 법
웅크림
씨
일
바다, 소리
수학 시간-소행성 B612
어떤 빗방울
2부
물방울 연주
김에서 밥까지
주의사항
줄넘기
풍향계
둥글둥글
별 그림
귀 빠진 날
문제 7번
인디언 아이처럼
3부
한글 공부-이응(ㅇ)
한글 공부-꼬리
한글 공부-미음(ㅁ)
한글 공부-이(ㅣ)
한글 공부-기역(ㄱ)
양반
홍길동
말에도 뼈가 있을까?
가분수
동그란 것
4부
채굴
만나고 싶은 너
간지럼
비행
구멍
꽃주름
셀카
아무것도 안 보여
“빨래”
꼴찌
오늘은
5부
봄, 가까이
젓가락 행진곡
다섯 개의 심장
0원이 영원히
태엽
딸꾹새가 사는 새장
여행자
해설
나는 법
웅크림
씨
일
바다, 소리
수학 시간-소행성 B612
어떤 빗방울
2부
물방울 연주
김에서 밥까지
주의사항
줄넘기
풍향계
둥글둥글
별 그림
귀 빠진 날
문제 7번
인디언 아이처럼
3부
한글 공부-이응(ㅇ)
한글 공부-꼬리
한글 공부-미음(ㅁ)
한글 공부-이(ㅣ)
한글 공부-기역(ㄱ)
양반
홍길동
말에도 뼈가 있을까?
가분수
동그란 것
4부
채굴
만나고 싶은 너
간지럼
비행
구멍
꽃주름
셀카
아무것도 안 보여
“빨래”
꼴찌
오늘은
5부
봄, 가까이
젓가락 행진곡
다섯 개의 심장
0원이 영원히
태엽
딸꾹새가 사는 새장
여행자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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