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너는 지금 행복하니? 네 행복은 안전하니?
《행운이와 오복이》는 김중미 작가가 오랜만에 선보이는 장편 동화이자, 소외된 아이들에게 향해 있던 시선을 스스로 안전지대에서 머물러 있다고 믿는 아이들에게로 넓힌 작품이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아이들에게 너는 지금 행복하냐고, 네 행복에는 정말 아무 문제가 없느냐고 진지하게 물어 온다.
5학년 행운이는 중산층 가정에서 별다른 어려움 없이 살아왔다. 하지만 은행원이던 아빠가 정리 해고를 당한 뒤, 행운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고 있다. 아빠가 가게를 여는 족족 실패하면서 부모님 사이가 멀어지더니 기어이 별거에 들어간 탓이다. 언제나 더 나은 삶을 꿈꾸며 쉼 없이 달려왔던 엄마는 별거에 앞서 행운 남매에게 누구와 살지 정하라고 한다. 동생 행복이는 냉큼 엄마를 따라가겠다지만, 행운이는 그럴 수가 없다. 요리도, 세탁도, 청소도, 그 무엇도 제대로 할 줄 모르는 아빠를 남겨 두고 떠날 수가 없는 까닭이다. 엄마가 행복이를 데리고 강남의 좋은 학군을 찾아 떠난 뒤, 행운이는 아빠를 따라 오복이네 동네로 이사를 한다. 학부모들이 이웃 학교로 치워 버리고 싶어 하는 가난한 아이들, 반 아이들이 상대도 하기 싫어하는 지질한 아이들이 사는 동네로 말이다.
행운이네의 ‘몰락’은 낯선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도 우리 주변에서 얼마나 많은 제과점이, 커피숍이, 편의점이, 치킨집이 생겨났다 사라지는지를 생각해 보면 말이다. 그 현상 뒤에는 지금의 삶보다 나은 삶을 바라며, 아니 지금보다 못한 삶을 살지 않으려고, 아이들은 자신보다 더 나은 삶을 살게 하려고 쉼 없이 달려온 ‘보통 사람’들이 있다.
행운이 엄마도 그런 보통 사람 중 하나다. 중산층 가정에서 자라 그보다 못한 삶을 상상해 본 적도 없는 사람, 아이들이 자신보다 나은 삶을 살 방법은 공부밖에 없다고 믿는 사람, 아이들을 잘 가르치기 위해 위험한 선택도 마다 않는 사람……. 반면 행운이 아빠는 저소득층 가정에서 자라 스스로의 힘으로 중산층까지 올라온 사람이다. 하지만 자신이 옳다고 믿는 바를 지키며 살려다 보니 지금의 상황까지 떠밀려 왔다. 행운이네의 몰락은 보통 사람도 착한 사람도 별 탈 없이 살기 힘들어진 지금의 현실을 가감 없이 보여 준다. 한 발만 삐끗해도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는 이 위태로운 현실을 바꿀 방법은 정말 없는 걸까? 작가는 이 어려운 질문에 긴 세월 ‘기찻길 옆 작은 학교’의 큰이모로 살아오며 찾은 ‘정답’을 차분히 들려준다.
조금은 불편하지만 감당해 볼 만한 행복
행운이는 새로 이사 온 동네에서 1학년 때부터 3학년까지 껌딱지처럼 따라 다니던 오복이와 다시 마주한다. 할머니와 단둘이 사는 자란 오복이는 1학년 때 교실에서 오줌을 싼 뒤로 ‘전따(전교 왕따)’가 된다. 착하고 바른 아빠 밑에서 자란 탓에 오복이를 외면할 수 없었던 행운이는 3년 내내 오복이의 뒤치다꺼리를 해 왔다. 4학년이 되어 반이 갈라지면서 그 노릇에서 해방되나 싶었는데, 5학년이 되면서 다시 같은 반이 되었다. 그런데 이젠 그것도 모자라 오복이네와 이웃해서 살게 된 것이다.
행운이는 “너희 망했어?” 하고 거침없이 묻는 오복이를 보며 꼬부장했던 마음이 스르르 풀어지고 만다. 그 질문이 단짝 친구 병일이에게도 말할 수 없었던 비밀의 무게를 한 방에 날려 버린 까닭이다. “응, 우리 아빠 망했어. 울 엄마 아빠가 따로 살게 돼서, 나는 아빠 따라 왔어.”라는 대답에 덤덤히 고개를 끄덕이는 것도 마음에 든다. 그러다 보니 학교 운영 위원장 아들인 한결이가 오복이를 집요하게 괴롭히는 꼴을 그냥 보아 넘기기가 점점 힘들어진다.
행운이는 한결이에게서 오복이를 지켜 내며, 오복이 할머니가 해 주는 음식에 맛을 들이며, 오복이와 친형제처럼 지내는 장애인 청년 기수, 익수와 가까이 지내며 함께 살아가는 맛을 알아 간다. 그러던 중 오복이 할머니가 요양 병원으로 가게 되면서 행운이와 오복이는 이웃을 넘어 가족으로 거듭난다. 사고로 부모를 잃은 이웃 아이를 여동생으로 맞아 함께 살아온 행운이 아빠가 자신의 부모가 그랬듯 오복이를 아들로 맞아들인 것이다.
오복이와 함께 살아가는 일은 마냥 좋지만은 않다. 잘 씻지도 않고, 숙제나 공부는 으레 안 하는 거로 알고, 드라마란 드라마는 다 챙겨 보고, 그러느라 지각을 일삼는 오복이 때문에 행운이의 생활도 알게 모르게 흐트러진다. 하지만 같이 있어서 불편한 것보다 좋은 것이 조금 더 많기에 함께 살아 볼 만하다고 생각한다.
작가는 더불어 살아가는 일이 그리 어렵지 않다는 거짓말은 하지 않는다. 오히려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서는 적지 않는 불편과 희생이 따른다고 솔직하게 말한다. 그 불편과 희생을 기꺼이 감당하고 싶지 않은 가족에게 적지 않는 부담과 상처를 줄 수 있다는 것까지 숨김없이 드러낸다. 그럼에도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행복은 어디에 깃드나?
행운이 주변의 어른들은 걸핏하면 복 타령에 팔자타령이다. 내가 박복해서라며 자책하거나 네게 박복해서라며 상대를 탓한다. 내 팔자가 사나워서 자식들 팔자도 사납다고 한탄하고, 네 팔자가 사나워서 내 팔자까지 꼬였다고 상대를 비난한다. 행운이는 그 복 타령, 팔자타령 지긋지긋하면서도 정말 사람마다 정해진 복, 정해진 팔자가 있는지 궁금하다. 그러던 중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게 저승에 가서 옥황상제에게 답을 듣고 온다. 옥황상제는 단호하게 ‘그런 건 없다’며 고개를 가로젓는다. 인간이 받는 복이라는 것은 하늘에 쌓은 공덕이며, 남을 위해 한 일이 제 복이 되어 돌아온다면서 말이다. 복은 근사한 모습으로 찾아오지 않기에 알아보기 쉽지 않지만, 그 복을 알아보고 혼자 누리려 하지 않고 다시 나누면 더 큰 복이 쌓인다고도 한다.
그러고 보면 행운이 주변에도 옥황상제가 말한 복을 누리며 사는 사람이 적지 않다. 행운이 할머니만 해도 친아들인 행운이 아빠보다 수양딸인 고모를 의지하며 살아간다. 오복이 할머니도 멀리 사는 딸보다 가까이 사는 기수와 익수의 도움을 받을 때가 더 많았다. 행운이 아빠는 실직자가 된 기수 형과 함께하면서 일이 점점 잘 풀린다. 행복이 자신도 오복이, 기수 형, 익수 형과 어울리며 예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행복감을 느낄 때가 많다. 삶의 비탈길에 서 있는 사람들이 서로 손을 맞잡으면 서로를 지탱하는 구명줄이 된다는 사실, 그 맞잡은 손 위에 행복이 깃든다는 진실을 이들의 삶을 통해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나는 너의 행운이, 너는 나의 오복이 되어 함께 행복하게!
《행운이와 오복이》는 우리 옛이야기 중 하나인 ‘차복 설화’에서 비롯된 작품이다. 김중미 작가는 지난 2016년 기찻길 옆 작은 학교 정기 공연을 준비하면서 이 옛이야기와 처음 만났다고 한다. 가난한 나무꾼이 하늘에서 아직 태어나지 않은 차복이의 복을 빌려 왔다가 나중에 차복이 가족을 만나 그 복을 함께 나누며 살아간다는 이 옛이야기는 지금껏 작가가 살아온 삶과 별반 다르지 않다. 기찻길 옆 공부방을 만들고 아이들을 돌보면서 첫 책 《괭이부리말 아이들》을 쓰게 되었고, 작가가 되어 얻은 크고 작은 것들을 다시 아이들과 나누며 살아오고 있으니 말이다.
‘차복 설화’는 옛날 아이 무복이 이야기로 거듭나 무대에 올랐고, 다시 오늘날의 아이 행운이와 오복이 이야기로 거듭나 책이 되었다. 작가는 이 책에 자신에게 가장 아프게 와 닿는 현실의 문제를 가감 없이 담았다. 가파른 비탈에 서서 휘청대는 중산층의 문제, 벼랑 끝까지 내몰린 저소득층의 문제,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장애인 차별 문제……. 어른도 가슴이 묵직해지는 이런 이야기를 아이들 앞에 펼쳐 보이는 것이 과연 괜찮은지를 걱정하는 이가 있다면 이렇게 되묻고 싶다. 아이들에게 우리가 처한 현실을 제대로 들려주고 자신의 삶에서 건져 올린 소박하고도 진실한 해법을 진지하게 제안하는 어른이 한 사람쯤은 있어도 좋지 않겠느냐고. 인형극으로 무대에 오른 무복이 이야기가 공연을 준비한 아이들과 관객들에게 따뜻한 위로와 새로운 희망을 안겨 주었듯, 이 책 또한 더 많은 아이들에게 위로와 희망으로 다가가기를 기대해 본다.
작가 소개
저 : 김중미
1963년 인천에서 태어났다. 1987년부터 인천 만석동에서 ‘기차길옆공부방’을 꾸려 왔으며, 지금은 강화로 터전을 옮겨 농사를 짓고 인천과 강화를 오가며 ‘기차길옆작은학교’의 큰이모로 살고 있다. 가난한 아이들과 이웃들의 삶을 녹여낸 장편동화 『괭이부리말 아이들』로 창비 ‘좋은 어린이책’ 원고 공모에서 대상을 받으면서 동화 작가가 되었고, 깊은 고민과 문제의식을 담은 작품들로 세상에 감동을 전하고 있다. 그동안 지은 책으로 동화 『종이밥』 『내 동생 아영이』 『똥바다에 게가 산다』, 그림책 『6번 길을 지켜라 뚝딱』, 청소년 소설 『조커와 나』 『모두 깜언』 , 에세이 『꽃은 많을수록 좋다』 등이 있다.
그림 : 한지선
이화여자대학교에서 동양화를 공부하고, 영국 킹스턴 대학의 일러스트 과정을 수료했다. 서울에서 태어나 지금은 노을이 아름다운 섬 강화도에서 살고 있다. 지금까지 30권이 넘는 어린이책에 그림을 그렸는데, 자유분방한 선과 절제된 색, 개성 넘치는 캐릭터로 아이들을 흥미롭게 이야기 속으로 끌어들인다. 노을이 아름다운 섬 강화도에 살면서, 어린이만의 세계를 특별하게 표현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린 책으로는 『기호 3번 안석뽕』, 『신발장 바퀴벌레와 초파리 이미선』, 『태진아 팬클럽 회장님』, 『자전거를 타는 물고기』, 『엉덩이가 들썩들썩』, 『달이, 구만 리 저승길 가다』, 『내 동생은 미운 오리 새끼』, 『거꾸로 가는 고양이 시계』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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